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인생이 아름답다는 생각,

이승의 삶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

비극과 희극에 공히 내려진다는 신의 축복 같은

벅찬 상념에 휩싸여 핑그르르 도는 눈물을

간신히 억제해가며 서서히 교회 마당을 빠져나왔다.

같은 교회 다녔던 집사의 딸들이 맞고 사는 엄마를 위해 밤중에 잠옷 바람으로 뛰어와 도움을 청했던 때가 장성한 모습에 겹쳐 보였던 저자. 안타까웠던 자매가 잘 자라준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인의 인문학>에서 "사람이 그 생애를 다 끝낼 때까지는 아무도 그를 행복한 사람이라 말할 수 없다"라고 한 솔론의 말이 떠올랐다. 아직 인생을 다 산 게 아니니.. 나중에 삶을 돌아보며 행복했다 말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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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이란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자비나
허용이 아닌 ‘자이에 대한 존중‘이다.

아직 초입부를 읽고 있어 그런지, 작가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아 그런건지 작가의 글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끄덕끄덕 고개가 끄덕여지는 문장도 많이 만나게 된다. 
위 문장으로 ‘관용‘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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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다면 나의 생활은 훨씬 간소해졌을 것이다.

먹고 입고 사는 것이 생활일진대

그것이 복잡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우리의 생활이 소꿉놀이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들 때가 참 많다. 음식을 차리고, 먹고, 치우고.. 반복. 때론 정말 이런 과정 없이 살 수는 없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최근엔 남자들도 집안일을 제법 돕고 있지만 여전히 여자들이 할 일이 너무 많다. 바깥일 하랴, 집안일하랴..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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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가 휘파람 불 때까지

소금에 곰팡이 슬 때까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애둘러 말하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재미는 한순간 우리를 즐겁게 하고, 기분을 상쾌하게 하고, 피로를 잊게 한다. 문학에서 이런 둘러말하기를 '은유', '비유', '간접화'라 부르기도 한다.

말을 거침없이 하는데 밉지 않게, 거기다 웃기기까지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의 입담이 참 부럽다. 무슨 연습을 해야 웃기게 말 잘 할 수 있는걸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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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와 설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가끔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을 내 뜻에 맞출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통하는 사람들과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직장 상사가 대화와 설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정말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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