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요와 책만 있다면 - 인생의 중반, 나는 다시 책장을 펼쳤다
임성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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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문제와 고통에 직면하는 것이다"

스캇 펙

제목에 넘어갔다. 그럴 수 밖에. 진심 이 겨울, 담요와 책만 있다면 더 무엇을 바랄까... 물론 그 옆에 따뜻한 차 한잔 놓이면 금상첨화겠지만.

책을 소개하는 따뜻한 에세이라고만 여기며 첫 장을 넘겼는데, 나의 예상은 한참 빗나갔다. 이 책은 다양한 책에 나와 있는 내용들을 소개하며 심리와 정신분석, 사회제도에 대한 문제의식까지 접근한 에세이다. 너무 가볍지도 않고, 너무 무겁지도 않은 책.

총5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내 마음 속 그림자 이해하기>, <흔들리지 않는 중년 되기>, <타인과 나 사이에 필요한 '틈' 이해하기>, <외롭지 않은 연대하는 중년되기>, <이제까지와 다른 새로운 삶 준비하기> 이다.

<내 마음 속 그림자 이해하기>

21.

자신의 욕망을 통해 눈앞의 현실을 마주하고 진실해지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젊음의 독서가 성공을 위한 읽기였다면 중년의 독서는 내면의 욕망을 읽어내기 위한 독서, 진실을 마주하기 위한 독서입니다.

이 문장을 읽고 곰곰 돌이켜보니 나도 자기계발서나 처세, 성공에 관련한 책을 가까이 하지 않은지 꽤 오래 됐다. 의도한 것은 아니나 무의식적으로, 물리적인 성공이 전부가 아님을 세월이 흘러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깨우친 건 아닐까한다.

36.

중년은 철학의 시기요, 사유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중간쯤 되는 이 시기에 우리는 자꾸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이 고통이 내게 말하는 건 무엇일까?' '나더러 어떻게 살라는 것이지?'라고 말입니다.

40.

꼭 필요한 것들만 갖고 살아도 되고, 필요한 것들은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실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은 그리 많지 않음을 말입니다.

49.

어른이라는 자리는 권력을 누리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후손을 잘 양성해 보람을 얻는 역할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갖고 싶은 것도 많았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았던 20대. 때론 갖을 수 없고,이룰 수 없어 포기한 건 아니냐는 우스갯 말을 지인들과 나누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포기라면 포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욕심을 냈던 것들이 삶에서기쁨을 누리는데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터득했기 때문이다.

49쪽의 문장을 읽고 있으니, 엎드려 등을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이 바로 어른이 해야할 일이라는 루쉰의 말이 생각난다.

<흔들리지 않는 중년 되기>

77.

결국 인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것이니까요. 행복은 열심히 일한 후 그 대가로 얻어지는게 아니고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81.

어느 책에서 보니 천국에 가기 위한 두 가지 질문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인생에서 기쁨을 발견했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너의 인생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었는가?"이지요.

87.

그동안은 사회적으로, 주어진 역할로 세상이 정한 기준에 따라서만 살아왔지만 이젠 '나'를 생각하라고 말하는게 아닐까요. '나'를 느끼지 않은 채 계속 역할에만 묻혀 살면 삶은 메마르고 건조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되면 지치고 의미 없는 날이 계속 됩니다. 무엇보다 생산적이지 못합니다. 여기서 생산적이란 의미와 가치를 생산할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매일 구두를 만들며 사는 일의 기쁨, 타인을 즐겁게 하는 즐거움 같은 가치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109.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 가는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을바라보는가에 달려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삶의 질을 끌어올리려면 먼저 우리가 매일 하는 것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어떤 활동, 어떤 공간, 어떤 시간, 어떤 사람 옆에서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를 포착해야 한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 중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너의 인생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부끄럼없이 대답할 수 있을까? 가까운 가족이 아닌 전혀 모르는 사람을 위해 나는 무언가를 해 본 적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가족이라고 해도 가끔은 진심보다는 형식에 더 가까운 적이 있었다는걸 부인하지 못하겠다. 그렇다면 나의 형식적인 호의에 대해 상대방은 기쁨을 느꼈을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타인과 나 사이에 필요한 '틈' 이해하기>

139.

대중매체에서 보여주는 환상적인 사랑에 익숙한 나머지 우리는 직접적인 사랑에는 미숙하고 실패합니다. 그리하여 직접적인 사랑은 포기하고 사랑이라는 상품을 구매하는 쪽을 선택하지요. 그런가 하면 이제 사람들은 사랑도 저울에 달아서 그 가치를 가격으로 환산합니다.(...) 자신이 표준화된 매력 점수에 미치지 못하면 못난 사람이고 능력 없는 사람이라고 우리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00.

