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나 1 - 개정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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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 간단한 책소개를 접했을 때에는 중상류층 이상의 집안에서 자란 똑똑한 여학생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겪게되는 인종차별에 대한 극복과 성장, 이라고 짐작했다. 
 
예상을 전혀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 이페멜루 가족의 경제 상황이 넉넉치 않았다는 점, 가난한 유학생으로 시작했다는 점, 인종차별은 흑인 인종 차별에 집중했다는 점 등이 조금 달랐다. 
 
소설은 십삼 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머리를 땋기 위해 흑인 머리 전문 미용실을 찾아가는 이페멜루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3인칭으로 쓰여진 소설은 이페멜루와 그녀의 첫사랑인 오빈제의 관점을 교차해가며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는 않지만 보통의 나이지리아 가정에서 성장한 이페멜루. 똑똑한 그녀는 대학 3학년 때 교수들의 장기간 파업으로 학업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미국에서 의학 공부를 하고 있는 우주 고모의 권유로 미국 유학을 가기로 한다. 연인인 오빈제와의 이별을 비롯해서 내키지 않았지만 비자 심사가 바로 통과되어 유학 길에 오른다. 도착한 미국. 하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상황은 더 어려웠다. 열악한 환경에서 학업과 양육을 병행하며 고군분투 중인 우주 고모, 연금 번호도 불법으로 타인의 것을 빌려써야 하며, 무엇보다 일자리가 나지 않아 경제적으로 심각한 상황으로 몰린다. 오직 어린 육촌 동생 디케만이 위로가 된다. 때마침 권유 받은 아르바이트. 비록 성관계를 직접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의뢰자의 성적 만족을 위한 행위에 자괴감과 죄책감을 느끼며 오빈제와의 연락을 끊는다. 이후 가정 보모 자리를 구하면서 수입이 일정하게 되자 안정을 찾아간다. 학위를 마치고 부유한 백인 남자 커트와 사랑하고 이별하고 다시 블레인과 사랑하지만 나이지리아로 귀국을 결정하면서 그와도 이별한다. 
 
이페멜루를 미국으로 보내고 어느날 연락을 끊어버린 그녀로 인해 상심은 커지고 심리적으로 방황하던 오빈제. 그의 어머니는 학회 참석을 위해 가게 될 영국행 명단에 아들을 보조 자격으로 이름을 올린다. 체류 비자는 6개월. 그 이후는 오빈제의 몫임을 분명히 한다. 오빈제는 그곳에서 살아내고자 발버둥쳤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위장 결혼. 하지만 승인 마지막 순간에 불법 체류자로 검거되고 본국으로 추방되어 돌아온다. 권력의 힘을 알게 된 오빈제. 권력자의 비리를 비판하고 주관이 뚜렷했던 오빈제였건만, 그는 이제 친척의 도움을 받아 '치프'의 비위를 맞추며 부를 쌓는 사업가가 되었다. 더없이 아름답고 순종적이지만 맞춤형 아내 로봇같은 아내 코시와 예쁜 딸 부치가 있지만 오빈제의 삶은 공허하고 외롭기만 하다. 그런데 이름만 생각해도 가슴이 떨려오는 그녀, 이페멜루가 이곳, 나이지리아로 돌아온다. 13년만에! 
 
57(1).
그녀(코시)는 모두를 기쁘게 하기 위해 동시에 양쪽을 편들고 있다. 그녀는 늘 진실보다 평화를 택했고, 늘 다수의 의견을 좇았다. 

 
 
 
소설은 이페멜루의 성장을 이야기한다. 스무살 무렵에 자국을 떠나 삼십대 여성이 되어 돌아 온 이페멜루는 미국에서 지내면서 직접 겪은 흑인 차별에 대해 블로그를 통해 써내려간다.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차별과 혐오, 조롱 뿐만 아니라 대화에서 전해지는 뉘앙스와 분위기 등 내밀한 부분까지 전달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비미국인을 포함한 미국 내 흑인들에 대해 칼럼 형식의 포스팅을 하는 이페멜루의 블로그는 비미국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바라보는 미국에 대한 인식의 차이와 그들의 정체성까지 짚어낸다.  
 
