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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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어했던 이유도 서장의 제목과 같다. 김정희에 대해서는 추사체로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가 명문가의 귀하게 자라고 영특한 신동이였다는 것, 유배을 갔다는 것,

세한도를 그렸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추사체에 대해서도 추사체가 어떤 형태의

글씨체인지, 추사체가 왜 그토록 유명한지도 잘 모르는 바 나의 무지함을 깨닫고 이제사

김정희에 대해서 읽는다.
p13
추사는 본디 시와 문장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명성을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 추사 김정희는 서체는 말할 것 없이 회화, 종교, 답사, 학문에까지 아우르는 천재적 학자였다.

<제1장  월성위 집안의 봉사손 : 출생~24세> 
추사 김정희는 1786년(정조10) 충청도 예산에서 태어났다.
예사롭지 않은 출생의 설화를 시작으로 백부의 양자로 들어갔다가 조부, 양부, 양모, 친모,

어머니를 잃고 생부와 다시 함께 살게 된다, 북학의로 유명한 박제가를 스승으로 두면서 그는

북학에 눈을 뜬다. 생원시에 합격하면서 그는 아버지를 따라 연경에 가게 된다.
추사의 어린시절은 엘리트로서 명문가 교육을 받고 성장하지만, 가까운 가족을 이른 나이에

잃음으로써 외로운 성장기를 보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2장  감격의 연경 60일>
북학파 학자들의 학문 개척기를 들여다 보자.
한중 문화 교류의 시작은 홍대용에서부터 시작한다. 1765년 첫 연행을 떠난 담헌 홍대용.
그곳에서 그는 음악, 천문 등에 대해서 지식을 얻고 엄성, 반정균, 억비 등을 만나 학문을 나눈다.
'천애지기'를 나눈 엄성의 죽음에 홍대용이 추도사를 보내면서 한중 교류의 결정적 계기가 마련된다. 홍대용의 연행 이후 13년이 지나 박제가와 이덕무가, 2년 뒤에 박지원이, 그로부터 10년

뒤에 유득공과 박제가가 연행길에 올랐다. 이때 박제가는 연경에서 자신의 제자인 김정희에

대해서 자랑 했다고 한다. 네 번이나 연경에 다녀온 스승 박제가의 영향을 받은 김정희는 24세에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가게 된다. 연경에서 조강, 완원, 옹방강 등과 교류하며 견문과 학식을

넓혔고, 주학년처럼 빼어난 예인들과도 사귀었다. 청조 학술 연구에 평생을 바친 후지쓰카는

'청조학 연구의 제일인자는 추사 김정희이다.'라고 단언했다.

<제 3장  학예의 연찬 : 25~34세>
추사의 학예 연찬은 옹방강과의 깊은 사우 관계로 이어진다,
옹방강은 추사를 지극히 사랑했으며 그의 아들 완상생 역시 추사와 교류를 이어갔다. 또한

추사는 금석학의 제일인자로 손꼽히는 섭지선과도 교유도 긴밀했다. 청나라 학자들과의 교유는

추사 뿐만 아니라 추사 주위의 문인들 사이에도 펴져나갔다. 그로인해 무수한 책과 서화 작품,

금석 탁본등이 두 나라를 오갔다.
내가 이 장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추사가 답사와 여행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추사는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새로이 발견한 장본인이고, 무장사비, 진흥왕릉 고증까지

고고학까지 영향을 미쳤다. 또한 단양과 금강산 유람도 다녀왔다.
P101
이것은 신라 진흥대왕 순수비이다, 병자년 7월 김정희.김경인이 오다.
정축년 6월8일 김정희.조인영이 함께 와서 남아 있는 글자 68개를 면밀히 살펴 보았다.
추사는 불과 서른의 나이에 문장과 글씨로 이름을 얻었다.
31세 때 남한산성의 '이위정기', 32세에 '송석원' 암각 글씨. 33세에 '가야산 해인사 중건 상량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추사의 글씨를 얻기를 원했다. 추사의 장년의 글씨는 매우 매끄럽고

윤기나는 글씨라고 한다. 훗날 추사체는 방정한 방피을 기본으로 금석기를 보이며 획의 굵기에

변화가 많지만, 장년의 글씨들은 오히려 유려한 원필이 많고 리듬이 다채롭단다. 본격적인

추사의 장년 서예 작품으로는 옹방강의 석묵서루에서 본 것을 본받아 썼다는 '상견엄연

(想見儼然)'이다.

