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 품격 있는 삶을 위한 최소한의 말공부
강원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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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는 속담은 길게 말하는 것을 삼가고 많이 말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제각각 말하는 주장 일색으로 치닫는 말들의 홍수 시대에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여긴다. 경험이 쌓인 선배는 후배들을 가르친다는 명분을 앞세워 타인이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늘어놓는다. 이른 아침 출근해 책을 읽다 보면 직원들이 출근하면서부터 교무실은 잡담으로 채워진다. 누군가가 한마디를 꺼내면 한 사람이 끼어들어 다른 말을 이어 붙이며 언제 끝날지 모를 이야기들이 지속된다. 자기중심적으로 늘어놓는 말들에 주워 담을 말이 없다는 생각은 인욕을 부른다. 개방적인 공간에서는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니 서로 말수를 줄이는 수밖에 방법은 없어 보인다.

 

   제 앞가림을 잘하고 언행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으로 품위 있게 자리하기 쉽지 않은 때, 저자의 어른답게 말합니다를 읽으며 자신을 다독인다. 연설문 첨삭지도를 받으며 말을 공부했다는 저자의 경험담은 말 공부로 성장할 자신을 가늠하게 만든다. 어른답게 말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말에 배울 점이 있어야 하고, 말을 할 때는 감정을 절제하여 나답게 말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 없이 중심을 바로 잡아 자기 생각을 잘 길어 올리는 말로 남들에게 선한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말을 듣다 보면 장시간 말을 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힘든 경우가 왕왕 있다. 오락가락하는 말로 상대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 공부는 지속되어야 한다.

 

   조직 구성원들과 크고 작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하여 협의회를 갖지만,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난 말들에 회의적일 때가 많다. 회의에 대해 회의하지 말자고 회의장으로 들어서지만 몇 사람의 말하기 독점으로 석연치 않은 감정만 보태는 경우가 허다하다. 회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회의는 또 다른 학습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겠다. 회의 참석자들은 서로의 의견을 비교하며 자신의 현주소를 파악할 수 있는 창구로 회의의 의미를 찾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함께 모여 일하다 보면 학습이 일어날 테고, 학습 경연을 위해 구성원들을 경쟁시키는 장으로 자리할 수도 있는 회의이다. 말할 기회를 만들어 주도면밀하게 준비하여 회의에 참석하면 어떤 상관도 쉽게 대할 수가 없다.

 

  ‘어제 뿌린 말의 씨앗이 오늘의 나를 만들고, 오늘 뿌린 말의 씨앗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

  는 말에서 말투는 한 사람의 인격을 담는 그릇이다. 말수를 줄여 타인이 듣고 싶은 는 것이 교감하며 말하기를 한 조직의 리더는 자기만의 견해로 해석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상황에 맞는 말로 공감을 끌어내는 말하기로 필요 이상의 말을 줄이며 말조심하는 실천은 품위 있게 나이 듦에 챙겨야 할 덕목이다. 깊이 사유하고 들여다보지 않는 말은 자신에게 돌아옴을 잊지 않아야 한다. 따뜻함은 없고 유능함만 있는 말재주를 꾀하기보다는 유능함과 따뜻함을 겸비한 말하기로 언어생활을 가꿔 나가는 길은 어른답게 말하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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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발끝을 내려다본다
주석 지음 / 담앤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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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숱한 만남과 인연의 궤 안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온 시간을 들여다본다. 오롯한 정신으로 살아갈 날들이 많지 않음을 새기며 오늘도 선승의 발자취를 따라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아 정념(正念)으로 이끈다. 불교방송을 통해 들리는 주석 스님의 음성은 아픈 마음을 다독이는 엄마의 따스한 손길로 고해(苦海) 같은 세상에 살아갈 희망의 끈을 쥐어주었다. 그 때 그곳을 가지 않았다면 현실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며 안타까워하고 비통해 하면서도 지난시간을 불러내 미련을 둬 봤자 소용없는 일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문득 걸어온 발자취가

그리워질 때도 / 지워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

그 때 그 상황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때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

하지만 / 그 때 그 상황이, 그 때 그 사람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것일 수도 있겠지. //

오늘의 발끝을 내려다본다.’