스피노자는 우리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일단 우리는 우리의 몸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능력은 어느 정도인지, 우리 삶은어떤 상태에 있는지 능력을 키우려면, 좋은 삶을 살려면 누구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160.

스피노자가 보기에 자기를 버리고 오로지 타인을 위해서만 하는 행동은 숭고해 보일지 몰라도 윤리적인행동은 아닙니다. 윤리적인 것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자, 자기를 보존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스피노자가 항상 강조하던 '역량'이란, 자신이 원하는욕망을 이루어낼 수 있는 능력 입니다.

183.

당신 가족은 당신에겐 짐인가요? 든든한 힘인가요? (...)

가족 안에서 우리는 독특하고 특별한 개인으로 인정 받고 있을까요? 세상이 붙여준 꼬리표인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오빠, 동생의 역할에 충실하게 산다면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게 되는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고 저자('우리는 가족일까'의 저자)는 말합니다. 역할만을 강조하는 가족 안에서는 본질적인 자기실현이 이루어지기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진정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가족과 거리 두기가 필요합니다. 더 큰 사람을 위해서는 단절 혹은 출가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요.

196.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당신 자신과 똑같은 관심을 갖고있다고 상상하지 마라. 또 타인들은 늘 당신에게 해코지 할 생각에 골몰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러셀은 충고합니다

경쟁은 입시를 앞둔 학생이나 승진을 다투는 직장인에게만 있는것이 아닐 것이다. 꽤 오래 전 나보다 연배가 앞선 지인에게 들었던 말이 기억난다.

"나도 나이가 많은 건 아니지만 내 나이쯤 되면 친구도 형편 따라서 유지가 되더라. 대학교 때는 학벌 때문에 친구가 나뉘고, 직장 다니고 결혼하면서 경제력이 떨어지면 슬슬 모임에서 안 보이는 친구들이 생겨. 형제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집안 싸움이 나지."

도대체 왜 이래야 할까. '그게 현실이야'라고 치부해 버리면 그만인가. 있거나 없거나 나는 그냥 나고, 살면서 누구나 한두가지 이상은 걱정거리를 안고 살게 마련인데, 굳이 남과 비교하면서 왜 나 사는 것만 팍팍하다고 여기는 건지 모르겠다. 요즘에는 초등 이전부터 서열화가 생긴다고 하니 결국 어른이 어른으로 잘 살아겠다는 생각 뿐이다.

"쇠가 녹슬어 없이지듯이 질투심은 서서히 내 자신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든다."

안티스테네스

<외롭지 않은 중년 연대하기>

210.

그는(피에르 신부) 인종차별주의와 외국인 혐오증을 볼 때, 굶주린 아이들을 볼 때, 잠잘 곳 없는 가족들을 볼 때,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희망을 잃을 때, 우리 모두는 분개할 줄 알아야 한다고 소리칩니다. 강자들이 약자들을 짓밟는 걸 그냥 두고 보거나 고통받는 약자들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공범자가 되는것이라고 주장합니다.

232.

스위스에서 대형마트는 도시에서 30킬로미터 밖에 짓도록 한다고 합니다. 골목 시장의 자영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지요.

이 대목, 어쩜 이렇게 "동의!"를 외치게 하는지.

우리 동네에서도 정말 맛있는 빵집이 몇 군데 있었다. 어느 집은 식빵이, 어느 집은 치아바타가, 어느 집은 브로오슈가 예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 군데도 살아 남은 빵집이 없다. 그 빵집들 사이사이로 대형 빵집이 들어서면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빵집 뿐이랴. 요즘에는 분식까지 체인화 되어서 손맛 좋은 분식집 찾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자본주의 경제 사회가 다 그렇다는 무책임한 말은 그만하고, 체인점 점주도 영세업자들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찾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러한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이 누리는 권력에는 이들을 잘 살게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면서.