<제 4장 출세와 가화 : 34~45세>
추사가 41세 되던 1826년 즈음이 경주 김씨 월성위 집안의 권세는 절정에 달해 있었다고 한다.
추사는 다산 정약용에게 꾸준히 배움을 구했으며 평양의 조광진, 한양의 조성기, 홍현주 등

지식과 글을 교유하며 지냈다. 평양에서는 묘향산에 들러 용연폭포 위쪽에 위치한 상원암에

들러 현판 글씨를 써주었다, 이 현판은 현재도 상원암에 걸려있다. 홍현주의 '운외몽중첩'

앞장에 쓰인 표제글씨는, 구성은 예서체를  따랐지만 필획의 운용에는 해서법이 들어 있어

정중한 가운데 멋스러움이 있다. 저자의 말마따나 멋스러우면서도 단정함이 깃들어 있어서

개인적으로 나의 마음에도 쏙 들어온 글씨이다. 이 과정을 거치며 현대에 추사체라고 일컫는

글씨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1830년 김우명의 상소로 시작된 모함은 결국 추사의 아버지 김노경이 유배된다. 차후 추사는 

억울함을 토로하며 두 번 상소를 올렸지만 소용 없었다. 김노경 65세, 추사 45세였다.

<제 5장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 45~55세>
추사는 가문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연경 학계와 계속 교류했다. 추사는 50대에 학문과 예술

모두에서 대가의 위치에 있었다. 1833년에 아버지 김노경이 해배 됐지만 1년 후에 다산 정약용이,

그로부터 1년도 되지 않아 아버지 김노경이 서거했다. 그로인해 추사는 가정에서나 사회

에서나 어른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추사의 중년 글씨에는 동시대 청나라 서예 사조가 그대로 나타난다. 이는 스승인 옹방강아 완원,

등석여, 이병수, 건륭 4대가인 옹.유.양.왕의 글씨를 열심히 본받아 썼기 때문이다. 추사가 54세

때 쓴 <옥산서원> 현판 글씨에는 그의 글씨가 무르익어감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서예가의 글씨가

변해가는 과정은 무엇보다 편지 글씨와 해서 작품에 가장 잘 나타난다고 하는데, 추사의 50대

글씨에 이르면 우리가 추사체의 멋이라고 생각하는 획의 굳셈과 부드러움의 조화가 능숙하게

구사됨을 알 수 있단다. 책에 실린 자료들을 열심히들여다 본 노력으로 글씨체의 변화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또한 추사는 난초 그림에 애착을 보였는데, 명작으로 손꼽힌다는 <산심일장란>은

아는 게 많지 않은 내가 봐도 글씨와 그림의 멋스러움을 느끼겠다.
1840년 천적과 다름 없는 김우명이 대사간이 되면서 김정희는 10년 전 사건으로 다시 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때 벗, 조인영의 도움으로 죽음만은 피하고 제주도로 유배된다.
p216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때에 맞는 것이요, 웃어야 할 떄 웃는 것은 중용에 가까운 것이다.

(...) 인정에 어긋나지 않나니 묵소(默笑)의 뜻이 크도다. 말하지 않고 깨우쳐줄 수 있다면 침묵에

무슨 손상이 있겠으며 중용을 얻어 말한다면 웃는다 하여 무엇이 걱정일까. 그것에 힘쓸지어다.

/ 묵소거사 자찬

<제 6장  세한도를 그리며 : 55~59세>
제주도 대정에 위리안치 된 추사. 그가 인덕이 남달랐다는 생각이 드는 건 바로 이 제주 유배

이후부터이다. 물론 연경까지 두루 뻗친 그의 인맥은 감탄스럽지만, 사람이란 고난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맥락에서 추사는  학문과 예술에서만

경지를 이룬 것이 아니라 제자를 아낀 것에서부터 그간 주변 사람들을 살뜰하게 보살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잘 나가던 명문가에 태어나 귀한 공자로 키워져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

인지는 모르겠지만 음식과 환경에 적응하는데 꽤 고생했던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지인들이 돌아

가면 찾아와 머물고 서신으로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추사는 외롭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배 기간이 길었던 만큼 양아들 입양, 아내의 죽음 등 집안의 경조도 많았건만 그것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음을 많이 애석하고 서글펐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가. 그는 유배기간 동안

독서,그림, 글씨 등 다방면에서 원숙함과 완성도를 쌓아나갔다고 한다. 그 유명한 세한도 역시

유배지 제주에서.

<제 7장  수선화를 노래하다 : 59~64세>
이 장에서는 추사가 제주에서 지내는 동안 만나왔던 사람들과 글씨(현판), 답사 등의 내용이 실려

있다. 한라산 답사, 추운백수도, 낙선재 현판 등 꾸준하게 쓰고, 그리고, 읽는데 게으름이

없었고, 사람을  사귀어 제자를 삼음에 신분을 크게 따지건 같지는 않다. 스님 초의를 비롯해

필장(붓 만드는 사람( 박혜백), 전각가 오규일이 그들이다. 무엇보다 추사 글씨의 변화에서

대해서 언급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동주 이용희 선생이 하신 말씀이 가장 와 닿는다.
P349
많이 썼을 거예요. 아마 심심해서 쓰고, 화가 나서 쓰고, 쓰고 싶어 쓰고, 마음 달래려고 쓰고,

(...) 그 실력과 그 학식에 그렇게 써댔으니 일가를 이루지 않고 어떻게 되겠어요. (...)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쓸 수 있었다는 계기가 추사체의 비밀이겠죠, (...) 즉 자기 멋대로, 맘대로 해도

누가 뭐랄 사람도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그런 특이하고 괴이한 개성이

나온 거 아니겠어요.

