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1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1
토머스 도드먼 외 엮음, 이정은 옮김, 브뤼노 카반 기획 / 열린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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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주로 19세기 중반(간혹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약 200여년 동안 인류사를 변화시킨 전쟁의 역사를 통사가 아닌 미시사 측면에서 짚는다. 그 범위는 전투와 전략, 군인, 민간인, 여성과 아동, 난민, 심지어 환경까지 확대한다. 대신 브뤼노 카반은 전체 서문에서 18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전쟁을 스무 쪽에 걸쳐 연도순대로 간단하게 정리한다. 또한 어느 특정 지역이나 집단이 아닌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살펴본다. 이 책을 저술한 57명 필자들의 신념은, 전쟁은 총체적인 사회 현상이면서 문화적 행위라는 데 있다. 따라서 정치가, 군인, 민간인 들의 사회 및 문화적 역사, 전투인과 비전투인을 아우루는 분쟁에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기획자 브뤼노 카반은 이 책의 핵심은 전쟁을 치르고, 전쟁을 경험하고, 전쟁을 생각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제목에 나타났듯 군대, 국가, 산업, 경제와 금융,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던 제국주의의 신화, 무기 등 전쟁과 연관된 모든 것들에 대해 썼다. 어떤 한 개념이나 논제에 대해 옳다 그르다가 아닌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서로 상호 보완적으로 읽힌다. 예를 들어 <총력전>의 개념을 리처드 오버리는 '국가의 모든 영역과 국가 활동의 모든 국면이 전쟁의 목표에 헌신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데에서 그쳤다면, 카렌 하게만은 총력전의 특징을 들어 좀더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1부에서 거시적으로 전쟁과 관련한 것들을 분류해서 간략하게 짚어냈다면, 2부부터는 좀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내용을 서술한다. 일례로 1부에서 다뤘던 '군대'를 2부에서는 '군인'으로 더 구체화시킨다거나 '평화주의'는 2부의 불복자와 반역자로 이어진다. 서술자가 다른 만큼 접근하는 시각도 차이가 있다. 


1부에서는 프랑스에서부터 시작한 군대(징병제)의 변천사와 각국의 사례, 군대와 정치의 관계, 20세기 중반 이후 진화된 용병의 역할, '전쟁법'이 가리키는 그 이면의 진실, 전쟁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기술력의 전략적 사용 방법, 윤리적 논쟁이 무의미한 드론, 20세기에 들어서 달라진 전쟁 형태와 전쟁 중 국가의 역할, 전쟁에 따른 산업과 운송의 변화, 자본주의 폐해에 의한 전쟁의 악순환, 전쟁 자금 및 금융과 경제(특히 국채 문제), 사회적 성별과 참전 여성, 신념에 따른 평화의 다른 얼굴과 '평화주의', 게릴라와 혁명전쟁, 그리고 테러리즘에 대해 서술한다.  


2부에서는 병사의 진화 과정, 각 국가의 징병 제도, 근대 이후 군인의 직업화와 사회적 지위의 진화, 군대가 구축한 독자적인 정치 세력, 식민지 병사와 인종 정책, 자원병(자원 입대)의 역사, 사라진 여성 전투원의 기록, 민족 전쟁을 상징하는 유격대 파르티잔, 청소년 전투원의 역사 및 그들과 폭력의 관계까지 조목조목 짚어낸다.  


ㅡ 


흥미로웠던 점은 '죽일 수 있는 권한'이었다. 여기에 적용되는 것이 정당방위 개념이다. 양차 세계 대전 당시 참전한 모든 강대국이 정당방위라는 자기 합리화를 주장했다. 혁명전쟁이든 국가 해방 전쟁이든 최종 목적이 무력 사용을 정당화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뒤에 나오는 자원병과 묘하게 맥락이 이어지는데, 자원병 복무의 역사를 쓴다는 것은 신화에 버금하는 역사, 그리고 상대적으로 와해된 역사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에 대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소년병'이라는 명칭에 있어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부분을 지적한 점도 유의미했다. 글을 쓴 마농 피뇨는 강압적인 메커니즘을 과소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이 단서 역시 유럽중심주의 입장에 있어야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에 전쟁 욕망은 20세기 이전처럼 더 이상 정당화되지 않는다. 


