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페이지에 다 밑줄 긋고 싶은 작품이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아마도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다(어쩐지 그런 것 같다), 나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하지만 한 사람이 직접 당한 슬픔의 타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측정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이 우습고도 말도 안 되는 시도). - P20

이 순수한 슬픔, 외롭다거나 삶을 새로 꾸미겠다거나 하는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슬픔. 사랑의 관계가 끊어져 벌어지고 파인 고랑. - P50

외로움=대화를 나눌 사람이 집에 없다는 것. 몇 시쯤에 돌아 오겠노라고, 또는 전화로) 지금 집에 와 있어요. 라고 말할 사람이 더는 없다는 것. - P54

견딜 수 없었던 하루. 점점 비참해지는 날들, 울다 - P55

내가 놀라면서 발견하는 것, 그러니까 나의 걱정 근심(나의 불쾌함)은 결핍이 아니라 상처 때문이라는 사실. 나의 슬픔은 그 무엇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나는 모자라는 게 없다. 내 생활은 전 처럼 아무 문제가 없다). 그 무엇이 상처받았기 때문이라는 것. - P75

그 누구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까(그것도 대답을 얻으리 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 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 P78

춥다. 밤이다. 겨울이다. 나는 집 안에서 따뜻하지만, 그러나 혼자다. 그리고 이런 밤에 나는 다시 깨닫는다: 이제 나는 이런 외로운 밤을 아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한다는 걸, 이런 고독 속에서 행동하고 일하기, 그러니까 저 ‘부재의 현전과 달라붙어서 늘 함께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 P79

오늘 적막한 일요일 아침, 울적하고 암담한 마음속에서:
지금 천천히 내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매우 엄중한 절망적인 테마가 있다: 도대체 앞으로의 내 삶은 그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 - P92

나는 외롭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외로움이 필요하다. - P101

이런 말이 있다(마담 팡제라가 내게 하는 말):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차츰 나아지지요- 아니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이다. - P111

1921년 가을
프루스트는 베로날 과용으로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다. -셀레스트: "언젠가 우리는 모두 여호와의 계곡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당신은 정말 죽은 뒤에 우리가 다시 만날 거라고 믿나요
셀레스트? 정말 내가 마망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난 지금이라도 당장 죽고 싶어요." - P167

마망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는, 지금까지는 추상적 이기만 했던 사실을 확신으로 바꾸어주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으므로, 이 논리를 따라서 나 또한 죽어야만 한다는 확신은 어쩐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 P216

그녀의 죽음 이후, 그 무언가를 새롭게 ‘꾸미고 만들어가는 일‘이 싫다. 그런데 글쓰기는 예외다. 그건 왜일까? 문학, 그것은 내게 단 하나뿐인 고결함의 영역이다(마망이 그랬던 것처럼). - P235

망각이란 없다. 이제는 그 어떤 소리 없는 것이 우리 안에서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뿐이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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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cutta 2024-03-31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판으로 가지고 있어서 몰랐는데
표지 그림의 떨어지기를 멈춘 눈물이 애도의 꽃잎 같네요

새파랑 2024-03-31 13:45   좋아요 1 | URL
아 그런거군요~!! 주말에 읽었는데 괜히 읽고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ㅡㅡ

Calcutta 2024-03-31 14:29   좋아요 1 | URL
부알라(“나 여기 있다.”라는 그 말. 그녀와 내가 평생 동안 서로에게 했던 말).

새파랑 2024-03-31 15:55   좋아요 1 | URL
이 책은 조용한 밤에 다시 읽어봐야 할거 같습니다~!
 
백치 2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6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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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4022

˝당신의 눈을 어디서 꼭 본 것 같군요...... 하지만 그럴 리는 없을 거에요. 나는 한 번도 여기 온 적이 없으니까요. 어쩌면 꿈속에서...˝


100% ‘선‘으로만 이루어진 사람이 과연 있을까? (확언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내면은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선‘한 사람에게도 ‘악‘하거나 나약한 내면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다만 이성이나 제도들이 이를 표출하지 못하도록 할 뿐.