<제 8장  강상의 칠십이구처당에서 : 64~66세>
여기서 부터는 추사의 만년기다. 제주 귀양에서 돌아온 추사는 '강상'이라는 곳에서 잡리를

잡았다.
P364
추사체가 제주도에서 성립되었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정작 추사체다운 본격적인 작품이 구사

되는 것은 해배 이후 '강상시절'부터라고 해야 더 정확할 정도이다. 추사 글씨 중 최고 명작의

하나로 꼽히는 <잔서와석루>, 거의 신의 경지로 평가받는 <불이선란>, 제자들이 벌인 서화 경진

대회의 출품작 비평서인 <예림갑을록>등이 모두 이 시절 소산이다, 사실상 이 시절에 추사의

예술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모르고 청년기를 보냈던 추사는 강상에서 무척 곤궁했다. 그러나 추사에게는

벗이 있고, 시와 그림, 글씨가 있어 마음이 궁핍하지는 않았다.  추사는 지인들과 쉼없이 서신을

주고 받고, 글을 나누어 주며, 현판을 쓰면서 추사체를 완성시켰다.
P412
추사의 글씨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자들은 괴기한 글씨라 할 것이요, 알긴 알아도 대충 아는

자들은 황홀하여 그 실마리를 종잡을 수 없을 것이다. 원래 글씨의 묘를 참으로 꺠달은 서예가란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서 또한 법도에 구속받지 않는 법이다.
글자의 획이 혹은 살지고 혹은 가늘며 혹은 메마르고 혹은 기름지면서 험악하고괴이하여 얼핏

보면 옆으로 삐쳐 나가고 종횡으로 비비고 바른 것 같지만, 거기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 (...)

마음을 격동시키고 눈을 놀라게 하여 이치를 따져본다는게 불가하다. (유최진)

서법에 충실하면서 그것을 뛰어넘은 글씨, 그래서 얼핏 보기에는 괴이하나 본질을 보면 내면의

울림이 있는 글씨,그것이 추사체이다. (...) 추사체의 본직은 형태의 괴가 아니라 필획과 글씨

구성의 힘에 있는 것이다.
이 장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후에 흥선대원군이 된 석파 이하응과 추사의 관계. 이하응이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신을 바닥까지 낮추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추사에게 난화를 배우고

논했다는 사실, 단순히 알고 지낸 사이일 만 아니라 이하응과 신뢰를 주고 받았다는 것은 뜻밖이

었다. 이것도 잠시, 추사는 다시 북청으로 유배된다.
이번에는 그 뿐만 아니라 형제들과 나중에는 그의 가장 가까운 지기인 권돈인까지.

<제 9장  북청의 찬 하늘 아래 : 66~67세>
따뜻한 제주와는 달리 추운 북청. 이곳에서도 추사는 벗을 사귀며 제자를 찾아 가르쳤다.
(제주에서는 소치요, 북청에서는 요선이다.)
변함없이 시를 쓰고, 답사를 하고, 책을 읽고, 서신을 주고 받았다. 이쯤되면 공부의 달인이다.

그는 제주에서나 북청에서나 마음만은 외롭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거듭든다.

<제 10장  과지초당과 봉은사를 오가며 : 67~71세>
북청에서 해배 된 추사가 집으로 삼은 것은 과천의 과지초당이다. 현재 과천 경마장 뒤쪽이란다.
P484. 485
추사는 장기. 바둑. 술 같은 취미나 잡기의 맛은 알았지만 거기에 빠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추사에게 진짜 취미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독서와 글씨 쓰기였던 것이다.
칠십이구초당 시절 쓴 글씨 중에 '일독 이호색 삼음주 (一讀二好色三飮酒)'라는 재미있는 현판이

있다.
첫째는 독서(공부), 둘째는 여자, 셋째는 술이라는 뜻이다. (...)
추사의 만년을 지켜준 것은 공부하는 행복, 제자를 가르치는 즐거움, 예술에 전념하는 열정이

었다, 그중 공부하는 행복이 제일 컸다고 한다.
눈을 감기 3일 전, 병든 누구의 몸을 세워 썼다는 봉은사 현판, [판전 板殿]
저자는 추사가 생의 마지막 힘을 이 두 자를 쓰는데 바쳤다고 말한다. 그 말이 나에게는 무척