포로 부분에 이르면 전쟁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그리고 여러 측면에서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알 수 있다. 1권 막마지에는 편지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편지를 읽는 잠시 정지된 순간을 '문명으로 귀환하는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전쟁이 무엇인지를 잘 나타내주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에르베 마쥐렐은 우리 대부분에게 전쟁은 더 이상 영광스럽지 않고, 예전처럼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멈추었다고 썼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를 생각해보면 그의 말에 동의하지만, 문득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에 대한 저변의 의식을 과거로 회기시키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시몬 베유의 '인간이 전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주장도 기억에 남는다. 



2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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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유혹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3
엘리자베스 폰 아르님 지음, 이리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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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우리가 딱 한 번 우리끼리 멀리 가서 좀 쉬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건가요? 



지중해 연안의 중세 이탈리아식 작은 성에서 4월 한 달을 보낼 기회를 준다는 <타임스>에 실린 광고를 보게 된 로티 윌킨스 부인은 <타임스>를 유심히 보고 있는 다른 여성 로즈 아버스넛 부인 역시 그 광고를 읽고 있다고 직감한다. 두 여성은 산 살바토레에 가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지만 결정적으로 비용이 부족하다. 그들은 추가로 두 명의 멤버를 모집하고, 번거로운 여러 결정들을 빠르게 해결한 뒤 각자 이탈리아로 향한다. 마침내 산 살바토레에서 만난 네 명의 여성 로티, 로즈, 피셔 부인, 캐럴라인. 그들의 좌충우돌 한 달 살이가 시작된다. 마법과 사랑의 섬 산 살바토레에서. 








이 소설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박완서 선생의 소설로 시작해서 셰익스피어의 희극으로 끝나는 유쾌한 소동극' 이라고 하겠다. 산 살바토레로 향하게 된 이유가 제각각이듯 인물의 캐릭터 역시 뚜렷하게 구별되는 이 소설은 도입부에서 1920년대 여성들이 가부장제 사회의 관례에 따른 여성의 미덕에 갇혔던 모습들을 보여주다가 중반 이후 내용상 분위기가 급변한다.  


변호사로서 사회적으로 평판이 높고 오로지 성공만 좇는 남편에게 있어서 가정 내 자신의 존재가 오로지 '행복한 가정'의 전시용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로티는 외롭고 어디에 갇혀있는 것처럼 답답하다. 도덕이 행복의 기준인 로즈 아버스넛은 남편이 외설적인 회고록으로 돈벌이를 하는 것을 그만두기를 바라지만 이 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결국 남편과의 사이가 벌어져 서로 외면하는 처지에 이른다. 그럼에도 로즈는 늘 남편의 관심과 사랑이 그립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부유한 귀족 집안의 딸로서 어릴 때부터 뭇사람들에게 칭송을 습관적으로 받아온 캐럴라인은 소위 과잉보호 속에서 성장했다. 정해진 길 외에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없다는 낙담, 주변에 넘치는 허위와 가식에서 벗어나고픈 일념으로 산 살바토레에 왔다. 그야말로 '꼰대'의 전형을 보여주는 피셔 부인은 혼자 조용히 고독을 누리기 위해 산 살바토레에 왔지만, 사실 그녀는 많이 외롭다.  



1922년에 첫 출간한 이 소설은 지금의 독자가 읽기에 여러 작품이 연상될 만큼 잔잔하면서도 다양한 매력이 넘친다. 이탈리아어를 모르는 로즈와 로티가 마중나온 이탈리아 청년에게 겁을 집어먹거나 혹은 혼자 있고 싶어서 모르는 사람들과 이탈리아까지 왔는데 일하는 이탈리아인들이 잠시도 쉬지않고 번갈아가며 왔다갔다 하면서 끊임없이 조잘거리며 말을 걸어오는 통에 짜증이 치미는 캐럴라인, 자신의 권위가 전혀 통하지 않는 세 여자에게 혼자 분해서 동동거리는 피셔 부인, 멜러시의 목욕탕 폭발 사건, 멜러시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그의 속내도 모른 채 산 살바토레의 마법이 남편에게도 통했다고 믿는 로티의 미소, 로즈에게 호감을 보이다가 캐럴라인을 본 순간 한눈에 반해 정신 못차리는 토마스 등 동상이몽인 것만같은 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연이어 그려져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에서는 몇 가지 변화의 계기가 되는 우연, 가벼운 장난, 농담 등의 장치나 등장인물의 감정이 급변하는 모습은 마치 요정이 쏜 사랑의 작대기가 꽂힌 것처럼 의아할 정도인데, 이는 로티의 말대로 산 살바토레 자체가 마법을 부린다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소설은 시작과는 다르게 로맨틱 코미디의 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어서 독자들에게는 유쾌한 시간을 선사한다.


