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하동과 인접한 남해이지만 한 번도 남해를 찾은 적이 없던 이가 첫발을 디딘 남해에서의 생활은 낯설기만 하였다. 섬사람 특유의 고유성을 바탕으로 한 연대는 타향 사람이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이질감을 주어 고독한 생활이 이어졌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별다른 경험도 없이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장난기 넘치는 학생들의 돌발적인 질문에 당황해하던 빛이 역력했던 시절 학생들은 처녀 선생님을 놀리는 재미로 눈에 빛을 내던 때라 수업은 계획한 대로 잘 이뤄지지 않았고 선배 교사들의 조언을 들으며 강약을 조절하여 갔다. 결손 가정의 자녀로 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조부모 슬하의 결핍 속에서도 굳건히 성장하는 아이들과 소통하며 지냈던 시절은 감정 다툼으로 힘들었던 때도 있었지만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정으로 모아졌던 시대였다

 

   반농반어(半農半漁) 생활에 익숙한 남해 사람들은 1년 내내 손발을 부지런히 놀려 의식주를 해결한다. 마늘을 거두어 낸 자리에 모내기를 하고 수확인 끝난 자리에는 마늘을 갈아 한파에 마늘이 얼어 죽지 않도록 비닐을 덮어 구멍을 내는 농법으로 마늘 농사를 짓는다. 마늘을 심고 남은 땅에는 시금치 씨를 뿌려 해풍을 먹고 자란 시금치를 캐 선별하여 수입을 올린다. 이른 새벽부터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밥벌이의 일상을 위해 거센 파도를 감내하며 그물질하여 생선을 잡고 물고기를 털어낸 그물을 손질해 다시 바다로 나가 조업하는 어부들의 삶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면서 보편적인 일의 연장선이었다. <<라면을 끓이며>>에 담긴 저자의 고백은 진부하지만 일상성이 유지되는 밥벌이의 경건함에 공감하며 일상적 삶에 균열이 가지 않는 생활을 바라는 자신은 지난한 생활이 비껴가기를 바라는 소시민으로 살아갈 뿐이다.


   ‘000친구의 친정어머님께서 금일 숙환으로 별세하셨음을 알려드립니다.’

   빈소와 발인 일을 명시한 부고는 고향 친구들 소식란에서 흔한 일 중 하나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나 풍족하지 않은 벽촌으로 시집와서 자식들을 건사하며 살아내느라 여유 있게 놀이 한번 떠나지 못한 채 요양병원에서 임종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젊어서 몸을 사리지 않고 아등바등 거리며 살아온 대가로 골병을 얻어 말년을 고통 속에 살던 이들도 유택(幽宅)에 갇힘으로써 육신의 껍데기를 벗는다. 어머님 부재의 헛헛함으로 연민에 젖어 목 놓아 오열하던 유족들도 시간 속에 슬픔의 깊이도 엷어져 살아남은 자는 살아가게 된다. 망한 조국을 가슴에 품고 이역만리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며 무협소설로 갈증을 풀어내던 아버지의 말없는 광야를 떠올리며 밖으로만 떠돈 아버지를 원망하는 대신 연민의 눈으로 보는 저자 김훈의 시선은 울림을 준다

 

   20151112일 대학수학능력시험 전형일 감독관으로 남해읍에 위치한 고등학교인 남해제일고등학교로 오전 8시까지는 입실해 감독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하는 날이다. 여학생들만 응시하는 고사장이라 미묘한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반응하여 불만을 토로한 사례가 있었던 터라 발자국을 떼는 것도 유의해야한다는 지침이 있었다. 1교시 국어 영역 시간 긴장을 많이 해서인지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고 소리 없이 땀을 훔치며 매뉴얼대로 감독을 행하였다. 시험 시간은 80분이지만 예비시간까지 합쳐 100분을 정중앙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더니 다리가 뻑적지근했다. 교사 대기실에서 숨을 고르며 노란 리본을 단 감독관을 보니 세월호 참사로 진도 앞바다에 수장된 아이들이 생각났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 한마디를 믿고 구조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차가운 바다 속 선실에 갇혀 두 발로 걸어 나오지 못했다. 구조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놓치고 숱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서야 구조하는 척했을 분이다. <<눈 먼 자들의 국가>>를 읽으며 세월호 유가족들과 아픔을 함께 하려는 움직임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진상 규명을 위한 실천에 힘을 더할 때 또 다른 참사는 일어나지 않을진대 그 길이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기우일까?