그리고 나에게, "당신은 어떤 시민이 되고 싶으십니까?"라는 질문에 어떠한 답을 해야할지 깊게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까지 다른 새로운 삶 준비하기>

249.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노동이 살아 숨 쉬는 생명의 공간이 되려면 그 노동에 희망이라는 가치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하나 영혼 없는 노동을 하면 삶은 질식되어 죽어간다고 알베르 까뮈가 말했단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그리스의 섬을 취재했다. 그 섬의 무병장수의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 섬 주민들의 생활 패턴은 이렇다. 지역적 특성상 오침을 길게 즐기고 오후 다섯시 무렵부터 활동을 시작한다. 식사는 섬에서 키워진 식재료를 사용하고, 직접 담근 포도주와 과실주를 마신다. 내 손에 쥐어진 것에 만족하고 욕심이 없이 이웃과 나누니 시기와 질투가 없다. 무엇보다 그들은 운동이 아닌 노동을 한다. 연령에 관계 없이 약초를 캐기 위해 하루종일 산을 걷는 사람, 생계형으로 고기잡이를 하는 중년의 남성도 바다에서 주는대로 받아오면 그걸로 만족. 별도의 직업이 없는 여성들도 대부분 밭을 관리한다. 100세 시대에 결국 노동이라는 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

책에서는 많은 책들이 언급되는데, 개인적으로 <성장 (러셀 베이커)>, <바늘땀 (데이비드 스몰)>,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콜드버그)>를 찜! 읽어야 할 도서목록에 올린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건진 보석같은 말씀.

"우리는 모두같은 목표, 즉 행복을 추구한다. 진짜 문제는 어떤 방법을 선택하느냐이다. 모든 인간은 그간 어떤 시대, 어떤 조건, 어떤 문화 속에서 생활하건 두 가지 길 가운데 선택하기 마련이다. 타인들 없이 행복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들과 더불어 행복할 것인가. 혼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과 공감할 것인가. 매일 아침 새롭게다짐해야 할 이 선택은 그 무엇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그 섬택이 우리 삶의 실체를 결정 짓고 우리를 만든다."

피에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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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진실 - 우리는 어떻게 팩트를 편집하고 소비하는가
헥터 맥도널드 지음, 이지연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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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의 사전적 의미 : 실제로 발행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

진실의 사전적 의미 : 거짓이 없이 바르고 참됨.

진실은 고사하고 사실도 편집되어 전달되는 현실.

편집되고 삭제되어버린 사실이 진실인 양 오도되어 번지고, 하나의

사실을 놓고 화자마다 해석이 달라 대중은 혼란스럽다.

소위 가짜 뉴스가 판치는 세상.

저자는 진실은 아흔 아홉개의 얼굴을 가졌으니 눈에 보이는 편집된

진실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앞,뒤,좌,우의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옹호자 : 건설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경합하는 진실 중에서 어느

정도 정확한 현실 인식을 만들어내는 진실을 선택하는 사람.

오보자 : 악의는 없지만 경합하는 진실 중에서 의도치 않게 현실을

왜곡하는 진실을 퍼뜨리는 사람.

오도자 : 잘못된 현실 인식을 만들어낼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런

내용의 경합하는 진실을 적시하는 사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종종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오보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대중의 시선을 의식

해야하는 몇몇의 계층들은 서슴없이 오도자의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도자의 의도대로 편집된 뉴스에 휘둘리지

말아야 할텐데, 이 사실의 진실여부를 어떻게 구분해 낼 수

있을까.

저자가 제시한 주의해야 할 사람들 유형이다.

내용이 꽤 많지만 정치나 언론 뿐만 아니라 사적으로도

충분히 우려할 만한 부분들이 있어서 옮겨 본다.

- 충격적 뉴스라면 맥락을 몰라도 일단 공유하고 보는 오보자

- 남의 말을 인용하면서 중요한 맥락을 일부러 누락시키는 오도자

- 숫자를 실제보다 더 크게 혹은 더 작게 보이게 만들거나, 추세를

실제보다 더 의미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오도자

- 연관성을 보이는 두 잘는 당연히 인과관계가 있다고 가정하는 오도자

- 통계를 내 마음대로 골라 쓰거나, 내가 쓰는 평균이 '어떤' 평균인지

밝히지 않는 오도자

- 실화를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없는 인과관계를 바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오도자

- 개별 일화를 더 일반적인 주장의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오보자

-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물건이나 사람을 악마로 만들려는 오도자

- 한 가지 도덕적 진실을 다른 것보다 우선시하여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집단

