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
페터 슈탐 지음, 임호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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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시간을 보내고 출판한 첫 책이 성공을 거둔 크리스토프는 고향 마을의 작은 서점에서 낭독회를 갖는다. 예정과 다르게 하룻밤 묵어가기로 하고,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늦은 밤에 호텔의 초인종을 눌러 야간도어맨을 불러낸다. 그런데 문을 열어주는 젊은 청년은 다름 아닌 크리스토프, 그 자신이었다. 





 
 


이 소설, 뭐라 한마디로 단정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소설은 크리스토프 관점에서 20년 전 연인 막달레나와 함께 했던 삶과 현재 크리스토프와 레나의 대화를 통해 같은 궤적의 삶을 살아가는 두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운명을 추적한다.  


감성적인 제목과는 다르게 시종일관 미스터리한 여정으로 독자는 그들을 좇아 진실이 무엇인지 추리한다. 20년의 간극을 두고 똑같은 삶의 과정을 밟아가는 크리스토프와 크리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 두 사람은 다른 선택을 한다. 레나와 크리스토프는 이것을 작은 오류 혹은 편차라고 말하지만, 먼 미래를 내다본다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차이였다. 자기확신과 혼란 사이에서 갈등하는 크리스토프. 크리스는 정말 크리스토프의 도플갱어일까, 아니면 크리스토프 상상의 산물일까? 


사실, 이 소설은 애틋한 사랑이야기이자 존재에 대한 텍스트다. 운명의 진실을 찾고자 레나와 대화하고, 과거를 회상하며, 20년 전을 되짚어 현재와의 차이를 추적하는 과정에 안에는 늘 막달레나가 있었다. 크리스토프가 알고 있는 막달레나와의 마지막, 하지만 현재 막달레나의 삶을 함께 하고 있는 사람. 이 기가막힌 반전에서 화자 크리스토프도, 그를 좇던 독자도 존재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기억의 오류인가, 아니면 그가 이때까지 사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일들은 그의 망상인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자신의 미래를 어느 누군가를 통해 엿본 적이 있었던가? 
소설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독자를 모순과 혼란의 구덩이에서 건져내지 않는다. 이러한 극적인 구성에도 정작 주인공 크리스토프는 담담하기만 하다. 마지막에 이르면 제목이 왜 '다정스러운 무관심'인지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 장章을 읽으면서 동시에 두 사람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나도 모르게 그들이 애잔해진다.


처음 읽은 작가였는데, 간결하지만 독자를 은근히 끌어들이는 문체다. 몇 작품 더 읽어봐야겠다.  




※ 출판사 지원도서



 

젊은 파토스에 휩싸여 나는 그녀와 글쓰기 중 하나를, 사랑과 자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제 비로소 나는 사랑과 자유는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가 다른 하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공존의 관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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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2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2
토머스 도드먼 외 엮음, 이정은 옮김, 브뤼노 카반 기획 / 열린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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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은 1권보다 좀더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면서 여러 나라에서 벌어졌던 각각의 전쟁(분쟁)이 인류에 미친 여파와 문제점, 참혹하고 비참한 폐해,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 및 재건과 애도에 집중한다. 








군인 관점에서의 전쟁 경험은 죽음, 시신 훼손 및 시신의 도구화, 관료적 효율성에 따른 전사자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비전투원의 시신, 점령지 국민에 대한 가혹 행위와 전시 강간, 전략 폭격이나 핵무기로 인한 대규모 희생자 등 민간인 피해, 증언과 전쟁을 소재로 하는 문학, 반복되는 제국주의 전쟁을 통한 식민화 폭력에 대한 모순적 담론을 서술한다.  


그리고 시민이 속수무책으로 감당해야 했던 일방적인 (성)폭력과 대학살, 전쟁 피해의 참혹함을 드러낸 예술 작품들과 다른 한편에서 독재정권과 제국주의 선전에 동참했던 문화예술가, 근대 전쟁의 무기가 된 굶주림과 강간과 성 노예화, 제노사이드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자행된 극단적이고 집단적인 (성)폭력과 공동체 분열 , (강제) 집단 이주와 대규모 난민 등에 대해 쓰고, 전쟁 이후 재향 및 상이 군인의 실태와 처우, 그들이 겪는 사회적 정체성과 혼란, 전쟁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에게 남겨진 정신적 후유증,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이 갖는 역사적 가치까지 아우른다.  


