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예찬 - 타자 윤리의 서사 예찬 시리즈
왕은철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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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누구이든 무엇이든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기 위해서는 환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환대는 어떤 것이 존재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거나 알지 못해 고마움을 모를 뿐이다.

책머리에

 

 

환대의 정의는 국어사전에 의하면 '반갑게 맞아 후하게 대접함'이다, 저자는 환대가 우리의 본성인 것만큼이나 타자를 두려워하고 배격하는 것도 우리의 본성이며, 두 개의 상반된 본성이 빚어내는 현상과 그것의 윤리성에 주목한다고 했다.

저자는 철학자 데리다와 레비나스의 '환대'에 대한 개념을 바탕으로 삼아 성경의 '창세기'와 '판관기',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흰',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 권정생 선생의 '몽실 언니', 석가모니가 들려주는 '수대나태자경'을 통한 보시, 디아스포라, 이스라엘ㅡ팔레스타인 문제, 도스토옙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영화 '타인의 삶', 오에 겐자부로 선생, 소설가 최은영의 '신짜오 신짜오', 그 외에도 소설 해바라기, 나의 미카엘, 가시선인장, 야만인을 기다리며, 필경사 바틀비,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밤비 등의 문헌을 통해서 진정한 환대의 의미, 이론과 실천의 괴리, 실천적 행동으로 보여지는 환대, 환대와 애도, 환대와 용서 등 현 사회에서 보여지는  타자성의 존중 즉 환대에 대해 짚어본다. 

 

<환대의 전통 윤리와 폭력의 경계>

자신의 집에 들인 손님을 폭력배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딸과 손님의 아내를 제물로 내놓는 것이 과연 환대인가? 맹세한 보시를 지키기 위해 왕자의 신분으로 적국에 자국의 중요한 보물을 주고, 아내와 아이까지 타자가 원한다고 해서 건네주는 것은? '창세기'의 롯과 '판관기'의 노인, '수대나태자경'의 왕자는 모르는 남에게는 끝없는 환대와 보시를 베풀었을지언정, 정작 가족에게는 폭압을 행사한 모순이 따른다. 이는 가족에 대해서는 타자화 하지 않았으므로 모든 이에게 환대를 베푼다는 관점에서는 성립되기 힘들다. 

위의 내용을 통해서 환대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윤리다. 하지만 그 윤리 안에 가부장적 관습을 기반한 여성폭력을 통반한다면 이를 윤리적으로 볼 수 있을까? 역사 안에서 실현된 환대와 폭력의 경계를 생각해 볼 일이다.  

 

진정한 환대에는 때로 희생과 고통이 따르고, 하나의 윤리를 위해서 다른 하나의 윤리를 저버리기도 한다. 환대는 끝없이 내놓어야 하는 것. 그렇다면 환대에는 완성형이 있을 수 없다. 결국 '어떤 경지에 도달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자꾸만 뒤로 미뤄지는 그 경지를 향해 나아가는데 목적이 있다(p64)'고 저자는 말한다.

 

 

<겸손, 인정, 사랑, 용서의 환대, 그리고 실천의 괴리>

우리는 종종 섣부른 공감과 이해로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그리고 자신의 기준에 맞춘 배려는 무리에 동화시키려는 전체주의와 다름하지 않다. 환대할 수 없는 대상을 환대하는 것, 타인의 타자성을 인정하는 것, 타자의 슬픔을 재단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상대를 위로하고 같이 울어주는 것이 진정한 환대다.   

타자성을 존중하며 '나와 당신'의 관계를 놓지 않는 것이 가지는 힘. 그러나 실천은 녹록치 않다. 소설 '신짜오 신짜오'에서 투이의 엄마와 화자의 엄마가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은 현실에서 보기 어렵다. 이는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었다면 최소한으로 가져야할 윤리다. '상처와 고통 앞에서 논리는 아무런 소용도 없고, 논리를 통한 자기합리화는 비정하고 폭력적(p219)'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자신을 타자에 앞세우는 존재론은 폭력적일 수밖에(p231)' 없다. 어떤 대상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 자기 만족에 불과하다면 보이는 결과와 상관없이 이는 환대라고 볼 수 없다. 쉬운 예를 들어 기부를 하는 행위가 환대로 보여지겠지만, 기업의 이미지 홍보나 개인의 명예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환대라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월의식까지 내포하고 있다.

타자성을 존중하며 '나와 당신'의 관계를 놓지 않는 환대가 필요하다.

