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 전쟁편 - 벗겼다, 끝나지 않는 전쟁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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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텔링으로 전하는 세계사 방송을 시청하면서 단순 암기로 시험 문제를 풀며 힘들어했던 여고 시절 세계사 시간이 떠올랐다. 사건이 일어난 계기와 근본적인 문제점과 그 해결 방안을 찾아 이야기 방식으로 풀어냈다면 수업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떠올랐다.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 사회화는 행동반경을 넓히며 만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확대 과정을 거친다. 학교에 입학 후, 이웃 마을의 학생들과 교류하며 다툼이 일기도 하고 다툼이 어른들 싸움으로까지 비화되기도 하였지만 조금씩 양보하며 함께 살아갈 길을 찾았다. 갈등으로 촉발된 세력 간의 다툼은 다른 양상으로 비화될 때도 있지만 파탄 국면을 초래할 전쟁만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과거와 현재의 역사 속 전쟁을 들여다본다.

 

   <<벌거벗은 세계사: 전쟁편>>은 세계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전쟁의 원인과 결과를 밝히며 의외의 사실들까지 더해 미처 보고 듣지 못했던 분야의 전쟁사를 보여준다. 읽고 쓸 줄도 모르는 시골 양치기 소녀가 어느 날 갑자기 전쟁터에 나가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 영웅으로 급부상한 잔 다르크의 진실을 파헤치며 책은 여러 전쟁을 다룬다. 116년 동안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서 벌어진 백년전쟁에서부터 현재 진행형인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세계를 뒤흔든 전쟁의 역사를 통찰력 있게 보여준다. 전쟁의 진짜 원인부터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전쟁의 뒷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어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전쟁을 소상히 파헤쳐 앎의 영역을 확장해준다.

 

    프랑스 국내의 영국 왕 영지에 대한 귀속 문제를 두고 양 왕조 사이에 백년 전쟁이 일어나 휴전과 전쟁은 116년이나 이어졌다. 그동안 잉글랜드의 주도권 아래 이어져 가던 전쟁이 발발한 지 100년 즈음 치열한 전장 한가운데 서서 깃발을 흔들며 프랑스 군인들 사기를 진작시키며 잔다르크는 오를레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에서 승리를 이끈 샤를 7세는 대관식에서 잔 다르크와 함께하며 성녀로 대우 받는 듯하다 그녀는 잉글랜드 압력 아래 열린 정치적 종교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단아로 몰린 그녀는 악마의 추종자로 루앙 광장에서 화형을 당해 열아홉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잔 다르크는 이단 재판에서 죄를 인정받고 희생되었지만 그녀를 이단인 채로 두면 샤를 7세 역시 이단에 의해 왕위에 오른 존재가 되므로 그는 그녀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영국 제국이 일으킨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라 칭한 아편전쟁은 차(tea)한 잔으로 시작되었다. 포르투갈 캐서린 공주가 결혼 예물로 즐겨 마시던 차를 가져와 귀족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커피 대체품으로 차를 보급한 셈이 되고 말았다. 청나라로부터 차를 전량 수입해 온 영국은 청나라와 무역에서 계속 손해를 보자, 청나라에 자유무역을 위해 광저우 외의 항을 열어달라고 하였지만 청나라는 이를 거절했다. 어떻게 하면 무역으로 인한 손해를 해결할 수 있을까 궁리하던 영국은 청나라가 약으로 쓰려고 아편을 수입한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청나라 정부 몰래 청나라 시장에 아편을 팔아 이익을 챙겼다. 유럽 제국들의 대표주자인 영국은 산업혁명과 자유주의 경제관, 해군력을 뒷받침으로 하여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였다. 명분 없는 침략과 약탈을 저지른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폭력은 전쟁을 일으키며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빼앗았고, 수많은 이들이 살아갈 삶의 터전을 앗아갔다.