나이와 살아온 환경이 다르며, 무엇보다 네 여성은 필요에 의해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다. 상대에 대한 선입견을 갖은 채 각자의 목적만 이루면 그뿐이라고 생각했기에 굳이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할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여기저기에서 삐걱거린다. 그때 이들의 심리적 구심점 역할을 하는 인물이 로티다. 천성적으로 쾌활하고 밝은 그녀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력이 뛰어나고 특히 통찰력이 예사롭지 않다(사실 산 살바토레에 도착한 후 가장 반전이 큰 캐릭터이다). 캐럴라인은 로티를 가리켜 '자유롭지만 친밀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데,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ㅡ 


9월 독서모임 선정도서였는데, 멤버들의 평도 아주 좋았다. 특히 읽는 동안 소설 속 그들과 너무 행복했다고.  


우선 등장인물 톺아보기를 통해 보여지는 것 너머 그들 네 여성을 비롯한 당시 여성들의 삶과 고민에 대해 얘기하고, 각자 자신이 어떤 인물에 가까운지를 말했는데 가장 많은 사람은 아무래도 로즈와 로티였다(아무도 자기가 피셔 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는!).  


소설 이후 산 살바토레에서 돌아와 마법이 끝난 일상에서의 그들이 이전과는 다른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지, 아니면 이 한 달 동안 마법의 힘이 적게나마 영향을 미쳤을지에 대해 나누면서 환경의 변화 혹은 여행을 통해 변화된 일상이 있었는지의 경험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달이라는 시간, 산 살바토레라는 장소. 
우리에게도 그런 마법이 주어지기를 기대하며 독서모임을 마쳤다.



인생에 있어서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에는 사랑만한 게 없다. 캐럴라인은 허위의 사랑에서 벗어나려고 산 살바토레로 왔는데 그곳에 있는 모두가 각자 다른 사랑의 단계를 거치고 있었다. 아마도 현실의 우리 역시, 색채와 형태가 다른 각자만의 사랑의 단계를 거치는 중일지도.  







※ 출판서 독서모임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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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일지 열린책들 세계문학 285
다니엘 디포 지음, 서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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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1664년 9월부터 약 1년여의 전염병 기간 동안에 벌어졌던 일들에 대한 기록이다. 이 기록은 전염병 사태를 두고 어떠한 대안이나 개인적인 생각을 서술하지 않고, 심지어 화자 자신의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기껏해야 한두 줄로 슬프다, 끔찍하다 정도). 개인적 묵상이나 소신은 다른 이에게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며 대부분 공개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드러난 상황과 화자가 경험하고 본 것들을 사실 그대로 적어나갈 뿐이다. 전염병에 의한 사명자 수 집계, 페스트 창궐에 따른 사회 현상, 정부 및 공공 기관의 대처, 의료진의 노고와 헌신, 새로운 법령 제정, 정부의 법률 시행에 따른 시민들의 반응, 시스템의 오류와 부작용, 전염병 시기의 산업 실태, 대규모 실업난, 생계 절벽, 전염병 기간 동안의 일상 생활 풍경 등을 여러 사례와 더불어 표와 목록으로 나타내 서술한다.  







작가는 화자의 입장이 되어 유성같은 천체 현상이 전염병, 화재, 전쟁 등의 전조나 예언으로 보았고 미신과 그에 따른 터무니없는 망상이 사람들을 더 공포로 몰아넣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한편, 앞서 자신의 피난 여부를 두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신에게 의탁하는 것이나 비아냥대는 남자에게 페스트가 하느님의 벌이자 신의 섭리라고 말하는 모습, 그리고 끊임없이 신의 자비와 신을 향한 섬김을 확신하는 태도는 과학적 접근에서 벗어난 그의 한계를 나타낸다(아니면 17세기라는 시대의 한계일 수도 있을테고).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신에게 기대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인류애이자 사랑이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가혹한 시대에 신조차 없다면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나. 무엇보다 당시로서는 새로운 약이나 치료법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전염병의 종식 자체가 신을 증거하는 것이었을테다. 