 

   1980년 이른 봄 학교에 입학한 후로 줄곧 학교를 오가며 이제는 자신만을 위한 공부에서 벗어나 교육자와 피교육자가 동반 성장하는 길을 모색하는 교사로 생활한 지 26년째에 접어들었다. 돌이켜보면 회한으로 얼룩진 날들이 많았지만 독서로 생각의 깊이를 더하면서 자기 성장을 도모하는 생활을 잇는 제자들을 보면서 희망을 읽는 날이 늘어났다. 삶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읽기로 지평을 넓혀가는 공부의 본질에 가까운 독서는 내실 있는 인생의 고갱이로 자리하여 예기치 않은 문제들에 직면할 때마다 크고 작은 지혜를 주었다. <<책벌레와 메모광>>을 읽으며 서자로 태어났지만 읽는 이가 주인인 물건으로 대변되는 책이 있어 이덕무는 신분의 벽을 넘어서는 혜안으로 닫힌 문을 열 수 있었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것인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인가?’

등의 물음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리면서 능동적으로 움직이며 살아가려고 실천한다.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지내서인지 매너리즘에 젖어 일상이 주는 달콤한 안락에 젖어 관성대로 살아가는 자신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답답해질 때면 살던 곳을 떠나 색다른 공간을 찾아 나서기를 즐겼다. 가보지 않은 길을 동경하며 낯선 곳을 밟고 싶어 하는 마음은 단조로움에 변화를 시도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아들의 건강상 이유로 잠시 유예해두고 지낸다. 뜻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라 여기면서도 왜 나에게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생겨 불행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며 푸념하면서도 감당할 수 있는 몫만큼만 고통도 오는 것이라 여기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새벽 5시 어둠에 잠겨 있던 물상들이 기지개를 켜고 빛을 향해 가고 있는 시각에 깨어나 빈방의 적막을 깨드리는 낭독으로 나만의 시간을 연다. 배우며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며 만난 숱한 인연들 중 몇몇은 교사의 보람을 일깨우며 지금 맡고 있는 일에 충실하라고 내면을 담금질한다. 피상적으로는 행복해 보여도 실상은 각기 다른 이유에서 파생된 다른 크기의 불행을 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배우며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며 타자의 삶을 이해하고 수용함으로써 내적인 풍요로움을 구가할 수 있는 생업의 터전에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어 행복하고, 책벌레들의 진짜 공부의 의미를 발견하며 독서로 필사하는 초서까지 겸하여 질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인생이라 감사하다. 나만 유독 힘들다고 여길 때면 생때같은 자식을 잃고 기초적인 생활 질서까지 잃고 평형을 유지하며 살 수 없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을 떠올리며 감정의 허영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며 이 자리에서 행할 수 있는 일에 착수하는 자신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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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구름 사이로 동그란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달을 보면서 명절을 보내는

안타까운 마음을 날려 보내렵니다.

가족 간의 불화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사는 형제들

모습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늘 그렇듯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며 언제나 이 일에서 벗어날까 의문을 품습니다.

한 집에서는 제사를 모시고 또 다른 집에서는 큰어른을 모시는 일상이

하나로 모아지면 좋을 텐데요.

다시 하나로 연대하며 살기는 어려워 보이는 어르신들이

상대를 배려하며 이해하는 가운데 서로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하여 직장 일을 마치고 금요일 밤에는 푹 쉬고

그동안 읽은 책 서평을 작성하고 읽고 싶은 책을 보았습니다.

추리 소설을 읽으며 반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가면을 치우고 살의를

표현한 범인의 추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9월에는 읽고 싶은 수필류가 많이 나와 5권을 선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창창한 햇살 아래 답사를 떠나고 싶은 날

20대 청춘 시절부터 함께 하였던 유홍준 교수의 답사기는 답사 길라잡이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언을 새기게 했고 보는 만큼 가슴에 남는다는 말을

새삼 떠올리게 합니다.

 

 

 

 여름 방학 때 아이와 함께 강원도 영월로 답사 여행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호야 박물관에 끌려 박물관 고장인 영월을 찾았습니다.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내쳐진 단종의 슬픔을 단종의 능 옆에 있는 보리밥집에서 삭이고 펑령포를 돌아나왔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찾고 싶은 영월이라 남한강 유역을 둘렀나 답사기

들고 떠나는 여행을 꿈꿉니다.

