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시간 - 느리게 사는 지혜에 관하여
토마스 기르스트 지음, 이덕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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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느리게 사는 지혜에 관하여

 

가치가 있는 일은 뭐든 항상 시간을 필요로 한다.

밥 딜런

 

시간과 지속성에 관한, 그리고 시간의 망각과 고요함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예외없이 시간 안에 살고 있다. 현대 사회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달라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래서 플래너를 시작으로 각종 계획과 시간 관리에 관련한 상품과 강의가 넘쳐나고, 그것도 부족해 초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생활습관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끝이 없는 길을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일상에서 잠시 멈춰 볼 필요는 있다는 말이다. 

 

'종종 무의미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과 함께 아무것도 제대로 성취하지 못한 듯한 불만족감(p40)'을 느껴본 적은 없는가? 하루를 통틀어 완벽하게 방해받지 않은 휴식을 취할 틈이 있는가? 현 사회는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복무한다.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된다고 여기는 경쟁 심리와 우월주의에 충실한 욕망에 기인한다. 우리는 잠시 멈추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있는가.

 

책에서는 지루할만큼 오랜 시간을 축적하고 인내한 건축물, 책, 인물, 식료품, 과학, 예술, 저장 등에 대해 언급한다.

타임머신, 페르디낭 슈발의 꿈의 궁정,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 피치 드롭 실험, 이집트의 문화재, 백과사전, 고전 악기, 주택 등을 들어 쌓여진 시간의 존엄함과 느림의 미학에 대해서 강조한다. 

 

 

사진 작가 스티글리츠가  완벽한 한 순간을 찍기 위해 눈보라 속에서 세 시간을 기다리지 않았다면, 마르셀 프루스트가 7년이라는 세월 동안 포기하지 않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쓰지 않았다면,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음악과 미술 분야에서 기다림과 인내없이 조급함을 먼제 내세웠다면, 어땠을까?  

 

악기를 생각해 보라. 듣는 이로 하여금 깊은 울림을 주는 악기는 대부분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수공예품이다. 나 또한 30년이 훌쩍 넘은 피아노를 가지고 있는데, 요즘에 만든 피아노와는 건반의 눌림이나 소리가 많이 다르다(고작 30년이 넘었을 뿐인데!).

버리는 것이 익숙한 풍요로운 사회에서 이제 집은 여러 세대를 위하고 가정의 역사를 쌓는 공간이 아닌 감가상각비에 맞는, 자산의 가치 척도로만 인식되는 '주택'일 뿐이다. 우리는 오래된 사찰, 궁, 성곽, 문화재를 답사할 때 천년이 지난 당시를 만날 수 있지만, 현 세대는 지금부터 천 년 후의 세대에게 시멘트 폐기물만 남겨줄 지도 모를 일이다.

  

시간을 인내한다는 것은 단순히 힐링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인류의 존폐 여부까지 달려있다. 빨리 변화하는 세상과 시장자유주의 원리에 발맞추기 위해 인류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경쟁적으로 생산해내고 있으며 이는 인간을 피폐하게, 지구는 황폐하게 만든다. 순수 자연 변이를 무시한 채 유전자 조작을 통해 유기체를 인간에게 맞추고 있어 종자의 멸종을 가속화하고 있고, 환경 오염으로 인한 기후 변화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있다. 예술가 마셜 매클루언이 '지구라는 우주선에는 승객이 없다. 우리는 모두 승무원이다(p115)'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그저 지나가는 유기체의 한 종에 불과할 뿐이다.  

 

 

할 말이 많다면 일단 침묵을 지켜야 한다. 번갯불을 일으키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구름으로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한다.

니체

획일적이기만 한 나날은 인생을 짧게 만들고, 세월이 흘러 돌이켜봤을 때 회환만이 남는다. 잠시 멈춤과 침묵은 우리의 기억을 정돈할 시간이 된다.