   책 제목의 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시를 보며 지난한 시간을 떠올리니 회한이 가득하다. 지금은 곁에 없는 혈육을 떠나보내고 불면의 밤을 보내던 때, 살 수 없을 것만 같던 날도 이우러져 살아가게 되더라는 어른들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그 상황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에 미치자 고개를 저으며 지금 남은 사람들에게나 잘하고 살자는 말로 갈무리하며 애통한 마음을 달랜다.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간 그의 미소를 그리워하며 오늘도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인생에 작은 등을 밝혀 길을 잃지 않도록 힘을 주는 인연이 있어 다행한 삶이다.


   출가 수행자로 나섰을 때, 은사 스님은 말하려 하지 말고 먼저 상대의 말을 들어주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던 대목이 눈에 띈다. 책을 읽고 교재 연구를 하는 공간에 유독 말을 주고받으며 가십거리를 잇는 이들이 있다. 별 소리 아닌데 살을 붙이며 눈덩이처럼 커져버린 말은 무성해져 소음을 만들고 원치 않는 음악을 들어야 할 정도에 이르고 만다. 옛날 있었던 일들을 들추어 자신이 가장 애썼다는 말을 내세우며 소통의 벽을 느끼게 하는 말을 서슴지 않는 선배를 보면서 품위 있게 나이 듦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구시화문(口是禍門)이니 필가엄수(必加嚴守).’

   모든 문제의 원인은 입에서 나오는 말로 시작되는 것이니 우리의 입을 엄하게 지키라는 법정 스님의 감로법은 무성한 말 숲에서 본질을 왜곡하지 않은 채 살아갈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어야 할 듯하다. 나 역시 입으로 먹고사는 직업군에 속하다 보니 한마디 말이라도 아끼려 침묵한다. 깊이 사유하지 않고 내뱉은 말이 독을 입고 내게로 와 나를 해하는 경우가 일어날 수 있음을 숙지하고 지낼 필요가 있다.


   대인관계 증진을 위해 마음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로 보아야지 하면서도 용납이 힘든 사람들과도 어울려 지낼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자신만의 안식처는 필요하다. 대중들의 왁자한 삶에서 비껴나 뒷산을 걸으며 무심을 들인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는 상처 입은 마음을 다독이며 긍정의 한마디를 실어 걸음을 뗀다. 돌려 생각하면 살아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감정을 느끼고 표출하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영원할 것 같은 관계도 흐르는 세월 따라 색은 제 빛을 잃고 퇴색한 채로 남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 약속들을 지키기 위해 어느 누구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의미를 발견하며 오늘의 발끝을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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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행자 - 돈·시간·운명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는 7단계 인생 공략집
자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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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청상의 어머니 슬하에서 일찍 철이 들 수밖에 없었던 집안의 장녀는 십 리를 걸어 학교를 다니면서도 제 몫을 다해야 했다. 할머니 밥을 차리고 동생을 돌보며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스스로를 옥죄어 왔지만 행상으로 며칠 집을 비워야 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 살림을 맡아야 했다. 십대에는 나에게 주어진 길이라 여기며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가정의 평안을 유지해 줄 것이라 믿었다. 궁벽한 시골에서 아무런 힘이 없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여 도시로 나가는 것이었다. 주어진 환경을 거역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자신을 옭아매는 환경을 벗어나는 길밖에 방법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회한으로 얼룩진 날들이 많았지만 보수동 책방 골목을 돌면서 헌 책을 사서 읽고, 몇몇 친구들과 책모임을 했던 시절의 담론과 기록은 지금의 나를 존재케 하였다. 교과서를 들고 학생들과 만나는 일상에 활력을 더하는 촉매는 책 이야기가 주를 이뤘고, 말이 통하는 제자들과는 삶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읽기로 지평을 넓혀갔다.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책 읽기는 예기치 않은 문제들에 직면할 때마다 크고 작은 지혜를 주었고 관점을 새롭게 하는 힘을 주었다. 서얼 출신의 이덕무가 신분의 벽을 넘어서는 혜안으로 닫힌 문을 열 수 있었던 것처럼 유튜버 자청은 타고난 유전자와 본성을 역행해 경제적 자유와 행복을 쟁취하였다. 반복 속의 편안함 때문에 기존의 생활 패턴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 95%는 자의식이 지배하는 순리를 따르며 현실에 안주한다.

