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들 페이지터너스
에마뉘엘 보브 지음, 최정은 옮김 / 빛소굴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에 사뮈엘 베게트와 페터 한트케가 왜 찬사를 보냈는지 알 것 같다. 독자는 독백을 하듯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하는 화자의 뒤를 좇아 파리 곳곳을 부유한다. 






 
그의 이름은 빅토르 바통. PTSD를 앓고 있으며 몽루주의 오래된 낡은 아파트의 옥탑방에 살고 있다. 그는 전쟁에서 큰 부상을 입은 후 전쟁 공로 훈장까지 받았고, 현재는 상이군인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전쟁 영웅이지만, 전쟁이 끝난 후 그의 현실은 처량하기만 하다. 하지만 비록 낡고 볼품 없는 양복을 입고 있음에도 카페테리아 손님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한껏 멋을 내고 화려한 사교계를 누비며 여배우 애인과 데이트를 즐기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빅토르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이웃들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고, 골목에 줄지어 있는 상점과 주인들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꿰고 있으며, 파리의 부둣가와 리옹역이라면 손바닥 보듯 전부 알고 있다. 또한 그곳을 왕래하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표정을 흥미진진해하며 관찰한다.  


빅토르는 전쟁 미망인인 뤼시와의 하룻밤 잠자리에 마치 그녀가 애인이라도 된 듯 사랑을 말하고, 거리에서 우연찮게 대화 한마디를 나눈 비야르에게 우정을 기대하고, 사업가의 단순한 호의를 과대포장하며, 친구가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모르는 남자의 뒤를 따라가고, 생면부지의 남자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신경쓰는 사람이다.  


빅토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사랑과 관심이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며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빅토르의 희망은, 그 사람이 원하는 바를 전부 들어주는 것뿐이다(그 반대가 아니고). 웃음, 기쁨, 눈물, 슬픔, 그 모든 것들을 함께 나눌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손톱만큼의 우정과 사랑이라도 얻을 수만 있다면, 그것을 위해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을 것이라는 말에서 빅토르의 처절한 심정이 느껴진다. 


ㅡ 


그런데 빅토르가 원한 건 정말 관심과 사랑뿐이었을까?
순수하게 빅토르의 말을 믿어주기에 뭔가 불편한 구석들이 있다. 빅토르는 대화보다는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원한다. 상대의 이야기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가 필요로하는 친구는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불행하고 가난하고 착한 사람. 빅토르는 부자가 되어 관심을 한몸에 받는 사람이기를 꿈꾸지만, 애초에 그는 자신이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할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래서 함께 불행해질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으로 보여진다. 불행에 익숙해져 행복은 자기의 몫이 아닌 그저 동경의 대상이라고 치부한다. 그래서 행복에 겨운 인간의 방을 함부로 방문할 용기조차 없다. 


또한 살면서 가져보지 못한 권력에 대한 로망도 크다. 50프랑을 빌려달라는 비야르의 부탁에 빅토르는 비로소 그와의 사이에 있는 벽이 허물어졌다고 생각하면서 흔쾌히 돈을 빌려주겠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돈을 주기 전까지 비야르의 애를 태우는 것을 즐긴다. 이와 비슷한 모습은 느뇌를 비롯해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나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빅토르가 간절하게 원했던 것이 진심을 나누는 친구가 맞는지 의심이 든다. 어쩌면 그는 상황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싶었던 건 아닐까? 모르는 남자의 자살을 만류하기 위해 그에게 돈 10프랑을 건네고 저녁밥까지 사먹이는 행동도 인간애적인 측면보다는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빅토르는 몇 년 동안 살아왔던 옥탑방을 빼야할 처지에 놓인다. 그의 판단은 이렇다. 그가 사는 아파트는 주로 노동자들이 산다. 그들에게 노동은 신성하다. 그래서 이유야 어떻든 빅토르처럼 연금을 받으며 무위도식 하는 사람을 미워한다. 하지만 빅토르는 그들이 자신을 부러워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자유롭게 살기 위해 고기, 유흥, 고가의 옷을 단념한 그를 마주칠 때마다 자신들의 구속된 생활을 자각해야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유와 가난에 구애받지 않는 빅토르 자신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빅토르의 얼토당토 않은 이 말에, 나는 현재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본다.


