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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만든 가난 - 가장 부유한 국가에 존재하는 빈곤의 진실 ㅣ Philos 시리즈 25
매슈 데즈먼드 지음, 성원 옮김, 조문영 해제 / arte(아르테) / 2023년 11월
평점 :
'왜 모든 가난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이 책은 가난의 원인을 이해하려면 가난한 사람들 너머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한다. 저자는 축적된 현장 연구 자료와 각종 보고서, 사회과학 연구들을 결합해 개괄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노동, 주택, 금융, 복지 부문으로 나누어 분석하면서 미국 사회복지의 문제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퍼 주는' 게 아니라 적절하게 사용되지 못하고 있음을 짚는다.
저자는 가난은 불안정과 육체적 통증과 트라우마를 남기며 자유를 상실시키고, 사회는 이를 치료하는 데 투자하지 않아서 가난한 사람들은 각자 알아서 고통에 대처해야 한다. 인류는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거의 대부분 분야에서 엄청난 발전과 진보를 이루었다. 그렇다면 가난에서는 어떤 진보가 이루어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집권당에 상관없이 가난은 계속 정체되어 있다(물론 미국의 얘기다. 하지만 한국이라고 다를리가!). 저자는 묻는다. 왜 가난은 개선되지 않을까? 이에 대해 우리는 배정된 예산이 적절한 방식으로 적정하게 쓰이고 있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최저 임금, 임시 계약직, 노조에 대한 언쟁은 끊이지 않는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계약직'의 임금은 현저히 낮고, 노조의 규모와 역할은 갈수록 축소되어 간다.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의 권리는 위축되고, 일자리의 질도 더 나빠졌으며, 이에 따라 소득 양극화와 불균형은 점점 늘어간다. 저자는 경제문제가 교육 문제로 환원될 수없고, 불균등한 일자리 시장이 세계화에만 있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몇몇 나라의 실제 사례를 근거로 들어 노조의 부재에 의한 경제적 불평등이 권력과 직결됨을 얘기한다.
기업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정부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시장 장악력이 커진 기업들은 임금을 낮추고, 노동자들은 임금보다 더 많은 가치를 기업에 제공하며, 기업은 이러한 패턴을 유지하기 위한 알고리즘을 꾸준히 찾아내어 업데이트 한다. 노동자 개개인이 철옹성같은 기업에 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동비용이 하락하면 기업의 이윤이 증가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대기업 이윤으로 득을 보는 건 주주다. 그런데 현재 사회 구성원 중 많은 사람들이 주식시장에 이해관계가 있다. 우리가 앞서 언급한 패턴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노동자들에게 생활임금을 허락하지 않을 때, 그들은 건강, 행복, 생명 그 자체를 거부당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우리는 빈곤 문제에 있어서 초점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맞춰 왔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던져야하는 질문은 빈곤의 다른 한편에서 이익을 얻는 이가 누구냐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정부 예산이 부족하고, 실업 수당이나 여타 지원금 때문에 실업자들이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국민이 게을러진다는) 서사를 받아들인다.저자는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의 빈곤을 그들의 노력이 부족하며 복지가 의존성으로 이어져 자립 의지를 꺽는다는 말을 수용하는 것은, 이러한 선동이 설득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경제적 안정이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노동착취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노동자의 권리를 증진하는 것이다. 저자는 가장 많은 권력과 자본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미국의 막대한 빈곤에 가장 많은 책임이 있다고 일갈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자신이 속한 사회를 면밀하게 들여다볼 것을 당부한다. 조세회피, 노조 깨기, 저임금 이력 등 착취 기업인지, 궁핍과 절망을 확산하거나 공공 서비스를 반대하는 기업은 아닌지, 저소득층 동네의 젠트리피케이션에 책임이 있는지 등을 살피며 투자와 소비를 결정하고 빈곤 폐지론자가 될 것을 권한다.
저자가 명명한 '결핍 눈속임'은 아주 익숙한 정치 프레임이다. 본질을 피해 요리조리 말장난을 통한 대다수 국민의 눈가리기가 아직까지 먹히는 이유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결핍에 대한 비난의 대상에 그 모든 사람들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정작 가장 크게 비난받아야할 사람을 제외한 채).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항상 정부가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자원이 부족'하지 않음을, 국가의 풍요를 인정해야 함을 강하게 얘기한다.
저자는 빈곤의 종식이 수백만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들에게 더 나은 안전과 건강, 안정된 삶을 의미하는 것이며 사회악의 근원을 도려내는 것이라고 말한다(실제로 수많은 범죄와 사건들의 원인이 생계와 직결되어 있지 않은가). 빈곤이 사라진다해도 시장과 사유재산권은 건재할 것이며 소득의 양극화의 일정 크기의 간극은 메울 수 없을 것이다(그러니 너무 겁 먹지 말라는 것(?!)으로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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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신기하리만치 짚어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지 모르겠으나 책은 의외로 술술 읽힌다. 무엇보다 미국의 빈곤과 사회 문제를 서술하지만 특정 법률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점이 우리나라와 아주 흡사하다(어느 정치 경제 전문가는 한국이 미국보다 더 신자유주의적 국가라고 했다).
조문영 교수가 해제에 썼듯 한국은 상대적 빈곤율과 자살률 및 노인 빈곤율이 높고, 출산율은 OECD 국가 중 최 하위이며, 노인인구의 소득 및 자산 양극화는 점점 더 극심해지고 있다. 가난이라는 궤도에 들어서면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의 원인이 저임금, 외주화, 노동착취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여기에 이러한 문제들에 있어서 자신은 예외라거나 무관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가난이 지속되는 책임이 정부, 기업, 언론에만 있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전세 사기를 비롯한 당장의 범죄들이 '한 사회가 돈을 버는 방식이 바로 빈곤을 만드는 방식'이라고 말하는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의 말을 증명한다.
저자와 해제자의 제안은 저임금 불법화와 포용적 노동운동 전개, 정직한 기업, 무조건적인 재분배보다 사회안전망의 균형, 빈곤을 온존하는 정책 재고, 복지 신청 시스템의 개선, 실효성 있는 정책을 향한 지지, 빈곤의 공간적 분리의 지양, 빈자의 선택과 권리 존중이다.
책은 어렵지 않게 쉬운 용어로 쓰여있어서 읽는 데에 전혀 무리가 없지만, 혹시라도 이 책을 다 읽기가 부담스럽다면 조문영 교수의 해제 글만이라도 읽기를 바람한다.
※ 출판사 지원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