ㅡ 


​19세기부터 20세기 상반기 사이에 서구에서 전쟁 폭력이 가속화되고 늘어났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점점 더 많은 사회 주체가 전투 참여 여부에 관계없이 전쟁을 체험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기술의 발달이 영향을 미치기도 했고, 그 이상으로 전투를 넘어서 전쟁 자체가 변화했다. 


스테판 오두앵루조는 근대 전쟁의 고유한 특징이 무기를 들지 않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는 데에 있음을 짚는다. 분쟁이 국가 공동체의 생존 자체를 결정하는 쟁점으로 인식되어 적국의 모든 민간인은 전쟁의 정당한 표적이 되었다. 배고픔과 잔혹함의 경험, 장소와 시간의 경험은 모든 신체적·정신적 충격을 포함한다. 비인격화된 익명의 전쟁은 개인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충격적인 집단 경험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라파엘 브랑슈의 주장이다. 권력 획득의 시작이 언어 사용으로 시작되는데, 자신의 용어를 강요한다는 것은 자신의 해석을 강요하고 장기간에 걸쳐 어떤 정치적 질서를 정당화하면서 권력을 취하는 일이라고 썼다. 즉 전쟁을 어떻게 정의ㅡ지하트, 혁명, 독립전쟁, 군사 반란 등ㅡ하느냐에 따라 목적하는 바가 결정되며 집단을 묶는 데에도 용이할 것이다. 필자는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전쟁의 다양한 형태와 정치적 계획에 연결된 조직적인 무장 폭력들이 발생한 서로 다른 맥락을 간과하지 않고 서술한다. 1914~1918년에 벌어진 대규모 전쟁으로 적의 국내 전선을 공습하는 일이 사실상 합법화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부터 베트남 전쟁이 종결될 때까지 민간인을 표적으로 한 폭격은 모든 주요 분쟁의 공통적인 특징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확인시킨다.   


'총력전' 개념이 강화되면서 시민이 곧 군인이고, 입대에 따른 다양한 방식으로 인해 민간인과 병사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전쟁의 직접적인 경험은 더 이상 전장에 있는 군인에서 끝나지 않는다.   



몇 가지 씁슬한 점은, 헤더 존스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기아 봉쇄'를 정당화한 것에 대한 윤리적 문제가 제기됐던 점을 언급하는데, 전쟁 자체가 이미 비윤리적이고 반인륜적이며, 더하여 20세기 초에 지적한 윤리적 문제가 그 시점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시대에 따라 용어를 바꿔가며 변화했다는 것이 더 맞을 듯하지만)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 남북 전쟁에서 물리적으로 승리를 거둔 쪽은 북부 연방군이었지만 내전 발발의 계기가 된 갈등을 끝내지 못했고, 결국 국가적 상상력에서 승리한 것은 남부 연합군이라는 지적이다. 현재까지 그 갈등 해소가 여전히 이루어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차별과 선민의식이 잔존한다는 건 여전히 전쟁을 치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냉전의 종결로 평화가 아닌 저강도 전쟁 시대가 시작됐음을 말하는  레너드 스미스의 지적도 인상적이다. 소위 '테러와의 전쟁'. 필자는 국가가 비국가 무장집단이 사용하는 전술에 맞서 전쟁을 할 수 있겠냐며 독자를 향해 되묻는다. 이 대치 상태에서 평화롭게 지내는 방법이란 국가가 그 집단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거나 파괴하는 것, 둘 중 하나다. 그러나 둘 다 거의 불가능하다. 전자는 집단이 거부하고, 후자는 해결할 능력이 없음이 수차례 증명됐다. 따라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전지구적 전쟁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앙리 루소는 신체적·정신적 후유증 형태로 지속되는 전쟁 폭력, 실질적 보상 문제 , 독재 및 폭력적 정책의 종결, 애도의 경험 등을 언급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잔혹한 시기에 동참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어떻게 '문명화 과정'을 되찾을 수 있었는지를 묻는다. 그는 전쟁에서 벗어나는 것은 고향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열렬한 욕망을 뜻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답이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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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병이 아니야. 벌이야."  