- 어느 집단 전체를 미워하게 하려는 선동가 또는 오도자

- 비교용 가격 같은 심리 수법을 이용해 나의 가치 평가에 영향을 미치

려는 오도자

- 내 시간과 노동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게 만드는 환경이나 플랫폼,

비지니스 모델

- 중요한 단어의 정의에 맞추려고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는 오도자

- 흔히 쓰는 단어에 미심쩍은 자기만의 정의를 사용하는 오도자

- 무언가 연상되는 이름을 써서 부적절한 행동이나 투표, 구매 등을

설득하는 사람

- 나나 내 프로젝트에 손상을 끼치는 별명을 붙이는 사람

- 논쟁에 사용된 용어를 바꾸어서 결과를 바꾸려는 오도자

- 중요하지만 불쾌한 예측은 쏙 빼놓고 무언가를 하라고 설득하는 오도자

-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는 예측만 공유하고 홍보하는 사람들

-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경합하는 진실을 듣지 못하게 통제하는 세뇌자

- 순응을 압박해서 신념을 형성하려는 집단

- 경전을 위험하거나 극단적인 방식으로 해석하라고 설득하는 오도자

책을 읽어보면 위에 대한 사례들나 예시들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읽으면서 새삼 들었던 생각은, 결국 보고 듣는 사람들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 (무의식 중에라도) 보고 듣는 건 아니였을까...였다.

저자가 말한대로 우리는 다양한 목소리를 듣지 않고 그것에 대해 확인

하지 않는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대로, 심지어 개인의 생각을 일반화

시켜 올리는 인터넷 매체에도 현혹되고 만다.자신이 생각한 바와 일치

하는 뉴스와 의견을 선별해서 취하고 ,자극적인 소재에 끌려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한다. 그 전에 오도자의 의도대로 관심은 다른

방향으로 아니면 겉핥기에 그치고 만다.

앞뒤 맥락을 무시한 2014년 글러벌 여성 서밋의 주제에 관한 내용,

인공지능 시스템의 견해 차이, 승자의 기록으로 남는 역사 편집,

유리한 기준으로 설명되어져 정부에서 발표하는 국가의 경제 지표,

만들어진 악마의 도덕적 양면성, 선택된 예측, 출처가 정확하지 않은

불분명한 사실 여부 등 다양한 시각과 진실을 알고자 하는 노력이

없다면 우리는 오도된 사실에 농락 당하고 어느 한쪽에서는 피해자가

나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 부분에서 바라보고 그 진실의

여부를 스스로 내려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단순히 왜곡된

진실을 수용하게 됨을 넘어서 그 부당한 결과를 우리 스스로가

떠안아야 할지도 모른다.

개개인의 변별력이 필요한 시대다.

p390

오도자들이 버틸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의신하지 않는 태도' 때문

이다. 우리가 더 파고들기만 하면 저들이 진실성을 유지하면서

우리를 계속 오도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니 의심할 수 있을 때는

의심하라. 명확한 설명과 확언을 요구하라. 여지를 주지 마라. 뭔가

빠져있다 싶으면 물어보라. 숫자가 오해를 일으키도록 제시되어

있다면 다른 해석을 시도하라. 감성을 자극하는 스토리나 이름이

동원된면 관련성이 있는지 의심하라. 저 주장의 기초가 된 도덕적

가정이나 신념이 뭔지 질문하라. 공식적으로 용어를 정의해달라고

요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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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계속된다 - 어느 유대인 소녀의 홀로코스트 기억
루트 클뤼거 지음, 최성만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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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는 193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유대인이다. 이 책은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방되기

전 나치의 지배하에 있었던 때부터 게토와 수용소를 거쳐

죽음의 행군 도중 탈출한 후 미국에 정착한 이후의 삶까지를

회고한 자전 문학이다.

홀로코스트 추모 문화에 거부감을 가졌다는 저자는 1988

자전거와 충돌해 머리를 그게 다친 사고가 계기가 되어 이

책을 쓴다. 저자는 글에서 나치에게 학살당한 유대인에 대한

동정심과 이해, 홀로코스트를 대면할 때 제3자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들, 그리고 지나온 역사의 반성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 상황을 겪지 않은 이들과 사이에

다리가 존재함을 인정한다. 자신이 가스실에서 살해당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다리가 존재한다고 인정한 것처럼.

 

p180

여러분은 나와 동일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그러나

적어도 자극을 받기를 바란다. 성벽 안에 진을 치고 앉아

있지 말고. 이것이 여러분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여러분이

자와 컴퍼스로 미리 깔끔하게 그어놓은 어떤 틀 안에서만

여러분과 상관이 있다고. 이미 시체더미 사진들을 견뎌

냈고 공동의 책임과 동정심에 관한 여러분의 책무를 다했

노라고 덮어놓고 말하지 말라. 난 여러분이 논쟁적인 태도

로 대결에 나서라고 말하고 싶다

 

저자는 나치의 살해를 넘은 넓은 범위를 얘기한다.