감동으로 들어왔다.
추사가 71세에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죽음을 애석해하는 제자들과 지인들의 영전 앞에서 통곡

했고, 애도의 제문들이 답지했다고 한다. 얼마나 애석했을까...
진실로 추사 김정희 선생의 예술과 학문은 높고 깊기만 하다. (p571)
산숭해심(山嵩海深)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내 머릿속에서의 추사 김정희는 '추사체'가 아니라 '세한도'였다. 우연찮게 세한도 모사품을

보고 그림이 이렇게 외로워 보일 수도 있을까라는 생각에 학교에서 배웠던 '추사체'라는 단어

대신에 '세한도'가 남게 되었다. 조선시대 문인이라는 것과 명문가 출신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던 김정희라는 인물에 대한 평전이 이렇게 많은 분량을 차지했다는 것만으로도

궁금했다. 물론 나의 궁금증의 그의 '글씨'가 아니라 '그림'이였지만.
추사의 연경 탐방기, 청의 문인들과 끊임없는 교류, 당대 최고의 명문 사대부 집안의 아들임에도

사귐과 제자를 삼음에 허물이 없었던 열린 정신. 다른 책을 들고 있는 줄 알았다. 이거 연암

박지원 평전이야? 하면서....
또한 다산 정약용과 석파 이하응과의 교류, 당시에는 천인 신분이었던 스님들과의 대화와 서신, 남다른 제자 사랑까지 그의 인적 네트워크는 어디까지인건지... 읽으면서 추사 김정희라는

인물이 궁금해졌다. 또한가지 더 입을 벌렸던 것은 역사 답사. 지금도 역사(문화) 답사는 쉽지

않다. 그나마 평지에 있는 절터나 유적지들은 다닐만 하지만 산을 오르내려야 하는 답사는 극기

훈련인데, 조선 후기에 답사라니... 그의 문화에 대한 열정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관심있게

보았던 그림 부분. 세한도의 외로움에 이끌렸었더랬는데, 지금봐도 다르지 않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추사는 그렇게 외롭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나의 감정과잉이였나싶은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그래도 머나먼 외지 섬에서 무거운 고립감이 없지 않을 수 있었겠나하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석파 이하응이 추사에게 배움을 청할 정도로 능했던 난화.

그중 <향조암란>은 난화에 대해서 아는게 없는 내가 봐도 공간의 멋이 무엇인지 알겠다.

그리고 작정하고 그릴 수 없는 작품이라는 <불이선란>은 <향조암란>보다는 진중한 맛이 크다.
예서체, 해서체 등 말로만 들었던 글씨체들을 자료를 통해 보고 구분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었다. 독서와 예술, 예인과 장인 그리고 제자를 사랑했던 추사 김정희.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다재다능한 천재였다.

* 추사는 청나라 완원을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뜻을 세워 자신의 아호를 완당이라 했고, 연행 후

중년으로 들어서면서 추사보다는 완당이라는 호를 더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좀더

널리 알려진 대로 계속 추사라고 칭하겠다고 언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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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 지금까지 MBC 뉴스 이용마입니다
이용마 지음 / 창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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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출판사 홍보에서 보았던, '그가 제시하는 대안' 이라는 문장

 때문이였다. 지금 대한민국의 문제가 무엇이며, 무엇이 결여 되어있는지 국민은 정치인,

그 이상으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에 대한 뚜렷한 대안을 내 놓은 이도 없고,

누군가 내놓는다고 해서 수용할 사람도 없다.

그래서 나는 20년 이상 언론인이였던 저자가 내놓은 대안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책의 '책머리에'와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나는 설레임으로 가슴이 떨렸다.

인간미가 넘치고 꿈을 꿀 수 있으며 무엇이 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세상.

내가 생각하는 공동체를 그는 첫머리에서 부터 던져놨다.

그런 그가 말하는 대안, 너무 궁금하다.

1969년생인 저자는 격동의 80년대를 거쳐 90년대에 MBC에 입사한다.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그는 골수(?) 운동권 출신이 아니다.

다만 끊임없이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시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청년이었다.

그 고민을 안고 입사한 방송사.


박정희 시대를 시작으로 전두환, 김영삼의 독재 정권.

좋은 기회를 맞았지만 절반의 성공도 어렸웠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

민주주의의 퇴보로 다른 형태의 독재가 시작된 이명박, 박근혜 정권.


자유롭지 못하고 획일적인고 일방적인 방송사 시스템.

'삼성공화국'에 맥없이 꼬리를 내려야 하는 정부와 검찰.

미국인보다 더 친미적인 외교.

'그들만의 세상'에 살고 있는 엘리트 관료 집단.