  

 

<실천적 행동으로 보여주는 환대>

영화 '타인의 삶'에서는 비즐러는 이득은 커녕 그로인해 자신의 안위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도청 대상에게 도움을 준다. 소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에서 브루노가 슈무엘에게 주는 따뜻한 음식과 마음도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환대의 실천적 행위다.

이처럼 환대는 아무런 보상도 기대하지 않고 위태로운 모험을 감수하며 그냥 주는 것이다. 환대는 것이다. 머리나 이성이 아닌 마음이 움직여야만 가능하다. 논리와 이성이 먼저 움직이는 순간, 이미 환대는 끝났다.

  

 

<배제하지 않는 환대>

저자는 레비나스의 인간중심적인 환대이론보다 데리다의 확장적인 환대이론이 더 윤리적이며, 환대의 본질에 가까다고 말한다. 동화 '밤비'의 내용을 빌어 동물은 인간의 마음대로 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전한다. 인간이 지구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는 망가질 뿐이다. 수많은 사회학자, 자연과학자들이 탈 인간중심을 외치고 있는데, 이것이 환대라니, 우리는 환대에 대해서 만큼은 아주 기본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나 보다. 

 

 

환대는 댓가나 교환 개념이 개입하지 않은 조건 없는 순수한 선물이다. 그리고 진정한 환대는 타자가 타자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 또한 상대를 배려하지 않은 환대는 의미를 잃는다. 무조건적인 환대는 인간 세상에서 어려운 일이다. 개인주의를 선호하는 현대사회에서 환대는 부재 중일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지구 곳곳에 흐르는 눈물은 마를 날이 없다. 

 

 

애정하는 수많은 소설들을 번역한 왕은철 님이 쓴 환대에 대한 에세이다. 오랜만에 집중해서 깊이 빠져 읽은 산문이다. 어느 틈엔가 놓아버린 것들에 대한 상념ㅡ다수 혹은 개인, 소소한 신념, 나와의 약속, 허울뿐인 배려, 흔들리는 이해와 공감ㅡ들에 에 빠져 읽었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에도 나는 여전히 환대가 어렵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한 적극적 이해를 통한 공감을 위한 노력은 계속 할 것이다.

이 뼈있는 글들을 일일이 옮겨 적을 수 없지만, 본문에 있는 박완서 선생의 말씀으로 대신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알려고 하고, 그것을 함께 하고, 나누어 가지려는 사람의 선의처럼 소중한 것은 없다. 그러나 누가 감히 타인의 고통을 참으로 알았다고 할 수 있으랴, 타인의 고통에 대해 참으로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두려운 오만은 없을 것 같다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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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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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엔푸쿠테이에서 일하는 후지마루. 언젠가는 엔푸쿠테이의 주인 쓰부라야처럼 멋진 요리사가 되는 꿈을 키우며 열심히 일한다. 열흘에 한 번 T대 자연과학부 식물학 교수 마쓰다 연구팀에 점심을 배달하면서 후지마루는 식물의 세계를 처음 접하게 된다. 마쓰다 교수팀의 대학원생인 모토무라를 통해 좀더 식물에 가깝게 접근하고, 팀원들과도 친해지면서 (식물)과학을 향한 연구자들의 순수한 열정에 감동한다. 

 

모토무라의 배려로 연구 중인 애기장대 잎의 단면을 현미경을 통해 처음 본 후지마루는 새로운 세계를 맛보며 연구 열정이 가득한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두 번 고백을 하지만 모두 거절 당한다. 비록 거절당했지만 모토무라가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 연애와 결혼의 의사가 없기 때문임을 밝혔으므로 그들은 여전히 친구같은 관계를 유지한다. 

 

 오로지 식물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개인 생활을 포기하면서 매진하는 연구원들. 그 과정에서 식물학을 연구하는 학생이나 연구원들의 고민 들이 드러난다. 기업에 취직한다는, 학교에 남아 교수가 될 수 있다는, 창업이 가능하다는, 그 어떤 미래도 보장되지 않은 학문의 길. 그 길 위에서 이미 경제적 자립을 이룬 동년배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때때로 여러 의미에서 불안하지만, 연구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기 위해 서로 위로와 격려를 주고 받으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다. 

 

161.

"그러나 '배가 고프니까' '맛있고 예쁘니까'라는 기분은 인간의 깊은 곳에 자리한 중요한 욕구입니다. 기초연구도 같은 욕구로부터 출발하는 겁니다. '알고 싶다'는 마음은 공복감과 비슷해요.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지 않고는 배갤 수 없기 때문에 연구하는 겁니다.

