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어웨이 - 도피할 수 밖에 없었던 여자의 가장 황홀했던 그날
앨리스 먼로 지음, 황금진 옮김 / 곰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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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결혼 생활에 지쳐서 사소한 일로 가출을 생각하는 젊은 여성을 그린 <런어웨이>를 시작으로, 캐나다의 평범한 변두리 마을을 무대로 한 8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이중 2편은 연작이므로 모두 7가지의 인생이 담겨있는 셈입니다. 

저자인 '앨리스 먼로'는 단편작가로는 첫 노벨상 수상작가라고 합니다. 이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하던 작가였지만 이번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두개의 단편을 읽은 시점에서 완전히 빨려들었습니다.

 

이 단편집은 압권입니다. 모든 이야기가 담담하게 서술되지만, 마지막에는 대단히 어둡다고 해야 할까, 무거운 것이 느껴집니다.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한편한편을 읽어 낼 때마다 인생의 무게감을 묵직하게 느낍니다. 

표제작인 <런어웨이>는 마지막 부분에서 허를 찔리고는 깜짝놀랐습니다. 그저 평범한 시골마을의 주부의 이야기를 그린 수수한 단편이었을 뿐인데 마지막에 남는 이 묘한 어두움은 무엇이란 말인가 하는 기분입니다. 구성이 탁월하다는 평처럼 확실히 그렇습니다.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전개, 다른 결말이었습니다.

 

8편의 이야기에 나오는 여성들은 전부 자신의 자리에 안주하지 못하고 어딘가 다른 곳,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갈구합니다. 대체로 20-60년대의 변두리 마을이 무대가 되는 이 단편들에서 영리한 여성은 그 재능을 솔직하게 인정받기는 보다는 오히려 기형 혹은 특이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그녀들은 결국 그 장소로부터 뛰쳐나오지만 비록 그렇게 해서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다 해도, 그것이 행복한지 어떤지는 스스로도 알 수가 없는... 이렇게 말하면 뭔가 페미니즘 색이 강한 이야기같기도 하네요.

 

'앨리스 먼로'는 단편의 명수이자, 캐나다 문단의 중진입니다. 여러가지 상도 수상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앨리스 먼로뿐 아니라 그동안 캐나다 작가들의 작품을 인상깊게 읽고 작가의 팬이 된 경우가 많았던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이들의 정서와 코드가 맞는걸까요. 수수하면서도 무언가 황량한 느낌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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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당하고 싶은 여자
우타노 쇼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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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랫만에 '우타노 쇼고'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심상치 않은 제목뿐만 아니라 내용도 우타노 쇼고라는 이름에 걸맞게 시작부터 평범하지 않습니다.

 

심부름 센터에 나타난 아름다운 여자가 자신을 납치해달라는 의뢰를 합니다. 여자로부터 거액의 보수를 제시받은 심부름센터 소장 구로다는 남편의 애정을 확인하기 위한 여자의 연극에 동참하고 맙니다. 어차피 여자가 공범인 이상 나중에라도 폭로할 리는 없다는 계산입니다. 의뢰를 받아들인 구로다는 결국 여자의 가족으로부터 몸값을 받아내는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몹시 곤란한 상황에 봉착하고 맙니다. 여자를 풀어줘야되는데 풀어줄수가 없습니다. 누군가가 여자를 살해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범인은 누구이며 여자를 왜 죽인건지, 도대체 무슨 사연이 얽혀있는건지. 답답해진 심부름 센터 소장과 범인의 불꽃튀는 두뇌싸움이 펼쳐집니다.

 

이야기는 심부름 센터 소장 구로다와 살해당한 여자의 남편의 시점을 교대로 왕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교묘하게 시점이 뒤바뀌는 이 진행방식은 우타노 쇼고의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스타일은 익숙하다고 해도 여전히 사건의 진상을 눈치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납치당하고 싶은 여자>는 저자의 초창기 작품인 듯 합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는 지금의 작품들과 비교하면 조금 낡은 느낌이 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몇년 사이에 일어난 과학의 진보(예를 들어 스마트 폰과 같은)를 감안하면서 읽으면 그 트릭이라던가 흥미면에서 별다른 마이너스 요소없이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특히 납치수법은 매우 신선했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처음에는 범인이었던 심부름 센터 소장히 서서히 탐정역할로 자리바꿈하는 것도 재미있고, 어렴풋이 보일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무언가와 사건의 배후에 숨어있을 그 누군가가 세운 계획에 서서히 빨려들어갑니다.