블로그 계정을 처음 개설하고 올린 글에서 이페멜루는 인종 문제에 대한 해법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사랑이 드물기에, 미국 사회가 미국인 흑인과 미국인 백인 사이의 그것을 더 드물게 만들기에, 미국의 인종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연인의 사랑을 빗대고 있는데 인류애로 읽어야하는건지 싶다. 그렇다면 이페멜루가 미국 대학에서 영화 '뿌리'를 보고 토론했던 내용들, 흑인을 물건처럼 사고 파는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을테니까.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의아스러웠던 점은 흑인에 대한 인종주의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정작 미국 내 흑인의 인권 신장이나 평등에 대해서는 무신경한 이페멜루의 태도다. 도서관 경비원 화이트씨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증거없이 마약 거래 혐의로 체포된 사건에 대해 시위를 하기로 한 블레인은 동참을 권유했지만(사실, 그는 이페멜루의 참가를 당연하게 여겼지만) 그녀는 다른 장소에 있었다. 잊어버렸다는 거짓말로. 
 
196.
그녀는 잊어버리지 않았다. 단지 플래카드를 들고 대학교 도서관 앞에 서 있는 것보다 캐버나의 환송회에 가는 것이 더 좋았을 뿐이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은 미국 시민권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그러한 시위가 인종주의를 더 부추긴다고 생각해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마음가는대로 살고싶은 개인주의자이기 때문이였을까.
어쩌면 그녀는 이런 비슷한 양상이 반복되면서 구별지어지는 것이 진절머리나서 귀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말대로 자신이 미국이라는 나라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인종주의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으니까. 하지만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 후보 경쟁에서 승리하고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이페멜루는 가슴 뜨거운 감동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안있어 그녀는 귀국을 결정한다. 
 
결혼 상대자가 있고 고수익을 올리고 있는 상태에서 귀향을 결정하는 이페멜루. 그녀는 고향 라고스에서 비로소 '흑인'이 아닌 삶으로 돌아와 안정감을 느낀다. 비교할 수 없을만큼 열악한 인프라, 여전한 가난, 사회적 도덕성의 결여가 판을 치더라도. 결국 이페멜루가 찾던 것은 정체성인가...... . 
 
나이지리아로 돌아온 이페멜루와 오빈제의 만남. 그들은 서로를 통해 그동안 억지로 감추고 눌러왔던 본연의 모습을 찾는다. 하지만 나는 두 사람이 그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소설의 후반부, 두 남녀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이페멜루만큼은. 그녀가 오빈제의 경제력에 기대지 않을 것이라는 건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온전한 성장과 독립을 이뤄내려한다면 일단 혼자 일어서보는 것은 어땠을까. 물론 그가 혹은 그녀가 있어야 자신의 삶이 완성되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보라색 히비스커스>가 가정 내에서 억압에 대한 개인의 성장이었다면, 이 소설은 범위를 넓혀 흑인들 (특히 아프리카 흑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가리키며, 그 안에서 순응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읽으면서 작가도 작품과 함께 성장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한 여성의 성장기에 그치지 않는 성장 소설이다. 
 
 
 
"인종주의는 애초에 존재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므로 감소시켰다고 칭찬할 것도 없다."

 (p133-2)

 

 

 


 

그녀가 어떤 신용 카드를 발급받을 자격이 된다는 그 안내문에는 그녀의 이름이 우아한 이탤릭체로, 철자도 맞게 적혀 있었다. 그 편지는 그녀의 기운을 북돋아 줬고, 그녀를 좀 덜 투명 인간 같게, 좀 더 존재감 있게 만들어줬다. 그녀의 존재를 아는 누군가가 있었다. - P224

평생 영어를 써 왔고, 중등학교 때는 토론 동아리 회장을 맡았고, 미국식 발음은 뭔가의 미완성형 같다고 늘 생각했던 그녀가 오그라들거나 움츠러들어선 안됐지만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그 뒤로 몇 주간, 가을의 스산함이 내려앉는 동안에 미국식 악센트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 P226

내가 돈이 얼마나 많은지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가 보기에 내 외모는 그 위풍당당한 저택의 주인에게 적합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공적 담론에서 ‘흑인‘이라는 집합 명사는 ‘가난한 백인‘과 곧잘 짝을 이룬다. ‘가난한 흑인과 가난한 백인‘이 아니다. ‘흑인과 가난한 백인‘인 것이다. 실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P281

얼마나 많은 사람이 침묵을 택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미국에 와서 흑인이 되었을까? 얼마나 많은 이가 자신의 세상이 거즈에 쌓인 것 같다고 느꼈을까? (2권) - P118