식물(연구)와 결혼했다고 단언하는 모토무라는 '잎사귀 제어 시스템' 연구를 목표로 애기장대의 사중변이체를 성공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혼신을 다한 노력 끝에 드디어 사중변이체 떡잎을 성공시킨 모토무라. 논문 발표만 남겨둔 상황에서 오류를 발견한다. 처음 계획했던 'AHHO' 유전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실수로 'AHO' 유전자가 들어가 버린 것이다. 'AHHO'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AHO'로 하기에는 '잎사귀 제어 시스템'의 연관성을 확신할 수 없다. 모토무라는 고민 끝에 마쓰다 지도교수에게 털어놓는데, 마쓰다는 질책보다는 대안과 위로를 전한다. 

349.

깜빡 실수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선입견 없이 잘 관찰하고 성실하고도 공정하게 계속 사실을 기록한다. 실패로 끝난다고 해도 생각을 거듭해서, 이 세계의 이치에 조금씩 다가가기를 계속한다. 자신의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왜"라고 질문을 던지며 수수께끼의 근본을 향하여 계속해서 연구한다. 그것이 실험이며 연구다. 

  

학창시절 공부와는 담쌓고 산 후지마루지만 모토무라를 비롯한 연구원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무엇인가에 진지한 애정을 갖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집중한다는 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러면서 자신이 요리를 대하는 마음도 이와 같다는 생각에 설레고 흐뭇하다. 

18.

자른 채소를 불빛에 비춰보면서 굉장하구나, 하고 빠져드는 때가 있다. 이것저것 다 누군가가 설계도에 기초하여 만든 것같이 아름답고 정묘하다. 채소만이 아니라 생선 내장의 배치, 뼈의 형태, 눈알이나 비늘의 질감도. 그때마다 후지마루는 생명체를 먹는 거구나, 하고 느낀다. (...) 후지마루는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었지만, 결국 요리란 건 생과 사를 잇는 멋진 행위라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개념과 감정이 없이도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번식을 하는 것이 식물에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면 호감을 느끼고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임을, 그것이 부담스럽고 불편한 일이 아님을 모토무라는 후지마루를 통해서 천천히 깨닫는다. 그녀가 사랑을 무겁게 여기지만, 그 무거움을 이기는 행복감을 느끼는 걸 보면 식물이 자라듯 모토무라 또한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96.

"식물에는 뇌도 신경도 없어요. 그러니 사고도 감정도 없어요. 인간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도 왕성하게 번식하고 다양한 형태를 취하며 환경에 적응해서 지구 여기저기에서 살고 있어요. 신기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 그래서 저는 식물을 선택했어요. 사랑 없는 세계를 사는 식물 연구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누구하고든 만나서 사귀는 일은 할 수 없고, 안 할 거예요." 

255.

'사랑이 무겁다......'라고 모토무라는 생각했다. 후지마루가 가라아게에 담은 사랑은 깨닫지 못했지만, 즐거워하는 부모님의 모습에서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는 느낄 수 있었다. 무겁지만 행복하다.  

내성적인 가토가 선인장을 매개로 후지마루와 사이가 좋아진 것, 대학원 시절 자신이 부탁한 사진을 찍기 위해 산에서 추락사한 친구에 대한 자책감을 안고 있는 마쓰다 교수, 오랜 연구원 생활로 연인과의 관계가 원만치 않은 이와마, 연구를 빙자해 대학 잔디밭에 식자재로 사용할 고구마를 심은 모로오카 교수 등 소소한 에피소드들 잔재미를 주지만, 무엇보다 자연과학부 식물 연구소와 온실 등을 묘사한 장면들이 삽화 한 컷 없이 독자로 하여금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소설의 구성은 이렇다 할 만큼 독특한 면이 많지 않고, 스토리 또한 극적인 사건 없이 일상적이고 평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재미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처한 상황에서 애쓰며 살고 있는 건 모두 똑같다는 후지마루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렇지"를 연발하면서 따뜻한 늦겨울 햇살이 쏟아져들어 오는 창가에 앉아 이 소설을 읽고 있자니, 온실 한가운데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이번 봄에는 잎이 크고 넉넉한 식물을 들이겠다는 다짐을 둔다.

