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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눈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23년 10월
평점 :
주인공 일레인을 1인칭 화자로 하는 소설은 화가로 성공한 일레인의 현재와 유년 시절의 과거를 오가며 서술한다.
소설이 전개되면서 나는 일레인보다 그녀의 어린 시절에 큰 영향을 미쳤던 코딜리어에게 더 호기심이 쏠렸다. 일레인과 코딜리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도대체 코딜리어가 과거 얼마나 큰 잘못을 했기에 일레인은 그녀에 대한 나쁜 기억을 잊지 못하고 머릿속에 담아두고 반복적으로 떠올리며 곱씹는 것일까. 그런데 읽다보면 일레인의 트라우마를 납득하게 되고 궁금증의 방향이 바뀐다. 코딜리어의 빈정을 상하게 한 그날, 일레인이 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무슨 말을 하면 이토록 악의적으로 사람을 괴롭힐 수 있을까? 그것도 겨우 열 살을 넘긴 아이가. 그리고 곧 깨닫는다. 일레인이 어떤 말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어떤 말도 그토록 잔인한 학대와 괴롭힘의 명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일레인은 화가다. 그것도 첫 번째 회고전을 앞둔, 제법 성공한 화가다. 그녀는 대체로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지만, 회고전을 앞둔 그녀의 감정은 복잡미묘하다. 자신이 회고전을 열만큼 확고한 입지를 마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이 사실이 비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불길하게 느껴진다. 또한 일레인은 자신이 현재의 삶을 누릴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고, 스스로를 겉으로만 어른인 척 가장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는 그녀가 이렇게 자신을 의심하는 데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1년 간의 학교 폭력 피해자의 트라우마라고 하기에는 자신을 지나치게 비하하고 있다. 더구나 1권의 마지막에서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괴롭힘 가해자들로부터 벗어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왜 이토록 자신을 깎아내리며 스스로를 학대하는지.
일레인의 유년 시절을 살펴보면 여덟 살이 되도록 한곳에 정착하지 않은 유목민같은 생활을 했다. 아버지의 직업 때문이기도 하고, 부모님의 삶의 방식이나 신념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족 간의 유대 관계가 좋은 가정이었다. 다만 여덟 살이 되도록 동성 친구가 한 명도 없고 형제는 오빠뿐이었으니 또래와의 관계 맺기에 어려움이 있었으리라는 짐작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래서 코딜리어를 비롯한 그레이스, 캐럴과 어울리게 된 것에 기뻐하고, 괴롭힘에도 선뜻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앞서 썼듯 코딜리어가 주도하는 또래 집단 내 학대와 괴롭힘은 나이를 감안할 때 상상 이상으로 악질적이다. 일레인과 그녀 가족에 대한 비하와 언어 폭력은 말할 것도 없고, 괴롭힘이 마치 피해자의 성장을 위한 도움이자 훈육이라면서 가스라이팅을 한다. 기가 막히는 것은 장소를 불문할만큼 가해는 모든 곳에서 이루어지는데, 거기에는 피해자인 일레인의 집에서도 아주 교묘하게 벌어졌다. 일레인은 그들 무리에서 배척될 것이 두려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더 끔찍한 것은 일레인이 코딜리어가 적이 아닌 친구이며 코딜리어의 괴롭힘은 선의에 의한 것이라고 여긴다는 점, 그리고 괴롭힘을 당하는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있다는 것, 그래서 점점 더 자신의 행동과 말에 혹여 잘못된 것이 있을까봐 강박적으로 두려워하게 된다는 점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일레인이 가족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 이러한 폭력적 갈등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똑똑치 못해서, 멍청해서, 나쁜 아이라서.
그런데 내가 1권에서 가장 어처구니가 없었던 지점은 가해 아이들보다 그레이스의 어머니인 스미스 부인의 태도다. 그녀는 일레인(아마 일레인의 가족을 포함한)이 교회를 제대로 다니지 않기 때문에, 진심으로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즉 그레이스의 어머니는 자기 딸을 비롯해 몰려다니는 세 아이가 일레인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용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레인의 어머니는 집단 괴롭힘을 눈치 채고 딸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조언은 원론적이며 고작 열 살 무렵 아이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냐는 두루뭉술한 질문이 안타까웠다. 하긴 이제 열 살을 넘긴 어린 아이가 그렇게 비열하고 계획적이며 악의적으로 누군가를 괴롭힐 수 있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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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의 집단 괴롭힘을 겪는 일레인의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업주부가 일반적이었던 시대를 지나오면서 여성 화가로서 겪는 성차별적 시각과 고정관념,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 유년 시절의 소녀들이 절대 권력자였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가부장제, 콧수염으로 상징하는 남성성, 스쳐지나간 인디언들에게 반사된 폭력의 굴레. 이러한 부분을 2권에서 더 많이 풀어내리라 생각한다.
눈에 띄는 점은, 소설은 과거 시점이든 현재 시점이든 모두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서술하는데, 이는 일레인이 유년 시절에 겪었던 경험들이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읽혔다.
1권에서, 일레인은 마음을 다잡아야할 때 고양이 눈 구슬을 손에 쥐고 있다. 일레인은 구슬이 자신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1권 마지막에서는 일레인이 코딜리어로부터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고양이 눈 구슬은 더 이상 수호자 역할을 할 필요가 없을터다. 그런데 1권보다 2권이 더 두껍다. 무슨 일일까.... .
2권으로.
※ 리딩투데이를 통한 도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