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미래 - 세계적인 석학에게 인류의 마지막 대안을 묻다
김우창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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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육체적인 노동에서는 자유로워졌지만 건강한 미래를 전망하기에는 낙관적이지 않다.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우주에서 분리해 살 수 없는 인간의 영혼은 불편하게 지냈던 과거에 비하면 황폐화로 치닫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을 열어 환기조차 하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어서인지 편리한 생활만을 따르다 건강을 잃고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인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정보를 소화하고 총체적인 사고 속에서 문제를 생각하는 이성적 능력을 실현할 때 지속 가능한 미래는 가능할 것이다.

 

   자연 환경 파괴를 일삼으며 소비 위주의 삶으로 치닫는 자본주의 시대의 해악은 자연재해와 인간적 재앙을 야기하였다. ‘방법서설에서 밝힌 올바른 판단력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될 수 있도록 바른 길을 찾아 서서히 움직이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윤리적 기준을 지켰는지 사물을 대하는 태도를 회의하며 대상에 대한 존중을 견지할 때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본질을 잃어버린 채 공부를 성공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음울한 미래를 예견하면서 동서양의 석학 6인은 윤리적 지표를 다지기 위해 공동체 윤리를 중시하는 유교적 가르침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1부에서는 인간을 지구라는 행성에 가두기보다는 광활한 우주 안에서 우리 위치를 재확인하며 인간을 생명력 있고 역동적인 우주의 일원으로 여길 필요가 있다고 봤다. 뚜웨이밍은 인간의 의미와 자연의 고유한 가치를 믿는 영적 휴머니즘 회복을 위해 내면을 닦으며 지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을 연대하며 동행하는 이로 규정하고 그들에게 동정심을 가질 때 공동체적 삶은 깊이를 더할 것이다.

 

   2부에서는 공유재인 지구의 생태계 한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유 시장의 논리만을 따라서는 안 된다고 한다. 삶의 터전인 자연이 우리가 축적해온 생산 활동의 부작용을 더 이상 완충해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자정작용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글로벌 자본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국가적 권리로 회귀하는 것이라 역설하는 슬라보예 지젝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주시하였다. 어빈 라슬로는 자연적인 생명 유지 시스템과 인간의 사회 생태학적 경제 시스템이 조화를 이뤄 동시에 작동될 때 인간과 자연 사이에 조화는 깃들 수 있음을 설파한다

 

   쑨거는 특수성보다 보편성을 상위의 가치를 지닌다고 여기는 서양의 관점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각기 다른 특수성 사이에서 상호 이해를 도모하는 보편성으로 보았다.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과 무분별한 개발로 지구의 온도는 올라가 지구 전체가 사막화되면 쓸 수 있는 물의 양이 점점 줄어들어 지구에서 생명체가 사라져버릴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어빈 라슬로는 물질적이고 지엽적이며 개인주의적인 관점을 버리고 세포를 일깨우는 간섭성을 각인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의식의 진화를 토대로 한 우리 삶의 진화를 표방하는 실천이 모아질 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가계 소비 지출이 많아질수록 자연적 생태계는 파괴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보온성을 위해 라쿤털이 들어간 외투를 입을 때 특정 동물의 멸종을 부추긴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다양한 특수성을 살리는 개방으로 교류의 장을 열어갈 때 인류는 현안을 해결하며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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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가는 기분 창비청소년문학 75
박영란 지음 / 창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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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이 흑점을 지나는 시간에도 불을 환히 밝히고 구매자를 기다리는 편의점을 볼 때마다 잠들어야할 시간에 잠을 쫓으며 가게를 지키는 이가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진다. 딸랑거리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서는 손님을 맞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파리한 얼굴은 잠을 쫓느라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지인은 24시간 문을 열어야 하는 프랜차이즈 편의점 내부 규정에 따라야 하는 처지라 문을 닫고 싶어도 임의로 문을 닫을 수 없다고 하였다. 오랫동안 운영하던 마트를 접고 새로 생긴 원룸 가에 24시 편의점을 연 외할아버지는 프랜차이즈 기업 경영의 무자비함을 느끼며 회한에 젖기도 하였다.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원룸 가에 모여든 이들의 삶은 지속될수록 재기의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외할아버지가 운영하는 편의점을 지키는 소년은 필요에 따라 이곳을 이용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양한 군상들이 자아내는 삶의 리듬 속에 깃든 희로애락을 나눈다. 정체성을 지키지도 못한 채 남들이 규정해둔 성공적인 삶의 규칙을 따르며 살아내느라 소진해가는 범주에서 비껴난 인물들은 제 나름대로의 빛깔로 물들이며 지낸다. 자신을 낳아준 엄마와는 떨어져 지낸 지 오래, 외조부모와 함께 살면서 한동네에 사는 장애 소녀 수지와 마음을 나누며 지내지만 오래지 않아 수지는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스쿠터 뒤에 수지를 태우고 다니던 시간의 소중함을 떠올리며 수지의 행방을 찾아보지만 그녀의 행방은 묘연하였다.