이데올로기와 폭력, 나치의 억압은 남성 우월주의,

가부장제와 본질을 같이한다. 홀로코스트가 자행되기

까지의 본질에 대해 논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p106

사람들은 여자가 남자의 비호를 받는다는 오래된 관념

또는 편견을 마음 깊이 각인하고 내면화해 가장 명백한

사실을 간과한다.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는 건 노

약자들과 사회에서 차별받는 이들이라는 것 말이다.

나치가 여자들까지 심하게 다루지 않으리라는 말은 인종

주의 이데올로기와 모순되었다. 말도 안되는 가부장적

단견으로 기사도 정신 따위를 믿었단 말인가

 

결과적으로 저자가 유년시절부터 미국에 정착하기까지

곁에서 서로에게 보호자가 되고 힘이 되었던 이들은 모두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적 사고는 현재에도

많은 부분 잔존해 있으므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성별, 민족 간의 화해와 조화를 이뤄내기를 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p280

개개의 성원들이 입신할 기회를 미처 얻기도 전에, 마치

특정 외국인들은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나라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듯 특정 인종을 폄하

하는 것이 거슬렸다. (...) 여기서 '자유로운 나라'란 어떤

이상주의적인 것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누가 무슨 일을

하거나 어떤 처지에 있어도 누구 하나 상관하지 않는 곳

이라는 뜻이다 

 

1부에서는 수용소로 끌려가기 열 살 전 빈에서의 시절

을 회고한다. 여기에서 내가 인상적이였던 건 저자의

아버지에 대한 회상이다.

 

p43

아버지는 드랑시수용소에서 아우슈비츠수용소로 압송되

었고 도착하자마자 가스실로 간 것 같다. 나는 오랫동안

이 생각을 떨쳐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버지는 압송 중에

자살할 수 있었을테니 분명히 자살했을 거라고, 의사니까

알약을 갖고 다녔을 거라고 믿었다. 이 이야기가 내 희망

사항 더미에서 자랐다는 것을 깨닫는데 반평생이 걸렸다.


저자는 왜 아버지의 죽음이 차라리 자살이기를 바랬을까?

아버지의 죽음이 자신의 미래를 예측한 것 같아서 였을까,

아니면 자살하지 않았다면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수용소

가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 것이라는, 무의식 중에라도 자기

세뇌를 하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유년시절 어머니에 대한 기억.

신경질적이고 변덕스러운 어머니. 빈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두 모녀에게는 서로 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딸에게 모진 말을 일삼았고, 딸은 어머니를 대결의 상대로

여겼다. 저자는 이러한 모녀간 신경증이 전혀 치유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신도 다정한

어머니가 되지 못했다니...

 

p72

나는 다정다감한 어머니가 되지 못했다. 아마도 내 어머니의

추근거리는 다정함, 예상치 못한 부당한 벌이며 꾸중과 번갈

아가며 내린 어머니의 다정함이 역겨웠기 때문일 것이다.

 

p91

아우슈비츠는 무슨 교육기관도 아니고 인간성과 관용을

기르는 곳은 더더구나 아니에요. 강제수용소에서는 어떤

좋은 곳도 나오지 않았는데 당신은 하필이면 윤리적인

정화를 기대했단 말인가요? 강제수용소는 하나같이 비루

하기 짝이 없고 쓸모없는 기구들이었어요. 강제수용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그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어

야해요.

p92

살아남은 건 실로 우연이었다.

 

p100

바로 순례온 유대인, 특히 미국 유대인 덕분에 폴란드에

유입되는 외화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아우슈비츠는

폴란드의 중요한 외화벌이 수단이라는 생각.

 

2부에서는 게토와 수용소의 생활, 그리고 죽음의 행군

당시 탈출한 이후에 대해 쓰여 있다. 현재 수용소 문학에

있어서 많은 책들이 출판되어있다. 하지만 여성의 입장

에서 쓰여 지고, 여성 수용소에 대해서 서술한 책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곳에서 십대 소녀는 유년시절 가부장적 제도에서 여자

이기 때문에 거부당했던 경험들이 수용소 생활에서는

인간으로서 거부당하는 경험까지 더해진다.

이는 어린 소녀가 자신이 거부당하는 이유가 자신한테

있으며 ,세상에서 존재하지 말아야할 대상으로 생각 하

게끔 한다. 그런 와중에도 소녀가 발견한 아이러니.

군인과 수용자들은 국가가 정해놓은 옷을 입는다.