반대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악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악‘을 행할 때에도 내면 어딘가에는 반성과 후회라는 ‘선‘한 요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악인을 교화할 수 있다면, 그들은 ‘악‘의 행동을 멈출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100% ‘선‘으로만 이루어진 구원자가 우리 앞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그런데 과연 구원자라는 게 이 세상에 존재하긴 하는 걸까? 도스토예프스키는 <백치>라는 작품을 통해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100% ‘선‘으로 이루어진 사람인 ‘므이쉬킨‘ 공작이다. 작품 초반에 그는 가족 하나 없고, 간질 발작 때문에 어린시절에 스위스로 요양을 떠나 있다가 이제 기차를 타고 고향인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거짓말은 하지 않고, 언제나 진실과 진심만을 말하는 ‘므이쉬킨‘을 사람들은 ‘백치‘라고 부른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므이쉬킨‘은 100% ‘악‘으로 이루어진 사람인 ‘로고진‘을 만나게 된다. 불한당이었던 ‘로고진‘은 아버지의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졸부였고, 사랑에 대한 야망과 복수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로고진‘이 사랑하는 사람은 <백치>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되는 여인인 ‘나스타시야‘ 였다. 극과 극은 통하는 걸까? ‘므이쉬킨‘과 ‘로고진‘은 단 한번의 대화로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은 페테르부르크 기차에서 헤어지게 되는데...


이후 앞에서 이야기한 이 책의 또다른 주인공인 ‘나스타시야‘가 등장한다.어린시절 지배계층의 횡포로 인해 부모를 잃은 그녀는 고아로 자라게 되고, ‘토츠키‘라는 거부가 그녀를 키우게 되는데, 그녀는 어린시절에 ‘토츠키‘로부터 유린당하고 그의 정부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너무나 똑똑하고 똑부러진 그녀는 성장하면서 아름답고 강한 여인으로 크게 되고, 더이상 ‘토츠키‘의 정부가 아닌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를 협박하고 괴롭힌다.


‘토츠키‘는 자신의 위신과 안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였던 그녀를 ‘가냐‘라는 인물과 정략켤혼 시키려고 음모를 꾸민다. 그리고 ‘가냐‘는 자신의 출세와 지참금이라는 경제적 보상을 위해서 그녀와의 결혼을 받아들인다. 다른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에 품고선 말이다.


그리고 ‘가냐‘의 집에서 앞에서 언급한 네 사람, ‘므이쉬킨‘, ‘로고진‘, ‘나스타시야‘, ‘가냐‘ 가 처음으로 함께 만나게 된다. ‘므이쉬킨‘은 한 눈에 ‘나스타시야‘의 아름다움과 아픔을 알아보고,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한다(응?), 그녀와의 결혼을 통해 그녀를 구원하려고 한다. ‘나스타시야‘ 역시 그를 알아본다, 그의 선함을 알아본다. 그와 함께 한다면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음을 느낀다. 더이상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에 괴롭지 않아도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마음속에 품는다.


하지만 그녀는 100% ‘선‘인 ‘므이쉬킨‘ 대신 100% ‘악‘인 ‘로고진‘을 일단 택한다. 당연히 정략결혼의 대상자였던 ‘가냐‘에게는 모욕을 준다...그녀는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대신 왜 절망을 택했을까? 아마 그건 자신이 ‘므이쉬킨‘을 선택한다면 자신 때문에 ‘므이쉬킨‘이 타락할 거라고 걱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이미 타락한 자신은 이제 구원받기에는 늦었다고 판단해서 인지도 모른다.




구원받을 수 있었지만 구원받는 걸 포기한 ‘나스타시야‘, 그녀는 ‘로고진‘과 함께 떠나지만 아직 선한 내면이 남아있었던 그녀는 ‘로고진‘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도망치고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선‘과 ‘악‘ 사이에서 계속 갈등하는 인간의 마음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스타시야‘는 자신의 이상향인 ‘므이시킨‘이 ‘아글리야‘라는 자신과는 달리 순결한 여인과 결혼할 수 있도록 물밑작업(?)을 한다. 그렇게 해서 ‘므이시킨‘과 ‘아글리야‘는 가까워 지긴 하는데... ‘나스타시야‘는 자기가 물밑작업을 해놓고선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질투를 한다. 이것 또한 사랑과 질투 사이에서 계속 갈등하는 인간의 마음처럼 말이다.


과연 ‘나스타시야‘는 ‘선‘(므이쉬킨)을 택할까? 아님 ‘악‘(로고진)을 택할까? 변덕과 변덕을 거듭하는 ‘나스타시야‘를 보면 좀 속이 터지긴 하지만, 원래 인간의 마음이라는게 변덕과 모순 덩어리 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해도 된다. 결말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점점 흥미로워진다. 절대 ‘악‘인 ‘로고진‘은 이런 변덕스러운 그녀를 과연 언제까지 참고 기다려줄까 있을까?