시간은 모든 자원 중에서 가장 희소한 자원이다. 이 자원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후대에 물려줄지에 대해 모두가 깊이 생각해야만 한다.

[책 속 문장]

 

10.

어떤 대상에 시간을 들이는 일은 모든 사람에게 불안의 시대 한가운데서 내면의 중심을 잡아 주는 방호벽이 될 수 있다. 

 

71.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은 계획이 없는 사람이다.

 

75.

잠시 멈추어 생각한 후에야 비로소 우리 영혼의 풍경도 이런 자연의 모습과 거울처럼 닮아 있음을 알게 된다. 

 

 

 

 

 

한 시간은 단지 한 시간이 아니다.
향기와 소리, 계획과 날씨로 가득 찬 항아리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동시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감각과 기억 사이의 특정한 관계에 다름 아니다. /마르셀 프루스트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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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스티브 잡스가 반한 피카소
이현민 지음 / 새빛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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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 Why not?

영화와 미술의 만남.

영화에 등장한 혹은 관련이 있는 미술 작품을 영화와 함께 읽어주는 책이다.

실린 영화 중에서 두 편-누드모델, 아르테미시아-을 제외하면 모두 관람했고, 미술 작품 또한 간적적으로나마 한번 쯤은 접해봤기에 한편으로는 익숙하게, 한편으로는 새롭게 접했다.

 

저자는 작가와 작품을 단편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당시 시대적 배경 뿐만 아니라 국제 정세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적 흐름과 변화가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짚어가며 논리적으로 서술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와 아르테미시아, 바스키아.

(아르테미시아는 다른 책에서 우연히 알게 되어 좋아했는데, 영화가 있는 줄은 몰랐다. 조만간 찾아서 보기로).

렘브란트를 좋아하는 지인들이 다수 있는데, 나는 그의 그림은 너무 어두워서 보고 있으면 나까지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베르메르의 그림은 어두운 듯 하면서도 은은한 밝음이 있고, 집중하는 여성들의 모습도 좋다. 아르테미시아 그림의 확 와닿는 현실적 표현과 (나에게 있어)그 연장선에 있는 바스키아. 바스키아가 절대적 멘토이자 후원자였던 앤디 워홀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작품을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까? 앤디 워홀이 아닌 다른 후원자를 만났으면 어땠을까라는 의미없는 상상을 해 본다(나는 앤디 워홀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책에서는 여성 작가를 다루면서 대표적으로 아르테미시아, 카미유 클로델, 프리다 칼로를 들고 있다. 그들은 예술가로 인정은 고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만로 재능을 억압 받고, 그들의 작품을 폄하했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때를 잘못 만났다고 하기에는 안타까운 부분이 많고, 근대까지도 그 현상은 지속된다. 1970년대 페미니즘의 활동과 더불어 미국 예술계에는 여성 작가의 위상이 점차 높여졌다고 말하는데, 현재는 어떨지는 여전히 의문이 든다. 

저자의 의견에 개인적으로 많이 공감하고 동의했던 부분은 자본주의가 예술에 미치는 영향이다. 이념이 맞서는 세상에서는 정지적 도구로 이용당하고,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함으로써 예술의 창의성과 자유, 공공의 역할은 사라지고, 돈으로써 권력을 움켜쥔 이들에 의해 선전 도구로 전락하거나 예술가 고유의 영역을 침범 당할 뿐만 아니라 생계까지 좌지우지 되고 있다.  

 

과학이든 예술이든 문학이든 순수 분야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의 창의성과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이제 우리는 순수 학문이나 예술을 만나는 기쁨은 접어두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개인적인 사고를 통해 공공의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사회적 제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우리는 권위적인 예술문화에서 벗어나 놀이도 미술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일상에서 또는 자연에서 만나는 색, 형태, 소리 등에 상상력을 보태어 예술로 승화할 수 있고, 이러한 경험은 적어도 우리를 정서적 무능의 상태로 몰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어디에서든 미술을 만날 수 있다. 작은 미술관을 비롯해서 지역마다 종종 열리는 원화전, 길거리의 설치 미술, 어린 아이들의 낙서 등 열린 사고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무심코 지나치는 조형물에 관심을 보이시라.