 

  공부·외모·돈 그 어떤 것도 넘을 수 없는 벽에 갇혀 열아홉 살 때까지 게임을 하면서 현실을 도피하던 자청이 경제적 자유를 얻고, 네티즌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이로 자리하기까지의 과정은 발상의 전환이 커 보인다. 자청은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현실과 타협하던 자신과 결별하기 위해 자의식을 해체하고 22전략으로 자신을 가꾸었다. 하루에 두 시간 책을 읽고 이 년 동안 글쓰기를 지속함으로써 무궁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뇌를 활성화하여 어떤 일을 수행하는 데 최적화된 뇌를 유지하여 왔다. 꾸준한 독서로 단련된 이는 새로운 지식이라도 기존의 지식을 통해 쉽게 흡수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생각을 정리하여 정연한 글을 표현하는 과정은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었다. 22전략과 팔년 넘는 상담은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함으로써 어떤 사업도 실패할 수 없는 마케팅 실력의 근간을 형성하였다.

 

   자신의 현재 상황을 객관화할 수 있는 능력인 메타인지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결핍을 채우게 한다. 생각의 깊이를 더하면서 지적인 능력을 길러 통찰력 있는 판단으로 현안을 해결하며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은 늘 책을 읽게 하였다. 휘발되는 기억을 메모해 뒀다 나만의 색을 입혀 글을 쓰는 시간은 뇌 근육을 키우는 시간이다.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책 속 내용을 실행하는 데에는 지금껏 인색하였다. 갱년기를 거친 50대 중반으로 염증이 통증을 유발하여 약물 치료를 받으면서도 건강한 생활을 위한 운동은 못할 이유를 들어 현실과 타협하는 자신과 맞닥뜨리기 일쑤였다. 예전 같으면 미세먼지 많은 날이어서 오늘은 운동을 못하겠다며 주저앉았겠지만 지금은 유튜브를 시청하며 집에서 할 수 있는 가벼운 운동을 세 세트 따라하며 근력운동을 지속한다.

생동하는 젊음을 목도하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십대들과 생활해온 지 33년 째 이제는 은퇴 후의 삶을 생각하는 연령대에 이르고 말았다. 친구들과 모였다 하면 우스갯소리로 제대 말년을 조심해야 한다며 남은 시간을 잘 무리하자는 말로 서로를 다독인다. 다양한 경로로 들어오는 민원을 처리하며 민원인을 응대할 때에도 책에서 읽은 여러 사례들이 대화의 질료로 기능하였다. 책을 읽고 몸소 터득한 내용을 글로 표현하는 시간은 잊고 지낸 생각 저편에 두레박을 던져 내면에 울림을 더하는 생명의 소리를 구체화하는 시간이다. 바꿀 수 없는 물리적 환경을 넘어설 힘을 끌어내는 책 읽기로 나를 들여다본다.

   #역행자리뷰대회#역행자#인생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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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재수사 1~2 - 전2권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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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질료에 따라 창조되는 형태는 다르지만, 질료를 이루는 본질은 특성을 잃지 않는 것처럼 범인은 이런저런 흔적을 남긴다. 범죄의 혐의 유무를 명백히 해 공소의 제기와 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하여 범인을 발견확보하고 증거를 수집보전하는 수사 기관의 활동을 수사라고 사전에는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명백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아 미제로 남는 경우가 있다. 22년 전 서울 신촌에서 벌어진 미제 살인 사건을 재수사하여 진범을 밝히려는 강력 형사 팀이 있다. 22년 전 신촌 뤼미에르 오피스텔에서 자상을 입고 사망한 여대생 민소림을 죽인 진범이 누구인지 밝혀지지도 않은 채 묻힐 수도 있는 사건을 끝까지 추적하여 살인범을 밝히기 위해 재수사를 한다.

