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가 없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서도 지인의 뒷공론까지 받아넘길 정도로 담대함은 자리하지 않아 타인의 언행에 휘둘리며 상처를 받으며 지낸다. 게다가 누웠다 하면 이내 잠들었던 청춘 시절을 비껴나서인지 숙면을 취하기 힘들고 등줄기에서는 열이 나고 얼굴은 화끈거린다. 연신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는 친구에게 갱년기 티 나게 한다 했던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갱년기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이래서 눈에 보이는 현상만으로 일상을 가늠하고 진단하지 말라고 한 모양이다. 노화의 진행과 더불어 회복탄력성은 떨어지고 기억력은 가물가물하면서 예전 같지 않다는 말 대신 메모지를 곁에 두고 산 지 이태가 지났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 길어진 노년에 건강은 여생을 잘 보낼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 바로미터로 작용한다. 지인들이 불귀의 객이 되어 이승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일들이 늘어나자 죽음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 늘어난다.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솔직해지는 순간은 그리 흔치 않다. 지나고 보면 역할에 걸맞은 가면을 쓰고 그에 부합하는 행동으로 생각을 유폐하는 시간이 많았다. 속력을 내며 사느라 방전된 에너지를 불어넣을 때를 놓치고 살던 저자는 길 위에서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지난봄 제주도 올레 길을 걸으며 파도에 부서지는 포말을 말없이 바라보며 유한한 인생도 어느 순간 스러져 자연으로 순환하리라는 생각에 미치자 외로움이 더한다. 지금은 친구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해안선을 따라 걷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할 수 있는 일들은 줄어듦을 알아차리게 된다. 거문도 섬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뱃사람이라면 으레 행할 어로활동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며 바다를 배경으로 질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인심 좋은 작가가 건네는 막걸리 한 사발 쭉 들이키고는 일상의 일을 전하며 질박한 정을 주고받는다.

결핍을 견디며 사는 법을 터득한 이들은 필요 이상을 소비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음을 안다. 권력의 중심 과잉된 욕망의 도시와는 떨어져 지내지만 더딘 변화를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온 항구 주변에 깃들어 사는 이들의 삶은 실재하는 풍경으로 꿈틀거렸다. 끝도 모를 수평선을 말없이 바라보며 침묵을 견디고 거대한 파도와 강풍을 감내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도 고립할 수 있는 근간이 있어야 섬에서의 일상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섬으로 들어왔다 섬을 떠나는 사람, 평생 섬을 지키며 사는 사람, 욕망을 찾아 도시로 나갔다가 섬으로 회귀하는 사람들의 일상성이 갖는 비문학적 삶 하나하나가 문학을 키우는 질료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며 경험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긴다.

 

  “너만 먹어!”

   라며 붉어진 얼굴에 손등이 까만 소년은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눌은밥 한 덩이를 나에게 건네주고는 뒤돌아서 우물가로 달려갔다. 군것질 거리가 귀하던 시절 가마솥 눌은밥은 씹을 때마다 단물이 빠져나와 고소함이 입 안 가득 퍼졌다. 나이 들어갈수록 추억을 곱씹으며 그 시절을 반추하느라 머릿속은 분주하고 마음은 아련한 향수를 돋운다. 초등학교 동기들과 만나고 오는 길 함께 했던 추억의 음식을 떠올리며 허기진 마음을 달랜다.

제철에 맛볼 수 있는 그 지역의 토박이 음식을 준비하며 밥을 같이 먹던 시간은 추억을 되새기며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영혼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자퇴와 가출을 병행하였던 10대의 방황이 정점에 오를 때 저자는 범어사에 머물며 여러 가지 푸성귀로 싸 먹던 쌈밥들의 다양한 맛을 떠올리며 여러 경험이 잣는 쌉쌀함과 싱그러움이 공존하는 인생을 돌아보았다. 된장을 풀어놓은 물에 짱뚱어를 삶아 으깬 뒤, 시래기와 애호박 등을 넣어 한소끔 끓여낸 탕은 고봉밥을 먹어치우던 밥도둑이었다. 고슬고슬 지은 쌀밥 반찬의 진수인 지역의 젓갈 등이 즐비한 남도 음식이야기는 외가에서 먹은 굴비젓갈을 올린 비빔밥의 감칠맛을 떠올리게 한다.

