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사실

초여름도 모자 벗고 인사를 다 했다
날마다 내가 오늘 본 가장 아름다운
나를 두고 그대라고 부르는 사람을
나 또한 그대라고 부르면서 그대의
그대가 되는 일은 이 세상의 좋은 일이고
여름 한철로부터 결국에 위임장을 받은
그대는 수개월 뉘엿대는 마음 이제 없이
낮곁을 늘려 여러 꽃말을 수소문한다
밤이 오면 흰 비를 데워 가져다준다
그때 나는 보채지 않고 말곁도 없이
연해지는 방법을 하릴없이 배우는데
전에는 스스로 괴롭히며 얻었던 것들이다
조용히 그러모아 그대는 녹지를 조성한다
그런 다음 군데군데 새소리를 마련하고
누구나 쓸 수 있게 해놓지만
가장 작고 촘촘한 새장은 내 몫이라
한여름에 사랑이 주인 노릇을 한다 - P24

누추한 이 세상에 그래도 누군가는 사랑한다는 소문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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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비탈에 사는 사람들은
간신히 붙박이며 살고

나는 세 들어 사는 일이 처음이다

(중략)

미끄러질라 말 한마디 없이
내민 손을 나는 꼭 붙잡으며
여기 비탈 길게 이어져서는
다 같이 처음 사는 일을 한다

- <상도동> 중에서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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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의 고통보다 더 심하고 무익한 정신적 고통이 있다면 그것은 후회일 것이다. 상실의 고통도 그보다는 덜 아플 것이다. 그리고 흔히 이런 고통들은 지금 내가 그러듯이 한꺼번에 찾아온다. 내가 말한 후회는 회개가 아니다. 내가 순수한 형태의 회개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아마 회개는 순수한 형태가 없는지도 모른다. 후회에는 죄의식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절망적인 죄의식이며, 고통을 낫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 P357

물론 이 수다스러운 일기는 외관에 불과하다. 질투, 양심의가책, 공포,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도덕적 실패 등 내부의 파괴를 숨기는, 매일 미소 짓는 얼굴과 같은 문학의 등가물이다.
그러나 그러한 가면이 위로가 될 뿐 아니라 약간의 용기도 생산할 수 있다. - P399

그녀가 겪어야 했던, 알츠하이머병의 슬프고도 무서운 아이러니는 인생을 학문과 예술에 전부 바쳤던 재능 있고 영리했던 한 작가가 자신이 쓴 수많은 작품들의 제목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가장 근본적인 철학적 문제 가운데 하나를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러 가지 경우로 그녀가 독자에게 알려 준 철학적 진실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가 얼마나 유명해지든지,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 일을 하는가? 결국죽음의 위대한 공허함이 우리 모두를 덮어 없애 버릴 것을. - P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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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아무런 상처 없이 넘어져도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약간의 공포를 느낀다. 그는 냉혹한 작용에 떠맡겨져서 마지막까지 끌려가야 하며 결과에 순응해야 한다. ‘내가 할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라는 죽음의 초상과 같은 생각을 하는 순간이 얼마나 길며 무제한으로 확장될 수 있는가.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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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결정을 해야 할 내일은 내가 바라는 형태로 오지 않았다. - P139

그들 뒤에서 이상하고 소리 없는 한여름의 벼락이 내리쳤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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