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의 월든
서머 레인 오크스 지음, 김윤경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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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실내 가드닝이 인기다. 봄에만 극성이던 황사는 옛말이고 계절과 상관없이 (초)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는 어느새 일상용품이 되었다. 이와같은 환경적인 요인과 더불어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시대에 녹색 환경이 안정을 준다는 과학적 사실까지 보태져 많은 이들이 실내 정원을 가꾸고 있다. 그만큼 자연, 즉 흙과 식물의 필요성은 점점 더 절실해지고 있다.

이 책에서는 도시가, 그리고 도시인들에게 식물이 필요한 이유와 실제로 식물을 가까이 한 후 정서적,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고 달라진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들고 있다. 또한 자연 파괴와 그로 인한 복구가 얼마나 요원한 일인지를 성토하며 호소한다.

 

107.

파괴된 환경을 복구하는 데는 자연을 파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자연을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최선의 노력을 쏟아붓고 많은 자원을 투입했지만, 우리는 대자연의 생태계를 조금도 복원할 수 없었다. 생태계는 겨우 예닐곱 세대가 아닌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진 기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공감하는 몇 군데가 있었는데, 먼저 '생명 공포증'을 앓는 아이들의 사례가 보고 되었다는 부분이다. 자연에 노출되지 않은 사람이 야외에 나갔을 때 거리낌이 들고 불안감과 두려움을 느끼며 손에 흙이 닿는 것조차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등산 혹은 숲으로 여행을 하다보면 흙이 더럽다고 바닥에 앉지 못하는 사람, 지렁이나 곤충을 보면 징그럽다고(혹은 무섭다고) 기겁을 하는 아이들을 꽤 많이 보았다. 하지만 평소에 도시 밖으로 나오는 경험이 거의 없으니 그들을 탓할 수도 없다(설사 나온다고 하더라도 대체로 시설이 갖춰진 호텔에 투숙하고 정비가 된 관광지만 일주하니 흙을 제대로 딛을 기회도 많지 않다).

다음으로는 식물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얼마나 따끔따끔 찔리던지..... .

도시의 거주자들이 식물을 들일 때 자주하는 질문이, "쉽게 죽지 않는 식물은 어떤 건가요?"란다(그게 나다). 하지만 식물을 잘 키우려면 다른 질문을 해야한다고 한다. 내가 어떤 식물과 살고 싶은지가 아니라 어떤 식물이 우리 집에 살고 싶은지 물어야한다고. 이 부분을 처음 읽을 때에는 "어째서?"라고 생각했는데, 곰곰 따져보니 그 말이 맞다. 식물마다 적절한 환경이 있는데, 내가 살고 있는 주거 환경을 식물에 맞춰 바꿀수 없으니 환경에 적응이 가능한 식물을 데려오는 게 현명하다는.

 

180.

먼저 식물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난 뒤, 그 대답이 내가 원하는 것과 일치하는지, 내가 식물의 행복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인지 확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제목, '식물에게 사랑받는 법'.

 내가 일방적으로 주는 사랑이 아닌 식물에게 사랑을 받는다니, 참 기분좋은 말이다.

 

190.

식물에게 사랑받으려면 대자연이 하는 일을 대신 해줘야한다. 반려식물은 대부분 화분에 있기 때문에 숲 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엽, 균류와의 공생, 또는 미생물과 기타 유익한 토양과 다양한 결합이 가져오는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가 최적의 햇빛을 찾는 것부터 젓가락으로 흙 속에 공기가 통하게 하는 것까지 식물이 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챙겨줘야 한다.

 책의 후반부에는 저자가 짧게나마 일본 정원에 대한 예찬이 나온다. 기회가 된다면 저자가 우리나라 담양의 소쇄원을 다녀갔으면하는 바램이 있다. 그녀가 소쇄원을 둘러본 후 소회가 어떨지 궁금하다.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식물을 키우는데 있어서 금손인데, 나는 ㄸ손을 넘어 저주받은 손이라는 말을 들을만큼 식물을 제대로 키워낸 적이 없다. 오래 전, 아빠가 오죽했으면 나한테 돈은 맡겨도 식물은 못 맡긴다고. 엄마도 "네가 얘들한테 관심을 안가져서 그래"라고 훈계를 하셨는데, 이 책에도 보면 관찰이 중요하다고 나온다. 그래서 올해에는 맘먹고 식물 몇 가지를 키워보려고 한다. 마침 책에 나온 몇 가지 팁을 이용해보기로.

아래는 제시한 조건 중에 나에게 맞는 것들 중에 몇 가지.