군인은 자랑삼아 문신을 하고 수용자들은 수인번호를

새긴다.

 

p146

명예도 치욕과 같은 수법을 동원하니 말이다.

 

p106

사람들은 여자가 남자의 비호를 받는다는 오래된 관념

또는 편견을 마음 깊이 각인하고 내면화해 가장 명백한

사실을 간과한다.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는 건 노

약자들과 사회에서 차별받는 이들이라는 것 말이다.

나치가 여자들까지 심하게 다루지 않으리라는 말은 인종

주의 이데올로기와 모순되었다. 말도 안되는 가부장적

단견으로 기사도 정신 따위를 믿었단 말인가?

 

p115

나중에 자유의 몸이 되고 나서 제일 속상했던 것도

수용소마다 가장 잔인한 이기심이 작동했으리라는 추측,

그래서 수용소에 있다 나온 자는 도덕적으로 무너진

자일 거라는 추측이었다. 내 눈에는 전부 오해고 편견이었다.

 

p120

어머니는 단 한순간도 남편과 아들 두 사람이 대량학살을

피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희망은

시간이 지나면서 증발해버리는 한정된 양의 액체와 같았다.

 

p133

희망은 기실 불안의 이면이니 삶을 지탱해 주는 건 불안

일지도 모른다.

 

p162

아무런 운율도 사유도 없이 체험만 하는 자는 내 어머니의

품에 주저앉은 그 나이든 여자처럼 이성을 잃을 위험에

놓이고 만다. (...) 공감하고 함께 생각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는 일어난 사건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사건 자체만으로

는 충분하지 않다.

 

p183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아우슈비츠는 낯선 행성이 아니라

저기 우리 앞에 보이는 쭉 계속되었던 삶 속에 파묻혀

있었던 것이다. (...) 내가 겪은 것은 저기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혀 닿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뭔가 헤아릴

수 없는 것, 무한성이나 영원성과 유사한 것이라는 이

동시성의 비밀을 발견했다.

 

p240

정당하지는 않지만 동부전선에서의 독일군의 폭력성을

감안하면 어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강간은 남성의

소유권에 대한 침탈로 여겨진다. (...) 전쟁은 남자들에게

속한다. 심지어 전쟁의 희생자들을 두고 이야기할 때도

전쟁은 남자들의 것이다.

 

p251

여러분은 내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실은 나를 아랑곳

하지 않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여러분은 나를 두고 이야기

하는 듯하지만 실은 여러분 자신의 감정만 이야기한다고.

    

p298

사람들이 강제수용소 수인들이 받은 번호를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도 이 맥락에 속한다. 능욕의 상징인 지워버리라고들

한다. 나는 생존증력의 상징이라고 응수한다. (...) 디타도

그 번호로 다른 사람들에게 죄의식을 심어주려 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 번호를 보면 왜 공격적으로 변하

는지를 분석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에서 비교적 많이 다루어진 부분은 저자와 어머니의

관계였다. 어머니의 신경증과 강박증, 남편과 아들을 잃은

상실감, 거기에 자신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존재인 딸에

대한 소유욕까지.

처음 수용소에 도착해 딸에게 전기담장 근처로 가자며

동반 자살을 하려했던 어머니. 이후 저자의 어머니는

딸을 위해 희생하고 용기를 끌어 모은다. 하지만 저자는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머니는 자신을 사랑하기보다는 본인의 소유물로 생각

하기 때문이니까. 이는 어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

내내 지속되었다.

나는 저자가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어머니에게

벗어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였겠구나라고 생각될

만큼 절박함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저자는 어머니를 때론 이해하고, 다시 부딪힘을 반복

하면서 대립의 관계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책소개를 읽었을 때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의 에리카 어머니가 떠올랐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제어하며

심지어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

물론 클뤼거의 어머니가 에리카의 어머니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어머니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과

어머니의 모습이 자신에게서도 종종 발견되는 것도

흡사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의 실상을 낱낱이 파해친 보고서나

기록이 아니다. 종교, 인종과 성차별, 비뚤어진 이념,

거기에 과한 민족주의 사상이 개인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한다. 위에서 말했듯 홀로코스트를

문화관광 쯤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고, 지난 역사에

인정과 반성, 그 벽 너머의 본질적 문제를 짚어

나가기를 촉구하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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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론도 스토리콜렉터 7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6월1일.
연방 범죄수사국 요원인 로어벡이 아우토반에서 역주행으로 자살한다.
사망 직전, 로어벡의 어린 아들은 집에서 살해 당한다.
사건을 맡게 된 수사국 요원 자비네.
사건을 추적하면서 로어벡의 동료였던 하게나를 찾아가지만 그 시각
하게나도 자살하고 그녀의 언니 역시 살해 당한 채 발견된다.
그러던 중 로어벡의 핸드폰에서 찾아낸 문자 한 통.
문자의 수신인은 현재 수사국에서 정직 처분 중인 
마르틴 S. 슈나이더. 
 