잠시나마 그곳이 곧 미술관이다.

 

상상력이란 세상과 사물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바라보게 하는 능력이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우리 자신의 의식적인 노력이다.

존 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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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구병모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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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살아오면서 어떤 호의와...... 얼마만 한 경멸과 때로는 악의를 만나왔기에, 자신을 지키는 부적을 온몸에 그릴 수밖에 없었을까요.

p136

아파트 10층 한 세대에서 화재가 발생했지만 그 집외에 다른 집은 그을름조차 없고, 거주자는 거실 창 밖으로 추락사한 아버지와 가해자라고 보여지는 딸이 있다. 그러나 상처 하나 없는 딸이 가해라고 하기에는 정황상 맞지 않다. 

 

자신이 혼자 살던 빌라에서 피투성이 시신으로 발견된 33세 K 씨. 발견 당시 창문 유리창은 부숴져 있었지만 방범창이 설치되어 있어서 새끼 고양이 한 마리 정도만 드나들 수 있는 정도다. 살림은 쏟아지고 사방에 피가 튀어 격투의 흔적은 역력한데,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없다. 그런데, 경찰은 두 손목이 등 뒤로 둘러진 채 가슴에서부터 발목까지 청테이프로 묶여있는 한 여성을 옷장에서 발견한다. 이 여성이 범인일까? 그러나 여성에게서 격투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집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Y 씨. 그가 죽은 현장은 거실 바닥에 흥건하게 물어 퍼져나가고 거실 벽면의 벽지가 벽시계 높이까지 젖어 있었다. 감식반이 벽지를 쓸어내리자 묻어 나온 하얀 가루에서는 짠맛이 느껴졌다. 누군가 바닷물을 집 안에 채워넣었단 말인가? 

 

강제로 아이와 떨어져 긴 세월 동안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온 시미. 남편의 훼방으로 아들이 성장하는 동안 만날 수 없다가 제대 이후 찾아갔을 때는 아들이 엄마와의 만남을 원하지 않는다. 정작 엄마가 필요할 때는 곁에 없었다고, 아빠를 혼자 견뎌냈다고, 그래서 엄마를 보고 싶지 않다는 말만 듣고 돌아섰다. 

 

우연히 신입사원 화인의 뒷목 아래 부분에 새겨진 타투를 보고 관심이 생겨 그녀로부터 소개 받은 타투이스트를 찾아간 시미. 예상과는 다르게 쥐색 양복을 입고 있는 삼십대 중후반의 남자. 그는 왜 장년층이 입을 법한 넉넉한 양복을 입고 있으며 자신의 작품은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걸까? 

 

그리고 시미는 왜 나이 쉰이 넘어 문신가를 찾아갔을까?  

 

■■■■

소설에서는 가정폭력, 직장내 폭력 및 갑질, 스토커로 인해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피해자에게 있어 그 고통은 아물어 흔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어질 때마다 바늘로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져 찌르는 듯한 고통을 전달하는, 영원히 굳지 않아 딱쟁이가 될 수 없는 상처다.

하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순간순간 불쑥 올라오는 분노의 충동은 어쩔 수 없다. 피해자가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터져나오는 열망을 참고만 있어야 하는가.

 

우리의 몸에는 얼마나 많은 상흔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을까.

화인의 문신을 바라보는 시미의 시선. 

'어쩔 수 없어, 사는 게 다 그래' 혹은 '억울하면 출세해!'라는 외면과 핑계와 폭력을 가하는 (방관자를 포함한)가해자와 약자들의 아픈 외침을 향한 작가의 시선.