소설이 나올때마다 따박따박 챙겨 읽는 최진영 작가의 신작이다. 아직 출간 전인데 출판사에서 가제본으로 삼분의 일 분량만 받아서 읽었다. 편애하는 작가다보니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라는 전제 하에 역시나... 좋아.  


두 그루의 나무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프롤로그부터 묵직함이 전해진다.  
공통분모를 찾아 '편'을 만들어 집단을 구성하고 태생적으로 분열을 일삼는 우리.
인간의 이중성과 모순, 자신을 제외한 세상을 경쟁자로 두어야하는 사회 구조.
느닷없는 죽음, 죄책감과 상실.
설명되지 않는, 꿈과 현실 사이의 모호한 세계.
망각과 증명할 수 없는 존재, 그리고 믿음.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건 사고에 있어서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인간 세상.
불편한 진실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금화의 실종, 임천자에 대한 장미수의 증오, 사고 이후 수년이 지나 수시로 알 수 없는 세계로 소환되는 목화, 차라리 금화이길 바랐다는 장미수의 알 수 없는 독백.  



신의 형벌인지, 특혜인지 종잡을 수 없는 그들의 능력 자체가 딜레마인 소설.



90.
둘어있다가 하나가 된 나무.
부활한 나무.
시간을 초월한 생명.
무한한 생에서 나뭇잎 한 장만큼의 시간을 떼어 죽어가는 인간을 되살리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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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6
잭 케루악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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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삶을 찾는 두 젊은이의 이야기다. 샐 파라다이스를 1인칭 화자로 두고 있는 소설은 십대 시절부터 이미 밑바닥 인생을 경험한 거칠고 광기어린 딘 모리아티와 그를 동경하는 샐이 거의 무일푼에 가까운 여비로 미 대륙을 종횡하는 한편의 로드무비같은 작품이다. 


책임감이나 신뢰, 이타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딘 모리아티의 인생의 목표는 오직 '재미'가 전부다. 인생에 있어 진지함과는 거리가 멀고 필요하면 취하고 소용이 없어지면 버린다. 이런 딘을 샐은 '성스러운 바보'라고 부른다. 그게 바로 딘이라면서. 


그들에게는 어디로 간다는 종착지만 정해져 있을 뿐, 목적은 없다. 주유소에서 몰래 주유하고, 담배를 훔치고, 돈을 갈취하고, 외도쯤이야 예사로우며,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고, 마약을 하고, 고작 40달러로 미국 일주를 하겠다는 그들. 그 와중에 샐이 사이사이 보았던 것은 산, 아름다운 해돋이, 이슬, 계곡의 풀밭, 강, 보랏빛 공기,  시시각각 변하는 황금빛 구름, 해질녘 노을이었다. 






 



모든 게 지긋지긋했다는 샐. 그는 하룻밤 같이 보내는 리타에게 인생에서 바라는 건 뭐냐고 묻는다. 그녀는 잘 모르겠다고, 그냥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살아가려고 애쓰는 거라고 대답한다. 샐은 인간이 삶을 이렇게 슬프게 만들 때 신은 도대체 뭘하고 있었던 걸까 생각했다. 누군가 딘과 샐에게 왜 대륙 횡단 여행을 하는 건지 물었다. 그런데 딘은 마땅한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샐 역시 언제 돌아갈 예정이라는 대답만 할 뿐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답하지 못했다. 스스로 명확한 이유를 몰랐으니까. 불현듯, 샐과 딘은 답을 찾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답을 찾기가 두려웠던 걸까.