 

   유대인과 기독교, 무슬림의 성지인 이스라엘과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은 잦았다. 팔레스타인 내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서로 차지하려는 유대인과 아랍인의 전쟁은 수차례 일어났고, 유대인의 고향인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의 국가를 세우려는 시온주의의 영토 확장을 압박하는 이스라엘은 분쟁하였다. 아랍인과의 약속을 저버린 영국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의 나라를 세우는 데 힘을 보태었고, 팔레스타인인은 자신이 살아갈 땅이 유대인의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한계에 직면해 1936년 이들은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팔레스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독립시켜줄 것과 유대인의 이민을 금지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불발되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 요르단이 모든 땅을 차지하여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또다시 살 곳을 찾아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3000도 이상의 고열을 내며 주변을 불바다로 만드는 네이팜탄은 잔인한 무기를 대량으로 투하한 베트남 전쟁의 단면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이 전쟁의 잔혹한 참상을 드러낸다. 남베트남 내의 반정부 세력인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과 남베트남 정부 사이의 내전(內戰)으로 시작했으나, 196487일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북베트남을 폭격한 뒤에 전쟁은 미국과의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다. 미군이 베트콩을 색출하기 위해 다이옥신 계열의 고엽제를 뿌려 밀림을 고사시키려 한 작전은 베트남인들은 물론 전쟁의 많은 참여자에게 극심한 후유증을 남겼다. 정글에 숨어있는 베트콩들을 찾아낸다는 명목으로 저질러진 고엽제 살포와 민간인 학살 문제 역시도 베트남전쟁의 가장 어두운 면 중의 하나이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의 군인들 역시 고엽제 피해 등의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지만 적절한 보상은 이뤄지지 않아 고통은 가중되었다.


   중앙아시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아프가니스탄은 동서 문화의 교차로 역할을 하며 번영하였지만 지금은 내전과 테러로 혼란이 가중돼 여행 금지 국가이다.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면 중앙아시아 대륙 중심부로 들어갈 수 있어 영토 확장에 욕심을 내는 대국의 관심은 컸다. 중앙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하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은 또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였다. 인도의 안전을 확인한 영국은 1919년 아프가니스탄을 독립국으로 인정하며 이 나라에서 철수하였다. 아프가니스탄이 사회주의 국가로 자리하길 바란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였다. 반사회주의 운동을 표방하는 모자헤딘은 소련에 맞서 대항하였지만 소련은 간교한 무기로 이들에 맞섰다. 소련은 초록빛 앵무새라 불리는 나비 지뢰를 살포하여 모자헤딘의 동요를 바랐지만 아이들의 해를 키웠을 뿐이다. 냉전 체제에서 미국이 모자헤딘을 지원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장기전이 되었다.

 

   모자헤딘 출신인 탈레반은 극단주의 무장 세력으로 수도 카불을 장악하며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기 시작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슬람국가로 만드는 것이었지만 또 다른 강대국 미국의 등장으로 새로운 전쟁이 시작돼 아프가니스탄을 5년 장악했을 뿐이다. 2001911일 쌍둥이 빌딩 폭파로 떠올리는데 실상 9·11 테러 사건은 미국의 경제, 국방, 정치를 상징하는 미국의 심장부 세 곳을 노린 공격이었다니 충격이 컸다. 탈레반 주요 시설에 대규모 공습을 감행한 미군은 탈레반을 무력화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인 20년의 아프가니스탄 주둔을 끝내야 했다.