 

뭔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그 사람이 걸어가는 길을 비춰주는 경우가 있구나,하고 그들을 보면서 모토무라는 실감한다. (...) 모토무라는 취미든 일이든 사람이든, 사랑을 기울일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하고 거듭 생각한다. - P229


언어도 없고, 기온이나 계절이라는 개념조차 없는데도, 식물은 정확히 봄을 알고 있다. 온도계나 일기장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건 초겨울의 따뜻한 날씨가 아니라 진짜 봄이다. 슬슬 여느 해와 같이 활발하게 생명 활동을 할 시기가 왔다‘라고 판단하고 기억한다. 반대로 인간은 뇌와 언어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는 건지도 모른다. 고뇌도 기쁨도 모두 뇌가 내놓는 것이고, 그것에 휘둘리는 것은 물론 인간이기에 맛볼 수 있는 묘미겠지만, 관점을 바꿔놓고 보면 인간은 뇌의 포로라고 할 수도 있다. 실은 화분의 식물보다도 더 좁은 범위에서밖에 세계를 인식할 수 없는, 자유롭지 못한 존재.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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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고흐 : 따뜻한 위로가 필요할 때 - 전통과 도덕적 가치를 허문 망치 든 철학자의 말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공공인문학포럼 엮음,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스타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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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와 니체, 그들의 고뇌는 어느 지점에서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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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 이탈로 칼비노 전집 1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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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모없이 매춘부 누나와 사는 핀은 어린 나이에 어른이 되어버린 부랑아 소년이다. 핀은 친구들에게 거미들이 집을 짓는 곳을 알려주거나 막대기를 가지고 전쟁놀이를 하며 무리지어 돌아다니고 싶지만 어른들 세계가 익숙한 핀을 아이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아는 것이라곤 어른들의 이야기 뿐인 핀은 그저 어른들의 세계로 몸을 '숨긴다'. 그렇다고 어른들의 세계라고 해서 핀을 받아주는 것도 아니다. 선술집에서 벌어지는 온갖 음담패설과 농담, 조롱에는 핀에게 한 자리를 내주는듯 하지만 정작 그가 그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일에도 아이라는 이유로 배제시킨다. 이럴 때마다 핀은 혼스러움을 느끼며 외로움을 안고 길을 잃은 사람처럼 배회한다.  

 

35.

핀은 놀이를 할 줄 모르는 아이였고  어른들의 놀이에도, 아이들의 놀이에도 끼지 못하는 아이였다. 

 

어느날, 누나를 찾아온 독일군인의 권총을 훔쳐 자신의 안식처인 거미집이 있는 곳에 숨긴 핀. 그러나 들고 다니던 권총허리띠 때문에 잡혀가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지만, 그곳에서 레지스탕스 '빨간 늑대'를 만나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탈출한다. 탈출 직후 뜻하지 않게 빨간 늑대와 헤어진 핀은 길을 잃고 헤매다고 또 다른 유격대원 '사촌'을 만나서 그가 속해 있는 '오른팔네 파견대'에 가게 된다.  

 

그곳에는 독수리 바베우프를 키우는 요리사 '왼손잡이', 그의 아내 질리아, 호텔 종원업 출신으로 파견대의 대장인 '오른팔', 독서를 즐기는 '나무 모자', 무기와 여자에 열중하는 펠레, 현병대에서 탈영해 레지스탕스가 됐지만 여타 부대에서 그를 거부해 오른팔네 파견대로 오게 된 '헌병', 땜장이 출신 자친토, 동서 지간 네 명이 모두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고 있는 '공작' '후작' '백작' '남작'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출신도, 유격대에 들어온 이유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같은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욕설과 고함만 질러대는 선술집의 남자들과는 다름을 느낀다. 

 

102.

핀이 보기에 인간이란 존재 안에는 벌레처럼 구역질 나는 어떤 것과 친구를 끌어들이는 따뜻하고 친절한 어떤 것이 함께 들어 있었다.  

 

138.

그(제나)는 부르주아나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각자 되도록 적게 일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세상을 더 좋아했다. 

 

141.

"각자 자기가 왜 유격대원이 되었는지 알아야 해. (...) 난 이제 시골로 돌아다닐 수가 없어. 그랬다간 녀석들이 날 체포해 버릴 테니까. 게다가 폭격 때문에 전부 다 부서져 버렸거든. 이 때문에 우리가 유격대원 노릇을 하는 거야. 다시 땜장이로 돌아가서 싼값에 계란과 포도주를 살 수 있고 체포당할 위험이 전혀 없고 경보를 울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해서지.(...)" 