 

창턱 햇빛이 강하다 / 방임주의 : 에케베리아

창턱 햇빛이 강하다 / 신경을 쓰는 편 : 다육식물

창가가 밝지만 상대적으로 햇빛이 안든다 / 커다란 식물을 수용할 공간이 있다 : 몬스테라

창가가 밝지만 상대적으로 햇빛이 안든다 / 중간 식물을 수용할 공간이 있다 : 스파티필룸

간접광선이 들어온다 / 방임한다 : 엽란

가능한 주의를 기울여 관심을 갖도록 노력해보련다.

책을 덮고 나니 마음은 이미 화원으로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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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섞이고 완벽히 녹아들 시간 - 스탠딩에그 커피에세이
에그 2호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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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딩에그에서 노래하는 에그2호가 쓴 커피 에세이.

음악을 하고, 글을 쓰고, 커피를 사랑하는 남자가 참 담백하고 정감있게도 썼다. 툭툭 던지는 물음에 책에다 대답을 하고 있는 나. 그가 가봤다는 카페는 한번쯤은 들러봐야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카뮈의 철학 에세이를 읽다가 머릿속을 환기시키기 위해 커피 한 잔 하는 마음으로 펼쳐 든 책.  

 

커피를 언제 처음 마셔봤냐고? 글쎄...... 기억이 없다.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 이후 인 것은 확실하다. 그 당시만 해도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는 착한(?) 청소년이었으니까(고딩 시절에 나에게 있어 커피는 술과 동격이었다). 커피를 처음 마신 때는 기억이 없지만 커피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계기는 기억이 난다.

사실 난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다. 커피 뿐만 아니라 차tea 종류를 좋아하지 않는다(지금도 남들 다 좋다는 허브차 혹은 달달한 레몬청같은 음료는 그닥...). 그러다 7년여전쯤 우연찮게 주변에서 커피 강의가 있었는데, 나야 당연히 관심이 없었지만 가까운 후배가 함께 들어보자고(혼자는 못 간다고) 떼를 쓰다시피 해서 함께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커피 공부가 재밌고, 신기하고, 쓰기만 했던 커피의 다양한 맛을 조금씩 구별해 낼 줄 알게 되고, 로스팅이 뭔지 커핑이 뭔지 하나둘 호기심이 채워져 강의 이후 자격증까지 손에 쥔 걸 보면 우연이 우연으로 끝나지 않은게 다행인 듯 하다. 

 

나의 인생 커피? 

이것도 글쎄......다. 사실 커피를 배우는 게 즐겁기는 했지만, 작가처럼 곳곳을 다니며 다양하게 커피를 맛 본 경험은 많지 않아서...... 굳이 따지자면 '과테말라 안티구아'. 단맛과 신맛을 썩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고소하고 부드러우며 맛이 도드라지지 않는 커피를 좋아한다. 주변에서는 과일향이 나는 원두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서 집에 누군가 올 때는 블렌딩 한 커피를 주로 내놓게 된다.

애정하는 카페? 

음...... 카페를 잘 안 간다(카페를 운영하는 작가가 들으면 반갑지 않은 말일테지만). 동네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카페에 선택의 폭이 넓어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책 한 권 들고 가 커피 한 잔과 독서에 집중할 만한 카페가, 집과 가까운 곳에는 애석하게도 없다. 대체로 오전 시간에 카페를 독식하는 분들은 삼삼오오 함께 오는 사람들이라 어쩔 수 없이 소리가 클 수 밖에 없다. 작가가 (운영하는 카페를 포함해) 다녀본 카페같은 장소가 없기도 하거니와 집에서 직접 내려 마시는 커피가 내 입에 제일 잘 맞기도 하다. 그래도 집 근처에 애정하는 카페가 한 곳은 있으면 좋겠다.

(친구는 직접 창업해 보라는데 돈도 없고, 사업은 새가슴이라 못한다, 지금하는 일에 만족하는 걸로.)

 

나에게 있어서 커피를 내리는 시간의 의미? 

뭐 신성하다거나 참선하는 시간까지는 아니더라도 커피를 드립하는 시간은 머릿속을 잠시나마 정리하는 시간이다. 이런저런 일로 생각이 뒤죽박죽일 때(이럴 때는 음악도 올리면 안된다) 커피를 내리고 있으면 그 따뜻함과 커피향이 생각을 좀 가라앉혀준다. 차를 즐기는 사람이 찻물을 우릴 때와 비슷하겠다. 이런 잠깐의 시간이 사람을 진정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할 때가 많다.

 

나는 어떤 커피를 마시고 싶은가? 

사실 많은 커피를 마셔보고 싶다. 이 책을 읽으니 더 그렇다. 작가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플랫화이트는 언젠가는 꼭 마셔보련다.

플랫화이트flat white : 에스프레 샷 두 잔에 따뜻한 우유를 넣고 그 위에 아주 약간의 우유 거품을 올린 커피 메뉴.