150쪽이 채 되지 않은 작은 소설이 웬만한 장편소설 이상의 임팩트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번에도 작가가 놓지 않은 사람을 향한 온기. 역시 구병모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소설 속으로] 

132.

하나만 딱 새기고 끝나지 않는 분들이 계셔요. 일단 시작하면 대여섯 개까지는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빈 데 없이 자기 몸을 다 채우도록 그려 놓는 사람도 있지요. 

  

148.

스스로가 빛나지 않는다면, 시미는 다만 몇 발자국 앞이나마 비추어줄 한 점의 빛을 보고 싶었다. 바라는 건 그뿐이었다.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p138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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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없겠지만 - 완화의학이 지켜주는 삶의 마지막 순간
캐스린 매닉스 지음, 홍지영 옮김 / 사계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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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음 조산사다.

그리고 늘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p206

 

완화의학 전문의가 다양한 임상 경험을 사례로 들어 쓴 에세이자 임상 기록이다. 저자는 신체적 고통 뿐만 아니라 환자와 가족의 정서적 고통까지 함께 하며 그들이 임종을 삶의 마지막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도움을 준다. 저자와 함께 하는 팀원들은 환자를 돌봄으로써 언젠가는 누구나 맞닥뜨릴 죽음이 결코 두려운 순간이 아님을 대화를 통해서 풀어간다. 

 

책에서 다룬 인상적인 사례를 몇 가지 얘기하고자 한다. 

 

중년이 채 되지 않은 여성 홀리는 심부전 말기로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항구토제를 복용함으로써 그 부작용으로 활동 욕구에 사로잡혀 있다. 며칠 동안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잠을 자지 않으며 떠들어대는 통에 가족들도 지쳤다. 그녀의 신체 상태라면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대로라면 어느 순간 숨을 멈춰버릴 것이다. 홀리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게 된 저자는 그녀가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을 주고, 그 사이 충동을 가라앉힐 약을 호스피스에서 가져온다. 그 약을 주사하는 순간, 홀리는 깨어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가족에게 미리 알려준다. 홀리 또한 예감을 하고 삶의 마지막 순간 딸들과 최고의 시간을 보냈음을 감사하며 평화롭게 임종을 맞는다.

심부전 말기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던 어느날, 구토가 멎고 활기가 돌아온다면 얼마나 기뻤을까. 그러나 그것은 과속하는 자동차처럼 삶의 시간을 더 앞으로 당겼을 뿐이라는 사실에 더 아픔이 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시간이 좀 지나니 침대에서 맥없이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남겨주지 않은 것에, 어쩌면 홀리는 더 행복하고 평화롭게 눈을 감았겠다는 다른 생각도 들었다.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에릭은 '운동신경세포병'을 진단 받고, 손주들에게 병약하고 초라해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자살을 결심한다. 교통사고로 위장하려고 했지만 팔에 마비가 와 운전이 불가능해지고, 약을 먹는 것을 시도하려 했지만 혼자 몸을 가눌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이것도 실패, 곡기를 끊는 방법을 선택하려는 때에 폐렴에 걸리는 바람에 고통이 너무 커서 치료를 받을 수 밖에 없는 형편이 된다. 이로써 세 번째 방법도 실패. 시쳇말마따나 그야말로 웃픈(웃기지만 슬픈) 상황.

저자는 에릭과 대화를 통해 진정으로 그가 우려하는 것은 앞으로 자신이 제대로 보호자 역할을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후 에릭은 어떻게 되었을까? 봄에 진단을 받은 그는 가족들과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편안한 죽음을 맞았다.

나는 봄에 자살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그때 죽었다면 많은 것을 놓쳤을 거라는 에릭의 말에 그가 몇 달 동안 충분히 죽음을 준비할 수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나 역시 그의 자살 실패가 다행이라고 여겼다.