 

 

 

 

 

 

                                        

    한 우물을 깊게 파는 이의 정성과 노력에 감동하며 지낼 때가 많습니다. 중화 요리로 명장의 자리에 오른 고향 친구가 있어서인지

사부의 요리가 남다른 느낌으로 자리합니다.

쉽게 식어버리는 열정을 바로 세우려는 움직임에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합니다.

근성으로 자신만의 길을 걷는 이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밥 한 끼를 함께 하고 싶은 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별로 소통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는 밥을 먹고 싶지 않은 아집이

크게 자리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와 밥 한 끼를 나누는 일은 그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싶다는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명사들은 누구를 그리워하며 밥을 나누고 소통하묘 교감하였을지

궁금합니다.

 

 

 

 

 

 필사하고 싶은 작가 김훈 님의 글은 가슴 속 잔잔한 울림을 전하는

정한수 같은 정성의 산물입니다.

라면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서민적인 음식입니다.

나이 듦에 라면을 먹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양은 냄비에 라면을 끓여 한 젓가락씩 후루룩 먹으며

서로 웃고 떠들던 아동기의 결핍이 떠오릅니다.

부족함이 많았어도 서로를 생각하는 정이 흘렀던 그 시절을

추억하면 골방에서 친구들이 함께 먹었던 라면이 있습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류시화 님의 인도 여행기를 읽고 인도에 대한 환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인도 여행의 시작은 환상이 깨지는 것부터일 것입니다. 빠하르간즈 관행대로 해오던 질서가 무너지고 아비규환 같은 길에서도 현지인들은 그들만의 질서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혹독한 여정에 몸과 마음은 지쳐갔지만 여러 곳을 떠돌아 다녀도 신기한 나라 인도만큼 이야깃거리를 주는 곳이 없어 보입니다.

'노 프라블럼' 한마디로 형통하는 그곳의 문화에 흠뻑 빠져들고 싶은 날 인도 여행을 꿈꿉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신간평가단 16기 활동이 기대되는 이유는 소통하고 싶은 이웃들과

함께 하는 활동이라 공감대 형성에 이로울 것이라는 기대가 크기 때문입니다.

청아함이 가득한 가을에 까슬까슬한 마음을 달래 줄 에세이들이 있어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어 행복한 가을입니다.     

소소한 일상에 감동하고 감사하는 감성을 잃지 않고 살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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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에 변화를 주고 싶은 열망으로 가슴이 바스락 소리를 낼 때면 떠오르는 공간 간송 미술관이 있다. 일 년에 두 차례 열리는 전시회를 보기 위해 남해에서 서울까지 가서 한성대 입구에 내려 마을버스로 이동했다 두 시간 넘게 줄을 섰다가 5분도 채 안 되는 관람 시간에 허탈할 때도 있었지만 미술관으로 걸음을 옮기며 행복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사는 게 팍팍할수록 선현들의 그림은 나를 다독거리며 현재에 충실할 이유를 묻고 스스로 답하며 좀 더 열심히 살아갈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 수집한 작품을 상설 전시관에서 전시할 때는 관람한 적이 없지만 소슬한 바람이 부는 가을 미술관을 찾아 바람 빠진 풍선처럼 휑한 마음을 작품 감상으로 채우고 싶어진다.

 

   친목 모임에서 패키지여행으로 서유럽 5개국을 다녀온 적이 있다. 한정된 시간 내에 유럽의 명소를 찾아 수박 겉핥는 것처럼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줄을 섰지만 2시간 넘게 줄을 선 다음에야 입장이 가능했던 바티칸 박물관은 입구에서부터 인파에 밀려 작품 설명을 제대로 들을 수도 없는 상황에 지쳐갔다. 잰걸음으로 가이드를 따라 움직이지만 방대한 그림과 조각들을 보기에는 여러 제약이 한계로 작용했다. 바티칸 박물관을 보면서 인류가 남긴 문화유산으로 자산을 축적하며 사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게 부러웠던 기억을 안고 미술관과 건축에 관심이 많은 저자가 쓴 글을 읽으며 세계 곳곳에 자리한 독특한 구조의 건물이 있어 찾고 싶은 곳이 늘어났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을 대표하는 박물관과 미술관에 대한 설명에 이어 박물관 설계를 주도한 세계적인 건축가에 대한 작품 세계가 곁들여져 건축물설계에서부터 완공까지의 과정을 집약해 놓은 글이다. 어떤 장소를 방문하였을 때 그곳을 살피며 떠오른 생각들은 쉽사리 잊기 힘든 강렬한 기억으로 각인될 때가 있다. 도처에 자리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각기 다른 형태로 자리하지만 고유한 모습과 빛깔로 관람객의 눈길을 끌어 향후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남기도 한다. 선사 시대부터 현재까지 800만 점이 넘는 소장품을 보유한 영국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을 설계한 노먼 포스터는 환경에 대한 의식을 바탕으로 최신 공법과 재료로 효율성을 높이는 건물의 완공을 위해 노력하였다.