(에스프레소 샷이 한 잔이면 피콜로라테picolo latte) 

 

책을 읽고는 만들어보고 싶은 커피가 생겼다. '얼음 커피 우유' (p110)

연남동 모 카페의 메뉴라는데, 얼린 커피에 달콤한 무언가를 섞은 우유를 부어 내놓는 음료. 관건은 우유에 섞는 달콤한 그 '무언가'가 관건일 듯한데, 그게 뭔지 궁금하다는. 시럽과는 차원이 다른 달달함이라는데 뭘까......?

 

로마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커피의 끝에 도달해 봤다는 작가. 한국에서 먹는 에스프레소와는 많이 다를까? 이것도 궁금하다는. 

 

언제부터인가 마시던 커피만 마시고, 내리던 커피만 내리고, 사던 원두만 샀었는데, 책을 덮고 나니 용기를내서(용기까지...) 모험심을 키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채로운 것이 늘 좋은 건 아니지만, 때로는 다른 세계를 경험해 볼 필요도 있으니까.

 

 

'사람과의 관계도

그가 말한 아메리카노처럼 '

서로 섞이고 완벽히 녹아들 시간'이

필요한 것일 텐데

나는 왜 그리 성급하게 그를 놓아버렸을까?'

 

(p142)

 

 

 

 

이 겨울, 책 제목처럼 마주한 사람과 커피 향을 맡으며 섞이고 녹아들 시간을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기다려 주자.

 

 

 

 

사람과의 관계도 그가 말한 아메리카노처럼 서로 섞이고 완벽히 녹아들 시간이 필요한 것일 텐데 나는 왜 그리 성급하게 그를 놓아버렸을까?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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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철학 학교
요하네스 부체 지음, 이기흥 옮김 / 책세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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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시간을 초대해 맞이해야 한다. / 발터 벤야민 
 
인류가 생긴 이래 자유와 평화는 수호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영혼의 평화'에 대해서 말해보자고 한다. 언뜻 듣기에는 고루한 표현이다. 요즘 누가 영혼 운운해 가면서 평화 타령을 한단 말인가. 그럼에도 다시 질문을 해 보자. '영혼의 평화'란 무엇일까? 저자가 던져 놓은 질문처럼 일종의 휴식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무위 즉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일까,  완벽한 상태를 일컫는 것일까. 
 
현대의 철학자와 사회학자 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온전한 자유와 평화는 이룰 수 없다고 말한다. 뚜렷한 목적 없이 더 많이 소유해야 하고,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타인과의 비교로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평화롭지 않다. 반대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시작이 공정하지 않은 사회에서 개인이 이룰 수 있는 목표는 한계가 있고, 무엇을 해도 돈이 드는 사회에서 돈이 없는 사람들은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자유롭지도, 평화롭지도 않은 이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러한 궁금증을 안고 이 책을 읽는다면 좀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27.
어떤 이들은 '독촉당하고, 닦달당하는 느낌' '세상에서 지속적으로 현전하는 느낌' 혹은 존재감과 성취감을 좋아할 수도 있다. 가령 '중요한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는 휴식과 거리가 멀다.  

 
얼마 전 초등생이 "사는 게 힘들어요."라는 말을 했다. 이 친구 뿐만 아니라 많은 초등생들이 중학생과 다를바 없이 일주일 내내 학원 순례를 한다. 한번 사교육 시장에 진입한 아이들은 그때부터 쫓기는 인생을 시작한다. 남들보다 선행해야 하고, 대학은 현역으로 in 서울 해야하고, 졸업에 맞춰 취업은 말할 것도 없고, 취업을 하면 승진에서 누락될 수 없으니까 아침 저녁으로 학원이나 인강을 들으며 자기계발에 힘써야 한다. 그러다 보면 퇴직할 때 까지 시험이고 경쟁이다. 쓰다보니 도대체 이런 인생을 왜 살아야하나 싶지만, 그러한 경쟁 안에서 이룬 성취감 또한 희열을 느끼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67.
우리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떠밀려 살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자주 절감하는가. 다른 사람의 기대를 채워주기에 바쁘고, 아첨을 해서라도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안달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스스로 결단하여 행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무이기 때문에 성찰 없이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일에 대한 이러한 열정은 우리를 자주 배반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작 '쉼'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만도 한데, 이것 역시도 경쟁적으로 이뤄진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휴식이 무엇인지 보다는 요즘 가장 핫한 휴가지는 어디며, SNS에 올리기에 좋은 뷰가 보이는 곳은 어디인지, 방송에서 다뤄진 음식점은 어디인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그곳에 다녀왔다는 인증샷을 개인 SNS에 업로드하고 구독자 수를 늘리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놀이이자 휴식이다. 결국 현대인은 끝없이 경쟁하고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것에서 행복하다고 느낀다. 과연 행복하다고 느낀 행복감은 행복일까? 
 