 

   이렇다 할 이별의 한마디도 못한 채 수지를 떠나보낸 뒤 엄마와 그녀가 살던 시가지를 찾았지만 꿩 구어 먹은 자리처럼 소식을 알 길은 없었다. 그녀가 떠나고 난 뒤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회한이 더할 때, 아픈 엄마를 데리고 와 유통 기한이 지난 도시락으로 주림을 면하고 한기를 피하는 꼬마 수지와 밤을 지냈다. 오갈 데 없는 꼬마 수지는 애어른처럼 세상살이를 전하며 마음을 크게 다친 엄마의 보호자로 한몫했다. 감당할 만큼의 인생 무게만 자신에게 온다더니 해결해야 할 삶의 숙제는 으레 있기 마련이다. 민들 몰래 길고양이 밥을 주러 다니는 캣맘, 불쑥 나타났다가 훅 사라지는 정체 모를 청년 은 편의점을 찾아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 다른 것을 배우기 꺼려하고 겁내는 인생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알면 안 된다고 여기는 것들을 배워 낡은 습을 버리고 새롭게 살아가는 인생의 표본을 만들어내는 변수로 자리하고 싶은 바람으로 항해사의 길을 걷고 싶다는 훅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비밀리에 동거 중인 고등학생 미나 커플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해 또 다른 꿈을 꾸고 꼬마 수지의 엄마는 의지가지없는 신세로 전락하기까지의 내력을 전하며 그동안 말을 잃고 지낸 사실을 밝히며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깊은 밤 편의점 계산대를 지키며 이곳을 찾은 이들과 소년의 피상적인 만남은 두려움으로 걸어둔 빗장을 거두고 감춰 둔 속살을 드러냄으로써 이들은 가까워졌다. 특별한 출생이 달갑지 않은 소년은 돌아오지 않은 엄마를 기다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세상을 떠돌던 엄마가 안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프랜차이즈 사업에 손을 댔다 파산 위기에 몰리자 중국으로 돈벌이를 떠난 아버지를 기다리며 꿋꿋하게 지내려는 수지 모녀 등의 사연은 떠나간 수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날면서도 모른 체한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지난겨울 소년이 편의점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며 자신의 생활을 성찰하는 시간 속에 더불어 살아갈 플랫폼의 문화로 비춰진다. 편의점을 찾는 이들과 어우러져 서로를 걱정하고 풀어야 할 문제를 조금씩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각박한 세상을 살아갈 성장 동인으로 자리할 수 있음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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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하게 쓸모있는 경제학 강의 -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지금 여기 시민을 위한 경제학
유효상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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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도를 웃도는 8월 첫 주 금융감독원 주최의 교사 금융연수를 들으며 금융 관련 지식을 습득하여 돈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건강한 노후로 질적으로 향상된 삶을 살고 싶은 바람은 더해졌다. 변화의 속도가 가속화되는 21세기 인공지능과 빅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읽고 유연하게 대처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다. 숙박시설이 하나도 없는 에어비앤비(Airbnb)’의 투숙 고객이 3,000만 명을 넘어서고, 자동차를 보유하지 않은 우버(Uber)’가 스마트폰으로 이용 고객 300만 명을 태우는 시대에 창업 아이디어의 가치는 커진다.