 

   다양한 경험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창조적인 작가로 살기를 바랐던 저자가 보낸 시간 속 세월은 부침(浮沈)의 인생에 걸맞은 경험이 변주한 음식의 나눔으로 <<밥도둑>>은 지난 추억의 장터로 사람 사는 냄새를 더한다. 밥 한 끼 하자는 소리를 아끼며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 세상살이에 밥을 나누는 일은 상대와 소통하는 시간이다. 결핍으로 이어지던 시대 썩어가는 생물을 응용하여 만든 음식으로 이웃들과 나누어 먹던 감자떡의 추억은 그 시대를 함께 지냈던 이들과 이야기 나누며 건네고 싶은 명물이다.

 

   생명적 유기체는 누구든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에 놓여 있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한두 달이 멀다하고 접하는 부음(訃音) 중에서도 젊은 생명이 제 빛을 발하기도 전에 세상과 결별하였다는 소식은 헛헛함에 휩싸이게 한다. 스물 셋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제자의 상가를 찾았을 때 남은 식구들과 친구들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오열하고 있어 비통함은 배가 되었다. 다양한 죽음을 목도하면서 슬픔에 젖을 때마다 불가항력적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가야할지 고민한다. 순연한 흐름으로 죽음을 수용하며 남은 자들을 배려하는 넉넉한 사랑은 전하지 못하더라도 불평을 늘어놓기보다는 푸념을 거두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부터 실천하며 지낸다.

 

   동생이 태어난 지 오래지 않아 아버지는 서른 중반에 서둘러 이승을 뜨고 말았다. 무엇이 그리 급하였던지 가을걷이를 끝내고 동네 어귀의 다리에 짐을 부리고 앉아 막걸리 한 순배를 돌리다 쓰러져서는 일어나지 못하였다고 한다. 동네 어른들은 아버지가 선하여 이를 시샘한 염라대왕이 서둘러 아버지를 데려간 것이라 둘러댔다. 아버지 빈자리를 채우며 생업에 뛰어든 어머니는 물리적·시간적 한계를 넘어서는 실천력으로 한 집안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느라 고단한 시간을 보내야 했고 슬하의 남매 역시 농사를 거들며 자립할 힘을 길러야 했다. 어느 한쪽이 빠진 부분을 채우는 일이 쉽지 않음을 일찍부터 알아서인지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자기관리능력은 조금씩 쌓여갔다.

   살다 보면 우리네 삶이 최적의 선택과 결정보다는 불가항력적인 결정대로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왕왕 벌어진다. 작은 개체인 점들이 모여 하나의 연결 고리인 선으로 이어져 크고 작은 영향 아래 놓여 또 다른 파장을 불러일으켜 은폐된 진실을 규명하려는 움직임으로 이끌기도 한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들어온 이복동생의 돌연한 사고사는 점점이 떨어져 있던 이들을 하나의 선으로 결박하여 인간의 품위를 짓밟고 만다. 고립된 섬처럼 찍힌 작은 점에 지나지 않았던 동생의 죽음은 생전에 잘해주지 못하였다는 부채감에서 시작된 동생의 죽음을 추적하던 중 죽음의 단서를 찾아 나섰다.

 

   단기간에 목돈을 만질 수 있다고 사회적 약자를 유혹하여 하부로 삼는 구조망으로 연결된 먹이사슬의 정점인 다단계 수법은 서로에게 덫을 놓는다. 다단계 수법의 그물망은 독립된 개체의 점조직들이 상부와 하부로 나뉘면서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서로를 잠식하는 연결고리에 지나지 않았다. 가학적인 폭력으로 피해의식을 부추기며 자유롭게 숨 쉬고 뜻한 대로 움직이며 살아갈 힘까지 앗아가 버린 악인들의 행동은 거대한 자본의 힘에 굴종하여 기생하는 삶을 잇는 선들의 법칙이었지만 이들은 하나의 연결고리로 유대하고 연대하여 공공의 선을 실현하는 일에는 실패하였다. 가족이 함께 밥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마저 유기한 채 지내온 시간들을 복원할 수 없기에 지금부터라도 구성원들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묻고 응대하는 가운데 소원해진 관계는 서서히 회복될 것이다. 신기정이 신하정의 죽음의 궤적을 좇아 외로운 삶을 끝낼 수밖에 없었던 인생을 연민하면서 진정한 애도를 시작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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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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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난 지 다섯 달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오빠 네와 함께 살던 친정어머니는 여덟 살 때부터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면서 올케 일을 거들어야 했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며 집안 살림을 잘 배우며 조신하게 지내다 시집을 잘 가는 게 최고라는 말은 동무들과 자유롭게 지낼 기회마저 앗아갔다. 동년배들보다 늦게 들어간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어도 집으로 돌아와 일손을 거들어야 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중학교 진학은 좌절되었고 식구들 밥상을 차리는 일에서부터 조카들 뒤치다꺼리까지 도맡았던 어머니는 스물 하나에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여 시어머님을 봉양하며 집안의 살림을 맡아야 했다.