 
이에 저자는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정신의학에 대해서 언급한다. 
 
97.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 수치로 계산할 수 있게 하여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시도에 저항하라. 이는 의심스럽고 일종의 환상에 불과하다. 영혼의 불안을 야기하는 근원 중 하나이다. (...) 현실의 삶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늘 "임시방편적인 태도로" 대응하기 때문에 자신에게서 도망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불확실성과 불완전성을 받아들여 공존하기, 두려움을 부정하지 않되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기, 비극적인 것을 합리화하는 태도는 유익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바로 이것이 성숙한 삶의 태도라 할 수 있다.  
 
106.
"당신은 내일의 주인이 아니면서 지금 누려야 할 즐거움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삶은 내일로 미끄러지고 우리는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죽어 간다." 중요한 것은 죽음에 대한 병적인 동경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고유한 가치와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성공이나 실패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다. 
 
117.
정말 중요하고 커다란 선을 위해서 분수를 지키라고 충고한 에피쿠로스는 소박하고 욕심 없는 삶을 지향했다. 불안정의 원천이 되는 질투를 잠재우면 적지 않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122.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미래만 바라보면서 이 순간 오로지 죽기 살기로 일만 하는 사람은, 우리 시대에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숨 가쁜 분주함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 점을 게르트 아헨바흐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모든 시간을 가진 셈이지만, 현재의 짧은 순간이나 "아직 오재 않은" 미래에 시간을 한정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시간의 많은 부분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이다. 

  
 
사람은 자신이 쓸모 없는 인간, 즉 잉여인간이 될까봐 불안하다. 존재감 없는 삶, 이것이 사람을 노심초사하고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로 몰아가게 만든다. 이에 저자는 에피쿠로스의 말을 빌어 친구(우정)의 의미와 유용성에 대해서 말한다. 우정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호신뢰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160-161.
우정의 성공 비결은 친구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지 않고 마구 밀어붙이지 않는 것이다. (...) 완벽한 우정조차, 우리가 우정을 이유로 모든 의문에 답하려 하거나 동경해 마지 얺던 것을 반드시 얻으려 들 경우에는 깨질 위험이 있다. 

 

 
나 하나 스스로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에 우리는 정작 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167.
나는 자신을 한편으로는 타자로 봐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 자신"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내가 특정한 자아이기는 해도, 유일무이한 자아는 아님을 인정할 때만, "나"는 하나 이상의 '나'임을 실토하고 인정할 때만 가능하다.  

 
위의 글에 무척 공감이 갔다. 내가 나를 객관화해서 직시하고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야만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낙담하지 않을 수 있고, 종종 내 몸과 영혼을 놓아주어 쉴 수 있는 시간이 죄스럽지 않을 것이다.  

 

 

"나이 어린 소년도 철학하기를 꺼려서는 안 되고, 나이 많은 노인도 철학하기를 피곤해해서는 안 된다. 영혼의 건강을 얻는 데 너무 이른 나이도 없고, 너무 늦은 나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직 철학을 할 때가 아니라느니, 때가 이미 지났느니 하는 식으로 둘러대는 이가 있다면, 그는 행복을 느낄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았거나 이미 지나가 버렸다고 말하는 사람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 에피쿠로스)

우리 자신이 우리의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더 깊은 경멸을 담아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빠져나오질 못한다 (세네카). 지옥은, 장-폴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타인아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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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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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은 어머니의 장례식에 지각했다.

첫문장

 

암 말기 선고를 받고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빅 엔젤은 전국에 흩어져있는 가족을 불러들여 아무도 잊지 못할 자신의 완벽한 마지막 생일 파티를 하고자 마음 먹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의 생일 전날에 100살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게 되다니! 

 

13.

'어머니, 아직 돌아가시면 안 되는 거였어요.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요. 아시잖아요. 이미 너무 힘들다고요.' 

 

빅 엔젤이 뜻한 바는 아니었지만, 마마 아메리카의 장례식과 그의 생일 파티를 위해 전역에 있는 사돈의 팔촌까지 가족이 하나둘 모여든다.  

 

빅 엔젤의 어머니 마마 아메리카의 장례식과 빅 엔젤의 마지막 생일 파티를 위해 오해와 미움으로 분열되었던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면서 솔직한 마음을 서로에게 털어놓고 진실을 얘기하며 용서와 화해를 이루는 따뜻한 소설이다. 