'당신 말이 맞았소. 과거가 우리의 발목을 잡을 거라는.
6월1일은 우리 모두를 파멸시킬 거요. 잘 지내시오!' 
 
사건은 20년 전 마약  전담 비밀 수사팀인 VED 6그룹을 가리키고 있다.
당시 6그룹 멤버는 로어벡, 하게나, 로만, 팀볼트, 헤스, 아이스너. 
 
 
5월26일.
자신의 마약 제조실과 창고, 자택을 방화하고, 아내와 쌍둥이 자녀 둘을 집 안에
가둬놓고 방화살해한 혐의로 20년간 복역을 끝낸 하디가 출소한다.
방화 뿐만 아니라 가족 살해 혐의까지 모두 부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하디는 자신과 가족의 복수를 다짐한다. 
 
하루 하루가 지나면서 전 6그룹 멤버들의 가족이 살해 당하고 수사의 촛점은
하디에게로 향한다.
동료와 하디를 좇는 자비네. 그녀가 도움을 요청한 사람은 슈나이더.
그는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자비네에게는 수사 자체에서 손을 떼라고 조언한다. 
 
사건의 핵심으로 근접한 자비네에게 연방 범죄수사국은 수사에서 제외되었음을 통보한다.
하지만 자비네는 수사를 멈출 수 없음을 직감하고 다시 슈나이더를 찾아간다. 
 
 
근래에 읽었던 범죄소설 중에 가장 재미었다.
(해리 홀레 빼고.)
그동안 독일책이라면 딱딱한(?) 사회철학만 읽어서 뇌가 각이 질 지경이였는데,
조금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ㅎㅎ
독일 범죄소설이 이렇게 재밌다는 사실을 넬레 노이하우스 이후로 잊고 있었다.
넬레 노이하우스 작품도 대여섯권 읽고 난 뒤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데,
안드레아스 그루버의 다른 작품은 어떨지 궁금해지네.. 
 
까칠 츤데레인 슈나이더의 캐릭터도 꽤 매력적.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예상되는 반전과 결말임에도 불구하고 소설 끝까지 흥미도와
흡입력은 떨어지지 않는다. 500쪽이 넘는 두께를 하룻밤에 읽어내려 갈 만큼 재미지다.
작가의 소설을 몇 편 더 읽어봐야겠다. 
 
사족.
왜 제목이 하필 '론도'였을까? 라는 궁금증이 컸다.
읽어보니 알겠더라는...
처음 하디 가족의 죽음과 본인의 복역.
그와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어진 6그룹 요원들 가족의 죽음과 댓가.
하디가 의도한 바는 아니였음에도 같은 방식으로 인과응보가 된 셈이다. 

 
235.
페이스북은 자신이 바보 같다는 걸 알리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니까. 마치 냉장고 같아. 10분마다 들어가
보거든. 뭐 새로운 게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야.
(노라) 
 
340.
걱정하지 마. 우린 지옥에 가지 않을 거야.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지옥 한복판이니까!  (슈나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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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 클로저 (COME CLOSER)>

  - 일자 샌드

 

 

나의 감정을 진솔하게 들여다보고 스스로 만든 자기보호를  벗겨냄으로써

지금 그대로의 나 자신이 됨과 동시에 주변인들과 관계 또한 다시 돌어볼

수 있는 심리학 책이다.
자기보호란 무엇이며 연인, 부부, 부모와 관계에서 원활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있어서 어떠한 자기방어 기제가 작용한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고, 스스로 인식조차

못했던 쌓여있는 내면의 감정과도 직면하도록 한다. 그래서 날것 그대로의 내

모습을 마주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벽을 쌓는 사람들의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어떠한 행동을

보일까?
어린 시절 부모의 관심을 받기 뒤해서, 혹은 자신의 감정을 대면하기 불편해

외면하기 위해서 등이 있다.
p38
대인 간 자기보호는 중요한 기술이다. 우리는 이를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

핵심은 본인이 그런 행동을 하고 있음을 의식할 수 있느냐이다. 내가 자기보호를

쓸 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인식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때론 감정적으로 받는 압력이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을 때에는 차라리 내적

자아로부터 거리를 두는 편이 낫다고 할만큼 자기 보호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다만 자기보호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을 너무 많이, 또는 너무

적게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나의

행동에 대한 인지는 상당히 중요하다.
p54
자기보호 행동이 자동으로 튀어나오고 무의식적인 수준이 되어버리면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길을 잃는다.