 

   섬진강 상류에서 지내던 어머니는 결혼 후 섬진강 하류로 내려와 시댁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와 나이 차가 많은 아버지는 과묵한 경상도 사나이로 감정 표현이 서툴렀다. 없는 집안의 둘째 아들에게 시집와 어른을 모시고 살면서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 친정어머니의 지난시절 이야기는 김지영의 어머니 오미숙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남자 식구-오빠, 남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당대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희생은 어린 시절부터 전수되어 왔지만 감내하였을 뿐이다. 우리 어머니들은 결혼 전에는 친정 식구들을 뒷바라지하다 결혼 후에는 시댁 식구들을 보살피는 일을 밥 먹듯이 해왔지만 어머니의 희생을 당연시하며 당신들의 마음을 살피는 일에는 무심했었다.

 

   양성평등과 민주적 가족법을 구현하기 위한 가족법 개정운동의 결과 호주제 폐지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개정 민법이 공포돼 세상이 많이도 바뀌었지만 사회 규범으로 내정된 규칙이나 습관들은 바뀌지 않았다. 맏딸에게 교사를 권하여 교단에 서게 한 어머니는 성적 차별 없이 대우받으며 보람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둘째 딸 김지영에게는 현실적인 대안보다는 하고 싶은 공부하면서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 좋겠다며 그녀의 선택을 지지했다. 서울 소재 대학의 인문 학부를 졸업한 김지영은 어렵게 취직한 홍보대행사에서 역량을 발휘하며 경제활동을 이었다.

 

   못 버틸 직원이 버틸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데 주력하기보다는 버틸 수 있는 직원을 키우는 게 낫다는 게 낫다고 판단한 회사 대표의 생각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흔한 풍경이다.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근시안적인 효율과 합리만을 내세우는 게 공정한지 회의하면서도 그 굴레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여성 직장인들의 비애는 커 보인다. 신경 정신과 전문의 남편보다 더 능력 있는 의사였으나 초등학생인 아이가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증후군 증상을 보이자, 그의 아내는 안과 전문의를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는 어머니들의 헌신적인 모습은 의사의 아내·김지영에게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었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찾기도 힘들 뿐 아니라 베이비시터를 구하더라도 경비를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 자신의 능력을 사장할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지는 현실이다.

 

   부모 교육에 대한 이해 없이 선험적인 세계를 현실로 받아들이며 부모가 되어 사는 일은 녹록치 않다. 육아 휴직을 하고 싶어도 제도적 뒷받침이 미비하여 출산 후 양육 부담은 배가 된다. 마치 남의 일에 선심을 쓰듯 바깥 일로 바쁜 남편이 팔을 걷어붙이고 청소와 설거지를 도와준다고 말할 때 아내의 힘은 빠진다. 제도가 바뀌어도 편향된 가치관은 쉽사리 바뀌지 않아 가정 내에 자리한 성적 차별은 공감과 배려 없는 법제 개정으로 질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명절날 시댁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내는 해리 장애를 보인 김지영은 딸을 출산하면서부터 오롯한 자신으로 살기를 유예하고 하고 싶은 일까지 그만두고 세 살배기 딸을 키워왔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그녀가 산후우울증에서 육아우울증으로 이어진 전형적인 사례로 보았으나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닌 듯하다.