 

데 라 크루스 집안은 멕시코 이민자다. 돈 안토니오는 당시 다수의 가장이 그랬듯 가부장적이고 훈육을 매질로 했지만 든든한 울타리였고 빅 엔젤에게는 영웅같은 존재였다. 어느날 느닷없이 이모부에게 보내져 배를 타게 된 빅 엔젤. 이모부의 학대와 폭력을 더이상 참아낼 수 없없던 그가 생각없이 흔들어 대던 갈고리에 이모부가 맞아 배에서 떨어져 다시 떠오르지 못했다. 그에 대한 죄책감은 엔젤을 평생토록 짖누른다. 지치고 무서웠던 그 시절을 버틴 빅 엔젤의 한 마디,  

 

244.

"나는 가치 있는 놈이야. 난 가치 있는 놈이야."  

  

 

집으로 돌아온 빅 엔젤. 그러나 아버지의 부재. 돈 안토니오는 경찰 업무를 핑계로 외도를 했던 '미국인' 여성에게로 떠났다. 장남이지만 아직은 어린 빅 엔젤은 졸지에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먹고 살길을 찾아야 했고, 아버지 없는 성탄절을 보내야 했다. 아버지를 대신해, 아버지처럼 영웅이 되어야 한다. 아버지를 뺏어간 그 미국인 여자와 그 여자와 아버지의 아들인 리틀 엔젤이, 빅은 죽도록 싫었다. 

 

맏형이 무서웠지만 가까워지고 싶었다. 엄마가 아버지를 쫓아내고 엄마와 둘이 남아 궁핍했던 어느 성탄절, 찾아갈테니 걱정 말라던 형의 전화에 리틀 엔젤은 기뻤다. 그러나 기다려도, 기다려도 형은 오지 않았다. 그 수모와 절망감. 어쩌면 그 분노가 리틀 엔젤을 살 수 있도록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삶은 원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빼앗았다는 죄책감이, 백인 혼혈이라는 손가락질이 왜 내 몫이어야 하는가.   

 열여섯 살에 아버지의 경찰서에서 처음 만난 페를라. 빅 엔젤은 한눈에 그녀를 영원히 사랑하게 되리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그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그녀는 두 아들ㅡ인디오, 브라울리오ㅡ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페를라는 빅에게 다가가는 것을 머뭇거리지만 결국 둘은 결혼한다.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안토니오에게 배우지 못했던 빅 엔젤은 두 아이, 특히 인디오와 관계가 어긋나고 깊은 골이 생긴다. 돌아올 수 없는 브라울리오.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꼭 보고 싶은 사람 중에 하나인 인디오. 빅 엔젤은 인디오에게 용서를 받고 싶다.  

 

489.

"네가 보고 싶었다. 넌 내가 보고 싶었니? 널 다시는 못 보게 될까 봐 무서웠다, 아들아."

  

 

소설은 만 이틀 동안 벌어진 일들을 쓰고 있다. 한때는 대가족을 호령했던 빅 엔젤은 일흔 살에 말기암을 진단 받고, 침대에서 혼자 일어나지도, 혼자 용변을 볼 수도, 씻을 수도, 휠체어 없이는 걷지도 못한다. 사랑하는 페를라와 외동딸 미나만이 자신의 곁을 지킬 뿐이다.  

장례식과 파티에 모인 사람들은 병약하고 노쇠한 빅 엔젤을 보고 우울해 하지 않는다. 잠시 놀랄 뿐, 그들은 늘 그랬다는 듯이 욕설을 내뱉고 그들의 시간을 보내면서 지나온 세월을 더듬는다. 남몰래 형부를 짝사랑했던 루피타, 본의 아니게 조카들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꼴이 된 짐보, 화려하지만 방황하는 라 글라리오사, 의붓 아버지와 용서를 주고받고 싶은 인디오, 남자보다 더 집안을 잘 이끌어가는 미나, 그리고 긴 세월 동안 오해와 미움으로 거리를 뒀던 빅 엔젤과 리틀 엔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며 깊은 회한을 흘려 보낸다. 

빅 엔젤은 모두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특별한 놈이 아니야.

그냥 한 여자의 남편이고, 아이들의 아빠였지.

일하는 남자였고,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는데."

그는 말했다.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p101

  

 

그러나 사람들은 죽음을 앞에 둔 그에게 '당신은 우리의 영웅'이라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빅 엔젤은 그저 그들을 지켜주고 싶었다. 때론 비겁했고, 위악을 부렸고 싫어서가 아니라 두려워서 피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삶이 좋았다. 

 

507.

" 좋은 인생이었어."  

깊은 밤, 죽지 말라는 리틀 엔젤의 귀찮은  전화가 그를, 행복하게 한다. 

 

빅 엔젤은 어머니의 장례식에 지각했다.