 

전투를 위해 야영지를 떠날 준비를 하는 오른팔네 파견대. 자신도 전투에 참여할 거라고 믿는 핀은 흥분하지만 역시나 파견대 남자들도 그는 갈 수 없다고 말한다. 뒤쳐진 오른팔과 함께 여단에 도착한 핀은 나쁜 늑대와 조우한 기쁨도 잠시 오른팔네 파견대는 무장 해제 당한다.  

  

핀은 숨겨놓았던 권총을 찾기 위해 거미집을 찾아가지만 이미 누군가 파내간 뒤였고, 이에 낙담하고 누나가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핀의 권총을 그토록 탐내 훔쳐간 펠레는 결국 네라에게 그 권총을 선물로 주고 갔다. 핀은 그 권총을 뺏다시피하여 집을 다시 나오고 언제나 혼자일 것만 같은 두려움으로 거미집에서 울고 있을 때 '사촌'과 재회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반딧불 속을 걸으갔다. 

 

 

작가가 자신의 레지스탕스 경험을 토대로 쓴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 말엽에 나치 독일 점령군과 이탈리아 사회공화국 파시스트 들에 대항하여 이탈리아 해방군이라 불리는 레지스탕스의 전쟁을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다.  

 

등장인물의 면면을 살펴보자. 선원이나 땜장이, 독서를 즐기는 지식인 등 각 계층의 보통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사촌, 오른팔, 나무 의자, 왼손잡이, 나쁜 늑대처럼 소설 내에서 이름이 없다. 또한 부대가 해산할 거라는 소식에 핀은 부대원 각자가 부대를 만들어 대장이 되라고 말한다. '나무 모자'는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유격대원들의 부대를, '헌병'에게는 부모들을 잡아들이는 파견대를, '공작'에게는 토끼 목 자르는 부대를, '왼손잡이'에게는 화냥년 남편들의 파견대를 만들라고 말이다.

그들은 왜 이름대신 별칭으로 불리며, 핀은 그들에게 이토록 어처구니 없는 부대를 만들라는 우스갯 말을 했을까?

생각해 보면 혁명이나 저항운동에는 이름 없이 사라져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독립투쟁으로 후세에 이름이 알려진 이들이 얼마나 되랴. 그 수많은 저항자와 투쟁자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현재 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는 이름 없이 스러져간 그 수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부여할 수 없어 다수의 나쁜 늑대, 다수의 나무 의자, 다수의 왼손잡이, 다수의 사촌을 내세운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령관 페리에라와 위원 킴의 대화에서 작가는 킴의 입을 빌어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말한다. 

 

"인간들은 모두 투쟁하지, 그들 속에는 똑같은 분노가 자리 잡고 있어. 각자는 모두 서로 다른 자신이 하나가 돼서. 여기엔 오른팔 같은 놈도 있을 수 있고 펠레 같은 놈도 있을 수 있지...... . 자네는 그들이 얼마나 값진 존재인지 이해하지 못할 거야...... . 어쨌든 그들도 똑같은 분노를 가지고 있지...... . 아무도 아닌 일이 그들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어...... . 이게 바로 정치 작업이야...... . 그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 (...) 내일이면 사망자도 생기고 부상자도 생기겠지. 그들도 그걸 알아. 무엇 때문에 그들이 이런 삶을 살고 있고 무엇 때문에 그들이 싸워야 하지? 내게 말해 주겠나? 봐, 여기엔 농부들도 있고 산악 지대에 사는 주민들도 있어. 그들이 싸우는 이유는 아주 간단해. 독일군들이 동네를 불태우고 젖소들을 끌어가 버렸으니까. 그들의 전쟁은 본능적이고 인간적인 전쟁, 즉 조국을 지키려는 전쟁이야. 농부들에겐 조국이 있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늙은이든 젊은이든 마을 전체가 자기들의 볼품없는 총을 들고 무명 사냥복을 입고 우리와함께 싸우는 거야. 우린 그들의 조국을 지켜 주는 거고. 그래서 그들은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지. (...) 그들(검은 여단)과 마찬가지로 잃어버린 게 있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은 우리를 해방시키지 못한다면 우리 자손들을 해방시키는 데 사용될 것이고 더 이상 분노가 섞이지 않은 맑은 인간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데 이용될 거야. 그러면 그 속에서 사악해질 수는 없겠지. 하지만 저들은 쓸모없는 몸짓들, 무용한 분노들을 가지고 있을 뿐이야. 비록 승리했다 해도 그건 쓸모없고 무용한 것들이지. 그것들은 역사를 만들지 못하고, 자유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분노와 증오를 되풀이하고 영속시키는 데 사용되기 때문이이야.(...)" 

p153-157

 

핀은 애초에 왜 총을 훔친걸까?