그들의 삶은 고집스럽게 희망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들은 미용실을 열고 싶어 하고, 대학교에 가고 싶어 했다. 그들은 자신의 차례가 올 거라고 믿었다. 그녀는 우리, 에어컨이 있는 중산층의 삶을 사는 우리는 이 빈민가의 삶에서 겨우 한 발째 떨어져 있다고 쓰고 오빈제가 동의할까 생각했다. (...) 그래도 그녀의 마음은 평화로웠다. 고향에 돌아와서, 블로그를 쓰고 있어서, 라고스를 다시 발견해서. 그녀는 마침내 자기 자신을 완전히 존재하게끔 만들었던 것이다.(2권) - P404

"인종주의는 애초에 존재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므로 감소시켰다고 칭찬할 것도 없다." (2권)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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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스, 행복하기에도 모자란 하루야 피너츠 시리즈
찰스 M. 슐츠 지음, 강이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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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우와 함께 애정하는 스누피와 친구들 캐릭터.

한 손에 늘 애착 담요를 붙들고 엄지 손가락을 입에 넣고 다니는 라이너스는 버럭쟁이 누나 루시에게도 조곤조곤 말하고, 새들을 쓰담쓰담 해주는 따뜻한 아이다.

또래 친구들은 잘 모르는 어려운 말들을 줄줄 욾다가도 위대한 호박님과 산타클로스를 믿는 순수한 소년.

도서관에서 공짜로 책을 빌려주는 게 수상하고, 주사기를 찔러대는 의사선생님은 자신을 다트판이라고 생각하며 행복이란 수업이 끝나는 것, 그리고 누나에게 칭찬받는 것이라는 라이너스.

학교가 가기 싫어 '아마도' 배탈이 나서 못가게 될 거라는 뻔히 보이는 꾀병이나 성가신 안경에 담요를 꿰어 손을 자유롭게 해준다는 발상, 깐깐한 누나를 이기기 위해 살짝 비겁해지는 것쯤 감수하는 행동은 귀엽기만 하다.

타인을 위해 내 것을 챙길 때 하나 더 챙기고, 때로는 아끼는 것을 양보할 줄 알았던, 한때 예뻤던 내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찾아서 붙잡아와야 할테데...... .

꼬맹이 라이너스의 말에 인생의 정답이.

넌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되고 싶어?

"못 말리게 행복하게!"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못 말리게 행복하게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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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삶을 훔친 여자 스토리콜렉터 75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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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완벽한 삶을 훔친 여자》
ㅡ 마이클 로보텀

나는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아니다. 그 영예는 잭과 결혼한 매그에게 돌아가야 한다. 두 사람은 완벽한 두 아이를 둔 완벽한 부모다. 남자아이 하나, 여자 아이 하나. 금발과 푸른 눈을 가진, 꿀 케이크보다 더 달콤한 아이들. 메그는 다시 아이를 가졌고, 나는 흥분의 도가니다. 나 역시 출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애거사
애거사의 아빠는 그녀가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사라졌다. 집안의 모든 돈을 가로채서. 엄마는 여호와 증인에 몸담았고 재혼했다. 열한 살에 함께 등교하던 남동생이 교통사고로 사망, 새아버지와 엄마는 그녀를 원망한다. 왜 동생의 손을 잡지 않은 거냐고. 열세 살에 함께 방문 전도를 다녔던 중년의 남성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하고 열다섯 살에 임신했다. 그 남자의 거짓 증언으로 종교 집단으로부터 비난 당했으며, 출산한 딸은 즉시 입양 보내졌다. 그 아이가 유일하게 살아난 애거사의 자식이다. 이후 결혼 했지만 사산한 후 불임과 이혼을 거친다. 그녀는 아이를 갖고 싶다. 제대로 된 완벽한 가정을, 간절하게 갖고 싶다. 그러던 중 메간을 알게된다. 그녀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 나도 그녀처럼 살 수 있다. 아이만 있으면. 어차피 여호와는 자신에게 등을 돌렸다. 이제 애거사는 가족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동생의 죽음을 목격하고 지속적으로 몇 년간 성폭행을 당하고 열다섯 나이에 출산 후 아이를 뺏기며, 결혼했지만 사산으로 이혼까지 하고 불임이 된 여자. 두 번의 유괴를 감행했지만 데려온 아이들은 모두 죽었다. 이쯤되면 이 여자가 왜 이토록 아이에, 항복한 가정에 병적으로 집착하는지 이해는 한다.

하지만 애거사가 그토록 로망하는 메간의 가정은 완벽한가? 부부싸움 후 찾아간 전 남자친구와 실수로 하룻밤을 보내고 임신한 아이가 남편의 아이인지, 사이먼의 아이인지 확신을 못해 전전긍긍하는 메간이나 임신한 아내를 두고 섹스 파트너를 두고 있는 잭은 또 어떠한가.