전염병을 악용해 도둑, 사기꾼, 협잡꾼 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활개를 친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거짓말쟁이들의 처방에 기대는 것이 어리석은 짓임을 알면서도 그 두려움으로 인해 기행을 거듭하는 지경에 이르게 한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비록 의무에 따른 행위일지라도 헌신적으로 해야할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화자는 이에 대한 많은 에피소드를 나열하는데, 작가는 이들에게 크게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망자 수를 나타내는 표처럼 그저 보여지는 사실을 적어내려가기만 한다. 어쩌면, 감시 하에 격리되어 있는 병든 아내와 자식을 만나지 못하고, 거짓 소문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며, 때때로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가장 근본적인 연민조차 사라진 이 시기에 살아가고 죽는 것에 무슨 서사가 필요있겠느냐고 말하는 듯 하다.   


ㅡ 


책에는 위기 상황 대처에 관련한 관리직 임명과 전염병에 관련한 법령들이 정리되어 있는데 '환자 고지 - 감염자 격리 - 환기 소독 - 주택 봉쇄 - 이동 금지 - 격리 병원 운영 - 시체 매장', '부랑자 관리 - 공연 및 연회 금지 - 술집 영업 제한', 이외에도 외출 및 접촉 자제, 비상 식량 및 생필품 비축, 소독제를 넣은 향수 구비 및 휴대 등 감염병에 따른 사회 시스템 작동은 기술과 방식의 차이일뿐 17세기나 21세기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안타까운 점은 이 시대에도 가난한 사회적 약자들은 고스란히 위험에 노출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누군가의 죽음에 대부분 무덤덤해진다는 점이다. 



소설에서는 각종 범죄를 들어 윤리적 문제를 지적한다. 감염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위로 약탈하고, 환자를 상대로 강도와 살인 행각을 벌인다. 인간이 가져야할 최소한의 도덕도 무시한 채 치안이 불안정한 시기를 노려 폭력과 야만과 탐욕을 드러낸다.  


사실 이보다 더 눈에 띄는 점은 소설 속에서 안전을 권리로 내세운 피난민과 안전을 의무로 내세운 순경의 대치처럼 각자의 입장에서 내세운 권리와 의무가 관점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개인에 대한 연민과 공동체의 안전, 어디에 무게를 두겠는가(물론 위에 썼다시피 작가는 이러한 지점에서도 개인의 소견이나 고민을 피력하지 않는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감염자가 자신의 상태를 알고도 비감염자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의도적 살인이라고 규정함과 동시에 이와 관련한 소문들은 무증상 감염자들에 의해 와전된 것이라고 짐작하면서 화자가 인간이 갖춰야할 최소한의 도덕성에 희망을 갖고 있음을 나타내는데, 과학적 검사 없이 무증상 감염에 대해 생각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ㅡ 


소설보다는 르포에 가깝다는 평을 받는 이 작품은 전염병 시기의 영국 사회와 인간들의 면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우리가 얼마전 겪은 팬데믹 시기에 소설이나 영화에서 있을 법한 일을 실제로 겪었다면, 이 소설은 허구라는 장치를 이옹해 실제화했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관찰자이자 기록자의 입장에서 써내려간 화자는 삭막할 정도로 제3자의 입장에서 기록한다. 그의 초점은 인간과 교회(신앙), 도시와 사회에 맞춰져 있다. 삶과 죽음의 방식, 가족에 대한 사랑, 타인을 향한 연민과 애도, 탐욕과 이기, 혼란의 시기에 묵묵이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그리고 결국에는 신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존재하는 참혹해진 도시에서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바라본다.  



화자는 여러 헛소문에 대해 단호히 부정하면서 런던은 정부의 철저한 관리하에 모든일이 처리되고, 시 전체와 외곽에서는 치안과 질서가 놀랍도록 유지되고 있으며, 전염병 시기를 감안할 때 전 세계의 도시들의 본보기가 될 정도로 통치가 잘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격리나 봉쇄 등 시민권을 유린한 행위는 비상시기에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조치였음을 짚으며 행정관들을 비롯해 시체를 옮기고 매장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전염병 사태에 관련해 여러 분야에서 업무를 맡았던 이들의 노고를 열거하며 치하한다. 