 

나를 납치해달라는 여자의 한마디에서부터 시작된 황당한 사건이 점점 부풀어 오르고 뒤바뀌어가는 전개는 긴장감이 있고, 우타노 소설에서 기대했던 대로 마지막 반전에는 역시 임팩트가 있습니다. 강한 반전 이후에 맞이하는 결말은 다소 싱거운 감도 있지만 우타노 쇼고의 소설을 기다리던 독자로서는 별로 그렇게 신경쓰이는 부분은 아닐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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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케이스 속의 소년 니나보르 케이스 (NINA BORG Case) 1
레네 코베르뵐.아그네테 프리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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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와 리투아니아를 무대로 한 북유럽 소설.

덴마크 출신 두 여성 작가 '레네' 앤 '아그네테' 의 공동작품이다. 이 소설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작가들이지만 이미 뉴욕타임즈의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그 밖에도 유명한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원래는 둘다 판타지와 아동문학을 쓰던 작가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다른 범죄 스릴러와는 차별된 시선이나 표현들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무대는 주로 덴마크. 코펜하겐의 적십자 센터에서 일하는 간호사 '니나'는 날마다 폭력 피해여성이나 학대당하는 아이들을 접하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불법 입국자라는 약점이 있기 때문에 이용당하고 폭력을 당해도 무기력하지만, 시설에서 도와줄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이 날 오전에도 상처입고 시설로 도망쳐 온 우크라이나 여자가 가해자인 약혼자라는 남자에게 다시 끌려간 직후.

 

그런 때에 옛친구인 카린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기분 전환을 겸해 카린이 기다리는 카페로 간 니나는, 패닉에 빠져있는 친구로부터 자기대신 코인로커에 있는 짐을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무언가 나쁜일에 연류된 걸까. 코인 로커 안에는 무거운 슈트케이스가 들어있었다. 차가 있는 곳까지 간신히 끌고와 열어보니 그 안에는 알몸의 남자 아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3세 정도의 어린 아이. 약같은 것에 취해 잠들어 있다.


경찰에 연락하려던 니나는 코인 로커를 향해 격렬하게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한 남자를 목격한다. 남자가 발로 차고 있던 것은 그 슈트 케이스가 들어있던 로커였다. 니나는 남자가 찾고 있는 그것을 자신이 빼돌렸으며 아이를 데리고 도망쳐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같은 무렵, 리투아니아의 한 병원에서 눈을 뜬 '시기타'는 아들이 자취을 감추어 버린 것을 알고 당황하고 있었다.


복지수준이 높은 북유럽의 국가들은 구 소련에서 분리해 나온 국가들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풍족하다. 게다가 바로 이웃하고 있다는 점도 있어서 불법 입국자가 끊이지 않는다. 스스로 원해서 동구권에서 밀입국해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친부모에게서 팔려오는 아이들도 많다고 한다. 이 아이들은 폭력에 의해 착취당한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니나는 이것을 용납할 수 없다. 니나에게는 어떤 트라우마가 있어서 남편과 아이를 남겨 두고서까지 타지로 자원봉사를 할 만큼 사람을 돕는 데에 불타고 있다.

 
시기타의 과거와 슈트 케이스를 찾는 자의 모습에서 알몸의 아이가 들어있던 이유는 곧 짐작할 수 있다. 스토리는 복잡하지 않다. 등장 인물도 그렇게 많지 않고, 북유럽 소설로서 꽤나 익숙한 전개이다. 다만, 이 소설의 매력은 곧 니나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큰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니나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점 성장해 간다. 스릴러소설이지만 여류 작가 특유의 섬세함이나 온기같은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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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비밀 - 상처 받지 않고 관계가 행복해지는
천호림 지음 / 맛있는책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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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의 제왕에서 소통의 제왕으로 거듭났다고 고백하는 이책의 저자는, 요즈음 가장 핫한 스피치 컨설턴트라고 합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법, 대화하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이 사실은 오랫동안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잘못된 말이나 대화방식이 주위사람들과의 관계를 틀어지게 하고 자신의 분야에서도 어려움을 겪게 만듭니다. 주위사람들을 보아도, 또 나자신의 경험을 돌이켜 보아도 주변사람들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무심코 내뱉는 잘못된 말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말을 내뱉은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게 문제입니다.