소설에서는 애거사의 성장과 결핍, 집착에 집중하고 있지만 사이먼 또한 자신의 어린시절 경험으로부터 오는 친부에 대한 부재를 메간의 태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누구도 완벽한 삶은 없다. 언제부턴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인지 알 수도 없는 중산층의 잣대에 맞춰 그 안에 들어가려 아둥바둥하는 사람들, 그리고 양쪽 부모가 모두 있어야 하고, 아들 하나 딸 하나는 있어야 하는, 간혹 가족여행은 다녀야하는 삶이 그래도 남만큼 사는 거라고 되어버린 인식. 그래서 SNS에 행복을 과시하는, 내가 나로 사는 삶이 아닌 보여지는 삶에서 사람은 과연 평온할까.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받아 극복하는 것이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울고 싶어질만큼 애쓰지 말자고.

애거사의 비참할 만큼 불운한 시절은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안타까운 건 전 남편 니키와의 이혼이다. 그 위기를 서로 보듬어 가며 넘겼다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행복한' 가정은 이룰 수 있지 않았을까.

소설의 마지막, 정신병원에 입원한 애거사가 열다섯 살에 낳아 강제로 헤어져야했던, 그래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딸을 기다리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딸이 저를 보러 올 거예요. 그애는 리즈에서 먼 길을 와요."
"따님 이름이 뭔가요?"
"저도 몰라요. 하지만 그 애는 무척 예쁘고 영리해요. 여기 도착하면 자기 이름을 말해줄 거예요."





177.
내 안에는 시계가 설정되어 있다. 모래가 똑똑 떨어지는 모래시계. 내게 남은 시간은 2주도 안 된다. 그때가 오면 나는 내 아기를 잃어야 할 것이다...... . 아니면 찾아내거나.
(애거사)

289.
내일이면 로리를 집으로 데려가 헤이든에게 보여줄 거고, 헤이든은 내가 얼마나 완벽한 엄마가, 그리고 얼마나 완벽한 아내가 될 수 있는지 보게 될 것이다. 내게는 이제 가족이 있다.

565.
참 이상도 하지, 삶이란. 우리는 행복을 찾지만 생존이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존재. 우리는 기대를 너무 높이지 않으려 하지만 사실 제자리걸음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거나 이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살 수는 없었을까하는 헛된 생각에 빠져 있다. 곧 우리는 모든 남들과 똑같이 신을 모르고 돈에만 혈안이 되어 남의 등에 칼을 꽂는 지치고 질투심 강한 인간들이 될 것이다. 돈이 더 많았으면, 더 예뻤으면, 더 젊고 더 운이 좋았으면, 또는 그 모든 걸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으면 하는 헛된 희망으로 가득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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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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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실한 카톨릭 신자요 마을의 유지로서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고 환경이 열악한 학생들에게 학자금을 지원해주며 직원과 그들의 가족까지 피붙이처럼 살뜰하게 챙기는 사람. 또한 군사정권에 저항하고 신문사를 지원하며 민주 투사의 면모까지 갖춘,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대신해서 보살핀 사람, 아버지  유진. 
 
75.
우리 집에 온 어느 누구도, 아버지의 표현에 따르면, 충분히 만족할만큼 먹고 마시지 않은 채로 떠나지 않게 할 준비가 항상 되어 있었다. 안 그래도 아버지의 칭호는 '고장을 위해 일하는 자' 오멜로라가 아니던가.
 

 
하지만 가정에서는 권위적이며 절대신과 같은 존재이다. 맹목적인 신앙심은 신의 이름으로 가족의 절대 복종과 억압, 폭력을 정당화한다.  
 
하고 싶은 말을 삼켜야하고 크게 말하는 방법도, 웃어 본적도 없는 가족. 가장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 가해진 폭력으로 유산을 해도, 손가락이 비틀어져도, 가죽 벨트에 의해 몸에 줄이 그어져도, 두 발에 뜨거운 물이 부어져도, 갈비뼈가 부러져도, 그 모든 것은 당연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신이었으니까. 아버지는 그 수없는 폭력 끝에 늘 그들을 부둥켜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의 뜻이므로 어쩔 수 없었다고. 
 
51.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캄빌리는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다. 오빠 자자는 조금씩 아버지에게 저항하려고 한다. 캄빌리는 오빠가 그러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버지는 늘 옳은데.  
 