핀은 총을 소유하게 되면 남자 어른들의 세상에 진입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항상 어른들과 친구로 지내고 싶었으며 농담을 지껄이며 자신을 믿어주기를 바랐고 좋아하는 어른들과 같은 위치에 놓이고 싶었다. 그러나 핀의 기대와는 달리 어른들은 총이 있다는 핀의 말을 믿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무시하기까지 했다.  

 

 

핀에게 있어 어른들의 삶은 술먹고 싸우고 거드름과 허세를 피우며 여자를 희롱하는 세상이었다. 그러다 어떨결에 정치범이 되어 감옥에 들어가고 나쁜 늑대를 만나게 되면서 다른 세상을 만난다. 그 세상 또한 핀이 진입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상이지만 그곳에는 삶과 죽음이 실재한다. 허허실실 농담을 던지고, 그 농담에 화를 내기도 하고 웃어주기도 했던 사람들이 전투에서 하나둘 전사한다. 능력을 평가 받고 무장 해제를 당하며 서로 다른 생각으로 파시스트가 되고 레지스탕스가 된다.

핀은 이제 예전처럼 피에트로마그로와 함께 골목 안 가게에서 다시 구두를 고치고 싶지만 골목은 텅 비었고 사람들은 도망치거나 감옥에 갔거나 죽어버렸다. 핀은 어디로 가야하며 무엇을 할 수 있나? 갈 곳을 잃은 핀이 할 수 있는 건 결국 울음 뿐이다. 

 

거미집은 위에서 언급했듯 핀의 유일한 안식처다. 핀은 진짜 친구를 만나게 되면 그 친구에게만 거미들이 집을 짓는 장소를 보여준다고 다짐했었다. 그렇다면 '사촌'과 핀이 거미집에서 재회하고 손을 잡은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기쁜 마음에 핀이 거미구멍을 보여주겠다고하자 사촌은 거미를 걱정해 사양한다. 그리고 그는 핀을 어린아이가 아닌 자신과 동등한 친구로서 대우하고 어른들 세계에서 부정적인 모습에 이골이 난 핀에게 세상에 아름다운 이면이 있음을 알려 준다.

이는 핀이 어린아이로의 회귀가 아닐까. 다시말해 핀이 핀으로서, 농부가 농부로서, 학생이 학생으로서 살아갈 세상의 도래를 희망함이 아닐까하는. 

 

"여자들은 모두 그래요, 사촌...... ." (...)

"하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은 아니야. 우리 어머니는...... ." (...)

"반딧불이가 많구나."

"반딧불이도 가까이에서 보면 역시 불그스레하고 구역질 나는 벌레일 뿐이에요."

"그렇단다. 하지만 이렇게 보면 아름답잖니." 

  

 

작가의 서문을 읽으면 그가 이 소설을 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름 없는 소시민이이자 저항자요 투쟁자였던 그들의 삶을 전하고픈, 동료들을 향한 그의 깊은 애정이었음을.

 

 

독서와 삶의 경험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우주가 아니라 하나이다. 해석될 수 있는 삶의 모든 경험은 독서를 부르고 그 둘은 뒤섞인다. 책들이 항상 다른 책에서 탄생한다는 것은 또 다른 진실, 즉 책은 실제 삶과 인간들 간의 관계에서 탄생한다는 것과 표면적으로만 모순되는 진실이다.

'작가의 서문'에서 p233

 

 

그는 외로웠고, 어른들의 삶을 이루는,피와 벌거벗은 몸뚱이로 된 이야기들 속에서 길을 잃은 듯 느꼈다. - P22

어른들의 세계에서 어린아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어른들을 즐겁게 해 주거나 짜증나게 하는 그 무엇으로 취급되는 어린아이로 언제까지나 남아 있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하지만 핀도 어느 날엔가 어른이 될 것이고, 그러면 모든 이에게 심술궂게 굴 수도 있고 자기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복수할 수도 있으리라. 핀은 지금 당장 어른이 되고 싶었다. 아니, 어른이 안 되어도 좋다. 지금과 같은 상태로 남아 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감탄하고 두려워하는 아이가 되어서 어른들과 함께 대장 노릇하며 기막히게 멋진 모험을 하고 싶었다. - P207