 

   22년 전의 일이라 수사 기록에 남아 있는 용의자를 찾아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사건 해결의 단서를 쉽게 찾을 수는 없었지만 당시 수상에서 놓친 부분들을 헤집어 재수사에 나섰다.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태완이법 통과로 재수사의 여지가 있는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수사팀은 강력범죄수사대에 근무한 이력을 바탕으로 수사망을 펼쳐 수사 아이템을 찾아 나섰다. 재수사 팀은 역할을 분담하여 그 당시의 수사 기록을 살피며 수사의 허점을 드러내는 장면들을 목도하며 놓친 부분들을 짚으며 미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였다. 석 달 내 종료해 버린 신촌 여대생 살인사건의 단서로 남은 DNA검사 결과와 CCTV검사 결과만으로 범인을 추적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반 여형사 연지혜와 동료들은 당시의 수사 기록을 재검토하고 누락된 부분을 살피면서 범인을 추적해 갔다.

 

  홀수 장은 밝혀지지 않은 범인이 남긴 원고로 작성되었고, 짝수 장은 형사들의 수사 과정을 담아 범인의 심경과 수사과정이 교차돼 읽는 내내 몰입감을 더한다.

  ‘그들과 달리 나는 살인자다. 나는 선 바깥에 있다.’

   범인은 형사와 대면하는 시간에도 여유 있게 속내를 드러내며 악령의 주인공 스티브로긴을 불러내 형사들보다 유리한 점에 있음을 최면 걸 듯이 말한다. 얼굴에 반점이 있는 범인은 뛰어난 미모의 재원으로 학교의 스타로 유명한 민소림과 러시아문학 조별 토론 수업에서 만났다. 문학과 서양철학에 해박한 지식을 갖춘 민소림은 그녀만의 대담하고 도발적인 해석은 수업 시간 토론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미모는 치명적인 무기가 되기도 하고, 가끔은 큰돈이 되기도 하지만 부서지기도 쉽다고 말한 소림의 이모는 자신이 외롭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외로운 조카였음을 회상하였다.

 

   스스로 무엇을 찾는지 모르면서 뭔가를 찾으려는 사람들은 복합적인 체계로 얽히고설킨 삶에 갈증을 느끼며 살아간다. 지성인의 담론을 좇아 도스토엡스키 독서모임에 함께한 이들은 대학 시절 인간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이 야기하는 불안, 자의식의 분열, 생명력의 소멸 등으로 인한 고통을 직시하고 대응하는 개인의 방식을 입체적으로 성찰했다. ‘백치소설 결말과 같은 소림의 죽음은 한 개인은 타인을 평등하게 대하지 않는 신계몽주의의 오류를 범하고 모멸감으로 통제력을 잃은 범인의 살인을 초래하였다.

 

  ‘점박이

   소림은 대학 시절 얼굴에 반점이 있는 사촌 동생 은수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칠 때 점박이라고 부르며 그의 학습효율성을 칭찬했던 적이 있다. 사촌 누나의 칭찬에 점박이라는 말도 거슬리지 않았던 은수와는 달리 상은에게 점박이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였다.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이에게 점박이라는 별칭은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아 어떤 점이 박히다시피 된 사람이라는 낙인 효과의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가 있다. 소림의 한마디에 모멸감을 느낀 상은은 그녀를 칼로 찌른 뒤, 그녀는 소림의 숨이 붙어 있을 때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119를 부를 것이라는 말을 던지지만 소림은 응하지 않았다. 한편 상은은 신계몽주의 사회에서 모멸은 중범죄가 된다며 스스로 범죄를 합리화하였다.

