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12월 23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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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히틀러의 목적이 서쪽을 향한 진격임을 여전히 눈치 채지 못했다. 독일의 파이퍼 전투단은 스투몽과 슈뇌를 포기해야할 상황에 직면했고  마침내 귀대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엘센보른 능선의 미 포병대는 능선 아래 마을들과 페몽비유를 매일같이 포격했고, 독일군은 바스토뉴 점령을 포기하기 직전이었다. 병사들은 추위와 보급도 전쟁 중이었다. 독일군은 낙하하는 미군의 보급품을 쏘아 맞추기 바빴고, 미군은 보급품과 침낭으로 사용할 수 있는 낙하산을 사수해야만 했다. 그 와중에 미군 전투기는 적군으로 오인해 민간을 향해 폭격을 하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아군 부대에 포탄을 떨어트리기도 했다. 오인 사격은 양측 진영 모두에서 급격히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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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작전이나 의중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미군이 의아하다. 정보력의 부재인지, 지휘관의 무능력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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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2월 22일 금요일 
 

해즈브룩의 병력은 서쪽이로 이동하던 중 독일군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둘로 쪼개졌다. 몽고메리는 끝까지 버티고 있던 해즈브룩의 후퇴를 허락했다. 독일군은 생비트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노획한 지프와 트럭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 탓에 혼란이 일어 시간이 많이 걸렸고, 이 틈을 타서 미군 클라크 준장은 일부 후퇴해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 해즈브룩이 예고했던 것처럼 사단 전체가 대규모 폭격을 받았다. 비밀리에 후퇴하려던 미군의 작전은 폐기되었고, 대부분의 미군 병력은 12월 23일 살름강을 건너 후퇴했다. 한편 엘센보른 능선 남쪽 경사로에서는 히틀러 유겐트가 전차를 동원해서 뷔트겐바흐를 공격 중이었는데, 이것이 엘센보른 능선에 대한 마지막 공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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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기에 민간인들은 군화 소리만으로도 미군과 독일군을 구분할 수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시달렸으면 군화소리만으로도 어느 나라 군대인지 알 수 있겠는가. 독일과 프랑스의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나라의 아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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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가 세 번째 출산을 했다. 새로 태어난 여동생이 엄마에게 냉대를 받을 거라는 마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현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동안 니콜라와의 편애는 남자이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건만, 여자 아기에게 애정을 쏟아내는 엄마의 모습을 본 순간 디안의 심경은 차갑게 변했고, 이로써 여섯 살에 불과한 그녀의 어린 시절은 끝났다. 마리의 지나친 심정적 차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짐작이 되는 바가 있다. 하지만 마리는 두 아이를 출산하고 스스로 디안에 대한 감정을 되짚어보는 과정을 거쳐야했다. 그녀는 큰딸을 너무 어린애 취급한 잘못을 저질렀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시행착오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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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는 죽은 아버지가 8년 전 스미르나에 숨겨둔 탈렌툼의 황금을 찾아와 갈리아와 아시아 속주 등에 분배해 옮겨놓을 작정이다. 아시아 속주가 로마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거나 징세청부업자들에 의해 조만간 아시아 속주 전체가 들고 일어날 것을 우려해서였다. 
 
 
드루수스는 이탈리아 전체에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을 꿈꾸었다면, 그의 이탈리아인 절친 실로는 로마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꿈꾸었다. 이탈리아 전체가 연합된 완전한 독립 국가, 통일 국가가 세워지고 나면 로마를 쟁취하겠다는 꿈. 라티움 시민권자들은 굳이 이러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으나 이탈리아인에 대한 로마의 노골적인 차별로 인한 상처와 모욕은 로마로부터 벗어나 분리 독립을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탈리아인들은 수년을 더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이탈리아인 실로는 지금 드루수스의 곁에 있는 것이다. 
 
 
 
읽다보니 세상만사 정말 알 수 없다. 관계가 이렇게 반전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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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2월 21일 목요일 
 
 
오후 들어 보이어의 대대는 세 방향에서 조여오는 독일군에 의해 생비트에 고립되었다. 병력 670명 중에서 전사와 중상자를 제외하고 185명이 남았다. 설상가상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클라크 준장은 이동 가능한 병력으로 마을 서쪽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이동한다. 
 
 
독일군은 전투 여건 상 우위에 있으면서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바스토뉴 남쪽을 점령했다. 바짝 다가온 혹한이 생비트 서쪽과 바스토뉴를 지키고 있는 미군에게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ㅡ 호랑이와 여우가 번갈아 가며 점령한 땅에서 죽어나가는 이는 민간인이다. 심지어 미군도 독일군도 벨기에인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여기저기에 치이는 샌드백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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