방송사 기자로서 그가 지켜보고 겪었던 숱한 일들에 대한 보고서다.

언론사 비리는 말할 것도 없고, 검찰, 재계 등 각 분야의 민낯을 가감없이 이야기한다.

보수, 진보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있는 사실만을 얘기했기에 이 책에 더 믿음이 간다.


그가 말하는 선진국이란, 정직이 통하는 사회.

그가 말하는 언론의 객관성이란 사회적 다수와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

거기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

이것이 객관성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라고 말한다.


P206

"인간적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 프란치스코 교황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대안과 방향은 무엇일까?

경제 성장은 기업의 이윤 창출과 경제성장률이 우선시 되는 것이 아닌,

월급쟁이 노동자들의 인간적인 삶이 보장되는 경제 성장이다.

OECD 국가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을 줄이고 임금을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되는 경제성장.

검찰과 언론의 인사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국민대리인단 제도'.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나 언론사 사장을 임명하는 상황에서 검찰이나 언론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는 생각에서이다.

그리고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

비교적 잘 갖춰져 있는 헌법이나 법률을 원칙만 지킨다면

사회는 합리적인 방향으로 변화될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우리나라 공영방송사에 이런 기사가 있었나 싶었다.

있었겠지만 우리가 알기도 전에 모두 내쫒았겠지만....

읽는 동안 속이 시원했고, 일반 독자 뿐만이 아니라 '그들만의 세상'에 살고 있는

이들이 본인이 함께 사는 사회에 살고 있는 인간임을 자각 하고, 그 울타리 밖으로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아들들이 스무살이 될 때,

이 책을 읽는 모습을 그가 지켜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투병 중인 저자의 건투를 빈다.



 

P176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정부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뿐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체제를 말한다. 공동체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P359

상식에 입각한 대중의 의견이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P17

너희들이 앞으로 무엇을 하든 우리는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없다.

그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나의 인생도 의미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 우리 모두 하늘로 돌아간 뒤에 천상병 시인처럼

'소풍'이 즐거웠다고 자신있게 말 할 것이다.

/ 프롤로그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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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듣는다 - 정재찬의 시 에세이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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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읽고 내가 한번에 홀딱 반한 작가님.

본인이 직접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로 하여금 시를 읽고 싶게 만드셨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간이 나왔다.

시와 시 못지 않은 가사를 가진 발라드, 포크송, 락을 넘나들며 음악을 듣고 싶게끔,

시를 읽고 싶게끔 유혹한다.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를 시작으로 작가님은 독자를 언어와 시, 사랑, 인생의 세계로

이끈다.


p29

인생의 생로병사 모두가 새로운 다음 세상을 향한 기대와 불안으로, 설렘과 떨림으로 두근거리는 일이라는 것을.

(...) 두금거림이란 내 가슴속에서 운명이 두드린 소리가 아니던가!


사랑은 두개의 심장을 가까이 포개는 것이라는 말씀.

이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을 잊지 말라는 말씀인가...

연인이든 가족이든 조금은 지치고 피곤해질 때 이 두근거림을 잊지 말라는...

 

p34

"나쁜 사람들은 총이 있고 우리를 쏠 수도 있어요. 나쁘고 총이 있으니까요, 아빠."

"봐봐, 그들은 총을 갖고 있지만 우리에겐 꽃이 있잖니?"

"하지만 꽃으로는 아무것도 살 수 없잖아요? 그들은 우리들을, 우리들을..."

"사람들이 놓아둔 저 꽃들이 보이지? 총에 맞서 싸우기 위한 거란다."

"꽃이 우리를 보호해 준다고요?"

"그렇고말고!"

"촛불도요?"

"그래, 그건 우리를 떠나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한 거야."

 

언뜻 읽으면 그저 낭만적이기만 한 것 같고, 아니면 두려운 아들을 달래기 위한 아빠의 아름다운

거짓말인 것처럼 듣릴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자... 꽃이나 촛불이 없었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애도를 표할 수 있었을 것이며 우리의 의사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작가님은 박남수 시인의 <할머니 꽃씨를 받으시다>로 답을 찾는다.

 

(...)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인젠 지구가 꺠어져 없어진대도

할머니는 역시 살아 계시는 동안은

그 작은  꽃씨를 털으시리라. (p38)

이 야만의 시대에서 우리의 부모들은 꽃을 심었고, 촛불을 들었고, 자식들을 키웠냈다.

p48

거친 남성, 어른의 폭력, 주류의 횡포에 맞서는 것은 늘 여성, 아이, 장애다, 아픈 자만이 마음을

안다. 작은 것이 큰 것을 고치고,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그러므로 꽃이 총을 이긴다.

