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는 알고 있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엄지영 옮김 / 비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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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노년의 어머니가 자살로 판명난 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소설은 '범인 찾기'라는 미스터리 형식을 빌어 서술하면서 엘레나의 짧은 여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편견과 선입견을 비롯한 고정관념, 사회 제도의 부조리와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엘레나가 이사벨을 찾아가는 여정을 따라가보면, 집에서 기차역까지 걸어간 다음 기차를 타고 목적지에서 내리고 택시로 환승하면 된다. 보통의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상적인 일이지만 엘레나에게는 여차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자 그녀를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되는 모욕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고개를 들 수 없고, 침을 흘리고, 치마가 말려올라가도 제 손으로 내릴 수조차 없다. 그럼에도 그녀가 이 모든 것을 감내하는 이유는 단지 하나, '엄마'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일찌감치 리타의 사건을 자살로 종결했다. 타살이라고 주장하는 엘레나의 입을 막기 위해 마지못해 만나러온 순경 아베야네다는 어느 순간부터 엘레네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그 일이 마치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된 듯 느낀다. 아마 아베야네다는 파킨슨 병으로 몸을 운신하지 못하고, 자식을 잃었으나 아무도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지 않아 분노하며, 사회에서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해버린 60대 여성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이 두 사람은 각자에게 필요한 위로를 서로에게서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은 경찰로서의 자신의 쓸모와 존재 가치를, 다른 한 사람은 잃어버린 엄마의 정체성과 자식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데에 자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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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의 기억을 좇다보면 질병이나 장애로 불편을 겪는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어떠한지를 거울처럼 보게 된다.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아야하거나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라는 선입견과 편견의 시선이 드러난다.  


작가는 중증 질환이나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의료보험 및 복지 혜택을 적절하게 받지 못하고 있는 제도의 문제점과 환자의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경제적.정서적 고립, 그리고 탁상공론식 행정과 관료주의를 지적한다. 읽다보면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 소설의 배경은 아르헨티나다. 리타와 엘레나의 상황이 한국이라고 다르겠는가. 


엘레나는 다층적으로 벽과 대면한다. 파킨슨 환자라는 벽, 여성이라는 벽, 장애인이라는 벽, 그리고 노인이라는 벽. 그런데 리타의 남자 친구는 곱사등이다. 그런 이유로 엘레나는 그가 리타의 남자친구로서 탐탁치 않았고 두 사람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그녀 자신이 파킨슨 병에 의해 신체적으로 그와 비슷한 외형을 갖게 된다. 엘레나는 파킨슨 병으로 인해 고개를 들지 못해 상대방의 얼굴을 볼 수 없고, 오로지 다리와 발만 볼 수 있다. 더구나 엘레나는 인류가 늘 그래왔듯 불행 혹은 형벌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는 여성명사를 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설정은 우리 사회가 여성과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아주 잘 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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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잘못된 관습이 출산의 감동과 엄마로서의 사명감을 여성에게 강요하고 있음을 얘기한다. 리베카 솔닛의 말처럼 여성은(그리고 이사벨은), 자기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거나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격과 신뢰성까지 의심을 받는다. 


아주 묘하게 리타와 이사벨에게서 서로의 모습이 겹쳐진다. 마치 보이지 않는 수갑에 두 손이 채워진 것처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 채 어쩔 수 없이 막다른 골목 끝으로 내몰리는 듯한 모습이 연상된다. 등 뒤에서 이들을 내몬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리타의 분노에 찬 외침은 살인자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사람, 같은 사건, 그러나 다른 기억.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가 될 수 없었던 여자, 집착에 가까운 모성애와 자식에 대해 다 안다고 착각하는 여자. 어쩌면 두 사람은 다른 듯 하지만 오히려 양극단에서 같은 모습을 하고 서 있는듯 하다. 리타, 엘레나, 이사벨까지. 그들은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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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생 리타가 무서워했던 비. 그러나 그 무서움까지 눌러 버린 더 큰 두려움과 고단함. 살아 있는 한, 누구에게든 희망이 있기 마련이라는 그 말이 이렇게 무책임하게 들리다니.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절정은 p227부터 p234에 걸쳐 주고받는 세 사람의 대화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이르러서야 리타 사건의 내막을 독자는 알 수 있을 것이다. 


할 말이 많은 소설이다. 
소설이지만 사회비평 읽는 독서모임에서 진행해보고 싶은 책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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