핀의 눈에는 굵은 눈물이 맺혔고 그는 분노로 이를 악물었다. 어른들은 이상하고 배신자 같은 족속이었다. 그들에게는 아이들의 놀이에서 볼 수 있는 진지함이 없었다. 그렇지만 어른들에게도 아주 진지한 자신들의 놀이가 있었다. 어떤 것이 진짜인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놀이 속의 놀이 말이다. 아까는 낯선 남자와 더불어 독일이네 대항해서 놀이를 하는 것 같더니 지금은 자기들끼리 그 낯선 남자에 대항해서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른들이 하는 말은 절대 믿을 수가 없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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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시간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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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Question of Morality   
 


작은 마을 나루카와에서 지역 유지 집안의 사람인 난보라는 노인이 사망했다. 사인은 독극물을 이용한 자살이라고 판명이 났는데타살 의혹이 제기된다. 불단에 스프레이로 쓰여진 메세지로 인해.


 '도덕 시간을 시작합니다. 범인은 누구?'  
 
프리랜서 영상 저널리스트였던 후시미는 슬럼프에 빠져 무위도식하던 중 옛 동료인 다나베에게 일자리를 제안받는다. 다큐멘터리 영상을 찍을 사진 작가가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다나베와 동석한 젊은 여성 오치. 그녀는 이번 프로젝트의 연출가이자 총감독으로 프로젝트에 대한 배경과 기본적인 설명을 얘기하며 후시미에게 합류를 부탁한다
 
13년 전, 나루카와 제2초등학교에서 교육자 마사키 쇼타로가 강연 도중 청중 한 사람에게 칼에 찔려 살해를 당한 사건이 있었다. 현장에 있었던 삼백 명 가량의 증인과 용의자의 묵비권으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사회적으로 떠들썩해지는듯 했지만 때마침 일어난 911테러로 유야무야 처리된 사건. 범인은 어린시절 피해자의 제자이기도 했던 무카이 하루토. 그는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교육자를 왜 살해했을까? 무카이 하루토가 법정에서 유일하게 한 증언은 한마디 뿐이었다.
"이것은 도덕 문제 입니다." 
 
아내의 요구로 뜻하지 않게 그녀의 고향인 나루카와 정착, 아들 도모키의 학교에서 발생하는 소소한 사건들과 난보의 사망, 그리고 13년 전 나루카와 초등학교에서 발생했던 살인 사건, 그에 관련한 프로젝트에 스카웃 제의를 받은 현재, 후시미는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싶어 소름이 돋는다
   
  
 
1.
후시미의 아들 도모키는 동물을 괴롭히는 친구 마코토를 한 대 때렸다. 이에 마코토의 아빠 요시카와는 아들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른 후 후시미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한다요시미는 뻔한 내막을 알아채고 요시카와를 인간쓰레기라고 욕하지만, 평화로운(?) 해결을 위해 그가 요구하는 돈을 건넨다가정폭력도 모자라 아들을 이용해 사건을 조작하는 요시카와의 행동에 침묵하고 그의 요구를 들어주는 후시미는 도덕적인가
 
2. 
폭력을 밥 먹듯 휘두르는 아버지, 아버지에게 매춘을 강요당하는 어머니, 두 사람의 부재로 열 살이나 터울지는 동생까지 돌봐야했던 어린 무카이 하루토구걸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강아지까지 잡아먹었던 이 소년은 결국 집을 나온다이 거지같은 집안에서 도망친 그가 버린 건 쓰레기 같은 부모만이 아니라 여섯 살에 불과한 여동생까지다. 자신이 집을 나가면 잔인한 아비가 동생을 어떻게 할지 뻔히 알면서도 혼자 집을 나온 무카이 하루토는 도덕적인가? 그때 그의 나이 고작 열여섯 살이었다
 
3.
유토리 교육(경험주의, 종합 학습)의 질 높은 실현을 위해서 교육자 육성회까지 만들어 교육에 헌신한 마사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방침에 어긋난 것에 대해서는 수용하지 않았다. 그 대상이 학생이든 동료든. 자신이 옳다는 확신으로 뚜렷한 목적성을 명분으로 타인의 역사와 개성을 고려하지 않은 과정은 도덕이라 말할 수 있는가
 
4.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그의 아빠를 살인범으로 조작하는 건 도덕인가? 그리고 본인의 아들이 사건의 용의자로 짐작이 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5.
아버지로부터 생계를 위해 어린 나이에 매춘을 강요 당하고, 오빠의 친구들이 성매매 고객인 여자 아이. 9년만에 집에 돌아온 오빠가 이제는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었건만, 오빠는 안부 인사 한마디 없이 본인의 목적에만 집중한다. 이에 아이는 13년이 지나 어른이 된 지금 그 모든 것을 무기 삼아 그들에게 보란듯이 복수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사건, 그리고 자신의 과거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사람들을 교묘한 방식으로 끌어들인다. 무카이 미유키그녀의 도덕성에 대한 잣대는 어디서부터 줄을 그어야 할까
 