 

아름다운 샐리, 끝까지 자신의 상태를 부정하는 것으로 방어기제를 사용했던 여성. 자신의 죽음과 더불어 자신이 죽음으로써 가족이 겪을 아픔을 차마 받아들일 수 없어 외면을 선택한 그녀. 저자가 내린 처방은 그녀가 마음을 집중할 수 있는 선택지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혼수상태에 빠지기 직전까지 암을 이겨낼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난 어차피 죽을텐데 나만 생각하면 어때?'라는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도 충분히 그런 마음이 들 것 같기도 하고. 다만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니라면 임박한 순간에는 남아있는 사람을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지나치게 발랄하고 긍정성으로 무장한 샐리를 지켜보는 가족의 마음은 어땠을까, 짐작해 본다. 

 

 

말기암으로 죽음을 앞둔 아내. 남편은 아내에게 병명을 숨기고, 아내는 자신의 병명이 암일뿐만 아니라  죽음이 코앞에 있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을 남편에게 숨긴다. 서로의 충격과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서 사실을 감추고 연기를 하는 부부. 저자는 두 사람에게 각자가 알고 있는 사실을 알려서 혼자 고통받지 않도록 터놓고 이야기하라고 조언한다. 두 사람은 아픔을 함께 나누며 긴 대화와 눈물로써 정화의 시간을 갖는다.

난 일단 아프면 내 몸뚱아리만 걱정하는 부류라서....... . 더 나이가 들고 많은 시간이 지나면 나도 나보다는 가족을 더 생각하려나?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다.)  

 

 

존엄사가 합법적인 네덜란드. 영국인 우잘은 네덜란드에서 직장에 종양이 있다는 진단,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자신의 상태를 충분히 인지한 우잘은 집에서 가족들과 남은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네덜란드 의료진은 우잘에게 말기암의 엄청난 고통에 대해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견딜 수 있는 고통이 아님을 강조하며 몰아붙이듯 존엄사 여부를 묻는다. 이에 자신의 의사를 귀담아 듣지 않는 의료진에 불쾌한 우잘은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돌아와 저자와 상담한다.

존엄사, 개인적으로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각자의 몫, 이는 당연히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지 않은가. 환자의 고통과 인내를 의료진이 함부로 재단할 바는 아니며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주어야할텐데...... .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무슬림 부부 바트와 남리타의 사례와도 비슷한 맥락에 있는 듯 하다. 실체와 과학으로써 접근한 의사로부터 자신들의 종교를 존중받지 못했다고 여긴 두 사람은 치료와 약 처방을 거부한다. 이는 정신과 혹은 심리적인 치료가 아니더라도 의사와 환자, 그리고 환자의 가족까지 라포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어떤지 잘 모르지만, 영국의 경우 호스피스 병원이 반드시 임종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는 장소로만 사용될 뿐만이 아니라 치료를 위해 방문하기도 한다는 것, 또한 완화 의학에 인지 행동 치료와 사별 전문가도 별도로 있다는, 그래서 임종을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

 

나는 죽음이 두렵다. 생명이 단절되는 것이 무서운건지, 잊혀진다는 게  두려운 건지, 아직은 죽음을 대상으로 두려움의 근원적 실체를 모르겠지만 삶의 질 만큼이나 죽음의 질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죽음 앞에 회피하지 않는 진솔한 대화와 감정의 공유. 잊지 말아야겠다.

지금 전 지구적 전염병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다. 살기 위해, 삶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죽음에 무감각해지지 않기 위해 투쟁하는 모든 이들의 건승을 기원한다.

[책 속으로] 

 

23.

우리가 매년 축하하는 것은 삶이 시작된 날이지만, 살아있음을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삶이 끝나는 날이다. 

 

69.

누구가와 사별한 사람은 설사 그것이 평화로운 죽음이었다 하더라도 많은 경우 그 경험을 반복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이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기억으로 바꾸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79.

