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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2 ㅣ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2
토머스 도드먼 외 엮음, 이정은 옮김, 브뤼노 카반 기획 / 열린책들 / 2023년 6월
평점 :
2권은 1권보다 좀더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면서 여러 나라에서 벌어졌던 각각의 전쟁(분쟁)이 인류에 미친 여파와 문제점, 참혹하고 비참한 폐해,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 및 재건과 애도에 집중한다.

군인 관점에서의 전쟁 경험은 죽음, 시신 훼손 및 시신의 도구화, 관료적 효율성에 따른 전사자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비전투원의 시신, 점령지 국민에 대한 가혹 행위와 전시 강간, 전략 폭격이나 핵무기로 인한 대규모 희생자 등 민간인 피해, 증언과 전쟁을 소재로 하는 문학, 반복되는 제국주의 전쟁을 통한 식민화 폭력에 대한 모순적 담론을 서술한다.
그리고 시민이 속수무책으로 감당해야 했던 일방적인 (성)폭력과 대학살, 전쟁 피해의 참혹함을 드러낸 예술 작품들과 다른 한편에서 독재정권과 제국주의 선전에 동참했던 문화예술가, 근대 전쟁의 무기가 된 굶주림과 강간과 성 노예화, 제노사이드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자행된 극단적이고 집단적인 (성)폭력과 공동체 분열 , (강제) 집단 이주와 대규모 난민 등에 대해 쓰고, 전쟁 이후 재향 및 상이 군인의 실태와 처우, 그들이 겪는 사회적 정체성과 혼란, 전쟁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에게 남겨진 정신적 후유증,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이 갖는 역사적 가치까지 아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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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부터 20세기 상반기 사이에 서구에서 전쟁 폭력이 가속화되고 늘어났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점점 더 많은 사회 주체가 전투 참여 여부에 관계없이 전쟁을 체험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기술의 발달이 영향을 미치기도 했고, 그 이상으로 전투를 넘어서 전쟁 자체가 변화했다.
스테판 오두앵루조는 근대 전쟁의 고유한 특징이 무기를 들지 않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는 데에 있음을 짚는다. 분쟁이 국가 공동체의 생존 자체를 결정하는 쟁점으로 인식되어 적국의 모든 민간인은 전쟁의 정당한 표적이 되었다. 배고픔과 잔혹함의 경험, 장소와 시간의 경험은 모든 신체적·정신적 충격을 포함한다. 비인격화된 익명의 전쟁은 개인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충격적인 집단 경험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라파엘 브랑슈의 주장이다. 권력 획득의 시작이 언어 사용으로 시작되는데, 자신의 용어를 강요한다는 것은 자신의 해석을 강요하고 장기간에 걸쳐 어떤 정치적 질서를 정당화하면서 권력을 취하는 일이라고 썼다. 즉 전쟁을 어떻게 정의ㅡ지하트, 혁명, 독립전쟁, 군사 반란 등ㅡ하느냐에 따라 목적하는 바가 결정되며 집단을 묶는 데에도 용이할 것이다. 필자는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전쟁의 다양한 형태와 정치적 계획에 연결된 조직적인 무장 폭력들이 발생한 서로 다른 맥락을 간과하지 않고 서술한다. 1914~1918년에 벌어진 대규모 전쟁으로 적의 국내 전선을 공습하는 일이 사실상 합법화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부터 베트남 전쟁이 종결될 때까지 민간인을 표적으로 한 폭격은 모든 주요 분쟁의 공통적인 특징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확인시킨다.
'총력전' 개념이 강화되면서 시민이 곧 군인이고, 입대에 따른 다양한 방식으로 인해 민간인과 병사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전쟁의 직접적인 경험은 더 이상 전장에 있는 군인에서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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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씁슬한 점은, 헤더 존스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기아 봉쇄'를 정당화한 것에 대한 윤리적 문제가 제기됐던 점을 언급하는데, 전쟁 자체가 이미 비윤리적이고 반인륜적이며, 더하여 20세기 초에 지적한 윤리적 문제가 그 시점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시대에 따라 용어를 바꿔가며 변화했다는 것이 더 맞을 듯하지만)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 남북 전쟁에서 물리적으로 승리를 거둔 쪽은 북부 연방군이었지만 내전 발발의 계기가 된 갈등을 끝내지 못했고, 결국 국가적 상상력에서 승리한 것은 남부 연합군이라는 지적이다. 현재까지 그 갈등 해소가 여전히 이루어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차별과 선민의식이 잔존한다는 건 여전히 전쟁을 치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냉전의 종결로 평화가 아닌 저강도 전쟁 시대가 시작됐음을 말하는 레너드 스미스의 지적도 인상적이다. 소위 '테러와의 전쟁'. 필자는 국가가 비국가 무장집단이 사용하는 전술에 맞서 전쟁을 할 수 있겠냐며 독자를 향해 되묻는다. 이 대치 상태에서 평화롭게 지내는 방법이란 국가가 그 집단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거나 파괴하는 것, 둘 중 하나다. 그러나 둘 다 거의 불가능하다. 전자는 집단이 거부하고, 후자는 해결할 능력이 없음이 수차례 증명됐다. 따라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전지구적 전쟁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앙리 루소는 신체적·정신적 후유증 형태로 지속되는 전쟁 폭력, 실질적 보상 문제 , 독재 및 폭력적 정책의 종결, 애도의 경험 등을 언급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잔혹한 시기에 동참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어떻게 '문명화 과정'을 되찾을 수 있었는지를 묻는다. 그는 전쟁에서 벗어나는 것은 고향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열렬한 욕망을 뜻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답이 있는 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