 

   세 살배기 딸이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시간 타임 일자리를 알아보려 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싶은 일과는 거리가 있었다. 좋아하면서 잘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찾으라고 조언하는 남편 말은 현실성 떨어지는 이론에 가까웠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능력 발휘의 기회를 접고 가정 살림과 자녀 양육까지 떠안는 상황이 지속되는 현실에서 여성이 하고 싶은 일을 행하며 자아 정체성을 찾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가정에서부터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에서 벗어나 남녀가 수평적인 관계로 소통하여 갈 때 불균형은 조금씩 균형을 잡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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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소신으로 줏대 있게 살아야 한다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다수가 내는 뒷담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수다를 늘어놓는 대신 혼자 밥을 먹고 교정을 빠져나와 논두렁을 타고 걸으며 그동안 보낸 시간들을 불러내어 성찰한다.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다 보니 별다른 호기심은 스멀스멀 자취를 감추고 단조로운 관계에서 오는 무연함을 달래 줄 변화를 시도하며 지낸다. 50대 후반에 접어든 선배 직장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남은 교직 생활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며 십대의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 속에 의미를 둔다.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교사를 보고 얼룩말 같아 집중하기 힘들다고 아우성인 아이들은 여과 없이 속말을 드러낸다. 그들이 건네는 말에 상처를 받을 때도 있지만 풀이 죽은 모습이 아니라는 데서 스스로를 다독거린다.

 

   갱년기 증상으로 널뛰는 감정을 확인하며 등짝이 화끈거리고 이마에 땀이 흐를 때면 땀방울을 훔치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에 주술을 걸며 나이 50에는 좀 더 유연해져 타인을 배려할 수 있길 바란다. 불혹은 앞둔 서른아홉에는 직장 일에 시달리며 돌발적인 병인(病因)으로 힘들었던 자녀를 양육하면서도 이대로 시간을 보내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은 마음을 에워쌌다. 순간에 충실하며 지냈으니 낯선 공간을 찾아 길 위에 나서는 여행지를 물색하고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섰다. 통원 치료로 약을 복용하는 중이지만 일상을 이을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하며 마음을 비우고 이보다 더 악화되지 않아 다행이라 여기는 통찰적 안목이 조금씩 자리하였다. 힘든 상황에서도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지켜가는 일을 삶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지금도 책을 즐겨 읽고 여행을 통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소소한 가치를 떠올리며 질적인 향상을 도모한다.

 

   글 쓰는 업으로 살아가려는 작가에게 <<지상의 방 한 칸>>은 집필할 수 있는 공간이면서 휴식으로 재충전해 창조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고백은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쌓은 경험은 잠재적인 능력을 발견하여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힘들고 지쳐도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는 방이 있어 감사하다는 말에는 일상의 의미를 찾아 행복 요소를 부여하며 사는 작가의 긍정성을 읽는다. 어린 스승에게 첼로를 배우며 받은 칭찬에 공명하는 작가는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며 타인을 배려하는 스승으로 자리하고 싶은 바람이 커졌다.

 

   잠정적으로 포기하며 지냈던 20대와는 달리 진지하게 생각하여 접게 되는 30대에 작가의 길을 선택한 저자는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공부하는 과정을 즐기기 위한 수련을 거듭하여 갔다. 숙면을 취하는 대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강연을 준비하는 생활로 기량을 쌓았고, 특별한 날을 기념하며 휴일을 보내는 생활과는 비껴난 삶을 지속해야 했다. 건강을 잃은 아버지가예전의 아버지로 돌아오기를 포기했다는 대목에서는 거역할 수 없는 생로병사의 인생 여정임을 기억하고 현재에 충실해야 함을 일깨운다. 내면의 부조화를 인식하고 조정하여 갈 필요를 느끼면서도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채 공생하다보면 쉽지 않다.

고독한 시간 속에 나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사려 깊게 판단하고 실천할 용기를 내야 한다.

 

   자식들을 키우면서 조바심내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부모 역할이 소중함을 인지하면서도 아이 스스로 깨달아 행동으로 옮기기를 기다리다 지쳐 잘못을 짚어 훈계하며 명령하여 왔다. 권위를 내세워 윽박지르면 마지못해 듣는 척하면서 부모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식들을 보면서 인내와 기다림은 길러졌고 기다림 속에 조금씩 철이 든 어른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기분에 좌우되기보다는 힘든 상황에서도 새로운 마음을 내어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간절한 버팀목인 기다림의 지혜는 충동적으로 치닫는 마음에 제동을 건다. 부서지고 넘어지면서 느끼고 자각하여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배양하여 가기를 기다리며 애착을 놓는 연습 중이다.