임종 자리는 곧 끝을 맞이할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되는 자리이자, 가만히 지켜보며 귀를 기울이는 자리이다. 그리고 우리를 연결하는 것이 무엇이며, 다가오는 이별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영원히 바꿔놓을 것인지 생각하는 시간이다.  

 

220.

완화의료를 제공하는 우리는 어떤 가정도 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대신 직접 물어본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고, 기꺼이 대답한다는 것, 그리고 이 짐을 나눠서 질 때 임박한 죽음에서 유용한 통찰과 발상을 새로 발견한다는 점이다.

 

221.

죽음을 죽음이라 부를 수 없다면 어떻게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을 위한 돌봄을 계획하고, 우리가 남기고 떠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계획을 세울 수 있을까요? 

 

389.

개인의 삶의 질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사자뿐이다. 병에 걸린 사람은 삶이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많은 노인이 신체적 한계를 더 오래 사는 대가로 받아들인다. 많은 이가 병보다 외로움이 훨씬 견디기 힘들다고 말하지만 현대 사회는 이것을 외면한다. (...) 가장 취약한 사회 구성원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그 사회가 중시하는 가치를 보여주는 척도다. 

 

 

높은 고도에서 풍경을 내려다보듯

바라보면서 삶의 모든 부분이 연결되어

있음을 절실히 느꼈다.

'나의 생애'에서 / 올리버 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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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짓기 - 이별의 순간, 아버지와 함께 만든 것
데이비드 기펄스 지음, 서창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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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내가 묻힐 관을 아버지와 내가 만들어야 해요."

나는 이 책을 오해했다. 처음 소개글을 접했을 때 암투병 중인 아버지의 관을 부자가 만드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고, 그래서 내용이 제법 무거울 거라는 지레짐작으로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그런데! 관을 준비하는 이는 이제 쉰을 바라보는 아들이고 목수의 달인인 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하며, 아버지도 별 말 없이 흔쾌히 그 요청을 받아들이며 그가 세상과 작별한 이들을 추억하는 과정은 담담하지만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제 두 사람은 '영혼의 집(the long home)' 만들기를 시작한다.

나의 예상보다 이 책은 (적어도 나에게는) 심하게 좋았다. 내가 가족 구성원으로 살아오면서 가졌던 수많은 감정들, 부모님과의 관계, 연로하신 부모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마음 등 공감을 넘어 저자의 글에 이입하면서 그들의 자리에 나와 부모님을 세워두면서 읽었다.

저자는 미국 오하이오의 소도시에서 고향을 떠나지 않고 가정을 꾸리고 집을 고치며 가족, 친구들과의 연대를 이어가면서 살고 있다.
저자는 장인의 죽음 직후, 처음 관에 관심을 가지면서 아내와 가볍게 주고받던 얘기에서 시작해 결국 자신이 누을 관을 짜자고 결심하지만, 사실 그의 진짜 속내는 암을 진단받은 아버지와 함께 뭔가를 만드는 행위에 있었다.

책은 부자가 관을 만드는 과정만 담고 있지 않다. 저자의 어머니의 죽음, 절친의 죽음을 언급하면서 그들과의 추억과 유품, 아버지와의 대화까지 중년의 남자가 아들로서, 친구로서 갖는 그리움, 소회를 풀어놓는다. 그의 단상들이 한낱 지나가는 독자에 불과한 나의 세세한 감정 들까지 끄집어낼 줄은 몰랐다. 읽는 동안 좋은 시간이었다.

