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크 플레이스
길리언 플린 지음, 유수아 옮김 / 푸른숲 / 2013년 7월
평점 :
이제 뭐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 무기력하고 한심한 주인공. 그런데 그게 오히려 매력적인 이상한 이야기.
서른살인 주인공 리비가 삐딱하고 은둔자처럼 되어버린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릴 적, 친오빠가 자신을 제외한 가족 전부를 몰살해 버렸기 때문이다. 숨어있던 리비는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사건 그 자체의 충격과, 이후 부평초처럼 친척집을 떠돌아다닌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대단히 뒤틀린 성격이 되어 버린다. 서른살이 되었는데도 일을 해야한다는 개념도 없고 기부금에만 의지해서 하루하루 연명해가는 처지.
그 알량한 돈마저 바닥난 찰나에 수상한 제안을 받는다. 유명한 범죄사건의 진실에 대해 토론하고, 때로는 독자적으로 조사하기도 하는 어떤 클럽의 회원들에게,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것. 회원들의 면면도 수상한데다, 이미 해결된 사건의 결과를 믿지 않고 당사자로서는 잊고싶은 기억을 이것저것 들쑤시려고 하니 리비로서는 기분이 좋을리가 없다. 하지만 좋은 정보가 있으면 돈을 내겠다는 조건에 끌려 리비는 그동안 애써 잊고 지내던 그날밤의 진상을 조사하기로 한다.
조사의 핵심은 사건의 범인이 정말로 오빠였는가 하는것. 이미 오빠는 종신형을 확정받고 오랫동안 복역하고 있지만, 클럽의 멤버들은 오빠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의심하고 있다. 그리고 유일한 생존자인 리비가 당시 너무 어려서 잘못된 증언을 한것이라고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인다. 그 흥미본위의 뻔뻔하고 무책임한 주장에 화를 내면서도, 리비의 마음에도 일말의 의문이 싹트기 시작한다.
현재와, 사건이 일어난 1985년을 왕복하면서 진행되는데, 읽다보면 사건의 진상보다도 각각의 인물의 입장에서 재구성하는 이 과거의 이야기에 묘하게 빨려들어간다. 당시 리비의 엄마는 이혼 후 혼자서 물려받은 농장을 경영하고 있었지만, 전혀 수입원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큰 빚만 지고 있었다. 가난 속에서 삐걱대는 가족 관계, 이웃들과의 관계... 한없이 침울해질수도 있는 내용. 그나마 저자의 재기넘치는 문장 곳곳에 미묘한 유머가 잠복해 있어서 간신히 괴로운 기분만은 모면할 수 있었다.
미스터리로서는 어마어마한 복선이 숨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극히 특수한 상황과 한 여성이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로서 훌륭하다. 마지막에 발견한 작은 등불이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