 

   2022224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내에서 특별 군사작전을 수행할 것이라는 긴급 연설과 함께 단행된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은 지속되고 있다. 러시아는 서방 세력 사이에 놓인 완충지대이자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경제적 보급 장소로 우크라이나를 주시하였다. 군사 요충지로 크름반도가 필요해진 러시아는 합병 서류에 서명하며 병합을 마무리했지만 우크라이나와 EU, 미국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가 NATO 가입을 통해 크름반도를 되찾으려고 한다면 NATO가 무서운 보복에 직면할 것이라 경고하는 러시아는 핵무기 사용도 가능함을 드러내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향한 위협 강도를 높이면서 가스관을 이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서방으로 기울어지자 러시아는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였고, 우크라이나는 자국을 통과하는 러시아의 가스관 사용료를 유럽 수준으로 올리겠다며 맞불을 놓았다. 하지만 러시아는 가스공급 중단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속적으로 압박하며 크롬반도의 병합에 이어 돈바스 지역의 독립, NATOEU 가입 포기를 요구하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 간 긴장이 고조되어 전쟁이 더 큰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강대국의 이해관계로 전쟁터가 되었던 우리 역사에서처럼 강대국은 약소국을 좌지우지하며 군림하여 왔다. 군국주의의 희생으로 일제 강점 36년을 보낸 우리나라의 피침 역사는 음울한 자화상으로 국력을 키우는 데 힘을 모아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 각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앞세워 나라 사이의 갈등을 무력으로 해결하려는 야욕을 버릴 때 인류의 평화는 깃들 수 있을 것이다. 갈등은 더 큰 문제를 키우기 전에 대화와 협상으로 현안을 해결해 더 이상의 전쟁으로 수많은 이들이 희생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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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일한다는 것 - 나를 증명하려고 애쓰는 당신을 위한 최명화의 가장 현실적인 조언
최명화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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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차가 많이 벌어지는 10대들과 함께 생활한 지도 32년 남짓이다. 부침하는 시간 따라 학생들은 주장을 거침없이 하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최상이라도 되는 듯 아우성이다. 교수 학습이 이뤄지는 배움의 공간에서 마흔 살이 넘게 벌어지는 아이들과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떤 보람을 찾고 있는지 돌아본다. 매너리즘에 젖어 예전에 행해왔던 관행대로 학사를 운영하는 관리자를 보면서 의식의 변화를 수반한 자각이 개선의 물꼬를 틀 수 있음을 발견한다. 자기 계발서 읽기를 그다지 반기지 않지만 나만의 속도로 나답게달라져야 한다는 목차 속 문장이 시선을 끌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기업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최연소로 고위직에 오른 저자의 화려한 이력을 보며 지금껏 살아온 교단에서의 생활이 중첩되어 위축된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될 때면 찾아드는 불안을 잠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중심에는 언제나 나다움을 두고, 어떤 힘에 쉽게 휘둘리지 않을 근성을 지녀야 한다. 나에 대한 엄혹한 자기 성찰은 자신에 대한 객관적 판단과 지속적인 행동을 보편화한다. 긴 호흡으로 마음 근육을 단단히 하는 접근은 나를 탐색하며 가능성을 구체화하는 여정을 가속화한다. 내면의 울림을 들으며 나만의 속도로 나다움을 완성하는 여정을 즐길 때 나만의 경험으로 타인과의 차별화를 도모할 수가 있다.


   타인은 배제하고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함으로써 나와 만남으로써 내가 싫어하는 모습까지 품은 채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며 살아가다 보면 나다워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개별화된 경험으로 나만의 콘텐츠를 축적해가는 과정 속에 대체 불가한 존재로 자리할 수 있다. 여러 페르소나를 갖고 있는 자신의 단면을 수용하고 가슴속에서 울리는 북소리를 들으며 삶의 균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외연의 행복에 매달려 타인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 고민하기보다는 삶의 과정 속에 얻을 수 있는 부산물로 행복을 받아들이며 지낼 때 우리는 행복하게 보이는 집착에서 벗어나게 된다.