화자는 자신이 남기는 글을 그의 행동의 기록으로 보기보다는 후대 사람들이 같은 시련에 직면했을 때 비슷한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에서 지침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썼다. 이런 당부를 썼다는 것은 작가가 앞서 쓴 이유로 런던 시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대니얼 디포가 영국 리얼리즘의 시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유를 확인하는 소설이다. 서술하는 자가 가능한 한 감정을 자제하고 객관적으로 써내려가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읽는 입장에서도 이 기록들을 비교적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시종일관 감정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것은 사회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 반목과 갈등, 가난한 민간인의 죽음에 갖는 안타까움과 인류에 대한 희망, 그리고 결국엔 이겨낼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마침내 '살아남았다'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교차하는 여러 감정과 의미가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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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 1~2 - 전2권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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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은 미스터리소설을 놓고 종종 '밑밥'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 '밑밥'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회수하는지가 미스터리소설의 재미와 질을 결정한다(초자연적 현상이나 우연의 연속, 개연성 없는 느닷없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은 사양해).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이 소설은 백 점 만점의 백 점이다. 상당한 분량만큼이나 수많은 밑밥과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작가는 이것들을 설득력 있게 해결해 나간다(살짝 꼬아놓은 면이 없지 않지만).


​소설은 전반부에서는 알래스카 샌더스 살인 사건에 집중하다가 중반부를 넘어가 또 다른 실종 사건을 줄기로 삼아 두 방향에서 서술하며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소설 구성에서 눈에 들어오는 점은 앞서 언급한 두 사건과는 전혀 무관하고 이전 사건이자 마커스의 전작인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이면에 치유하지 못한 마커스의 내면을 사이사이 드러내면서 다음 작품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놓는다. 참으로 치밀한 작가가 아닐 수 없다.  



이야기를 시작할 때만해도 어긋난 우정에 의한 복수와 치정 살인이라고 여겨졌던 사건은 시간이 흐르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다정한 이웃이자 친구라고 여겼던 이들의 민낯이 하나둘씩 벗겨진다. 성실하고 모범적인 오빠, 내성적이고 정 많은 아들, 신뢰하는 동료, 다정한 어머니, 든든한 아버지, 친절한 이웃. 꿈 많고 아름다운 철부지로만 보였던 두 젊은 여자의 이기심과 평소에 문도 잠그지 않을 만큼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작은 마을 사람들이 숨긴 추악한 진실. 그들은 자신이 불이익을 당하거나 범인으로 몰릴 것을 우려해 사실을 은폐하고 진실을 외면했으며 때때로 거짓말을 했다. 범인조차 예상치 못했던 그들의 거짓과 무관심과 외면을 양분삼아 사건은 완전범죄에 가까워졌다. 무너진 정의와 구현하는 정의 중 진실은 어디에 더 가까울까. 


강력 범죄로 목숨을 잃거나 삶이 훼손되는 비극, 그리고 피해 당사자와 가족들의 삶은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 해리 쿼버트의 말처럼 '우리 안의 못난이 악마'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악마들에 익숙해져 여차하면 우리 스스로 자신을, 삶을, 내주게 된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회복시켜 줄 것인가. 그야말로 불편한 진실에 다가갈수록 독자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소설 속에서 해리는 작은 불꽃 하나로 삶을 다시 작동시킬 수 있다면서 마커스에게 스스로 왜 글을 쓰는지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조언한다. 때때로 마주하는 절망에서 삶을 복구할 저마다의 작은 불꽃, 그리고 삶에 의문이 들때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이를 통한 치유. 미스터리 소설인 이 작품이 정작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 아니었나싶다.  




사족
가독성은 최고다. 일단 펼치면 궁금해서 덮을 수 없다는.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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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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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초반에 만나 인생의 대부분을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실패와 성장을 반복해나가는 두 남녀의 이야기다. 이렇게 단순한 문장 하나로 정의하기에 이 소설은 복합적인 감정을 담고 있다.  


소설에서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성, 그리고 언어를 가진 인물들이 만난다. 한국계 이민 1세대를 비롯해 일본계 이민자, 유대인, 한국계 이민 2세대, 유대인과 한국계 미국인 혼혈, 일본인과 한국계 미국인 혼혈 등 각자의 입장에서 겪은 정체성과 차별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게임이라는 소재와 어우러져 흥미롭게 진행된다. 


소설의 진정한 시작은 1997년 게임 '이치고' 출시다. '이치고'는 셰익스피어의 <십이야>, 일본의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그림 <거대한 파도>에서 영감을 얻었다. 출시 10년 후 이에 대해 문화적 전유appropriation를 비난하는 비평가들에 대해 샘은 제 나라 문화만을 레퍼런스로 삼는 세상, 오로지 제 자신의 문화만을 옳다고 주장하며 다른 문화와 경험에는 눈멀고 귀먹은 세상을 비판하는데 이러한 맥락은 소설 전반에 걸쳐 있다.  