두 남매에게 집을 떠날 기회가 찾아온다. 아옥페에 참배를 하기 위해 고모 이페오마가 사는 은수카에 가게 된다. 그것은 아이들을 할아버지와 만나게 하기 위한 고모의 방편이다. 할아버지는 카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아 아버지로부터 비난의 대상이다. 그래서 이교도인 할아버지를 만나는 것은 15분 이내여야만 한다. 한 집에 머무르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  
 
캄빌리는 은수카에 도착한 순간부터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아마카와 자신의 의사표현을 다하는 오비오라가 신기하다. 그리고 자신에게 날을 세우는 아마카가 불편하다. 
 
아마디 신부와의 만남. 캄빌리는 그를 통해 아버지에게 복종하는 자신이 아닌 새로운 캄빌리를 발견한다. 1등을 해야만 하는 캄빌리, 가능한 말을 삼키는 캄빌리, 아버지가 가하는 육체적 고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캄빌리가 아닌 그녀 자신. 
 
이페오마 가족과 지내면서 캄빌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조금씩 내는 방법을 알아간다. 그리고 자자는 삶의 방식이 하나만이 아님을 더 크게 깨닫고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211.
"소리 지를 필요 없어, 아마카." 마침내 내가 말했다. "난 오라 잎을 다듬을 줄 모르지만 네가 가르쳐주면 되잖아." 그런 차분한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몰랐다. (...) 킥킥대는 소리가 들리길래 내 귀를 의심했지만 아마카를 보니 역시나 그 애가 웃고 있었다. "너도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할 수 있구나, 캄빌리." 아마카가 말했다.
 

 
캄빌리는 여전히 아버지가 두렵지만 그리운, 양가적 감정을 떨칠 수 없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어지러운 시국과 그와 연관한 아버지 유진의 여러 사정으로 남매는 다시 은수카에 머문다. 하지만 정부와 학교측으로부터 불온자로 낙인찍힌 고모는 미국 이민을 준비하고, 아마디 신부는 독일로 부임을 통보 받는다. 그리고 남매의 인생에 절대적 존재였던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와 자자의 선택. 이제 캄빌리는, 가족은 혼자 서야만 한다. 
 
306.
"저기 봐, 보라색 히비스커스가 피려고 해." 차에서 내리며 오빠가 말했다. 

 
작가가 페미니스트라고, 소설이 가부장제도 속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십대 소녀의 성장기라고 소개가 되어 있어서 페미니즘 문학이라고 오해(?)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신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가장의 폭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한 가족의 비극적인 투쟁 이야기다. 신처럼 군림하면서 자애와 강요를 양날의 칼처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아버지로부터 어머니와 두 남매는 속절없이 머리를 조아릴 뿐이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페오마가 아니였다면,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운명에 다른 길은 없다는 것을 당연다는 듯 여기며 살아갔을까? 그리고 어머니의 선택이 아니었다면 그 무거운 족쇄는 벗어던질 수 있었을까?  
 
소설의 마지막, 새로운 비를 기다리는 캄빌리는 앞으로 더 성장할 것이다. 캄빌리 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자자 또한 자신어 목소리를 내는 것을 넘어 스스로 설 수 있게 될 것이라 믿는다.  
 
희귀하고 향기로우며 자유로는 함의를 품은 보라색 희비스커스처럼. 
 
 
 
나는 소리 내어 웃고 있다. 내가 팔을 뻗어 어머니 어깨에 두르자 어머니도 내게 몸을 기대며 미소 짓는다. 머리 위에 염색한 목화솜 같은 구름이 낮게 떠 있다. 이제 곧 새로운 비가 내릴 것이다. (소설 마지막)

 

 

 

 

우리 집이 풍비박산이 나기 시작한 것은 오빠 자자가 영성체를 하지 않아서 아버지가 집어 던진 무거운 미사 경본이 식당을 가로질러 날아가 장식장 도자기 인형을 박살 냈을 때부터였다.