 

   스스로 후회 중독자라 칭하는 저자는 타인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자신만의 속도로 삶을 사는 긍정성을 발견하며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못한 일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사라질 유한한 생명체로 마음을 다잡고 무모한 도전이라 빈정대는 이들이 있더라도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질문하며 스스로 해답을 내리며 즐길 수 있는 일을 발견할 때 삶의 의미는 커질 것이다. 바닥을 치게 되더라도 실패의 경험은 재기를 위해 발돋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과정으로 여기며 성숙해지는 길목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고 열정과 냉정의 균형을 찾아 면역력을 길러 잊지 말아야 할 가치를 담은 단어들-마음속에 새기고 싶은 인생의 키워드 20- 을 지향하며 살아가는 중년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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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힘들었겠다 - 외롭고 지친 부부를 위한 감정 사용설명서
박성덕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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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학 후 나흘 수업을 해야 하지만 학교는 학년말 학교생활기록부 정리와 이동해야 할 상황에 놓인 선생님들의 행보 등으로 정신없이 돌아가는 2월이다. 며칠 전의 불협화음의 앙금이 채 가라앉기 전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말을 건네는 모습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상대의 성향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필요 이상의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말았다. 겉으로 봤을 때는 그럴듯하게 잘 사는 것 같지만 안으로 조금만 발을 내딛고 보면 갖가지 사연들이 똬리를 틀고 문제를 일으킬 조짐은 도처에 자리한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살았는데 그것도 이해 못해 주냐며 항변하는 이에게는 뭐라고 할 말이 없어진다. 자신의 보호막은 그대로 둘러놓고 영역을 침범하면 여차 없이 덫을 놓아버린다.


   불화의 원인을 내부로 돌리는 자신을 질책하면서 관련 책을 읽고 사고의 변화를 꾀하지만 관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동안 힘들었겠다.’

  한마디가 주는 위로의 짧은 메시지는 긴 울림으로 가슴 속에 공명한다. 억겁의 인연으로 현세에 부부로 만나 그동안 입은 은혜를 갚느라 마음고생도 하고 가끔은 즐거운 일도 기억하면서 사는 관계에 놓인 아내와 남편이다. 살아가면 갈수록 투명해지고 명확해지기보다 알 수 없는 일들이 산재해 있음을 간파한다. 기대를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상대를 자신의 생각에 맞게 강요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눈에 거슬릴 때면 여러 가지를 요구하고 그 말을 들은 대상은 웬 참견이냐며 화를 내고 만다. 그러다 다툼을 하고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다 지치면 곁에 있어도 없는 이로 취급하는 경우가 늘어나 관계 개선은 쉽지가 않아진다.


   가부장적인 사회의 병폐로 남편은 오래 전부터 마음을 표현하는 일에 서툴렀고 아내의 상황에 공감하는 일을 간과해왔다. 연애할 때 설레고 흥분되던 마음은 결혼 후 현실의 벽에 갇혀 야속함과 원망으로 채워졌다. 불화로 강한 부정적인 정서에 휩싸이고 친밀감은 사라져 긍정적인 관계 회복과는 점점 멀어지고 만다. 부부 간의 갈등을 회피하여 눈앞에 문제를 외면하는 일은 관계개선과는 요원해진다.

  ‘사람은 서로의 공통점 때문에 친해지고 차이점 때문에 성장한다.’

는 가족치료 권위자인 버지니아 사티어의 한마디는 차이점을 수용하지 못한 채 갈등만 일으켜 온 자신을 성찰케 한다.