샐이 딘에게 그토록 끌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이 규정해 놓은 '좋은 삶', '올바른 삶'이라는 시스템에 함몰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일까? 어쩌면 이러한 해석조차도 내가 만든 그럴듯한 포장일 수도 있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살고 싶었고,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샐은 길 위에서 달리며 생각한다. "내가 지금 월 하고 있는 거지? 어디로 가는 거야?"라고. 길 위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때때로 이와같은 생각을 하곤 하니까(나만 그런가?). 성별과 나이와 직업을 떠나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확신하고 사는 이가 얼마나 되겠나. 살아가며 차근차근 하나하나 해결할 밖에. 


길이 곧 삶이라고 여겼던 딘에게 있어 늙어서 부랑아가 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진짜 두려움은 자유를 잃은 속박된 삶일 것이다. 다른 이들이 붤 바라든 상관하지 않고 계속 자기만의 길을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딘이 진정 바라는 길이다.  


ㅡ 


무엇이 그들을 자꾸만 길 위에 서게 했을까?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위치, 사회 조직원으로서 가져야할 최소한의 의무, 연령에 맞춰 요구되는 규범 등 타의든 자의든 우리를 구속하는 것들은 수없이 많다. 누군들 한 번쯤은 예정없이 훌쩍 떠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법과 관습의 틀에서 벗어나 원하는대로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지 않을까. 그래서 아주 조금은 딘의 광기와 샐의 부유를 알 것 같기도 하고.  


지치지도 않고 도로에서 폭주하고 마리화나를 즐기고, 길 위에서 만나는 여성들과 정사를 벌이며, 동거와 이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광란의 시간을 보내는 그들에게서 사실 나는 젊음의 열정을 느끼지 못했다(내가 너무 마음을 닫고 읽으서 그럴수도 있지만). 마치 이 길이 아니면 숨을 쉬지 못하고 죽어버릴 것만 같아서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였다. 



여행을 좋아하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데에 거부감이 없지만 말 잘 듣는 착한 딸로 살아온 나로서는 어떤... 감정적 한계를 느끼면서 읽었다. 두 여자에게서 네 아이를 낳고도 결국엔 문을 박차고 나가는 딘이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커밀을 보면서 모험을 떠나겠다고 모아놓은 돈을 다 털어서 자동차를 산 뒤 자식조차 나 몰라라하고 나가버린 사람이 만약 여자였다면 이 소설이 과연 비트감 넘치는 청춘의 방황과 폭발적인 열정을 그린 소설로 평가 받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누군가는 그들(특히 딘)을 전쟁 직후의 혼란스러운 세태에 자유를 욕망하는 젊음의 초상이라는 말 대신 사회부적응자의 방종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마 딘은 이러한 비난도 가치 없는 일이라며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겠지.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쓰지 마."라고.  


이 소설의 매력은 딘과 샐이 길 위에서 스치듯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각자의 역사와 그들 삶의 풍경, 그리고 다채로운 도시의 모습이다. 두 사람의 여정에 구글 지도를 열어놓고 따라갔는데, 그 거리가 어마무시하다. 넉넉한 여비로 편안함을 추구하며 다녀도 힘든 여정이다. 그걸 무일푼으로 해내네... . 