 

   아이를 위한 기저귀는 어니스트 컴퍼니로 받아보는 시대에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움직임은 소비문화 트렌드를 형성하며 생활방식을 바꾸어간다. 차량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남는 차량을 연결시키고,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묶어 움직임으로써 이용액을 낮추는 차량 공유 서비스는 기업 가치가 100억 달러가 넘는 데카콘으로 불린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저런 규제로 공유 플랫폼을 성장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시대적 흐름을 읽고 한국 사정에 맞게 현지화 할 필요가 대두된다

 

   맞춤형 운동화를 제작하는 스마트 팩토리를 운영하면서 원가를 절감한 아디다스는 부가가치를 높이면서 생산 원가를 줄여 이윤을 극대화하고 있다. 고객들이 원하는 다양한 상품, 고객맞춤형 상품 생산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시대에 창의적 모방으로 현지에 접목함으로써 4차 산업혁명을 살아갈 때 생산 체제의 혁신은 가능할 것이다. 소유하고 있는 것이 없어도 디지털 플랫폼으로 개인이나 조직의 자산을 활용하여 거래하는 서비스로 거래 비용과 마찰 비용을 감소시켜 가고 있다.

 

   기존 업체의 존립 근간을 뒤흔드는 '아직 어리고 작지만 귀찮고 위협적인 존재'라는 의미인 앵클 바이터(Ankle Biter)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얻은 정보를 공유하여 대적하기 힘든 시대를 사는 지혜를 일깨우는 글에서 힘을 얻는다. 기존의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하기보다는 새롭게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아이디어가 스타트업의 기반을 형성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커다란 맥락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불확실성 시대에 고착화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앵커링 효과에서 벗어나 표준경제학에 인간의 심리를 더한 행동경제학 이론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시대적 ·경제적 흐름을 이해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며 지내야 할 당위성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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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지키는 카메라 소설의 첫 만남 3
김중미 지음, 이지희 그림 / 창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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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발머리 소녀가 렌즈에 세상의 풍경을 담는 모습이 그려진 표지가 눈길을 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프레임에 세상의 살아있는 모습을 담기 위해 노력하는 이는 오늘도 현장을 누비며 공감할 내용을 피사체에 담아낸다.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해 촬영한 사진 한 장은 새로운 관심을 일으키는 기폭제로 작용할 때가 있다. 기억하고 싶은 인상적인 풍경을 피사체에 담은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아람은 지금껏 살아왔던 터전의 소식을 카메라에 담는 일에 열중한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성적이 나오면 석차 순으로 서열화하여 보충 수업 반 편성을 새롭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습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성적에 따라 분반하여 수업을 진행하는데 초점을 맞추지만 학생들을 우열반으로 나눠 차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방학을 앞두고 보충수업 수요 조사를 벌이지만 형식으로 흐르기 십상이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보충수업에 동참하기를 권유받는다. 하반에서 수업해야 할 아람은 담임에게 보충수업 불참 의사를 분명히 하였지만 관리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담임은 보충수업 동참인원을 늘리기 위해 반 학생들과 면담하는 등 갖은 애를 써야 했다.
 
   ‘공부 못하는 애들은 자존심도 없는 줄 알아?’
   성적순으로 우열반을 편성해 시행할 보충수업을 둘러싸고 명품반에서 수업하게 될 단짝 연서와 불편한 마음을 주고받으면서도 아람은 의연하게 자신의 길을 지켜갔다. 명품 도시·뉴타운 건설이라는 명목 아래 명성 시장 상인들을 몰아내는 당국의 일방적인 조처에 항거하던 아버지가 수감된 뒤 낡은 카메라로 시장 상인들의 모습을 렌즈에 담아 블로그에 올리며 아버지 빈자리를 채워갔다. 아람은 50년 전통 시장이 굴착기에 무너지는 광경과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철거 용역에 맞선 시장 상인들의 현장의 소리를 담아 블로그에 올려 신문에 나오지 않는 시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렸다.
 