   유치원 때 만난 두 친구는 건축학을 전공한 공학도로 세계 최고의 건축가 콤비로 일한다니 살아온 세월만큼 쌓인 우정의 깊이를 가늠해 본다. 건축물이 들어서는 장소의 역사성 및 문화의 조화까지 아우르는 자크 헤어초크와 피에르 드 뫼롱의 작품인 테이트 모던은 템스강변의 폐쇄된 뱅크사이드 발전소를 개조한 것이라니 흉물로 방치될 수도 있는 건물을 문화의 향유 공간으로 변환시키는 거장들의 능력은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세계도시 재생 프로젝크의 모델로 자리하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철강도시 빌바오의 명성을 이어 항공기 몸체에 쓰이는 티타늄을 유선형의 굽어진 벽면에 부착하여 비가 많이 내리고 흐린 날이 많은 지역의 기후적 특성을 최대한 살려 조형미가 뛰어나다고 하였다. 네르비온 강과 맞닿은 미술관의 측면 역시 또 다른 예술성을 더해 사진만으로도 예술적 감각에 놀라고 말았다. 루부르 궁전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루브르 박물관의 입구에 자리한 유리 피라미드는 복도로 이어진 선형 건물의 분산된 출입구를 한 곳에 집중하려는 의도가 컸다니 조형물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는 건축가들의 의도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베를린을 관통하는 슈프레 강 지류에 있는 박물관섬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역사적 건물로 베를린의 역사적 중심지를 이룬다고 한다. 전쟁의 상흔을 살려 새로운 박물관에 필요한 기능을 최대한 담아내려는 노력은 옛것과 새것의 이질성을 극복하는 조형물로 자리하여 관람객들의 시선을 모은다. 고전적이고 미니멀리즘적인 특성으로 일관하는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본질에 충실한 건축으로 전 세계에 걸쳐 신프로젝트를 수행한다니 그가 설계한 건물들을 쉽게 만날 수 있을 듯하다. 홀로고스트로 불리는 나치의 광적인 반유대주의는 무모한 죽임으로 수많은 인명 학살을 자행한 인권 유린의 현장을 작품으로 형상화하여 가해한 독일은 다양한 방식으로 속죄하여 왔다. 희생된 유대인들의 비극적 역사를 보여 주는 공백의 기억과 홀로고스트 타워는 수형의 공간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유대인들의 불안과 공포의 소리를 쇠로 만든 얼굴 조각들을 밟을 때의 소리에 담았다니 섬뜩하면서도 숙연한 걸음을 옮겨야 할 듯하다.

 

   영세중립국으로 아름다운 대자연과 함께 세계 속의 부자 나라 스위스에 자리한 파울 클레 센터는 세 개의 물결 모양으로 이뤄져 곡선미를 더하며 주변의 말밭과 잘 어우러져 바람이 불 때면 밀밭이 물결을 이루고 건물도 이랑을 이루는 경치를 자아낸다니 자연 속에 자리한 그곳에서 평화를 찾고 싶어진다. 경이로움으로 다가온 외계인 모양의 쿤스트하우스 그라츠는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중세도시 그라츠에 내려앉은 형상으로 파격을 더하는 미술관이다.

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건물 외부에서 50분마다 5분 동안 초저음의 진동이 나도록 설계했다니 하늘에서 지구의 생명체에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처럼 들려왔다. 르네상스 회화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는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은 문에 부흥기의 보물들을 관람객들에게 선보이며 황홀경에 젖게 한다.