이 책은 저자 아버지의 삶에서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되었다. 여든여섯 살에 돌아가신 담백하고 자상했던 분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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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영혼의 집 만들기' 프젝트에서 가장 심란하고 두려운 진실은 언젠가 아버지는 돌아가실 거라는 사실이라고, 아버지가 없으면 어떻게 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는, 더불어 자신은 아버지를 전폭적으로 신뢰한다는 말을 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중년의 아들이 아버지를 전폭적으로 신뢰한다는 말에 나뿐만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게 됐다. 부모가 정년퇴직을 하고 몸과 뇌가 허물어져가면 자식들은 그들을 신뢰하는 부모가 아니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초단위로 바뀌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퇴물이 되어 어느새 그들의 경험과 연륜은 폐기처분 시켜버린다. 나도 시대를 쫓기에 바빠 노년의 혜안을 무시하거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됐다.

어머니의 죽음과 유품을 정리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인간이 삶을 지탱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존재감이라는 데에 다시 긍정하게 한다.  

114.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할 일을 남겼는데, 아버지에게 책임질 일이 있다는 것은 선물과도 같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옷장을 비우고, 묵주를 분류하여 정리하고, 보석을 감정하는 것으로 일을 시작했다. 정장 외투와 구식 가운들은 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연극부에 기증했다. 아버지는 복잡한 삶을 정리하려고 열심히 일했다. (...) 프로젝트는 아버지가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아버지는 온 마음을 다해 노력을 기울이며 다음으로, 그 다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그러한 과정, 즉 끊임없는 움직임은 내가 아버지를 알아온 이래로 아버지를 규정하는 것이었다.

어느 어르신이 쓸모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게 몸서리쳐지도록 싫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어떤 형태로든 타인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전혀 미치지 못하는 삶은 슬프다. 저자의 아버지는 아내의 유품을 정리함으로써 자식들의 물리적.감정적 소모를 도왔다. 
 
 
저자의 어머니가 그에게 했다는 마지막 한 마디,

"외로워지지 마."


노년의 부모 마음은 다 비슷한가. 삶의 외로움이 무엇인지를 너무도 잘 알기에 자식이 외로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서 영원히 혼자만의 세상으로 떠날 당신보다 남아 삶을 버텨내야 하는 자식의 고단함을 더 걱정하는.
   
 
읽으면서 내내 부러웠던 것은 그와 그의 아버지의 작업실이었다. 몸을 써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은 오랜 로망이기도 하다. 서울 토박이에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지만 대식구였고, 탈 서울 이후 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 생활을 적응하는 데에만 3년 이상이 걸렸지만, 온전한 귀촌 생활은 자신이 없어 마음만 맴맴 돌고 있다(내 친구는 아직 덜 아쉽고, 덜 고픈거라고 제대로 찌른다). 머리를 깨끗이 비우고 잡생각 없이 몸(노동)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그 시간의 가치를 알기에 요가와 등산을 하지만 노동의 맛과는 또 다르다.

209.
집에 나오면서 전동 대패를 가지고 왔는데, 그걸 작업대에 내려놓은 다음 봉지에 담아온 점심을 그 옆에 나란히 두었다. 할 일을 가지고서 여기 혼자 있는 게 기뻤다. 그곳이 어디든 일을 가지고 혼자 있는 게 나는 좋았다. 나는 머리를 깨끗이 비우고 싶었다. 잡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노동의 니린 리듬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저자가 아내와 나눈 대화도 기억에 남는다. 죽은 이가 그리울 때는 그에 대한 추억을 말로 나타내야한다는 것. 그리울 때 그립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삶에 작은 에너지가 된다. 
 
죽음에 대해 부모와 담담히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슬픔이 줄어든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다만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 인생인 것을 모르는 척 하지 않으면 된다.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슬픔은 독이 아닌 정화가 되지 않을까...... . 
  




나는 가을날 떡갈나무 같다

떡갈나무 이파리 죽어서 땅에 떨어진다
내 몸 죽어서 따응로 돌아가듯이

그러나 떨갈나무 여전히 살아서 봄을 기다린다
내 영혼도 그렇게 살아남아
영원한 봄을 손꼽아 기다린다!

2018년 5월 아버지의 시

"내가 묻힐 관을 아버지와 내가 만들어야 해요."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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