죽음이라. 참으로 우습고도 현실적인 농담이지. 노인들이라면 어린 애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 하는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모든 수고와 욕망과 꿈과 고통과 일과 바람과 기다림과 슬픔이 순식간에 드러낸 실체란 바로 해질녁을 향해 점점 빨라지는 카운트 다운이었다. - P149

"내가 왜 걔들을 두고 가야 해?"
"믿으라고."
"이 거지 같은 데이브 놈아. 넌 망설여본 적도 없어?"
"왜 없겠어. 당연히 있지. (...) 그게 바로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는 거야, 친구. 아무도 피해갈 수 없지. 자네가 의문을 품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하나도 의미 없겠지만. 그게 바로 만사를 현실적으로 만드는 거지. 그게 우리를 사람답게 만드는 거라고. 하느님은 천사를 보내서 요정처럼 날갯짓을 하게 시킬 수도 있었고. 우주 유람선에다 럼 펀치와 만나를 실어 보내실 수도 있었어. 하지만 그랬다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었겠어?"
- P365

"미겔 엔젤. 죽는 건 어렵지 않아. 다들 죽는다고. 심지어 파리도 죽지.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죽어가고 있어.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가 없다고.(...) 자네의 인생 여정이 나와 조금 다른 것 뿐이야. 죽음이란 시카고행 열차를 잡아타는 것과 같아. 노선은 백만 개나 되고, 기차는 모두 밤에 운행하지. 어떤 기차는 완행이고, 어떤 기차는 급행이야. 하지만 모두 낡고 커다란 기차 보관소에 있어.(...)" - P366

모든 사람은 비밀을 품고 죽는다. 빅 엔젤은 분명히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가장 끔찍한 사실을 안전하게 숨긴 채로 죽을 테니까. 삶이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또한 타인으로부터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긴 투쟁이다. 이것이 그의 가장 은밀한 비밀이었고, 그건 결코 죄가 아니었다. 다만 그가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것 뿐이었다. - P466

비로소 자신이 왜 아직 죽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다. 불꽃이 휘몰아쳐다. 자신의 각성을 즐기기 위해 살아 있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아직 살아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가족을 단합시키기 위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살려 했던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알게 되었다. 이 빛의 회오리가 참 예쁘구나. 바로 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살아 있었던 거다. 그의 막내 아들. 빅 엔젤은 세상에서 가장 영웅적인 행동을 한 참이었다. 그는 이제 분노가 아니라 기쁨에 차서 씩 웃었다. 세상 모든 책에 쓰인 세상 모든 형사들의 활약을 능가했다. 그는 자신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리틀 엔젤에게 보여주었다. 모든 사람 앞에서 말이다. - P487

매일 오는 그 1분은 모든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황금 거품을 창조하는 것과 같다.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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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시지 1 패시지 3부작
저스틴 크로닝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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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ㅡ PASSAGE TRILOGY 1

[인류 멸망 5년 전]

미국 정부는 강력한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바이러스를 개발하기 위해 볼리비아 정글로 조나스 리어 박사를 중심으로 한 연구단과 군대를 파견한다. 탐사 도중 갑작스럽게 박쥐 떼의 공격으로 파견단은 대부분 사망한다. 몇 년 후 군 주도 하에 '노아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프로젝트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험체가 필요하다. 이 실험체를 데려오는 임무는  FBI의 울가스트와 도일 요원이 맡고 있다. 

 

한편, 형편이 어려운 지넷은 생계를 위해 매춘을 하던 중 실랑이가 벌어져 의도치 않게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어린 딸 에이미를 때마침 눈에 띈 수녀원에 맡기고 도망을 간다. 수녀원에 혼자 남아있던 레이시 수녀는 에이미를 받다주고 내전 중인 고향에서 탈출한 이력이 있는 그녀는 에이미에게 남다른 감정이 생긴다. 에이미를 동물원에 데려간 레이시, 열세 번째 실험체인 에이미를 데리러 온 울가스트와 도일, 울가스트 또한 에이미를 보자 첫돌 전에 죽은 자신의 딸 에바를 떠올린다. 그때 동물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소동이 일어나고 그 소동을 틈타 요원들은 에이미를 데리고 그곳을 벗어난다.  

우여곡절 끝에 '노아 프로젝트' 실험실에 도착한 에이미와 울가스트. 그동안 조나스 리어 박사의 연구는 몇 명의 실험체를 거쳐 뱁콕이라는 살인범을 첫 시작으로 성공을 알린다. 이후 열두 번째인 카터를 끝으로 실험을 마치고, 에이미를 통해 완성체를 이룰 것이다. 하지만 수술을 마친 에이미는 깨어나지 못하고, 에이미와 교감했던, 감금 중인 울가스트를 불러내 그녀를 깨우고자 한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실험체 '트웰브'는 탈출하고, 그들에게 물리면 죽지도 살지도 않은 괴물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과 무차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실험체들로 인해 연구소는 아비규환이 된다. 깨어나지 못하는 에이미를 안고 도일과 레이시의 도움으로 탈출하는 울가스트. 이제는 딸과 아버지가 된 두 사람은 산 속으로 숨어든다. 그리고 뱀파이어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으로 인류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소식만 가끔 확인하던 어느날, 두 사람은 핵폭탄이 터짐을 목격한다. 이제 인류는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누군가를 살려야 한다.