모든 길은 이어지고 펼쳐져 있으며, 그 길 위를 걷는 모든 사람들이 꿈을 꾸기를, 샐은 바람한다. 하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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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1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1
토머스 도드먼 외 엮음, 이정은 옮김, 브뤼노 카반 기획 / 열린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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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주로 19세기 중반(간혹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약 200여년 동안 인류사를 변화시킨 전쟁의 역사를 통사가 아닌 미시사 측면에서 짚는다. 그 범위는 전투와 전략, 군인, 민간인, 여성과 아동, 난민, 심지어 환경까지 확대한다. 대신 브뤼노 카반은 전체 서문에서 18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전쟁을 스무 쪽에 걸쳐 연도순대로 간단하게 정리한다. 또한 어느 특정 지역이나 집단이 아닌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살펴본다. 이 책을 저술한 57명 필자들의 신념은, 전쟁은 총체적인 사회 현상이면서 문화적 행위라는 데 있다. 따라서 정치가, 군인, 민간인 들의 사회 및 문화적 역사, 전투인과 비전투인을 아우루는 분쟁에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기획자 브뤼노 카반은 이 책의 핵심은 전쟁을 치르고, 전쟁을 경험하고, 전쟁을 생각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제목에 나타났듯 군대, 국가, 산업, 경제와 금융,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던 제국주의의 신화, 무기 등 전쟁과 연관된 모든 것들에 대해 썼다. 어떤 한 개념이나 논제에 대해 옳다 그르다가 아닌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서로 상호 보완적으로 읽힌다. 예를 들어 <총력전>의 개념을 리처드 오버리는 '국가의 모든 영역과 국가 활동의 모든 국면이 전쟁의 목표에 헌신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데에서 그쳤다면, 카렌 하게만은 총력전의 특징을 들어 좀더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1부에서 거시적으로 전쟁과 관련한 것들을 분류해서 간략하게 짚어냈다면, 2부부터는 좀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내용을 서술한다. 일례로 1부에서 다뤘던 '군대'를 2부에서는 '군인'으로 더 구체화시킨다거나 '평화주의'는 2부의 불복자와 반역자로 이어진다. 서술자가 다른 만큼 접근하는 시각도 차이가 있다. 


1부에서는 프랑스에서부터 시작한 군대(징병제)의 변천사와 각국의 사례, 군대와 정치의 관계, 20세기 중반 이후 진화된 용병의 역할, '전쟁법'이 가리키는 그 이면의 진실, 전쟁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기술력의 전략적 사용 방법, 윤리적 논쟁이 무의미한 드론, 20세기에 들어서 달라진 전쟁 형태와 전쟁 중 국가의 역할, 전쟁에 따른 산업과 운송의 변화, 자본주의 폐해에 의한 전쟁의 악순환, 전쟁 자금 및 금융과 경제(특히 국채 문제), 사회적 성별과 참전 여성, 신념에 따른 평화의 다른 얼굴과 '평화주의', 게릴라와 혁명전쟁, 그리고 테러리즘에 대해 서술한다.  


2부에서는 병사의 진화 과정, 각 국가의 징병 제도, 근대 이후 군인의 직업화와 사회적 지위의 진화, 군대가 구축한 독자적인 정치 세력, 식민지 병사와 인종 정책, 자원병(자원 입대)의 역사, 사라진 여성 전투원의 기록, 민족 전쟁을 상징하는 유격대 파르티잔, 청소년 전투원의 역사 및 그들과 폭력의 관계까지 조목조목 짚어낸다.  


ㅡ 


흥미로웠던 점은 '죽일 수 있는 권한'이었다. 여기에 적용되는 것이 정당방위 개념이다. 양차 세계 대전 당시 참전한 모든 강대국이 정당방위라는 자기 합리화를 주장했다. 혁명전쟁이든 국가 해방 전쟁이든 최종 목적이 무력 사용을 정당화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뒤에 나오는 자원병과 묘하게 맥락이 이어지는데, 자원병 복무의 역사를 쓴다는 것은 신화에 버금하는 역사, 그리고 상대적으로 와해된 역사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에 대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소년병'이라는 명칭에 있어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부분을 지적한 점도 유의미했다. 글을 쓴 마농 피뇨는 강압적인 메커니즘을 과소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이 단서 역시 유럽중심주의 입장에 있어야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에 전쟁 욕망은 20세기 이전처럼 더 이상 정당화되지 않는다. 


포로 부분에 이르면 전쟁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그리고 여러 측면에서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알 수 있다. 1권 막마지에는 편지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편지를 읽는 잠시 정지된 순간을 '문명으로 귀환하는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전쟁이 무엇인지를 잘 나타내주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에르베 마쥐렐은 우리 대부분에게 전쟁은 더 이상 영광스럽지 않고, 예전처럼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멈추었다고 썼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를 생각해보면 그의 말에 동의하지만, 문득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에 대한 저변의 의식을 과거로 회기시키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시몬 베유의 '인간이 전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주장도 기억에 남는다. 



2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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