그리고 절대 ‘선‘인 ‘므이쉬킨‘이 ‘나스타시야‘에게 느끼는 감정은 연만밀까, 사랑일까? 그리고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선택이 가능하긴 한 걸까? 책을 다 읽고 나서 주인공인 ‘므이쉬킨‘이 백치로 불렸다는 점과, 이 작품의 제목이 <백치>라는 점에 그저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양쪽의 선택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인간의 내면을 이처럼 잘 표현한 작품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00% ‘선‘한 사람의 영향력이 주변을 변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구원할 수는 없다, 구원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추가1)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대부분이 그렇듯이 <백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수다스럽고, 개성도 매우 강하며, 여성들(특히 부인들)의 입김은 완전 쎄고, 어떻게 보면 다 정신이상자 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왠지 미워할 수 없는, 오히려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추가2) 예전에 처음 읽었을때는(열린책들 버젼) 이해하기도 힘들고 잘 안읽혔는데, 이번에 재독하니(문학동네 버젼) 확실히 예전보다 이해도 잘 되고 훨씬 잘 읽혔다. 역시 좋은 작품은 재독해야 한다는걸 새삼 느꼈다.


추가3)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책 표지 뒷면에 나온 것처럼 이 책의 1부 이야기 전개는 정말 대단하다. 등장인물 이름만 햇갈리지 않고 1부를 집중해서 읽는다면 2~4부는 술술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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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3-25 1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백치는 아직 못 읽었는데,,, 새파랑님 글 제목이 끌리네요. 열린책들로만 있는데,,, 요즘 문학동네에서 도스토옙스키를 새롭게 펴내고 있나봐요.
제가 알기로 새파랑님은 전작읽기 끝내셨는데,,, 도스토옙스키 사랑은 영원하리! 맞습니까?^^

새파랑 2024-03-25 13:34   좋아요 1 | URL
전작을 하긴 했지만 전작한 기분이(?)가 안들어서 다시 읽고 있습니다~!! 게다가 다른 출판사 책이 나와서 안살수가 없었습니다~!!

책친놈 2024-03-25 1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과악에 대한 소재는 늘 흥미로운것 같아요.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등등 입체적인 캐릭터가 더 많이 나오다보니, 100퍼 선으로 나오는 인물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ㅎㅎㅎ

새파랑 2024-03-25 13:35   좋아요 2 | URL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린 가장 아름다운 인간인 ‘므이쉬킨‘이 나오는 작품입니다~!! 강추합니다. 기왕이면 도스토예프스키 장편을 순서대로 읽으면 좋을거 같아요~!!

페넬로페 2024-03-25 13: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학동네 버전이 읽기가 조금 쉬운 것 같아요. 출판사마다 세계문학을 번역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제목인 백치의 뜻이 그런 거였군요.
선과 악을 왔다갔다하는 나스타시야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한데요^^

새파랑 2024-03-25 13:51   좋아요 2 | URL
열린책들도 나쁘지는 않았는데 이번 문학동네 버젼도 좋더라구요. <악령>도 어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ㅋ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중에 해피엔딩이 있었나? 싶습니다. 원래 인생은 결국 비극 아닌가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4-03-26 11: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요새 다시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읽어나가시는 것 같아서 괜히 반갑네요. 저도 이어서 읽어야 하는데 다른 책들이 많아서 자꾸 늦어지고 있습니다ㅠㅠ 좋은 작품은 재독해야 한다는 것 저도 동감해요.
저는 아직 독서 초보라 초독이 대부분이지만 좋은 책들은 다시 읽어야지 생각하며 따로 정리해두고 있는데 언제 재독할 수 있을까요?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습니다!ㅎㅎㅎ

새파랑 2024-03-27 12:33   좋아요 1 | URL
거리의 화가님이 초보시면 저는....? ㅋㅋㅋ

요새 책읽을 시간이 부족해서 검증(?)된 책 위주로 읽으려고 합니다~!!

미미 2024-03-26 16: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있을것 같아 새파랑님 리뷰 절반만 읽었습니다.ㅎㅎ 극과 극의 두 사람이 만나 어떤 일이 생기는지 정말 궁금하네요. 저는 선과 악의 경계에 관심이 있어요.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 경계를 넘나들게 하는지를요. 도선생님은 그런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캐릭터로 그려내는 것 같아요.

새파랑 2024-03-27 12:35   좋아요 1 | URL
ㅋㅋ 도스토에프스키는 사랑! 입니다! 이책 읽다보면 아 뭐 이런 사람들이 있지? 이럽니다 ㅋㅋ
가장 극단을 잘 표현하는 작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구름모모 2024-03-26 16: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 출판사 모두 읽으셨네요. 읽지 않은 작품이라 솔깃해지네요.