그날 밤 내가 웃고 있는 꿈을 꿨다. 내 웃음소리가 원래 어땠는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내 웃음소리처럼 들리지 않았다. 이페오마 고모처럼 깔깔대는, 칼칼하고 열정적인 웃음소리였다. - P115

나는 한 번도 대학에 대해, 어느 학교에 가고 무엇을 전공할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때가 되면 아버지가 결정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 P165

가끔 아마카와 파파은누쿠가 대화할 때면 두 사람의 낮은 목소리가 서로 휘감겼다. 그들은 최소한의 단어만 사용하면서도 서로의 말을 이해했다. 두 사람을 보면서 내가 절대 가질 수 없는 뭔가를 향한 갈망을 느꼈다. - P205

미소가 입술과 뺨을 끌어당기면서 내 얼굴에 스멀스멀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재밌어하는 미소. 그는 내가 오늘 처음으로 립스틱을 바르려 했던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웃었다. 그리고 또 웃었다. - P219

엄마가 자식한테 어떤 식으로 말하고,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통해 그 애들이 뛰어넘아야할 목표를 점점 더 높였다. 아이들이 막대를 반드시 넘으리라 믿으면서 항상 그랬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오빠와 내 경우는 달랐다. 우리는 스스로 막대를 넘을 수 있다고 믿어서 넘은 게 아니라 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넘었다. - P274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어, 캄빌리."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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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티스》
- 마이클 크라이튼


1875년 가을, 필라델피아 조선업자의 아들인 예일대상 윌리엄 존스는 학교 라이벌과 말다툼을 하던 중 상대의 잔꾀에 넘어가, 여름 방학을 고고학과 마시 교수의 서부탐사대에 합류하는 천 달러짜리 내기에 걸려들고 만다.

마시로부터 사진사로 합류 허락을 받은 윌리엄은 탐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처음과는 다르게 설렘과 기대를 갖게 된다.

와이오밍으로 향하던 중 윌리엄은 마시로부터 (마시의) 경쟁자인 코프 교수의 스파이로 의심받고 와이오밍 샤이엔에서 버려진다. 하지만 마침 그곳을 경유하던 코프와 만나고 그의 일행에 합류한다.

새로운 탐사대와 도착한 곳은 와이오밍만큼이나 악명 높은 몬태나. 갖은 고생 끝에 많은 공룡 뼈를 수집하고, 특히 대형공형 브론토사우르스(아파토사우루스) 뼈를 발견한 성과를 이룬 코프와 윌리엄 일행은 철수하는 과정에서 탐사대 두 명이 사망하고, 윌리엄은 낙오한다.

뼈 수집품(특히 브론토사우루스)의 절반을 싣고 천신만고 끝에 윌리엄이 도착한 곳은 데드우드. 보안관 한 명없이 무법천지인 그곳에서 발이 묶인 윌리엄. 데드우드 사람들의 윌리엄이 가지고 있는 상자들이 금이라고 여기고 호시탐탐 노린다. 윌리엄은 뼈 수집상자와 함께 무사히 필라델피아로 돌아갈 수 있을까?


백인과 인디언들 사이의 전쟁, 그리고 골드 러시로 들끓었던 1870년대 미국 서부. 금이 아닌 화석을 찾기 위해 위험천만인 서부 한가운데로 들어간 이들이 있다.

공룡 뼈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불법, 사기, 살인까지도 서슴치 않는 마시. 화석에 대한 집념과 동료에 대한 애정과 호탕함(종종 욱하는 성질). 철딱서니 없는 부잣집 도련님에서 서부 탐사를 통해 성장하는 윌리엄. 보수를 받고 일하지만 의리의 상징인 와이어트와 인디언 리틀 윈드.

책을 읽고 있자니 머릿속에서 다큐멘터리와 서부영화, 어드벤쳐 영화의 장면들이 저절로 필름 돌듯이 떠올랐다. 캐리터들마다 특징이 명확하고 곳곳의 유머와 위트도 재미를 거든다.

영화 '쥐라기 공원'의 원작 동명소설의 작가인 마이클 크라이튼의 작품이다. 영화로 따지자면 '쥐라기 공원'의 프리퀄이라고 보면 된다(출판사 소개에서도 언급된 바이다).

실존 인물이자 라이벌이였던 마시와 코프를 데려오고, 거기에 가상 인물인 주인공 윌리엄을 등장시켜 텍스트는 역사 소설이 아닌 모험소설이 됐다. 하지만 백인들의 정복 전쟁과 골드러시로 인한 총격전 등은 실제 사건이다. 다만 주요 등장인물들의 동선들은 실제와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 고고학과 원시생물에 관심이 많아서 기대가 컸다. 공룡 화석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은 부분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작가의 말대로 이 책은 논픽션 소설이니... 인디애나존스의 화석 탐사 버전 한편을 읽은 느낌이다.




160.
"뼈를 사냥하는 것은 금을 사냥하는 것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다.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기회, 땅 속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는 걸 발견할 가능성은 이 모험에 불을 지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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