   학창 시절 맛보았던 만두 맛을 추억하는 동창 모임이 열리던 때, 40년 전통의 만두 가게에서 일손을 거들며 특별한 맛을 이어 가업으로 삼고 싶은 꿈은 뉴타운 건설로 무너져 버렸다. 가진 게 없는 이들은 공부라도 잘해야 자신의 꿈을 지켜갈 수 있다고 여긴 아람의 언니는 공부의 신으로 자존심을 지키는 게 학생으로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여기며 동생을 질책하지만 아람은 언니의 생각과는 달랐다. 생업의 터전으로 삼았던 시장의 상권을 지키기 위해 공권력에 맞서 임시 상가 마련을 위해 옥상 위로 오른 대책위원회의 활동을 아람은 눈물로 얼룩진 카메라 렌즈에 담아 기록하였다.
 
   거대 자본에 밀린 영세 상인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모습에 구두점을 운영하던 아저씨를 찾아 그를 인터뷰하고 가게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남겨 아람은 블로그에 글을 올려 이 사실을 널리 알렸다. 그동안의 행적에 담긴 아람의 생각을 읽으며 선생님 역시 그녀의 꿈을 지지하며 비디오 저널리스트로 자리할 수 있기를 바랐다. 작가·촬영 감독·기자 등의 멀티 방송인으로 VJ 아람이 주변에 일어난 일들을 블로그에 올려 사진 한 장이 주는 메시지가 갖는 강한 울림을 떠올리며 작은 움직임이 큰 변화로 이끄는 일로 모아질 수 있기를 바라며 그녀의 꿈을 응원한다.
 
 
 
창비 출판사 <소설의 첫 만남> 서평단에 선정되어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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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 신영복 유고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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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초록 잎이 갈맷빛으로 물들어가는 5월 초부터 시작된 연휴를 즐기려는 차량 행렬은 열병식 하듯 이어진다. 고희를 넘은 어머니의 손을 덜어주기 위해 금요일 버스를 타고 고향 집을 찾았다. 유년시절부터 자라온 집은 세월 따라 퇴락하여 거미줄을 뒤집어쓰고 집 나간 이의 발길을 기다려왔을 것이다. 녹차를 따야 하는 때면 잊지 않고 찾아온 방문객을 맞으며 사십 년 전의 기억 속 추억 한 방울 마음에 떨어뜨려 파란을 일으킨다. 저녁 설거지를 끝낸 밤 9, 서둘러 잠자리에 드는 것은 이튿날 일을 오롯이 행하려는 이유다.

 

   “일어나라. 동네 사람들 모두 밭으로 간다. 잠자러 왔나?”

    라는 어머니의 소리에 놀라 일어나면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지난밤 어슴푸레한 꿈 속 기억을 되뇌며 눈을 비비고 양치질한 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주먹밥과 간식·포대를 챙겨 일터로 향한다. 이슬 머금고 있는 찻잎을 따며 어머니와 그동안 품고 지냈던 일들을 주고받는다. 무한 재생되는 동네 어른들 이야기에 흥미는 가신 지 오래지만 홀로 일하는 어머니의 고독한 마음을 헤아리며 맞장구를 친다.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호응하는 일은 한 생명이 존재할 이유를 실어준다. 하나의 생명이 두 개의 생명을 위해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이 사랑임을 일깨운다는 대목은 왠지 모를 공감 능력을 발현하며 사는 일에 인색한 것은 아닌지 반추한다.