6.
불우하다는 말로는 모자랄만큼 진흙탕같은 환경에서도 성실하게 살아왔다. 다행히 좋은 지능과 영리함 덕분에 고등학교 진학을 못했음에도 국립대에 합격해 교사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한때 존경했던 스승과 친구였던 동료 교사롤 보고 교사의 꿈을 접었고 자신의 운명에 복수하기 위해 자신을 버렸다새로운 미래 재설계를 위해 선택한 살인과 살해범이라는 직함스스로를 망가뜨리면서까지 실행한 복수와 미래는 '도덕'이라는 명제에서 판단한다면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소설은 사건과 상황을 펼쳐놓고 독자에게 끊임없이 '도덕'과 그에 대한 선택의 여부를 묻는다이러한 선택은 옳은가이 선택이 도덕적인가? 그리고 우리가 도덕이라고 착각하는 것들이 과연 도덕인가?
 
159.
"무카이가 마사키를 죽였다는 판결, 그리고 무카이 하루토의 죄를 판가름한 것은 과연 법이라는 이름의 규칙일까요? 아니면 도덕일까요?"  

  
  
법은 다함께 잘 살자고 만든 실질적 규칙이고, 도덕 또한 같은 목적을 두었지만 실재하지 않을 뿐이다. 위의 정의에 언급되어 있듯 도덕은 개인 혹은 사회가 조화로운 삶을 살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법이든 도덕이든 사..이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에 만들어 놓은 정의定義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당연시 여긴다. 그리고 '자유롭고 조화로운 인간의 삶'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들로부터 구속 당한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도덕이 없는 건가?  
 
우리가 지키고자 노력해야하는 것, 도덕보다는 '인간성'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소설 속으로
 
420.
지금껏 만나 온 수많은 인물들. 봇코와 가정폭력을 휘두르던 남자 회사원, 그리고 우치노 사토미. 그들 덕에 나는 지금껏 연명해 왔다. 때로는 선을 주장하고 떄로는 악을 날조해 가며 먹고살아 왔다
 
475.
"교사가 되거나 회사를 창업해서 성공해도 과거는 지울 수 없지. 허기를 채우기 위해 기르던 강아지를 잡아먹은 과거와 여동생이 매춘을 한 과거도. 녀석은 결국 깨닫고 말았어. 그런 인간을 발견했을 때 사람들이 어떤 방식을 취하는지를."
다키타의 모습이 깨닫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그것을 이용하는 길을 선택한 거야. 더욱 비참하고 잔혹한 자신을 만들어서 ', 실컷 즐기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선보이는 길을."
그리고 그것으로 먹고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는 길을
 
482.
"살아가기 위해 싸우는 것...... . 그것 말고 명확한 의미의 도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여기 있어. 너와 나 사이에. 우리는 가끔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이러니저러니 지껄이고 있어. 그러니 무의미해도 지켜야 하는 게 바로 도덕 아닌가?" 
 
495.
'모두 씨'가 아닌 '당신'이라는 존재.

지금껏 만나 온 수많은 인물들. 봇코와 가정폭력을 휘두르던 남자 회사원, 그리고 우치노 사토미. 그들 덕에 나는 지금껏 연명해 왔다. 때로는 선을 주장하고 떄로는 악을 날조해 가며 먹고살아 왔다. - P420

"교사가 되거나 회사를 창업해서 성공해도 과거는 지울 수 없지. 허기를 채우기 위해 기르던 강아지를 잡아먹은 과거와 여동생이 매춘을 한 과거도. 녀석은 결국 깨닫고 말았어. 그런 인간을 발견했을 때 사람들이 어떤 방식을 취하는지를."
다키타의 모습이 깨닫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그것을 이용하는 길을 선택한 거야. 더욱 비참하고 잔혹한 자신을 만들어서 ‘자, 실컷 즐기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선보이는 길을."
그리고 그것으로 먹고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는 길을. - P475

"살아가기 위해 싸우는 것...... . 그것 말고 명확한 의미의 도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여기 있어. 너와 나 사이에. 우리는 가끔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이러니저러니 지껄이고 있어. 그러니 무의미해도 지켜야 하는 게 바로 도덕 아닌가?" - P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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