   내가 아는 만큼만 알게 되고, 나도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은 자존감 기처를 형성하는 유연한 사고로 배움의 길로 이끈다. 각종 자격증과 이력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존재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재능을 표현하는 존재로 내면의 즐거움을 찾기를 바란다. 다양한 나를 찾고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모습으로 나를 제대로 보는 방법일 것이다. 길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불어넣는 나만의 스토리는 자신은 성장시키려는 자아의 굳건한 의지가 보탬이 된다. 카이스트 공학도로 입생로랑의 패션모델에 나선 최현준의 일화는 평범한 삶에 자족하며 사는 자신을 성찰케 한다. 그는 따돌림을 당하던 중학교 시절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고 싶어 온종일 공부에 몰입하여 탁월한 성취를 맛보며 나만의 스토리를 찾을 수 있었다.


   지금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의 일은 자아실현을 넘어 더 큰 나를 형성하는 디딤판이다. 일은 나답게 성장할 수 있는 촉매로 사고의 지평을 넓혀 새로운 세상과 만나게 한다. 오랫동안 교직에서 생활하다 보니 그 외의 영역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면이 있다. 낯선 공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 선입견을 버리고 다가설 수 있는 용기는 나답게 일하며 살아가는 길에 필요한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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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의 생존법 문학동네 청소년 66
황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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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모범생으로 불리는 아이들은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고 학교 선생님 눈에 나지 않으며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었습니다. 학업이나 품행이 본받을 만한 학생을 모범생이라고 개념을 밝힌 사전적 의미와는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아 보입니다.

인재의 요람 두성고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열일곱 살 준호는 신일중을 거쳐 명문고로 이름난 두성고등학교에 수석 입학합니다. 입학식 후부터 정독실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하며 대학 진학을 위한 경쟁 대열에 합류하는 고등학생으로 정답 자판기로 살아야 하는 운명에 처하였습니다. 평가를 통해 실력을 검증받으며 성적이 떨어지는 순간 짐을 싸서 정독실을 나와야 하는 관행이 상위법처럼 자리합니다.


  준호는 대장암 투병 중인 아버지와 함께 시골에서 생활하는 어머니와 떨어져 삼촌과 함께 생활 중입니다. 그는 할머니 요양병원비와 아버지 치료비로 버거운 집안 살림에 고액 과외나 일타강사의 강의를 듣는 일은 바랄 수도 없는 터라 자율적인 학습에 매진해야 했습니다. 그는 정글 같은 세상에서 여느 아이들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성적으로 무장하 자기 방어기제로 삼았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 누군가를 좋아하며 그 사람을 떠올리는 일만으로도 힘이 날 때가 있습니다. 준호는 풍부한 감성으로 내면의 쓸쓸함을 짝사랑으로 채우며 지금껏 견뎌왔습니다.


  중간·기말고사, 수행평가, 모의고사, 봉사 활동, 동아리 활동으로 반복·재생되는 일정을 소화하며 자기를 관리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준호는 부모의 손길이 닿지 않는 부분을 탓하며 신세 한탄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을 키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지적인 날라리를 표방하며 지내온 건우는 준호의 막역한 친구로 함께하는 시간 속에 우정을 살찌웁니다. 둘은 학술 토론 동아리 코어에서 함께 활동하며 행동반경을 넓혀 동아리 회원들과 교유하는 가운데 사고의 폭을 확장하여 왔습니다. 코어 동아리에 지원했다 떨어진 병서가 유아처럼 생떼를 쓰며 자신을 힘들게 할 때에도 준호는 나답게 대처하며 자신의 길을 걷습니다.


  이름답고 소중한 것들이 기득권의 카르텔에 무너져 내리는 광경은 좌시할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하는 유빈은 주체적인 선택과 결정을 중시합니다. 유빈은 대학 입학 대신 특성화고를 졸업한 후 여행업계에 취직하여 경험을 쌓은 뒤 스토리 있는 여행 상품을 개발하여 판매하는 여행사를 차리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특성화고 진학을 반대하던 터라 아버지의 뜻을 따라 두성고에서 한 학기를 마친 뒤 특성화고로 전학해 관광경영을 공부한 뒤의 청사진을 그리며 꿈에 한 발짝 다가서려 합니다.