   멋모르고 지내던 시절의 평화가 삶의 행복인 줄도 잊고 지냈던 시절로 회귀하고 싶은 날이 있다. 예기치 않은 일들에 발목이 잡혀 일상성을 잃게 될 때면 일이 벌어지기 전으로 시계 바늘을 돌리고 싶어진다. 무탈하게만 살아온 일상이 아니기에 늘 나의 고통이 큰 무게로 자신을 짓누르며 불행을 자초한다고 여겨왔으나 이제는 힘든 시간이 지속되어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믿으며 자신을 담금질하는 통과의례로 받아들이며 지내는 배포가 생겼다.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자생적인 게 아니라 추억의 보물 창고 속에 저장된 추억의 앨범과 그 시절 읽고 들었던 유형의 문화들이 현재의 문화에 다리를 놓아 소통하면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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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친 슬하에 올망졸망 깃들어 사는 친구네를 부러워하며 지냈던 아동기가 떠오른다. 아버지 없는 빈자리를 채우며 생업에 뛰어든 어머니는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실천력으로 한 집안의 가장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느라 고단한 시간을 메워야 했다. 편중됨 없이 균형 있는 생활이 유지되는 평범한 가정을 이루며 사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의 부재는 또 다른 이의 희생과 베풂 아래 빈자리를 채우며 안간힘을 쓸 때 일상적 삶은 영위될 수 있음을 알아차렸다. 살다 보면 우리네 삶이 최적의 선택과 결정보다는 불가항력적인 결정대로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왕왕 벌어진다. 작은 개체인 점들이 모여 하나의 연결 고리인 선으로 이어져 크고 작은 영향 아래 놓여 또 다른 파장을 불러일으켜 은폐된 진실을 규명하려는 움직임으로 이끌기도 한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들어온 이복동생 신하정을 숙명처럼 받아들인 신기정 어머니는 의탁된 미성년자를 돌보는 일로 책무를 다하는 것처럼 여겼고, 졸지에 언니가 되어버린 그녀는 동생과 데면데면하게 지내기 일쑤였다. 가면을 쓰고 각지 처한 환경과 상황에 걸맞은 역할 수행으로 무탈하게 지내는 삶을 잇던 중 돌연한 사고는 점점이 떨어져 있던 이들을 하나의 선으로 결박하여 인간의 품위를 짓밟고 만다. 날 때부터 특별한 부와 권력을 쥐고 태어난 원도준이 도난 사고의 중심에 선 이유 중 하나가 훔치지도 않은 물건을 훔쳤다고 소리치는 주인아줌마를 향한 복수심의 발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신기정은 아연실색하면서도 그동안의 교직 생활을 반추하였다. 피교육자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진실을 받아들이는 일보다 그들의 소리를 차단하고 편의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순응 잘하는 학생들로 길들여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위선적인 행동을 성찰하였다.

 

   고립된 섬처럼 찍힌 작은 점에 지나지 않았던 동생의 죽음은 그녀의 죽음이 배태하는 슬픔이나 그리움 대신 생전에 잘해주지 못하였다는 부채감으로 어떤 사연이 죽음으로 치닫게 하였는지 알아내야한다는 의식이 강해졌다. 동생의 죽음을 추적하던 중 동생이 남기고 간 통화 내역서에 수차례 찍힌 발신인 번호를 발견하고는 죽음의 단서를 찾아 나섰다. 사회적 약자에게 다가가 단기간에 목돈을 만질 수 있다고 유혹하여 하부로 삼는 구조망으로 연결된 먹이사슬에 지나지 않는 다단계 수업에 걸려든 게 포착되었다. 연락의 실마리를 찾아 다단계 물꼬를 트고 는 서로에게 덫을 놓아 먹이사슬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종국에는 인간관계까지 파괴시켜버리는 다단계 수법의 그물망은 약육강식의 비정함을 표면화하였다. 독립된 개체의 점조직들이 상부와 하부로 나뉘면서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서로를 잠식하는 연결고리에 지나지 않았다.