그리고 그런 꽃을 시는 닮고자 한다. 시는 지배 언어의 자기도취를 일깨우는 변방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p68

소통이 안되는 것은 남이 이해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기가 자신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잘나 보이고 옳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목이 곧으면

안 된다.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먼저 남의 목소리를 듣는 훈련부터 해야 한다. (...)

이야기보다 목소리를, 목소리만이 아니라 침묵까지 듣는 것이 진짜 경청이다.


시를 읽는 마음으로 타인의 목소리를 읽고, 시인의 마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읽는 것, 그래서

목소리가 살아야 한다가 작가님은 말하고 있다.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문장을 넘어서 울림이

있는 타인의 목소리를 듣고. 침묵의 여백과 그 뒤의 감정까지 소통하라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가수 고 김광석님의 노래들을 다시 들었다.

책에서 짚어낸 가사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작가님 말씀대로 '서른즈음에'라는 노래는 '마흔즈음에', '쉰즈음에'로 바꿔도 그 맛이 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아직 그 나이가 되어보진 않았지만, 내 서른즈음에를 대입해서 들어보면

조금 무겁기도 해서...

p77

나이는 거저먹는게 아닌 덕분에, 이별의 아품에 무뎌지거나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보내야 할 걸

보낼 줄 알게 된 것뿐.

이 말씀이 왜 그리 공감이 되는지....

사실 스믈 아홉이 지루했던 나는 서른이 반가웠다. 뭔가 성숙해질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지금 생각해보니 서른도 어린 나이다.  그래봐야 29에서 하나 더 많은 숫자일 뿐은 것을...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세월이 갔던 것처럼, 내가 오라 아니해도 자꾸 오는 옛날....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는 것을 보면 나도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고 있기는 한것 같다.

 

p121

일생을 살지만 매일 살 수 있는 것은 하루밖에 없다. 그렇게 하루 하루, 그러다 어느날, 그날도

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편에 인생의 마지막 빨간 석양이 물들 때, 그때 나는 왜 여기에 서 있느

냐고 묻지 않을 것이다. 많이  미안하고 부끄럽긴 하겠지만, 사랑과 혁명이 어찌됐든, 그것도

따지지 않을 것이다. 유대를 나눈 이들과 헤어지는 슬픔이 아주 크겠지만, 떠나는 게 내 잘못은

아니니 서로의 발잔등을 보며 위로도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서로의 발잔등을 보여 위로도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그냥 올리버 색스처럼 감사할 것이다, 긴 하루 짧은 인생이든,

짧은 하루 긴 인생이든, 매일이 축복이었다고 여기까지 축복이었다고. 그리고 종소리를 들으며

다시 또 설렐 것이다.

 

작가님은 가장 고귀한 형태는 고고(孤高)라 명하고 싶다고 했다. 외롭고 높음.

일반적으로 외롭기는 하지만 높이 오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외로운지조차도 잘 모르고 살 때가 많다. SNS의 발달로 잠시의 고독조차 허락되지

않는 세상.


p135

사람들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외톨이로 여기지는 것'이다. 당신은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혼자 있지 못해서 외로운 것이다! 루소는 "사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사는 것보다 훨씬 덜 힘들다"라고 말했다. 외로움은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있을 때 엄습한다. / '고독이 나를 위로한다' 중에서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인 나로서는 무척 공감되는 말이다. 나를 들어야봐야

할 시간. 꼭 필요하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정체성에 대해 고민함에 대해 작가님은 시인 윤동주를 불러왔다.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 '자화상', '서시' 등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p163

자신의 정체성과 진로를 구하는 젊은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거울을 준비해 두고 있을까.

트롤이 만든 거울은 다 사라졌을까? 곳곳에 널린 것이 그런 거울이다. 인터넷으로 게임을 하는

사람들, 스크린 골프장에서 골프르르 치는 사람들, 증권회사 객장에서 주식을 투자하는 사람들

모두가 그런 거울을 갖고 있다. 백설 공주의 왕비처럼 그들도 궁금한 것을 무자마자 답을 얻을

수 있다.  컴퓨터야, 컴퓨터야,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게임 좀수가 높지, 누가 제일 골프를 잘

치니, 어느 주식이 제일 많이 오르고 있니 하면 즉각 답이 나온다, 돈만 잘 벌면 된다, 무조건

성공만 하면된다. 이렇게 답하는 모든 거울이 트롤이 만든 거울이요,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일

것이다, 우리를 질트로 내모는 그런 거울을 마주하며 정작 부끄러워할 놈은 부끄러워하지 않는

걸 볼 때, 못난 것이 잘난 척 할 때, 더구나 그것이 바람직한 상이라 왜곡될 때, 우리는 울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여전히 동주인 것이다. 손바닥 발바닥으로 거울을 닦고, 스스로를 닦으며

남에겐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한, 그러면서도 가르치려 들지 않고 자신의 삶을 통해 사랑을 실천

하는, 영원히 순수한 젊은이이자 우리 시대에 간절히 갖고픈 어른의 모습,

그게 동주이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면서 가슴 한켠이 따뜻해짐과 동시에 뭉클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한권씩 안겨 주고 싶은 책이다.