지금 내가, 그냥 마음에 들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며 스스로 자기 인생을 개척하는 유빈을 볼 때마다 준호는 생각이 많아집니다.


  유빈의 확고한 선택과 결정을 지켜보면서 준호 역시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을 점검합니다. 3월 모의고사와 중간고사에서 1등을 차지한 병서를 보며 정답 자판기처럼 생활할 수 없다는 생각이 커졌습니다. 준호는 유빈처럼 남들이 걸었던 길을 걷기보다는 울퉁불퉁한 길이더라도 자신만의 색깔로 인생의 단면을 채워가는 과정이 좋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두성고에서의 살벌한 경쟁 구도를 벗어나 부모가 있는 학교로 전학해 생활하며 어떨지 고민하며 부모를 찾았습니다. 공공 의료를 위해 헌신했던 준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내 앞에 놓은 것들에 많은 이유를 달지 않고 일단 해보는 것이라고 조언하였습니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보다는 모름지기 해야 할 일들의 조항을 만들어 그 규칙에 얽매어 살아온 시간을 돌아봅니다. 모범생으로 서의 생존 수칙 같은 매뉴얼을 따르던 시간은 수동적으로 움직이며 타인의 잣대에 맞춰 살던 시간이었습니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딸로 생존하면서도 자신의 논리로 스스로를 지켜온 보나 선배를 보며 준호는 마음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였습니다.


  어버이날을 기점으로 부모를 만나고 온 준호는 그동안 자신을 에워싼 불안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외양을 둘러싼 모욕적인 SNS 악성 글에 휘둘렸다 코어 동아리 회원인 친구들의 위로와 응원으로 제자리를 찾은 유빈은 비둘기 눈깔이라는 부계정을 만들어 악성 댓글에 맞섰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준호의 심장부에 스며든 유빈은 준호를 생존케 하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고 편하면서도 대화가 잘 통하는 유빈의 전학을 앞두고 준호는 마음을 다잡습니다.

전학 안 가고 그냥 여기 계속 다니려고.’

 준호는 학교 뒷산에 오는 고양이 밥을 챙겨주라는 유빈의 부탁을 들어야 했고, 서로 다른 줄기의 강물이 합수하여 바다에 이르듯 경계 없는 자유의 바다에서 그녀를 만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통과의례처럼 성장 통을 겪으며 지내던 고등학교 시절, 입시 경쟁의 교육에서도 숨 쉴 수 있었던 것은 그 시기를 함께 보낸 친구들이 있어서였을 것입니다. 시험을 치른 뒤 친구 집으로 몰려가 함께 라면을 끓여 먹으며 고민을 나누고 서로를 다독이던 따스한 손길이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주었습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것만이 최상위의 선택이 아님을 알아차리며 내 마음이 전하는 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남들과 조금 다른 길을 걷더라도 스스로 선택한 삶을 응원하며 자기만의 빛깔로 물들어가는 청춘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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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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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의 짧은 삶을 살다가는 육신은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가는 중이다. 마지막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지금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일상은 정체성을 찾으며 살아갈 당위성에 의미를 부여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는 AI·VR 기술을 살려 죽은 자와 산 자를 연결하여 애절한 그리움을 담은 프로그램에서는 기계와 인간의 공존을 환영처럼 드러냈다.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한 과학 기술은 시공을 초월한 세계를 재조명하여 단절된 세계를 이어 핍진함을 더하였다.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을 닮은 로봇인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관계를 지원하며우리와 함께하다 때가 되면 작별하지 않을까 싶다.