 

   상은의 초대로 믿음공방으로 온 연지혜 형사는 얼굴에 오타 모반이 있는 상은과 은수의 접점을 발견하고는 사실을 넘어서는 상상의 복합체로 이뤄진 현실적 서사를 가늠한다. 자신을 옥죄는 듯 몰린 살인 용의자 상은은 또 다른 살인을 감행하며 22년 전 소림을 죽인 범인으로 체포될 위기 상황을 벗어나려 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연지혜는 그녀를 체포하지만 씁쓸함이 더한다. 자신이 특별하다고 여기며 자기한테는 남들과 다른 특권이 있다고 자부하며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욕망이 끌리는 대로 움직인 민소림의 짧은 생을 떠올린다. 누군가가 던진 한마디, 타인에게 보내는 눈길에 담긴 한 사람의 태도는 누군가를 무너뜨려 치명적인 고통을 야기할 수도 있음을 재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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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
김미월 외 지음 / 다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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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라고 하면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숙명을 끌어안고 사는 이들이 떠오른다. 작가인 엄마는 결혼을 하고 출산 과정을 거치며 아이를 양육하느라 작가로서 오롯이 글 쓰는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어느 것과도 대체되지 않는 사랑과 관심, 정성을 기울여여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살다 영양을 공급하던 탯줄을 끊고 세상에 던져진 생명체는 혼자 행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엄마는 아기의 성장과 발육을 돕는 일에 주력한다. 밤잠을 설쳐 가며 아기의 울음에 귀를 기울이고 생명체의 크고 작은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고 반응하며 일상을 보낸다.

 

  첫 아이를 낳은 지 보름 만에 신춘문예 등단 소식을 듣고, 출산의 통증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당선 소감을 적으며 글 쓰는 엄마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음을 고백한 소설가는 작가로 살아가는 일이 만만치 않음을 깨달았다. 자신의 삶을 글감으로 창작하는 과정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온 여섯 명의 작가는 보듬고 가꾸어야 할 생명을 끌어안고 작가의 길을 걸었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면서 글을 쓰기도 했으며 떼쓰는 아기를 안고 자판을 두드리기도 했던 지난한 과정은 한 편의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수고에 융해되어 있다.


   백지에 자신의 생각을 문자로 표현하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글쓰기는 어떻게 세상에 존재하며 살아야 할지를 사유하고 감각하는 과정이다. 연속하는 시간을 혼자만의 시간으로 쪼갤 수 없는 육아 시간을 할애하여 글을 쓰는 일은 고단한 일상의 단면이다. 아이를 한둘 키워 본 엄마도 새롭게 태어난 아기를 키우는 일이 쉽지 않다고들 입을 모은다. 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매순간 육아로 힘든 상황에 놓은 자신을 발견하며 관찰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 아기와 함께 엄마도 성장하느라 분투하는 중이다. 마감일이 임박하여 마음잡고 원고를 완성해야하는데도 육아는 정해진 시간에 쉼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를 재우다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지만 계속 잘 수만은 없어 아이 곁을 빠져나와 글을 쓰는 엄마는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하여 에너지를 모은다. 스스로를 고립시킬 나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한 작가처럼 엄마 작가에게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신의 글로 삶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야 하는데 현실은 녹록치 않다. 시를 쓴다고 물질적 보상이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시를 씀으로 스스로를 인정하며 살아갈 힘을 얻는 시인은 아이 돌봄과 가사 노동이 끝난 뒤에서야 글을 쓰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 가족 모두가 잠들어 부는 바람에 창문이 덜컹거려도 멈칫하며 아이가 깨지 않게 살그머니 나와 글을 쓰기 위해 정신을 모은다.

 

  고단한 일상의 연속이지만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 내는 소리에 공명하며 감각에 반응하며 매일 쓰지 않으면 어느 한쪽이 굳어지는 것처럼 글을 쓴다. 헝클어지기 쉬운 긴 머리를 빗기기에 좋은 빗의 빗살 하나를 빼 숨구멍을 열어주는 공인의 지혜에 외경심이 든다. 글을 쓰는 일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사는 엄마들 역시 백지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 육아의 기쁨과 슬픔, 불안과 회한을 삭이며, 당위성을 들어 자신을 옭아매는 관행에서 벗어나려는 해방구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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