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타뉴의 노래·아이와 전쟁 책세상 세계문학 7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송기정 옮김 / 책세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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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자전적 이야기 두 편이 실려있다. 그의 유년 시절을 있는 그대로 담았기에 에세이 혹은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겠고, 서술 형식은 소설처럼 쓰여져 있어서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아이와 전쟁] 


1940년에 태어난 직후부터 5년간 전쟁을 겪은 아이였던 이가 전하는 이야기다.  


그가 기억하는 전쟁에 대한 첫 번째 기억은 '폭력(폭격)'이다. 그는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이 민간인을 향해 폭탄을 투여하는 영샹을 보면서 비오듯 쏟아지는 폭탄 아래에 있을 아이들을 생각한다. 


작가는 사람들이 보통 전쟁에 대해 언급할 때 대체로 희생, 승리, 용기, 지휘관의 능력, 전쟁을 통해 얻은 가치 등을 찬양하지만, 여자나 아이들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음을 짚는다. 그들에 대해 말할 때는 인명 피해 혹은 민간인 학살 등의 참화를 이야기할 때뿐이다. 최근들어 군사작전에서 발생하는 무고한 민간 피해를 의미하는 '부수적 피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쓰면서 여성과 아이들은 피해자라기보다는 부수적인 요소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문득 든 생각,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해결되지 않은 여타 많은 사건 사고와 과거사들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피해자'라기 보다 '부수적 요소'로 인지되어서일까(생각해보면 피해자가 거의 다 여성과 미성년자다)?  


작가가 어린 시절 전쟁 중에 경험한 허기. 이는 해결이 가능한 배고픔이 아닌 채울 수도, 충족시킬 수도 없는 공허함에서 오는 허기다. 그런데 오늘날 과잉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그 공허라는 허기가 해결됐을까. 전쟁과 결핍의 시대에 몰아닥쳤던 공허감이 지금까지 이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건지... . 


유년 시절에 겪은 전쟁의 폭력적인 경험을 통해 전쟁으로 인해 생긴 상처는 쉽게 아물지 못한다는 것을 사실적이고 절박하게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현재 벌어지고 있는 세계 곳곳의 전쟁 피해 아동 역시 이 공허와 단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말하고 있다. 


작가는 전쟁 중에 태어난 아이는 결코 아이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어른의 시간으로 살아가고 있을 수많은 아이들을 생각한다. 그 아이들은 얼마나 긴 시간 동안을 공허와 허기와 상실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갈 것이며, 그것들을 지우는 데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할까. 



ㅡ 
 


[브르타뉴의 노래] 


작가는 유년기를 보냈던 브르타뉴 지방의 작은 마을 생트마린을 추억하고, 독자는 화자의 안내에 따라 그의 경험을 공유한다. 하지만 이 글은 단순한 회고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추억담에 그치지 않는다. 그 이면에 있는 생트마린의 변화를 반추하며 현대인들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오래 전 마술과도 같았던 힘과 용기, 연민과 유대감, 그로인해 때때로 찾아오는 환희의 순간이 지금을 사는 우리들의 삶에 스며들어 살아나기를 바람한다.  


브르타뉴는 두 개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통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져 사람들에게 잊힌 브르타뉴, 향락과 쾌락이 들끓는 현대적 브르타뉴. 그리고 몇 년 후 건설된, 그 둘을 잇는 코르누아유 다리. 이후 생트마린의 모습은 차츰 변화한다. 아마존처럼 거대하고 야생적이었던 강은 사람들의 뱃놀이와 주차장 시설 때문에 리아스식 해안으로 변했고 상업시설이 들어서면서 완전히 도시적인 분위기가 되었다.  


작가는 프랑스 내에서 브르타뉴의 지리적 위치와 민족성, 그리고 역사에 대해 문학적으로 이야기한다. ​
언어의 소멸과 문화적 동화. 이제는 사라진 브르타뉴의 말言. 르 클레지오는 그들에게(아니면 스스로에게) 왜 저항하지 않았을까, 묻는다. 국가 통일을 기조로 국가적 교육 강령으로 브르타뉴어 사용을 금지하자, 브르타뉴 사람들은 자신들의 말이 사라지는 것을 (대부분) 수용했다. 그 언어를 사용하면 지긋지긋한 가난과 무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복장과 헤어, 생활 양식, 축제 및 문화 등 정체성을 드러내는 모든 표시들이 사라져갔다. 브르타뉴 지방에서 다수자였던 그들은 스스로를 문화적 소수 집단으로 전락시켰다. 



그는 과거 브르타뉴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기억해 서술하며 독립적인 시대, 그리고 용기와 기개가 있던 시절이 사라져가고 모든 것이 획일화 되어 삶의 생기를 잃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고향을 떠나 공장 노동자가 되기 위해 도시로 떠나는 젊은이들. 더 이상 가업을 잇는 이도, 고향을 지키고자하는 이도 없는 생트마린. 살충제에 의한 생태계 파괴, 전쟁의 상흔, 상실된 연민과 인간성, 오래된 것과 낡은 것에 깃든 시대정신과 유산의 가치를 폄하하며 물리적 효용성과 손익비용에만 기준을 두는 세태, 나약함과 무력함으로 치부되는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향수. 