   생명체의 죽음을 목도한 날, 평화로운 일상에는 균열이 오고 믿음의 중심부가 흔들려 종잡을 수 없는 감정들이 넘나든다. 의식이 있는 존재는 자기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다른 존재의 고통에도 공감할 수 있고, 자신에게 고통을 준 이들을 용서할 수도 있다. 휴머노이드이지만 인간으로 알고 살았던 철이 믿었던 세계에 균열이 생기면서 존재에 대한 회의(懷疑)는 소설 전개의 다른 국면을 맞는다

   평양의 로봇연구소 휴먼매터스 랩에서 일하는 최 박사는 휴머노이드 철이를 멸균 상태로 보호하기 위해 홈스쿨링으로 철이를 양육하였다. 인공지능의 폭주는 인류의 종말을 초래하고 말 것이라며 휴머노이드 양산을 경계하였다.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한 최 박사는 인공지능의 윤리적 책임을 중시하며 인공 지능 기계가 대량으로 생산되는 시스템을 제어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무등록 휴머노이드 압류법 통과로 로봇 수용소로 납치당한 철이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생각에 빠져들면서도 전투 로봇들이 벌이는 살육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인간의 감정과 윤리를 가지고 있는 철이는 아버지라 여겼던 최 박사가 자신을 만들어 낸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고장 난 기계는 부분을 수리하여 쓰다 더 이상 수리가 불가능한 기계는 버려진다. 짧은 생의 대부분을 특정 공간에 갇혀 지낸 민이, 복제인간 선이를 만남으로써 철이는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인도산 애완 휴머노이드인 민이는 기계의 부품처럼 수명이 다하면 폐기물로 처리되는 수순을 밟는다. 기억을 간단하게 지운 뒤 휴머노이드를 해체한 후 부품을 재활용함으로써 이를 폐기한다.

   상업적인 이유로 인간 배아를 복제하여 불법적으로 배양한 클론들을 팔아넘겨 수익을 올리는 비윤리적인 일들을 자행하는 기계문명의 검은 손은 지금도 밀거래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유전자에서 배양된 선이는 인간에 대한 불신이 깊었다. 영적 기운이 넘쳐난 선이는 눈앞의 혼란으로 전전긍긍하는 철이에게 무한대의 관점으로 우주의 시간을 보라고 조언하였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부정하는 재생 휴머노이드인 달마의 말이 인상적이  다. 인간은 불멸을 꿈꾸었지만 결국에는 인공지능과 결합함으로써만 가능한 만큼 기계의 시간에 종속될 것이라 했다. 오직 폭력으로만 문명을 유지하는 기동타격대의 무분별한 공격에 문명의 이기 역시 파괴되었다. 기계로 조작된 삶을 살다 자율적 선택 의지 없이 폐기되는 것처럼 사유 없이 인생을 살다 결딴나서는 안 된다는 믿음이 커진다.

    손상 입은 철이의 의식을 네트워크에 연결해 활성화하는 데 성공한 최 박사는 철이 로봇 고양이 데카르트로 살기 시작토록 하였다. 사람의 몸이 육신과 영혼으로 되어 있다고 여긴 철학자 데카르트는 오직 사람에게만 있는 영혼은 모양도 없고 자유로운 유기체로 봤다. 최 박사의 바람과는 달리 철이는 개별적 신체를 가진 휴머노이드로 영원불멸의 존재로 남기를 바라지 않았다. 개별적 존재로 사라지는 삶을 선택한 철이는 마지막을 보낼 선이를 찾아 그녀의 아픔에 공감하며 소통하는 시간을 보내며 그녀와 이별한다.

   유한한 삶의 의미를 빛나게 하는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인생 법칙에 있다. 이미 존재하는 누군가를 위해 아이를 낳아 종족을 보존하려는 결정이 이기심으로 간주하며 인류와 인공지능을 연결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개발된 휴머노이드 철이는 최 박사의 이기심에서 발로되었다. 인간의 필요에 제작되고 필요 없으면 폐기 처리되는 기계로 전락하는 인공로봇들을 보면서 철이는 감정을 느끼고 사유를 바탕으로 의식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되는 삶. 자아라는 것이 사라진 삶. 그것이 지금 맞이하려는 죽음과 무엇이 다를까?’