[제로의 시대]

388(1).

그때 누군가가 나를 들어 올렸다. 아빠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덩치가 크고 뚱뚱한, 수염을 기른 백인 남자였다. 그 남자가 내 허리를 붙들고 낚아채더니 다리의 반대쪽 끝을 향해 달렸다.(...) 그 남자는 누가 이 아이를 받아 달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때 누군가가 내 다리를 붙잡더니 나를 끌어 내렸고 다음 순간 나는 달리는 열차 속이었다. 열차에 탄 뒤 나는 깨달았다. 이제 엄마도, 아빠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알고 지냈던 어떤 사람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391-392(1). 

여기는 지금부터 우리가 살아갈 곳이야. 성벽과 조명들이 우리를 점프들에게서 안전하게 지켜줄 거야. 노아 이야기 기억나지? 여기가 바로 방주야.(...) '최초의 사람들'은 전부 죽었다. 대부분은 오래전에 죽거나 감염되었고 이제는 아무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내가 느끼는 것은 내가 느끼는 것은 슬픔이 아니다.(...) 생각할 때 가장 고통스러운 것들은 스스로 생명을 놔버린 사람들이다. 슬픔 때문에, 걱정 때문에, 아니면 인생의 무게를 더는 감당하고 싶지 않아 자기 손으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 하지만 아마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나이가 들어서라고 생각한다. 예전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이 머릿속에서 마구 뒤섞인다. 이제 내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 사람들은 나를 '앤티Auntie'라고 부르는데, 나에게 자식이 없기 떄문이다.(...) 이곳이 지금부터 우리가 살아갈 곳이었다. '최초의 밤', 조명이 켜지고 별들이 꺼진 그날 밤 우리는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다시는 별들을 볼 수 없었다.

 

 

[콜로니, 그리고...]

핵폭발 이후 10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살아남은 인류는 '귀환의 날'까지 규칙을 만들어 질서를 유지하고 법을 수립해 공동 생활을 이뤄낸다. 파수, 육체노동, 조명 및 전력, 농업, 가축, 상업, 제조, 성소(교육), 병원 등 7개 사업 부문으로 구성된 업무를 분담한다. 그들은 '귀환의 날'이 오면 군대가 그들을 찾아내리라 희망하지만, 파수꾼들의 '긴 여정'을 통해 아마 군대는 없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주민들은 바이럴의 공격을 피해 콜로니 밖으로 나가지 않지만 전기를 공급받는 발전소에 가기 위해 정기적으로 게이트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그날도 다를바 없이 물자 수송을 위해 발전소로 향하는 테오, 피터, 알리시아, 아를로. 언제 어디서 바이럴이 나타날지 알 수 없어 경계를 늦출 수 없다. 그런데 도착한 발전소에는 아무도 없다. 무슨 일일까? 이 상황에 알리시아는 피터에게 숨겨진 총들을 보여준다. 총이라니! 그 사이 몰려드는 바이럴 들. 괴물들과의 전투로 사면초가에 몰린 원정대는 뿔뿔이 흩어지고 피터는 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때 나타난 한 소녀. 열다섯 살 쯤 됐을까? 그녀는 엎드려 있는 피터의 몸 위에 자신의 몸을 덮고 숨을 죽이며 바이럴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리고 소녀와 영혼의 대화를 하는 피터. 그는 이 상황이 당황스럽다.  

 

116(2).

피터는 또다시 이 대화가 기묘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 마치 머릿속에서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피터가 아이에게 소리내어 대답을 하고 있는 모습을 누구라도 본다면 분명 피터가 돌아버렸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이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형 테오를 잃고 가까스로 돌아온 콜로니는 이 소녀의 등장으로 갈등이 시작되고, 심지어 사건 사고가 연이어 터진다. 에이미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누군가와 대화하고, 콜로니 주민들은 소녀가 불행을 몰고왔다고 생각한다. 소녀를 지키려는 자와 죽이려는 자. 이제 피터와 친구들ㅡ알리시아, 마이클, 사라, 케일럽, 홀리스, 모사미ㅡ는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지도가 가리키는 콜로라도를 향해 떠난다. 소녀, 에이미와 함께. 

 

74(2).

공포가 사람들ㅡ그가 잘 아는,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살림을 꾸리고, 성소의 아이들을 찾아가던 사람들ㅡ을 성난 군중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불과 어제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 

 

책의 내지가 쑥쑥 넘어갈 정도로 무척 재미있지만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었다.