 

   가스 폭발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며 윤세오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딸에게 사랑을 베푼 아버지를 빼앗아간 원흉을 찾아 응징하려는 복수심이 마음속에 크게 자리하였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줄곧 함께 지냈던 아버지의 부재는 골방에서 갇혀 지내던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도하며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나서야했다. 채무 이행 독촉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아버지의 죽음 이면에 자리하는 사채업자의 주구인 이수호의 행방을 추적하며 지니고 있던 장도리로 그의 머리를 가격하여 죽이려는 윤세오의 살의는 보라색 트렌치코트를볼 때마다 굳어졌다. 세상 곳곳이 돈에 저당 잡힌 채 연명하는 전당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뒤부터 그녀 역시 괴물로 변해갔다. 조미연이 윤세오를 끌어들이고 자신은 빠져나간 자리에 세오는 부이를 끌어들였고 부이는 다시 일면식이 있을 뿐인 하정을 끌어들여 하부로 삼았던 일은 악의 연결 고리를 끊지 못한 채 기생하는 삶을 배격하지 못하는 폭력의 그림자를 응시하게 된다. 윤세오를 만났지만 그녀의 말을 밀어낼 정도로 또렷한 의식으로 자신을 무장하며 지내온 부이는 의과대학생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홀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프랜차이즈 점포 개발 방식 중 보편적인 점선면의 법칙처럼 한 점에서 시작해 일정한 선을 만들고 일정한 선이 모여 면을 만들어가는 식으로 체계적인 유통물류 방식과는 차별화된 다단계 사업의 허구성이 한 개인의 파멸로 입증되었다. 자본을 독식하려는 소수의 비대화는 이루어질지언정 대사수의 약자는 피해의 골이 깊어져 회생 불능의 상태에 귀착되는 현실은 익사채로 발견된 신하정과 사채업자의 전횡과 폭력에 짓눌려 목숨을 잃은 윤세오의 아버지는 죽음으로써 악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무소불위의 권력과 횡포 아래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기에 극단적인 선택으로라도 자신의 소리를 냄으로써 세상의 어두움을 걷어내는 일에 희망의 빛을 투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크고 작은 연결고리로 이어진 생명체의 부음을 들을 때마다 망자와의 함께 했던 인연을 떠올리며 잘해준 것보다 못해준 게 늘 마음에 걸렸다. 잘 지내냐는 안부 전화에 시큰둥하게 반응한 것부터 그곳으로 간다는 소리에 어디 외출 중이라 핑계 대며 편의성을 찾은 일 등이 회한으로 남는다. 사람들 사이의 다정한 위로와 사소한 웃음이 인간관계의 질을 향상시키고 서로를 성장시키는 동력으로 자리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지만 윤세오가 상상하는 세계는 인간적인 풍경과는 점점 멀어져 갔다. 양심을 짓누르는 무게에 휘청거리면서도 노모에게 착한 아들이었던 이수호의 선혈이 낭자한 죽음은 또 다른 채무자의 거대한 분노 앞에 무력한 존재의 삶을 일단락 짓게 하였다. 가학적인 폭력으로 피해의식을 부추기며 자유롭게 숨 쉬고 뜻한 대로 움직이며 살아갈 힘까지 앗아가 버린 악인들의 행동은 거대한 자본의 힘에 굴종하여 기생하는 삶을 잇는 선들의 법칙이었지만 이들은 하나의 연결고리로 유대하고 연대하여 공공의 선을 실현하는 일에는 실패하였다. 가족이 함께 밥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마저 유기한 채 지내온 시간들을 복원할 수 없기에 지금부터라도 구성원들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묻고 응대하는 가운데 소원해진 관계는 서서히 회복될 것이다. 신기정이 신하정의 죽음의 궤적을 좇아 외로운 삶을 끝낼 수밖에 없었던 인생을 연민하면서 진정한 애도를 시작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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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 초입인 마흔 고개를 넘으면서 회복 탄력성은 떨어져 생기 있게 움직이며 지내던 30대와는 달리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변화를 자주 느끼던 중 생애 전환기 건강 검진 대상자에게 통지되는 안내문을 받았다. 국민 건강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질병 치료에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행하는 검진을 받기 위해 인근 도시의 종합병원으로 향하였다. 같은 연배의 검진 대상자들은 검진 표를 들고 순번대로 움직이며 검사에 응하였다. 위내시경 수면 검사를 받고 깨어났을 때 담당 의사는 위에 용종이 발견되어 그것을 따로 떼어내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며 그 결과는 열흘 뒤에나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생각지도 못한 조직 검사는 비극적인 상상을 불러일으켜 평정심을 유지하기는커녕 극심한 공포에 짓눌려 결과가 나오기까지 애간장을 졸여야 했다. 암으로 판명되어 항암 치료를 받는 고통보다 어린 자식들이 눈에 밟혀 잠을 이루지 못했던 시간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결과는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서른도 안 된 데이지의 암 재발은 불가항력적으로 감내해야 하는 재앙처럼 여겨졌다.

