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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평점 :
‘목숨은
소중하지만 한 번은 죽는 법이다. 조금
당길 때가 오거든 그리하는 것이 사내의 일이다.’
누군가의
동무였고, 누군가의
아들·지아비·아비였던
이들이 죽어갔다. 알아주는
이들이 없어도 의협심 있는 그들은 밝은 세상을 꿈꾸며 맨주먹 붉은 피로 농기구를 들고 신식무기에 맞섰다. 탐관오리의
횡포와 일본의 주구 세력들에 대항하여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기치 아래 들불처럼 일어난 동학농민 운동 세력들은 험난한 고개를 넘어야 했다. 또
다른 재를 넘어서는 일의 반복으로 대의가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후대의 사람들이 그 뜻을 이어받을 것이라 여기며 중심 가치를
실현하였다. 부정한
관리들을 징치하는 일에 국한하지 않고 이 땅의 민중 중심의 민주적 세상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쇄국정책을 펼쳐오던 흥선대원군은 조선의 사직을 공고히 하는 일에 관심을 모았고 기존의세도 정치의 폐단을 개혁하여 왕권을 강화하려는데 며느리
민정왕후 일파의 개화당과 마찰을 빚어 시대적 고민이 많았다. 핍박받는
민중 중심의 개혁을 주장하는 동학군의 우두머리인 전봉준에게 나라의 명운이 덜려 있음을 명심하라고 당부하는 모습에서는 기존의 녹두장군을 다룬
소설과는 다른 개연성을 담았다. 개똥이로
불리는 김개남, 통찰력
있게 전세를 살피며 전략을 편 손화중과 의기투합하여 동학농민혁명은 민중 봉기로 한 획을 그었다.
고부군수 조병갑은 불효와 불목, 음행
등의 죄목을 붙여 사람들의 재산을 늑탈하였고, 갖은
학정을 일삼아 민중들의 분노는 커져갔다. 전봉준이
제폭구민(除暴救民)을
역설하자 민중들은 짓눌린 채로 살 수 없다는데 뜻을 같이 하였다. 무고한
사람에게 죄목을 씌워 재산을 착취하는 등의 갖은 횡포로 동학농민운동은 발발되었다. 학정으로
부모를 여의고 전봉준 장군을 스승이자 아버지로 받아들이고 장군의 수족처럼 기민하게 움직인 을개는 장군의 딸 갑례의 뱃속에 씨를 뿌리고 대의를
위해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호정이
순정을 바칠 뜻을 내비치었을 때도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면 큰일을 못한다고 판단한 이철래는 그녀를 가슴에 품고 민중들의 민주적인 삶의 초석을
마련하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동학도들의 혁명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고민하며 권력을 기틀을 공고히 하는 일에 주안점을 두는 이들의 생각은 대화 속에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결핍은
채움으로써 갈무리되는 게 아니라 결핍은 더 큰 꿈을 꾸게 하는 근간으로 작은 안락함을 거부하고 고단한 길 위에 서게 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부패와
결핍으로 균형을 잃은 조선의 형세를 간파한 청과 일은 조선을 좌지우지하려는 욕심을 내세워 조정과 밀착되어 야심을 관철하려는 야욕은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에
맞서 전봉준은 도탄에 빠진 창생을 구제하기 위해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를 징치하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을 물리치려는 격문을 선포하고 민중들을 규합하였다. 전의를
모아 전략을 펼 때도 신중하게 대처하길 바랐던 전봉준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생명을 유린하는 일은 삼가도록
당부했다. 변방에서
강적에 맞서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열세인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기에 민초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고 인내심과 치밀한 판단력으로 책임감
있게 행해야 했다.
존엄한 개체인 생명체로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둘러싼 선택은 현재적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민주적인
세상을 꿈꾸며 비전을 실현하려는 뜻에 함께 하는 동학도들을 규합할 때, 전봉준은
신식 병기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 의지와 힘으로도 안 되는 일에 대하는 두려움은 공포로 자리할 수 있음을 간파하고 세력의 힘을
모아갔다. 청국에
지원병을 요청한 조선의 정세를 살피며 일본은 조선에서 주인 행세를 하려는 야욕을 드러냈다. 운현궁으로
들이닥친 스기무라 일파는 대원군을 설득해 일본의 뜻에 따르기를 종용하였지만 그는 일본의 만행에 맞섰다. 하지만
김홍집을 위시한 관료들은 평양 전투 이후 삼남의 동학당을 소탕하라는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여 관군의 총격전은 맹렬했다.
이노우에 공사가 지휘한 동학의병 토벌작전으로 일본군과 조선 관군의 조직적인 공세에 직면한 동학의병은 연이은 전투에서 패배하였고 우금치전투의
대패로 아래로부터 거세게 일어난 동학 혁명의 불길은 사위어갔다. 김개남, 전봉준, 손화중
등 동학의병 지도자들이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乙’이라는
표식을 유산처럼 남기고 떠난 을개의 뜻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갈 것이다. 갑례의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체로 자란 도치 역시 아버지 을개의 뒤를 이어 민중들의 음울한 삶을 거두는 희망의 빛으로 성장해 역사의 진보를 위한 먼
길을 향하는 걸음을 내디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