소설 후반부에 흥미로운 부분이 두 군데에서 발견된다. 하나는 빅토르가 분노에 찬 라카즈 씨한테 모욕을 당하고 경고를 받은 뒤 오열을 터뜨린 후 자신이 억지로 계속해서 울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은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무명 가수인 블량셰와 밤을 보낸 후 새벽이 되자 두 사람의 흔적이 가득한 그 방을 빨리 떠나고 싶어하며 두 번 다시 그녀를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어쩌면 빅토르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비관적 상황으로 몰아넣고 그 고통을 통해 살아있음과 희열을 느끼는 건 아닐까. 늘 동경해왔던 관심 혹은 사랑이 이루어진다면 그는 이상이 사라질까봐 두려워한 건 아닐런지. 특히 자조하듯 말하는 마지막 문단은 역설적으로 읽힌다. 우리는, 적어도 얼마만큼씩은 약한 존재이지 않은가.  


아는 사람이 없으니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거리로 나갈 수 밖에 없었던 빅토르가 관심을 구걸하는 자신의 처지를 거지에 비유하는 대목에서는 그가 어떤 사람이든 동정할 수 밖에 없다(빅토르는 얼마나 타인의 동정을 바랐는가). 


ㅡ 


인간이 살아있는 한 절대 떨쳐낼 수 없는 고독, 자유와 구속, 삶의 이유와 존재 가치 등을 망상증 환자에 가까운 한 남자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소설은 1924년에 발간됐다. 어쩌면 빅토르의 모습은 전쟁에서 승리했다고는하나 큰 피해와 정치 상황을 봤을 때 전후 직후 상실감을 안고 살아갔을 모든 젊은이들의 초상이 아닐까.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간절하게 친구를 찾는 빅토르의 모습은 희망과 미래를 찾고자하는 (당시의) 젊은 세대들의 모습을 투영한 건 아닐지. 


다 읽고나니 책의 표지가 이해된다. 
친구보다는 동료라는 단어가 더 익숙해지고 거울 속에 보이는 자신만이 친구가 되어버린 표지 속 남자의 모습에서 나는 밖을 바라보고 일렬로 늘어서 있는 편의점 의자가 떠올랐다. 언제부터 우리는 외로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걸까.  




※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염병 일지 열린책들 세계문학 285
다니엘 디포 지음, 서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카뮈의 <페스트>와는 다르게 다가올 소설은 디포의 작품 중 가장 낯선 소설이라 출간이 반갑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2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2
토머스 도드먼 외 엮음, 이정은 옮김, 브뤼노 카반 기획 / 열린책들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57명의 공저가 빛을 발할 150년의 전쟁 역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1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1
토머스 도드먼 외 엮음, 이정은 옮김, 브뤼노 카반 기획 / 열린책들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먼 얘기 같았던 전쟁이 가까운 한 나라의 침략전쟁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가까워졌다. 150년간의 전쟁사를 읽을 준비를 이제야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주하는 인류 - 인구의 대이동과 그들이 써내려간 역동의 세계사
샘 밀러 지음, 최정숙 옮김 / 미래의창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주의 역사를 다루는 이 책은 선사시대 네안데르탈인을 시작으로 바빌론과 성경, 서유럽과 지중해, 로마 제국, 바이킹, 중앙아시아, 아메리카 대륙, 동(남)아시아, 유대인(시온주의), 유럽 난민 및 민족 분리, 국외 거주자 또는 이주노동자로 이어지는 인류의 대이동을 다룬다.  






이주는 아주 중요한 문제로서 국가, 국경, 여권, 이민 쿼터, 장벽, 비자 등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인간이 누구인가를 말해주는 깊고 근원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오늘날 이민은 첨예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다. 이 주제를 다른 사람들, 특히 우리와 다른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현재 우리는 고정된 국적과 주거지를 갖고 있는 것이 당연하게, 혹은 인간의 한 조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지만 인류는 지난 역사에서 아주 많이 이주를 반복해왔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주를 인류 역사의 중심으로 복귀시키고 이주민들에 대한 현대적 논의를 재설정할 수 있게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동시에 인류 역사의 중요한 시기들을 정착 사회, 이주, 민족 이동, 유동적 사회의 프리즘을 통해 관찰한다.  


ㅡ  


이주는 선사시대부터 시작되었다. 대부분 현대인들의 DNA 중 1~4퍼센트는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온 것이다. 서로 완전히 다르다고 여겨지는 민족들이 사실은 사피엔스뿐 아니라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도 공유하고 있는 혈연관계인 것이다. 유일한 예외로 네안데르탈 유전자를 갖지 않은 민족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같은 혈통을 계속 이어 온 종의 후손들로, 이들은 인류가 별도 종으로 등장한 아프리카 대륙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네안데르탈인, 사피엔스, 그리고 선사시대의 알려지지 않은 기타 아종을 포함한 전 인류의 출발점은 아프리카였고, 선사시대 인류의 이동은 엄청났다.  