벌써부터 다음책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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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연대기 클래식 호러
로버트 E. 하워드 외 지음, 정진영 엮고 옮김 / 책세상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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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를 소재로 한 세계적인 작가의 단편소설 12편을 모았다.

쓰여진 소설들의 대부분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 인것을 보면

아마도 이 소설들이 좀비에 관련해서는 1세대가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된 것이 두 가지 있다.

좀비들의 고향이 아이티라는 것과 좀비는 소금을 먹으면 제 무덤을 찾아가 다시 죽는다는(?) 것.


책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아이티'와 '부두교'

부두교가 무엇인지 몰라 사전부터 찾아봤다.

부두교에 대한 용어 정리부터 해야할 듯 하다.

부도교 : 서인도제도의 아이티에서 널리 믿어지고 있는 애니미즘적 민간신앙.

넓은 뜻으로는 서인도제도와 미국의 흑인들 사이에 행해지는 악마숭배, 주물숭배,주술  등을

포함하는 관습을 말하기도 한다. 쿠바의 산테리아교(Santeria), 브라질의 마쿰바교(Macumba)와

유사하다. 아이티의 부두교는 아프리카 서부에서 서인도제도로 팔려 온 흑인 노예들이 퍼뜨렸기

때문에, 초자연에 관한 근본적 관념은 아프리카에서 유래한다. 이 일반적인 테두리 안에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신념과 숭배 양식이 존재하거니와, 여기에서는 서인도제도 토착민 특유의 종교

에서 오는 요소와 함께, 특히 가톨릭교적 의식의 강한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소설들에 의하면 좀비들은 부두교의 주술사들에 의해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지막 소설 '좀비 감염 지대'에서만 좀비가 다르게 묘사된다.

소설들이 쓰여진 시대에서 알 수 있듯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한참 심했던 때이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 속에 나오는 일반적인 좀비들은 대부분이 흑인이고,주술사 역시 흑인들이다.

물론 좀비가 부두교를 근간으로 하고 있고 부두교는 아이티를 비롯한 아프리카 민간신앙이므로 그렇긴 하겠지만, 소설 내에서도 요염하고 아름답지만 사악한, 혹은 그저 무식한 이들은 대부분 흑인이다. 시대 상황을 생각해도 현재의 기준으로 볼 때 불편한 점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래 전부터 좀비는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요즘 영화에서 그려지는 좀비들과는 좀 다르다.

현대의 좀비들은 악하고, 잔인하고, 서로간에 의사 소통을 하는 몇 차원 올라간 시체들이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좀비들은 때론 불쌍하고 우습기까지 하다.

사고가 가능하지 않은, 생명력이 없는 수동적인 노예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끔은 좀비처럼 살고 있는 때가 있는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첫번째로 읽은 로버트 어빈 하워드의 '지옥에서 온 비둘기'

제일 무서웠다. 짧은 단편에 스토리와 호러, 스릴러가 모두 들어간....


라프카이오 헌의 '귀환자들의 마을'

이 소설은 우리가 중,고딩시절 "무서운 얘기 해줄까?" 할 때 들었던 부류의 소설.

마지막 문장에서 오싹! 소름.....

 

마지막 소설, 앨피어스 하이엇 베릴의 '좀비 감염 지대'

이 소설이 요즘 현대 좀비에 가까운 좀비들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좀비도 좀비지만 등장인물 파넘 박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생명'에 대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생노병사가 없는 불사, 불멸이라니.......

좀비, 자신들 조차도 영면에 들 수 없음을 고통스러워하는데, 누구를 위한 불렬의 약이란

말인가... 그 실험으로 인해 어떠한 결과가 초래됐는지 결말을 보면 인간의 젊음에 대한 끝없는

욕망은 시대와 상관이 없는 듯 하다.


백만년만에 읽은 호러물... 재미있게 읽었다.


 

p213.

이제 달릴리와 같은 운명을 공유한 야다르는 유령 같은 열망을 가지고 그녀 곁에 있었다.

그녀가 곁에 있어서 유령같은 위로를 느꼈다. 예전에 그럴 괴롭혔던 참담한 절망,

그리고 갈망과 이별의 기나긴 고문은 견디고 잊어버리는 그런 것이 되어버렸다.

그는 달릴리와 헛헛한 사랑과 희미한 만족을 공유했다.

 / 나트에서의 마법


p246

에일릿이 다가와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십자가가 몸에 닿자 온몸에 경련을 일으켰다.