작가는 브르타뉴의 역사와 현재를 통해 극단주의 정당들의 포퓰리즘과 이민자 혐오 등을 꼬집으며 브르타뉴 지역의 자치권을 언급하면서, 이는 민족주의가 아닌 자유를 의미함을 분명히 한다. 그러면서 점차 복구되는 땅, 자연, 문화, 정체성에서 희망을 본다. 그의 희망이 브르타뉴에 한정된 것은 아닐테다.  


한때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마음의 장소가 사라져가고 변해가는 것을 보며 마치 보물을 도둑맞은 느낌처럼 마음이 흔들렸다는 작가의 말이 깊게 공감된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가슴 속에 간직할 유년 시절의 아름다운 사진 한 장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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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일기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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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내 개인을 넘어 집단의 일상을 통해 시대상을 짚어낸 작가의 예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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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의 삶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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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에서 자신을 비롯한 인간 개개인의 삶을 탐구했던 작가가 사회 예리하게 탐구한 책이라고 한다. 그가 보고 밝힌 사회는 어떻게 그려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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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세계문학 첫 문장 111
열린책들 편집부 지음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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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 첫문장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것만으로도 소장 가치는 충족한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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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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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1918년 아일랜드 독립전쟁과 내전을 배경으로 시작하면서 가슴 아픈 역사를 통해 두 가문의 운명적인 인연과 한 집안의 비극사를 그리고 있다.  


1919년, 아름다운 페르모이의 킬네이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냈던 어린 소년 윌리 퀸턴은  블랙 앤드 탠즈 군인들의 광기어린 무장폭력과 학살로 인해 아버지와 두 여동생을 잃고, 어머니와 단 둘이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때마침 휴가 중이었던 두 고모들은 무사했으나 어머니는 그때부터 정신이 온전치 못한 채 살아간다. 우울한 유년 시절 끝에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이모와 사촌 메리앤. 메리앤은 그에게 킬네이 시절의 행복감을 상기시켜주는데, 이 만남은 또다른 비극의 시발점이 되고 만다.  








윌리, 메리앤, 이멜다 각각의 관점에서 시간의 순서대로 서술한다. 
18세기 후반, 아일랜드의 퀸턴가家 남자와 결혼한 영국 여성 애니 우드컴으로부터 서사가 시작된다. 1916년 아일랜드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나 여전히 진행 중인 혁명에 대한 논쟁들은 남지만, 격동의 시기에 피를 흘리며 살아간 사람들은 서서히 잊혀진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대립, 가톨릭교도와 신교도의 대립, 약자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여성의 위치 등 작가는 역사적 사실과 세 등장인물의 개인적 삶을 엮어 시대의 역사와 개인이 별개일 수 없음을 전하면서 동시에 고통스럽고 가혹한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는 이들이 건네는 용기가 독자의 가슴을 묵직하게 울린다.  


선의가 잔인하고 무자비한 칼이 되어 돌아와 한 가정을 파괴하고, 예측이 가능한 평안한 미래를 냉기 서린 잔혹한 운명으로 바꾸어 놓았다. 과거의 킬네이로 돌아가고자 무던히도 애썼던 노력은 허망한 물거품처럼 무의미해졌다. 온 몸, 온 마음을 다한 사랑조차 운명을 바꾸지 못했다. 그러나 그 사랑으로 견디고 버텨진 하루하루 역시 삶이 되고 역사가 된다. 


혹독하게 추운 2월의 겨울날에 임신한 몸으로 아무도 없이, 불편한 존재가 되어 페르모이에 내던져진 메리앤의 감정은 상상만으로도 막막하고 아득하다. 사라지고 싶어도 사라질 곳이 없고, 에비와 같은 용기조차 낼 수 없으니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겠나.   


불쾌할 정도로 한편이 되어 메리앤에게 영국으로 돌아가기를 압박하는 페르모이의 사람들의 권유가 무엇이었는지 책을 덮고 난 후, 내 나름으로 짐작해본다. 보호. 혼란의 시기에 윌리를, 나아가 윌리가 사랑한 여인을, 그리고 두 사람의 사랑을 지켜주고 싶었던 그들의 한결같은 마음. 조국을 지켜내려했던 아일랜드인들의 마음도 이와 같은 건 아니었을까. 



진실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과연 상처가 될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우리에게, 혹은 나에게 있는지 자문한다. 한평생 짐이 될지도 모르는 그 진실이 가져다줄 파장과 모순을 납득하고 이해할 용기. 윌리와 메리앤의 선택은 불가항력이었나 무모한 치기였나. 


메리앤에게서 <펠리시아의 여정>의 펠리시아가, 윌리에게서 <루시 골트 이야기>의 루시가 떠올려 진 이 소설은 내가 읽은 윌리엄 트레버의 모든 작품 중에 가장 비극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십 년의 긴 세월을 통과하고 얼굴을 마주한 그들은 아마, 나와는 다른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사족 
기브바첼러가 눈앞에 있었다면 주먹이 먼저 나갔을 것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

내 존재의 모든 세부, 내 몸의 모든 혈관, 모든 흔적, 내 모든 친밀한 부분이 눈을 감고 쓰러지고 싶게 만든 그 부드러움으로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 킬네이에서 난 당신을 기다릴 거예요. 당신이 이 세계를 떠도는 동안 난 어떤 가혹한 운명에도 살아남을 겁니다. 외로움이 당신을 사로잡았다는 걸 난 이해합니다. - P264

난도질당한 삶들, 그림자의 피조물들,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운명의 꼭두각시들. 우리는 유령이 되었다.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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