인류는 왜 이토록 엄청난 이주를 했을까? 기후 변화, 자원 부족, 영토 분쟁 등 여러 지역적 이유들이 결합되어 있을 테지만, 그런 이유만을 적용하기에는 육지 포유류 중 쥐를 제외하면 다른 어떤 동물도 그렇게 온 지구를 돌아다니지 않는다. 저자는 사람들에게는 본능적이거나 유전적으로 이동 욕구가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더불어 우리는 어느 민족의 순수 혈통을 잃는 것 아닌 그 민족의 문화를 잃는 것에 대해 슬퍼해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이 기억에 남는다.  


기원전 5세기에 쓰여진 문헌들을 보면 아테네에서의 외국인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현대 사회에서 난민이나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특정 장소에 속해 있는 고대 세계를 지어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결국 유목민의 후손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 모두의 단 하나뿐인 진정한 본향은 아프리카 대륙이다.  



20세기부터 심화되기 시작한 이주 노동자에 대한 편견은 세계대전을 거친 후 점차 커져 현재에 이른다. 영국과 프랑스 등 서유럽이 1950년대 이전에는 백인 일색이었고 단일 문화였다는 주장을 아무렇지 않게 펼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정착주의, 인종적 순수성, 민족국가라는 세 가지를 미화시키면서 1950년대 이전의 유럽 역사가 개작되었고 유색인종을 위한 역사는 거의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며 수십 년이 지난 이제서야 점차 복원되고 있다.  


이주에 관련된 언어들은 국가와 국경 개념, 인종과 인종차별주의와 연관 되고, 이주민이 떠나온 나라 혹은 처한 상황에 따라 그들에 대한 태도나 관점이 달라지고, 태도에도 전혀 일관성이 없다. 거주민들과의 동화와 그들만의 문화유산을 지키는 것을 동시에 주문한다. 또한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떠나온 국적과 인종뿐임에도 찬사 혹은 경멸의 대상이 된다. 


이민은 정치, 경제에 적극적이면서 제멋대로 이용된다. 이민은 여러 국가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갈지도 모를 일이다. 역삼각형으로 바뀌어가는 인구 분포, 인구 노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 전쟁(내전) 및 기후 난민 발생 등 이주는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정주주의를 추구함으로써 과거와의 연속성, 이주의 정상성과 상호 연결성에 대한 인식을 잃어버리게 됐다고 지적하는데, 이 잃어버린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 이주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짚는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인류는 이주를 반복해왔다.길가메시의 신화에서 보여지듯 이주는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삶의 선택이었다. 이주의 역사를 되짚음으로써 인종, 성별, 민족, 종교 등 현재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폭력적 갈등과 혼란에 대한 왜곡된 사실을 찾아낼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때까지 잘 알려지고 지배적인 방식에서의 이주가 아닌, 이주가 정상적인 활동이며 인간 조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프리즘을 제공하고자 한다.  


정체성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저자의 말처럼 단 하나의 정체성을 고집하는 것은 때로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이주민으로서의 역사와 공동 혈통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복수의 정체성을 인정하며 같은 인간 종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떠할지, 저자는 조심스럽게 전한다. 


이주는 매우 복잡한 개념으로 명확한 경계가 있는 단순한 정의에 맞춰지지 않는다. 거리, 기간, 목적 등에 따라 용어가 달라지고, 무엇보다 특정 개인이 이민자가 된 정확한 시점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과거의 역사에 의문을 표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찾고, 그것들에 대해 말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세심히 살펴야한다고 전한다. 기록물은 대체로 정주한 사람들이 정주한 사람들을 위해 저술했으며 과거에 대한 특정 관점을 제공했는데, 여기에서 대다수의 이주민들은 그러지 못했으니 그 공백에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이주의 역사를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인종주의를 시작으로 각 분야에 파생된 차별과 불평등, 그리고 혐오가 생성되는 과정까지 자연스럽게 서술하는데, 이 책의 재밌는 점은 각 장마다 끝에 따라오는 '저자 노트'에 있다. 저자는 자신과 딸의 침을 DNA 검사를 신청해 그에 대한 결과를 공유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의 계획과 서술 방향, 구성, 사료를 접할수록 생기는 딜레마, 글쓰기에 대한 그의 생각이나 의견 등을 독자가 읽을 수 있도록 했는데, 노트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선사시대부터 20세기까지의 역사를 '이주'라는 관점으로 들여다본 역사서로서 작가가 의도적으로 채우지 않은 현재의 '이주'에 대한 담론은 독자인 우리가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