이치고 게임에서 눈에 띄는 점은 게임 속 '이치고'의 성별이 처음에는 불분명하다는 것. 샘과 세이디는 애초에 이치고의 성별을 확정하지 않았고, 게임 속에서는 아이로 남아있다. 즉 다인종 · 다민족 등 소설 속 청년들을 모두 상징하고 있는 것이라는 짐작을 해본다. 이처럼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실질적으로 화면에 구현하는 게임을 만들면서 20대의 그들도 내적 성장을 이뤄간다. 돈과 명예, 사회적 성공, 우정, 사랑, 협력 등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 늘 따라다니는 가치라고 봤을 때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존재라는 생각도 잠시 스친다.  




 



백인과 한국인 혼혈인 샘은 상처받는 게 두려워 자신을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벅찬 사람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호의를 베푸는 것에 익숙치 않지만, 그는 말없이 내색하지 않고 친구를 걱정한다. 유복한 집안이었지만 난치병 환자였던 언니로 인해 부모로부터 방치된 유년 시절에 샘을 만난 세이디는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이성과 감정을 오락가락하는 인물이다. 마크스는 샘을 동생처럼 좋아했다. 샘을 보호하고 샘이 세상을 살아가기 좀더 편하게 도와주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주변을 챙기는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샘은 자신이 마크스에게 도움을 받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싶은 사람, 마크스.  


우리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사소한 일까지 우연과 선택의 연속 안에 살고 있다. 모두 다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 긍정의 순간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자의든 타의든 매순간 벌어지는 우연과 선택에 연연하지 말자. 애나와 샘이 비밀의 고속도로로 핸들을 돌리지 않았다면, 그들이 애초에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세이디가 '메이플월드'에 결혼 기능을 추가하지 않았다면, 마크스가 1층 로비로 나가지 않았다면, 앤트가 내려오지 않았다면... . 



소설 막마지에 세이디는 자신들이 그 시대에 태어난 게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조금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혹은 조금 더 늦게 태어났다면 지금보다는 더 힘들었을 거라고. 문득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운좋게도(?) 정부 차원의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를 피했고, 살인적인 실업사태를 청년기에 직격탄으로 맞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SNS가 대중화 되기 전의 시대를 살아본 경험이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열심히 하면 노력의 대가가 지금보다는 좀 더 명확했던 시대를 살았다. 


갈수록 이른 나이에 성공을 이루겠다는 열망이 점점 더 커지는 세태다. 연예인의 데뷔 시기도 십대 초반으로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프로게이머, 유튜버, 가상화폐 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른 나이에 억대 수입을 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새삼스레 이러한 폐해에 대해서 구구절절 늘어놓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어떤 측면에서든 성공과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열정페이'나 '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의 말도 불편하고 거슬리지만, 비록 한때나마 순수한 열정 없이 자극적인 성공만을 바라보며 달리는 모습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마크스는 게임이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라고 정의한다. 무한한 부활과 무한한 구원의 가능성. 그 어떤 죽음도 영원하지 않은. 인간이, 혹은 인생이 그런 것 아닐까. 상처가 계속 상처로만 남지 않는다. 선택, 후회, 상처, 일시적 성공이 보이지 않는 어떤 반응으로 내일의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당면한 문제들을 겪어가며 우리는 세대를 이어가고 내일의 희망과 낙관을 바라며 동어반복하듯 생을 이어간다. 동현이 세이디에게 오락기 '동키콩'을 유증함으로써 샘과 세이디의 우정을 되새겼듯 우리는 죽음을 통해 삶을 확인하며 내일을 기대한다. 


소설은 허구다. 샘, 세이디, 마크스. 이들의 관계, 순전한 우정과 연민이 어쩌면 평행이론이나 우주를 날아다니는 SF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게 우리네 모습이다. 그래서 이런 소설을 사이사이 찾아 읽는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들의 모습을 현실에서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내 마음이 좀 부드러워지기를 바라면서.  



개브리얼 제빈의 작품을 세 번째 읽는다.
<섬에 있는 서점>은 여전히 따뜻하게 남아있고, <비바, 제인>은 살짝 아쉬웠으나, 이 소설이 그 아쉬움을 덮었다.  


나도 이렇게 마크스가 그리운데, 그들은 오죽할까.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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