 

   스물세 살의 데이지는 불의한 사고로 다친 팔을 치료하던 종 종양을 발견해 종양 절제술 이후 항암 치료를 끝내고 무탈한 일상을 회복하여 부부는 신혼의 행복을 찾아갈 것처럼 보였다. 수의사로 동물들을 치료하고 돌보며 수의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잭과 심리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데이지는 타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학위 논문을 완성하고 대학원을 졸업한 뒤 부부는 사랑의 열매인 아기를 가지려고 했지만 가혹한 운명의 신은 예고 없이 유방암 재발과 다른 기관으로 암이 전이돼 길어야 4~6개월이라는 시간을 유예했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계획을 행할 수 없는 시간이 긴박하게 다가선 만큼 부부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파고를 억누르며 성숙한 언행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암 재발을 막기 위해 했던 일련의 활동들이 무위로 돌아가 허탈감에 젖을 새도 없이 데이지는 햇빛에 스러지고 말 이슬처럼 사위어갈 목숨을 부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홀로 남겨질 잭을 위해 그의 아내를 구하는 계획을 실행하였다.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전문가이지만 아내의 손을 필요로 하는 일이 많은 남편의 성향을 이해하고 부족함을 채워 줄 새 아내를 구하는 일은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선고였다. 남편의 새 아내에게 필요한 자질을 챙기며 온라인 커뮤니티에 남편의 사진을 올리는 아내의 비통함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잭이 혼자 남으면 어떻게 될까?’

  데이지의 염려와 고민은 치료 불능의 상태에 이르고 만 자신의 고통에 귀착하기보다는 홀로 남을 남편의 원활한 생활에 집중되어 있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유한한 인생에 대한 통찰로 생에 집착하기보다는 스스로 남은 삶을 정리하면서 살아남은 자를 배려하는 데이지의 넉넉한 마음은 남편의 새 아내를 구하는 요건에서도 드러났다. 그녀는 교감하며 지내던 케일리와 함께 잭에게 걸맞은 아내를 구해주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낼 때도 있지만 기저에는 슬픔의 깊이가 더한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뒤 데이지는 돌연한 교통사고로 남편을 여의고 딸을 키워냈던 그녀의 외로움을 통찰하며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는 성숙함을 보였다.

 

   고작 스물일곱! 공부 때문에 미루어 두었던 일들이 줄지어 서있는 원하는 바를 접고 오로지 한 가지 일을 계획하는 동안 데이지의 바람은 잭이 잘 지낼 수 있는 있는 방안을 찾는 일에만 집중하였다. 곁에 있을 것이라 여겼던 한 사람이 사라지고 난 뒤의 불가피한 현실을 준비할 수 있도록 그를 밀어내는 그녀의 행동은 남은 정을 떼려는 의도처럼 비춰져 처연함이 더했다. 심사숙고하여 잭의 배우자로 결정한 패멀라는 남편과 함께 강아지 구조대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벌여온 사이다. 둘의 친밀함을 토대로 상상해내는 세상은 자신이 채울 수 없는 단란한 가족의 일상이 갖는 쓰라린 즐거움이었다.

 

   생명적 유기체는 누구든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에 놓여 있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이틀이 멀다하고 접하는 부음(訃音) 중에서도 젊은 생명이 제 빛을 발하기도 전에 세상과 결별하였다는 소식은 헛헛함에 휩싸이게 한다. 스물 셋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제자의 상가를 찾았을 때 남은 식구들과 친구들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오열하는 진풍경은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척의 광경이었다. 다양한 죽음을 목도하면서 슬픔에 젖을 때마다 불가항력적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가야할지 고민한다. 순연한 흐름으로 죽음을 수용하며 남은 자들을 배려하는 넉넉한 사랑은 견지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불평을 늘어놓기보다는 푸념을 거두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부터 시작하고 싶다. 데이지와의 짧은 결혼 생활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며 살아갈 잭의 입가에 번지는 엷은 웃음은 인연의 고리로 잔잔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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