삶에 대한 주체성 없이 편의성과 효율성을 따른다며 수월성의 논리대로 세상을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문한다.

  ‘우리는 어떤 존재로 살다 인생을 회향하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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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착각 - 얽매이고 상처받은 가족을 치유하는 마음 기술
이호선 지음 / 유노라이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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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로 오면서 다양한 가족 형태가 생겨났지만 일반적인 가정의 가족은 유전적 조합으로 이뤄진 형태이다. 태어나 살다 보니 맏이로 집안일을 도맡아 지내야 했다. 십 리를 걸어다니며 아침을 준비하여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하며 동생을 돌보는 일은 내 몫이었다. 생계를 전담하던 홀어머니를 대신해 아홉 살 때부터 시작된 집안일은 50대 중반을 넘긴 지금도 계속 된다.


  선택보다는 유전적 조합으로 이뤄진 가정의 가족을 떠올려 본다. 애증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 채 갈등 요소들이 도처에 자리해 불만을 터뜨리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자아가 만나 각자의 몫을 드러내며 욕심을 버리지 못한 채 욕구를 채우려는 이기적 발상을 보인다. 맞벌이하면서 육아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했던 30년 전이 떠오른다. 공동 육아를 그렇게 부르짖어도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직장이 우선이었고, 연계한 친목 모임이 우선이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힘들었던 시간을 뒤로 하고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니 모든 것이 허허롭다. 결혼 면허라는 소설에서 부르짖듯 결혼을 위한 자격증 취득이 우선적으로 이뤄져 공동 육아에 나설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결혼을 안 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출생률이 1명 이하로 떨어진 우리나라 인구 정책에는 반하지만.........30대 중반에 결혼한 제자들은 하나같이 딩크로 살겠다는데 그 이유가 바로 자녀 양육 문제에 있다고 하였다. 어렵게 가정을 이뤄 자녀들을 제대로 키울 자신이 없어 자신 같은 부당함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뤄 가족으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 문화적 차이를 포함한 환경적 차이는 친인척을 포함한 가족까지 아우르는 일들을 병행하기 힘들다. 엄연히 가른 개체인 구성원인데 가족이라는 이유로 타인의 생각을 저버린 채 어떤 일을 강요하는 일은 생기지 않아야 한다. 가족이라라고 편하게 생각하여 그것도 못해 주냐고 말하기 전에 상대의 입장에서 그 사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아닌 타인인 제3자로 여기며 적정한 ‘거리 두기’는 필수이다. 내리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의존적인 자식으로 키우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자식을 믿으며 자립할 능력을 길러주는 일은 더더욱 필요한 때이다. 나이 마흔이 넘어도 부모에게 기생하는 자식들이 많기 때문이다.


  여고 동창으로 만나 지금껏 우정을 쌓고 지내는 친구와는 같은 길을 걷는 교육 동지이다.

초드학교 보건교사로 일하는 친구는 내 뜻대로 안 살아지는 것이 인생이라며 정퇴냐 명퇴냐를 두고 서로 대화할 때가 있다. 

 "친구야, 나는 교직에서 물러날 수 있을 때 나올 수 있게 자식이 내 발목을 안 잡아야 할 텐데......옆에 선생님 보면 명퇴를 하고 싶어도 자식 때문에 못하고 스트레스로 힘든 것 보면 자식이 무섭더라고......."

 라는 친구의 말에 공감하며 자식들 역시 냉정한 사랑을 베풀며 적정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가족이라고 너무 많이 관여하여 지치는 관계가 아닌 서로 성장하는 건강한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 하고 싶은 일하면서 노년을 보낼 수 있게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 홀로 걸어갈 남은 생을 생각하니 지금에 충실한 삶에 답이 있을 뿐이다. 오지 않은 미래 당겨 걱정하지 말고,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 끌어다 후회하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하는 선지식의 감로법을 새기며 가족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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