 

   범죄자를 구금하는 물리적 공간인 교도소 생활은 바깥에 사는 이들에게는 착각을 일으키는 정치적 공간으로 속박 없이 살아갈 자유를 함의한다. 통혁당 사건으로 스무 해를 수감자로 살아온 저자는 그곳에서 만난 재소자들의 삶을 통해 견고한 관념의 틀을 깨고 교도소를 새로운 배움의 연장에 놓인 대학 생활로 여겼다. 사회의 모순 구조가 첨예하게 밀집된 교도소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일이 쉽지 않았던 이유를 찾아 스스로 그들과 함께 지내려 저자는 결단을 내렸다. 일류대 최고의 학과에서 공부한 그의 이력은 재소자들과 함께 하는 작업장 일에서도 벽으로 작용했다.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힘겹게 살았던 이들과 먹물 옷을 입은 지성인으로 대별된 그는 언어를 버리고 자신의 삶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검증받으려는 각오로 버림을 실천했다. 책을 통해 습득한 관념적 논리를 허물고 상대의 처지에 입각하여 인식을 정확히 하는 일에서부터 관계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교과서적 범주를 벗어난 다양한 경험 속에 사회구조적 특성을 통찰하는 안목을 키우며 더불어 성장하는 길을 탐색하는 시기로 삼았던 대학 생활은 소외 계층과 연대하는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지향하였다. 1986년도에 대학에 입학하였을 당시 대학가는 군사독재 정권 퇴진을 위한 시위가 이어졌고, 대자보에는 미처 알지 못하였던 사회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등을 모색하는 일로 촉발된 관심은 연대를 통한 시위 대열에 동참케 하였다. 평화적인 촛불행진의 원류로 삼을 1987년 유월 항쟁의 민심은 반독재·민주화 투쟁의 열기를 더하였다. 수레를 끌며 과일 행상하는 이는 서면 광장을 걷는 시위대를 응원하기 위해 과일을 나눠줬고, 인근의 병원 근무자들은 마스크를 나눠주었던 감동적인 장면은 30년이 다 되어가도지만 명징하게 떠오른다. 퇴근 후 넥타이부대까지 가세하여 민주화를 향해 결집된 열망은 직선제 개헌과 제반 민주화 조치 시행을 끌어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는 흐려져 부정, 부패는 만연해졌다.

 

   거대 자본의 바퀴에 물린 작은 바퀴를 열심히 돌려야 생존할 수 있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짚어 경제적 자생력을 기르는 일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화폐 중심으로 치닫는 자본주의는 물질적 낭비와 인간적 낭비를 가속화하여 관계를 파탄할 수도 있음을 지적하였다. 타인에게 물건을 팔아 이윤을 챙기기보다는 물건의 쓰임이 여럿에게 도움을 주고 환경에도 이로운지 살피는 노력은 관계를 살피어 정성을 다하는 모습으로 투영된다. 화폐를 통한 교환에만 비중을 두기보다는 가슴을 울리는 교감으로 남을 재화의 재구성으로 시장은 자리해야 한다. 피를 팔아 가족을 먹여 살리려던 젊은 청년은 식량을 마련하지 못할 때 가게 아주머니를 떠올리며 한 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공생 관계를 떠올리는 구절에서는 타인을 고려하는 선량한 마음을 읽는다.

 

   질곡의 공간인 수감생활에서 만난 이들의 출소를 앞두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벌이는 송별식에서 유일하게 아는 노래인 시냇물을 불러 숙연한 분위기를 만든 일화는 목울대를 적신다. 거리 곳곳에 울려 퍼지는 노래를 들을 수도 없는 곳에서 20년을 보내고 출소하여 들은 노래를 들었을 때의 충격은 갇혀 지낸 시간의 강직이 순식간에 풀려 정신을 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무명의 껍데기를 벗고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과 맞닥뜨린 대학 생활은 나를 둘러싼 세계를 통찰하며 살아가야 할 당위성을 일깨워주었다. 학회 일을 함께 하며 크고 작은 일을 풀어가는 자리의 뒤풀이에서 즐겨 부르던 노래는 양성우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이라는 곡목이었다. 애절하면서도 처연한 소리로 선창하면 하나둘 노래를 같이 불러 정의로운 세상을 구현하려는 의연한 가치를 추구하는 연대의 움직임은 커졌다. 누군가의 우산을 들어주는 것보다 그와 함께 비를 맞는 것이 진정한 도움임을 새기며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그 아픔의 치유를 위한 실천은 작은 관심에서부터 촉발된다. 때 묻지 않은 눈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여럿이 더불어 살아갈 세상을 바라며 생명체를 품고 살아갈 공생의 숲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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