그리고 축 처진 눈꺼풀이 치켜 올라갔고 입술이 움직였다. "자네는 은혜를 갚았어."

그 입술에서 부드러운 속삭임이 새어 나왔다. 그의 몸이 조금 흔들리더니 그대로 고꾸라졌다.

"흙에서 흙으로...."

 / 화이트 좀비

p333

뷸멸의 삶은 유전될 수 있었다. 수세대 동안 그 비밀을 공유한 거주자들은 모두 죽지 않을

것이다. 한 국가가 가진다면 얼마나 큰 힘이고 큰 비밀인가! 한 종족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니!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동안 인간이 두뇌와 근육을 이용하여 성취할 수 있는

진보와 발명은 또 얼마나 거대한 것이랴! 

 / 좀비 감염 지대


p353

영혼, 전신, 이성 등등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건 간에 인간이나 다른 동물의 군형감을 유지

시키는 것이 있다면, 그리고 이 불가해한 미지의 요소가 망자의 소생 후에도 회복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예측 불허였다.

 / 좀비 감염 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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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 - 여행 중독자가 기록한 모든 순간의 여행
추스잉 지음, 김락준 옮김 / 책세상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p40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어디를 여행해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루하루를 여행하듯

지 못하는 사람은 깃발을 휘날리며 세계를 일주해도 여행을 오롯이 즐기지 못한다. (...)

여행은 낭만적인 외출이 아니다. 중요한 것을 여행을 통해 스스로 변하고, 독립적인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배우고, 스스로 더 만족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p57

어떤 사람들은 여행할 때 세상 더없이 즐거워하다가 자신이 거주하는 곳에 돌아오면 다시 우울해

한다. 난 그들이 왜 그렇게 변하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자기만의 이야기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국적인 풍경으로 '일상'이라는 무미건조한

공간을 요리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 DNA가 충만한 사람은 힘들게 진수성찬을 차리지 않고

한 가지 요리에 작은 변화만 줘도 인생에 대한 열정을 고취시킬 수 있다. 일상을 적극적으로

바꾸면 굳이 이국적인 풍경으로 자신을 충전할 필요가 없다.

 

p115

여행은 나에게 세상에 대해서 내가 아는 바가 거의 없고, 나의 의견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굳이 다른 사람에 대해 평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p139

나는 나와 동갑인 독일 청년에게 이렇게 물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할 거야,

아니면 미래가 보장되는 일을 할 거야?" 그는 이렇게 반응했다. "무슨 질문이 그래?"

내 부모님은 항상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반드시 하나만 선택해야 그 분야에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나에게 그 질문은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내 부모님은 이런 믿음이 자신이나

자녀에게 스스로 어려움을 자초하는 사고방식을 심어준다는 사실을 모르셨다. 이상과 현실 중

반드시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

 

p147/148

"우리는 이주 노동자들이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또 고용주와 순조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건 광장히 중요한 일인데요, 고용주와 노동자는 모두 서로 인생의 일부분을

 함께 나누고 있는 사이입니다.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 동반자가 되는 것을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도 같다. 물론 여행으로 세상을 종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여행자를 변화시키는 동시에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가르쳐준다.

 

p188

왜 사람들은 남이 자신에 대해 잘못 알고 있으면 불같이 화를 내면서 정작 자신이 남에 대해 잘못

알고 있을 땐 아무렇지도 않게 '나 몰라라'하는 태도를 취할까? (...) 오해받은 것을 그렇게 문제

삼고 싶다면 나 자신부터 이 세상에 대해 모든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확인한 뒤에 문제

삼으라.


 

발췌해 놓은 문장들만 보아도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예측될 것이다.

이 책은 여행실용서가 아니다. 여행지로서 어디가 적합한지, 혹은 어느 명소가 좋은지, 어떤

경로를 통한 여행이 유익한지를 알려주는 안내서가 아니라 여행자로서의 철학, 가치 등을 말하고

있다. 저자는 여행을 통해 사고를 넓혔고,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됐으며, 자만과 오만,

편견을 버리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을 가져야 하며

타인의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 타인의 시선에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단다.

 

나는 어떤 가치관과 철학을 가지고 여행을 다녔던 걸까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가족, 친구들과 관광차원에서 다녀온 여행도 물론 있었지만. 나는 저자와는

다르게 뭔가 비워내야하는 시점이 되면 집 밖으로 나갔었다.

다른 여행자들과 혹은 현지인들과 교류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었다.

한번 비워내고 다시 채워지면 떠나는....

여행에는 각자 추구하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 목적이 무엇이든간에, 어떤 형태이든간에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저자의 말처럼 여행을 단순히 먹고, 보고, 만족스럽지 못한 서비스에 불평하는 '관광'이

아닌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로, 다양한 상황을 접하고 사고를 넓힐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여행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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