우리는 상실의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애 인색하다.
p66
슬퍼할 줄 알고 슬퍼한 시간을 충분히 갖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그래서 감정 인정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이들은 소위 교환 관계라고 부를 수 있는

적정선까지만 관계를 맺는다. 서로의 기쁨을 축하해 주고, 상한 기분을 풀어주고,

서로를 즐겁게 해주기는 하지만 이는 주고 받는 '단순한' 관계, 그 이상은 될 수 없다.

이러한 교환 관계가 자기보호로 작동하면, 따뚯하고 충만한 경험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그저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데 급급한 일차원적인 감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다른 맥락이지만 이성으로부터 자신이 구원자가 되거나

혹은 앉아서 이상형을 기다리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고,

인간은 누구나 완전하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군가의 구원자도 될 수 없고,

내가 쫒는 이상형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취향과 삶의 방향은 언제자 바뀔 수

있다.
p87
우리는 언제나 삶의 흐름에 맞춰 현재의 이 순간을 살아야 한다. 어쩌면 변호하지

않을 떄 관계에 더욱 문제가 생긴다.

종종 부모님과의 관계에 있어 어긋날 때가 있다. 이제는 부모님도 매일매일이

음이라는 것을 알지만 어린시절, 우리는 그들도 부모 노롯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생각치 못했다. 저자는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사람이니까....  자신의 어린 시절이 완벽하다고 기억한다면 그 또한 자기보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건 아마도 개개인이 내면 깊은 곳에 갖고 있는 어린아이를

꺼내 보내라는 뜻일게다.
p116
먼저 자신을 사랑하라. (...) 내가 내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우리는 정말로 혼자가 된다.

나조차 내 편이 아니라면 너무나 외로워진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기 힘들다.
호감이나 분노 등도 밖으로 표출하기에 부끄러워질 때가 있는데, 하물며 욕망이야....
p143
많은 욕망들이 의식의 차원으로 충분히 떠오르지 못하고 억압된다. 부끄러운 욕망을
온전하게 느낄 때까지
용납하면 자신이 자제력을 잃고 이를 곧바로 행동으로 옮길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망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그것과 관계된 판타지를

자신에게 어느 정도 허용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니다. 나의 욕망과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할수록 그것을 잘 다룰 수 있고, 잘못되거나 당황스러운 행동을 할

가능성이 오히려 줄어든다.
불안이나 두려움이 커지면 우리는 퇴행을 한다. 어린 아이가 동생을 보게 되면

겪는 것처럼.
나 역시 한 때 많이 울었던 시기가 있었다. 아마도 그때의 울음은 견디기 벅찬 현재에서

벗어나고픈, 그래서 차라리 미성년 시절로 돌아가 누군가가의 나의 힘겨움을 대신해

주기를 바란건 아니였을까싶다.
저자는 퇴행이 몇 달, 평생가기도 한단다.

퇴행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내가 어른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p156
인생은 더 이상 어린 시절처럼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른이라는 사실과 이제는 생존하는 것이 크게 불안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는 내 안에 있는 다양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 봐야한다.
이 장에서 내가 새로웠던 것은 '일반적으로 분노라는 감정은 곧장 행동으로 표출하지

않고 참는 편이 최선이다.' 였다.
분노를 터뜨려 상대에게 짐을 지우기 전에 우선 자기 안에서 마음을 정도하는 과정을

거치는게 좋다는 것이다. 화를 참을 에너지를 모으며 기다리는 것이 좋단다.
(문득, 화가 차 오르고 분노가 폭발할 것 같을 때 크게 호흠을 하라는 어느 책에서

 읽은 대목이 생각났다.)
분노가 감정의 최종 목포가 아닌만큼 분노 밑마닥에 자리한 슬픔을 표현해야 한다.

그래야만 친밀감과 유대감,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책을 덮으면서 그간 나를 거쳐갔던 수많은 감정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퇴행, 분노, 균형, 조화 등 사실 무엇도 수월했던 것 같지는 않지만, 비교적 잘 넘긴

것 같아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완벽하지 못한 내 자신을 지금보다 더 사랑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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