먼저 사라가 기록하는 일기. 그들의 여정을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다는 피터의 제안에 사라가 그 역할을 맡는다. 사라가 남긴 기록에 '발췌', '해독 불가'라는 단어가 쓰여진 것을 보면 이 일기는 세월이 지나서 누군가에 의해 발견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일기가 보여지는 방식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언어와 기록의 중요성을 작가가 언급한 것 같아 좋았다. 

 

사라 피셔의 일기 (사라의 서) 중에서

무언가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이상 두려움조차 예전과는 다르다. 콜로라도에 가면 그것을 찾을 수 있을지, 우리가 정말 콜로라도까지 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게 정말 중요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오랜 세월 군대가 오기를 기다린 끝에 알게 된 것은 우리가 바로 그 군대라는 사실이다. 

232(2).

 

사라가 원하는 것은 지극히 단순한 것이었다.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 사라는 운명을 믿지 않았다. 세상이란 그보다 훨씬 위태로운, 수많은 불행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는 일의 연속이었다

464(2).

 

 

1부의 막바지에 에이미가 예상 밖의 인물과 해후하는 장면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그들이 그런 모습만 아니였다면(그 모습이 아니였다면 해후가 가능하지도 못했겠지만) 얼마나 좋았을까. 그들과의 해후가 에이미에게는 위로가 되었을까. 이 만남으로 인류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알게 되는 피터와 일행들. 이제 그들은 단순히 개인의 목적을 넘어선 '사명'을 떠안는다.

알리시아를 살리기 위한 선택. 그후 에이미의 완벽한 조력자가 되기 위한 피터의 결심과 마이클, 홀리스가 피터와 함께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장면에서 조금 아쉬워지려고 했는데, 에이미의 선택은 나의 섣부른 예상을 민망하게 했다.

미안해요, 피터.

하지만 피터를 나처럼 만들 수는 없었어요.

554(2).

 

아무리 선의의 목적을 가지고 있더라도 과정이 올바르지 않으면 정당성을 잃는다는 이 선택을 에이미가 했다는 사실이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뭉클했다면 내 감정이 넘치는 걸까?

554(2).

그 여행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었다. 에이미라는 존재 그자체와 마찬가지로, 이 여행 역시도오로지 믿음 하나만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한참 읽다보니 재미있는 사실 발견. 8인의 원정대 구성을 보면 리더(피터), 전사(알리시아), 기술자(마이클), 노동자(홀리스, 아를로), 임산부-어머니(모사미), 의료(사라), 그리고 구원자(에이미). 이 사회를 구성하는 보통의 인물들이다. 세상은 천재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이 조화를 맞춰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될 것이다.

1부 마지막.

로즈웰 전지에서 안정을 찾아가면서 홀리스의 아기를 임신한 사라는 희망이, 행복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만 같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이, 독자는 불안하다.

그 단어가 뭐였더라? 행복하다.

그래, 나는 행복하다.

바깥에서 총성이 들린다.

나가봐야겠다.

마지막 문장

PASSAGE 3부작 중 1부.

뱀파이어를 등장시킨 인류 멸망에 관한 소설이다. 비평가와 각종 매체들은 코맥 맥카시의 <로드>와 견주는 것을 비롯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로드>와 이 작품은 결이 다르다는 생각이다. 사실 <로드>는 구성이나 재미를 따지자면 선뜻 쉽게 손이 가는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로드>는 인류 종말의 원인이나 사건보다는 인간 내면, 본질에 접근하는, 그래서 인류의 희망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보다 철학적인 소설이다.

이 작품 <패시지>는 과도한 폭력을 욕망하는 인간의 과오가 인류 종말의 원인을 제공하고, 종말을 눈앞에 둔 순간, 그로인해 희생된 소녀가 역설적으로 인류 구원의 희망이 되는 판타지 소설이다. PEN/헤밍웨이 상을 포함해 여러 상을 수상한 작가의 필력이나 구성, 밀도감, 몰입도는 칭찬이 아깝지 않다. 엄청난 떡밥도 모두 회수한다. 소소한 반전 또한 흥미를 높인다. 두께의 압박은 있지만 시간을 들여 읽어도 아쉬움이 없을 것이다. 1부 <패시지>는 등장인물들에게 동기부여를 했을 뿐이다. 이들의 본격적인 여정을, 나는 기다리는 중이다.

아름다운 그대여,

내 눈에 그대는 영영 늙지 않는다.

처음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그대 아름다움은

변치 않으리라. 

셰익스피어, 소네트 104번

‘문득 나타난 소녀‘, ‘난데없이 나타난 자‘, 천 년을 산 ‘최초이자 마지막이며 유일한 자‘가 되기 전 그녀는 아이오와주에 사는 에이미라는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 에이미 하퍼 벨라폰테가 그녀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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