  각기 다른 환경의 영향 아래 놓인 부부는 다름을 알면서도 쉽게 수용하지 않은 채 자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다름이 단점이 아닐진대 정서적 교류를 위해 서로 노력하기보다는 화근을 초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로를 이해해 주지 못해 화가 나고 한으로 남는다고 말하면서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부부의 화합은 요원하다. 상대의 공감하는 대화법을 배우며 힘들어하는 내용을 표현하면 가만히 들어주는 것으로도 위로될 때가 있다. 상대의 마음을 알아줄 때 상대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다. 배려가 또 다른 배려를 낳는 것처럼 진정으로 이해하고 외로움을 표현할 때는 그 상황에 공감하며 다독거려줄 때 부부의 관계는 회복될 것이다. 어느 한쪽이 세상을 먼저 뜨게 되더라도 서로 애착관계를 유지했던 부부는 살아갈 힘을 얻어 여생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상대의 처지에 공감하고 감정을 읽고 진정으로 대할 때 힘들었던 일들도 견뎌낼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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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두 얼굴 -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테라피
최광현 지음 / 부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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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느리로 산 지 26년째이지만 설날 장만해야 할 음식을 꼽으며 장을 봐야 한다는 남편의 소리가 달갑지 않다. 이왕 할 거면 기쁜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하면 될 텐데도 아들 다섯 중 효심이 남다른 남편의 바람을 들어주는 데에도 한계에 직면했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부엌에서 진종일 일할 생각을 하니 설 연휴 사나흘 전부터 과민해진 신경은 너울을 타고 감정의 파고를 넘나든다. 남편 역시 아내의 말에 발끈하며 응수하지만 지금껏 해온 게 있으니 뭐라 말은 못하고 다음 명절에는 나만 갈 테니 집에 그냥 있으라며 쐐기를 박는다. 시집와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공동체에 결속되어야 하지만 물에 기름처럼 융화하지 못한 채 겉도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가족 공동체와 분리되어 지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아버지를 여의고 남매를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친정어머니는 맏딸에게 많은 짐을 지우고 생업에 종사하였다. 어려서부터 희생을 관행처럼 여기고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 자아에 대한 애착이 생기면서 야속함과 서운함이 가슴속에 자리하였다. 장녀라는 이유로 희생양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맹목적인 논리는 한 사람의 희생으로 가족의 질서를 유지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가는 일을 미덕으로 받아들이며 상황에 순응하기를 강요한다. 남편 역시 홀로 지내는 여든 여덟의 노모의 손발로 살아온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어머님을 돌보는 일을 천명처럼 받아들이고 있어 가정불화는 빈번했다. 넷째 아들이 곁에 없으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라며 자식을 분리하지 않으려는 어머님은 아들에게 의존하는 전형성을 띠고 그 아들은 어머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효자 아이콘으로 자리하니 풀기 어려운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마음속 깊은 상처로 남아 평상심을 유지하며 살아가기 힘들게 하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성년이 되어서도 쉽게 벗어나기 힘든 나락 속으로 밀어 넣는 경우가 흔하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기억은 채워지지 못한 사랑에 집착하며 건강한 삶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여 또 다른 불행을 초래하기도 한다. 불행한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은 안데르센은 자신의 불행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작품에 내면을 투사하여 상처를 치유해 갔다. 내면에 직면하여 불행의 단초를 희망의 실마리로 풀어가는 열쇠로 패러다임을 전환해 갈 때 불행했던 경험의 굴레에서 벗어날 힘을 얻을 수 있다.


  속내를 드러내고 말을 하고 싶어도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이가 없어 고독함이 더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늉하면서 부모의 뜻을 관철하려고 해 말하기가 싫다며 말문을 닫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밖에서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말해보지만 쓸데없는 말 늘어놓지 말고 할 일이나 잘하라는 핀잔을 들으니 아이는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으려 한다. 대학 신입생인 아들은 말해봤자 소통이 안 되니 말할 필요가 있겠냐며 푸념을 늘어놓을 때가 많은데 경청하는 공감적 듣기로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은 부모가 함께 개선해야 할 몫이다. 가족 내의 위계를 생각하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관행대로 움직이며 각자의 자리에 충실할 때 가정의 평화는 유지될 것이라는 환상 속에 사로잡혀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지내온 시간들이 회한을 낳는다.


  결혼한 부부 간에 보이지 않는 관계통장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유지하는 척도로 작용할 수 있다는 보스조르메니 나지의 인상적인 이론은 입금과 출금의 선순환을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할 부분을 짚고 있다. 공평하게 주고받아 관계 통장에 잔고를 많이 쌓은 부부는 위기에 직면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해낼 힘을 얻지만 일방적인 줌과 받음은 부부 간의 결속을 와해시킨다. 밖에서 안 좋은 일을 겪은 이가 가족에게 감정을 전이함으로써 분노를 사는 경우가 빈번하다. 가족 간 감정반사적인 행동이 자주 일어나기에 이런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을 이성적으로 통제하고 조절하는 자아분화의 발달로 불안감을 극복해 갈 때 가정 내의 긴장은 이완되고 갈등은 해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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