 

말로써 타인에게 큰 상처를 주거나 대화에 잘 끼어들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자기위주의 이기적인 관점에서 인간관계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왜 자꾸만 사람들과의 관계가 틀어지는지, 직업적으로도 하는일마다 외면받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모른다는 것은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본인 또한 상처입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문제점을 깨닫기만 하면 이것을 고치는 것은 쉽다고 단언합니다. 고치고 나면 점점 더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할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물론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이기도 합니다. 

 

이책에 실린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불통의 이유 열가지'는 어쩌면 당연한 것들입니다. 타인에게 얼마나 공감할수 있는가, 타인의 말을 얼마나 경청해 주는가. 말하자면 타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하자는 것입니다. 많은 불통자들이 저지르는 잘못에 대한 지적과, 그것을 수정함으로써 변화된 삶을 살게된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중간중간 곁들여 강의를 진행해 갑니다.

 

돈보다 더 가치있는게 인간관계라고 합니다. 사회적 동물로 태어난 이상 당연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좋은 인간관계는 결국 사회적 성취, 수입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니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내인생을 뒤바꿀수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이란 본능을 다듬지 않으면 짐승처럼 이빨을 드러내 타인에게 무자비하게 상처를 주게 되지만, 반면에 잘 다듬어져 이성의 도구가 된말은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깊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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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글 쓴 남자, 안개 속의 살인
시마다 소지 지음, 이윤 옮김 / 호미하우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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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주위의 피부가 녹아내려 근육이 드러난 것처럼 시뻘겋게 보이는 남자가 고글을 끼고 밤거리를 헤메는 그 광경 자체가 한편의 도시괴담같은 기괴한 이미지입니다. 본격 미스터리가 아니라면 좀처럼 보기 힘든 시작이네요.

짙은 안개가 낀 어느 날 밤에, 마을에 있는 담배가게의 노파가 살해 당합니다. 노파가 살해된 현장에는 한쪽끝이 노랗게 칠해져 있는 5천엔권 지폐가 남아있고, 50개피의 필터없는 담배가 마구 흩어져 있습니다. 곧이어 고글로 얼굴을 감춘 이상한 남자에 대한 목격담이 이어지고, 이 고글남을 찾기 위한 두 형사의 탐문수사가 시작됩니다.  

 

시마다 소지의 신작이라고 해서 일단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만, 직접 책을 읽기 전까지는 <고글 쓴 남자, 안개 속의 살인>이라는 이상한 제목의 이유에 대해서는 짐작도 가지 않더군요. 알고보니 원자력 발전 관련한 이야기가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방사능 사고로 눈 주위가 짖무른 남자의 이야기가 복선이 되고, 그 이야기 속에서 기괴한 소문이 끊어지지 않고 있던 어느 핵연료 제조 회사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담배가게 노파가 살해된 맨처음 사건과 뒤섞여 갑니다. 현실과 망상이 혼잡해서 과연 어떤 형태로 전개가 될지 알쏭달쏭한데다가 명탐정 미타라이나 요시키도 없이 두명의 시골형사들로만 꾸려나가야 하는 이야기지만, 어쨌든 이리저리 비틀리던 이야기는 마지막에 깨끗하게 정리됩니다.

 

원자력 발전 사고라면 역시 얼마전 일본 후쿠시마에서 일어났던 대참사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 참사와 관련해서는 아마도 원자력 발전에 대한 다양한 문제점들이 일본내에서 지적되었을 테지요. 그래서 원자력 발전이 처음 언급되는 초반에는 저자가 이런 심각한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해서 무리하게 시도한 작품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본격 미스터리로서의 완성도에 대한 의심이었는데, 실은 이 소설은 일본의 한 티비 드라마에서 출제된 퀴즈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정확한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거기서 출제된 내용에 원자력 발전 관련한 살을 붙여서 하나의 장편소설이 된 것 같습니다. 막상 읽어보면 원자력 발전과 관련한 실제 사건들에 대해서 그다지 심도깊게 접근하지는 않는것 같습니다. 그저 모티브라고나 할까요. 순수하게 엔터테인먼트 소설로 즐길수 있는 여느때의 시마다 소지의 소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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