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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그리고 테오 - 반 고흐 형제 이야기
데보라 하일리그먼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테오가 없었다면 이 세상에 빈센트도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이 평전을 보여지는 삶과 죽음, 인상에 의존하지 않고 확실한 기록과 세세한 정보에 기반을 두어 왜곡되지 않게, 빈센트의 모습을 최대한 선명하게 그려내겠다고 했다.
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사산된 형의 이름을 물려받은 빈센트 반 고흐. 국립중학교 재학 시절 성적이 우수함에도 중퇴하고 화랑 하급 견습생, 물품 창고, 영업.회계 일 등을 거쳐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목사가 되기를 희망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전도사가 된다. 중산층의 삶을 버리고 스스로 극빈자가 되어 건강을 망치면서까지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는 것에 보람을 느끼지만, 이것이 종교적 열정이 아닌 타고난 정신질환의 증세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스물 일곱살 나이에 화가의 길로 들어선 빈센트. 그는 독서와 예술을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그 앞에는 빈곤한 현실이 늘 눈앞에 있었고, 그 구멍을 채워준 동생 테오를 의지하고 사랑했다.
스물 세살 나이에 구필 화랑 총매니저가 되며 승승장구하는 테오. 하는 일마다 중도에 접고 갈피를 못잡는 빈센트. 이십대 두 형제는 위로와 갈등, 화해를 반복하고 둘의 연대감은 더욱 단단해진다.
빈센트는 경제적 지원과 사실상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동생 테오에게 갖는 강박적인 부채감과 가족에게 공헌하고픈 마음으로 그림을 하루라도 빨리 잘 그리고 싶었고, 잘 팔리는 그림을 그릴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바랐다. 그래서 드로잉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노력파였다.
삼십대 중반을 넘기면서도 여전히 작품이 팔리지 않는 화가로서 빈센트는 테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는 것에 대해 미안하면서도 또 돈과 물감을 부탁해야하는 것에 대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하지만 그에 대해 테오는 형에게 그림을 파는 일이나 돈 문제는 자신에게 있어 늘 달고 사는 지병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아버지가 급사하고 테오는 자신의 수입에서 15%를 빈센트에게 보내고 있고, 어머니의 생활비 뿐만 아니라 두 동생에게 돈을 보낸 적도 있다고 하니 테오의 부담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형에게는 건강과 그림에만 신경쓰라고 하다니...
빈센트는 자연에 나가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마음이 편했지만 그에게 깊은 울림의 주제는, 그에게 '무한 감각'을 주는 초상화였다고 한다. 조카를 위해 그렸다는 아몬드 나무를 보면 빈센트의 그림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밝은 색감이 눈에 들어온다.
그의 그림과 이름이 1년만이라도 일찍 회자되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테오도 여러모로 여유가 생겨 자신의 몸을 돌볼 틈이 있었다면... 오랜 세월이 지난 이후 빈센트 죽음에 다른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형이 죽기 전부터 테오의 건강 상태가 최악이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아마 빈센트가 테오의 죽음을 마주했더라면 그의 자책감도 엄청났으리라. 빈센트의 죽음도 안타깝지만 테오의 마지막 6개월 동안은 빈센트의 죽음 이상으로 안티깝다. 형제를 모두 아꼈던 테오의 아내 요안나의 상실감이 느껴진다.
강한 여인 요안나. 서로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빈센트의 그림도 존재하지 않았겠지만 요안나가 없었다면 후대는 빈센트의 그림을 마주할 수도, 이들의 서신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테오 사후, 빈센트의 그림을 관리하고 가족의 서신을 책으로 출간한 사람. 고흐 형제에게 있어 서로만큼이나 그 둘을 이해하고 보듬어준 여인이다.
아버지와 테오, 가족을 사랑했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준데르트를 죽을 때까지 그리워했던 빈센트. 성향은 다르지만 삶에 있어 많은 부분이 닮았던 빈센트와 테오. 그들의 남다는 연대감과 애정, 그리고 삶의 궤적으로 마지막장을 덮고 나서도 책을 한동안 안고 있어야 했다.
[책 속 문장]
106.
'누구보다 슬프지만, 늘 기뻐하기를 쉬지 않으심.'
(빈세트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선이자, 괴를리츠가 빈센트를 바라보는 시선)
137.
"내가 참말로, 너에게 혹은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짜증을 불러일으키거나 부담이 되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껴야 한다면, 또 그래서 하릴없이 내 자신이 너에게 불청객이나 사족이 된 기분이 되어 차라리 내가 없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난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될거야." (빈센트)
145.
지금 그는 '머리 위를 막아 줄 지붕도 없이, 휴식도 먹을 것도 피신할 곳도 찾지 못하고, 거기다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가망도 없는 상태로, 아득한 먼 곳을 향해 부랑아처럼 터벅터벅 걷고 또 걸어갈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173.
빈센트는 이상화 된 여인을 그리지 않고, 그의 눈에 보이는 여인의 모습운 그대로 그렸다. 진짜 사람을 그려 넣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이에게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왠지 그녀를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녀느 시엔이다. (...) 테오에게 진실을 숨겨야 하는 슬픔. 그것이 바로 진정한 슬픔이다.
223.
"네 안에서 무언가가 '너는 화가가 될 수 없어'라고 말한다면, 그때야말로 네가 붓을 잡아야 할 때야. 그러고 나면 그 목소리도 잠잠해 질거야. 바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함으로써 말이지." (빈센트)
240.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둘(빈센트, 테오)의 관점은 너무도 다르다. 그럼에도 여전히 빈센트는 테오의 돈이 필요하다.
258.
"아무리 세상이 위대한 학교라고 해도, 모든 것의 근본은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접해 온 가족과 함께한 생활 속에 있어." (테오)
268.
두 형제에게 보색이란, 서로 나란히 놓임으로써 서로를 보강해 주는 색을 말한다. 즉, 서로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는 색이다.
349.
좋은 작품, 좋은 공동체, 이는 바로 빈센트의 이상향이다.
378.
"그의 그림을 이해하려면, 먼저 기존의 틀에 박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게 될 거예요. 언제냐고요?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테오)
387.
그의 삶은 예술이 전부이다. 가족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 자신과 테오를 위해서다. 늘 언제나, 테오를 위해.
394.
빈센트는 테오에 대한 걱정으로 속이 탄다.
테오는 빈센트에 대한 걱정으로 속이 탄다.
두 사람 다, 때로는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고 느낀다. (...)
그 두 사람은 '운명의 동반자'이다.
[빈센트 형이 없는 나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빈센트 형이 없는 나는 진정한 나라고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