새파랑 2024-03-27 12:35   좋아요 1 | URL
소장하는 겸 해서 두 출판사 버젼으로 다 읽었네요 ㅋ 도스토예프스키 장편들 순서대로 읽는걸 추천합니다~!!

희선 2024-03-31 0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구원할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겠지요 자신이 그걸 바라야 누군가의 도움도 받아들일 텐데... 도스토옙스키 소설 속 사람은 말이 많군요 도스토옙스키도 다르지 않았을 것 같은 느낌도 조금 듭니다 도스토옙스키 안에 있는 여러 사람...


희선

새파랑 2024-03-31 11:15   좋아요 0 | URL
도스토예프스키 실제로 만나면 엄청 수다쟁이일듯 합니다 ㅋㅋㅋ 이런 수다스러우면서도 깊이있는 성찰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최고인거 같아요~!! 현 시대에 신이 재림해도 타락한 사람을 구원할 수는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백치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5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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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4021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려낸 가장 아름다운 사람 '므이쉬킨' 공작에 대한 이야기. 그는 백치였지만 이상적이었고, 타락한 러시아인들은 그를 만나고 난 후 잘못된 가치관을 바꿔간다, 희망을 꿈꾼다, 혹은 그를 더립힐까봐 가까이 가지 못한다. 작품의 끝에 희망이 있을지 절망이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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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출판사로 다시 읽는 백치는 확실히 처음보다 더 좋았다.




하인이란 대체로 주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영리한 법이라, 이 시종의 머릿속에도 이건 다음 두 가지 경우 중 하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 공작이란 작자는 돈이 없어 구걸하러 온 게 틀림없는 일종의 건달이거나, 아니면 자존심이라곤 전혀 없는 그저 바보인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똑똑하고 자존심이 있는 공작이라면 문간 방에 앉아 하인에게 자기 일을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을 리가 없잖은가. 그렇다면, 이 경우든 저 경우든 이런 자를 들여놓았다고 혹시라도 자기가 책임져야 하지는 않을까? - P37

그리고 기왕에 말씀드리자면, 제 생각에 장군님과 저는 겉보기엔 아주 다른 사람들입니다. 여러 점에서 말이죠. 따라서 저희 사이엔 공통점이 별로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말이죠, 저 자신은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저 공통 점이 없는 듯 여겨질 뿐이지, 실제로는 공통점이 무척 많은 경우가 아주 흔하니까요... 그건 그저 겉보기에 따라 서로를 분류할 뿐 아무런 공통점도 찾아낼 줄 모르는 인간의 나태함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 P50

아무것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는 (그녀가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게 됐다는 점을 지금 이 순간에 간파하고 그 감정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기 위해서, 토츠키 같은 회의론자이자 세속적인 냉소주의자에겐 대단한 지혜와 통찰력이 필요했다) 그저 자신이 그토록 무섭게 혐오하는 인간에게 실컷 모욕만 줄 수 있다면, 시베리아로 가든, 징역을 살든, 어떤 끔찍한 짓이라도 저질러 자기 자신을 되돌이킬 수 없이 추하게 파 멸시킬 수 있는 여자였다. - P79

열정에 과도하게 빠져버린 인간은, 특히 나이가 지긋한 경우, 완전히 눈이 먼 나머지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곳에서도 희망을 품는 법이다. 그뿐이랴, 아무리 지혜로운 자라도 판단력을 잃고 어리석은 아이처럼 행동하게 마련이다. - P91

하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그 순간 그에게 무엇보다 괴로웠던 것은 끊임없이 떠오르는 한 가지 생각이었습니다. ‘만일 죽지 않는다면 어떨까! 만일 삶을 되찾을 수 있다면 어떨까 그야말로 무한이리라! 그리고 그건 고스란히 내 것이 될 테지! 그렇게만 되면 나는 일분일초를 한 세기로 만들어 그 무엇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며, 일분일초까지 정확히 계산해서 그 무엇도 헛되이 써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 생각은 마침내 증오감으로까지 변해서, 차라리 한순간이라도 빨리 총살시켜줬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는 겁니다. - P110

"당신의 눈을 어디서 꼭 본 것 같군요...... 하지만 그럴 리는 없을 거에요. 나는 한 번도 여기 온 적이 없으니까요. 어쩌면 꿈속에서..." - P190

당신은 두렵지 않다지만, 나는 당신을 파멸시키고 나중에 당신한테 원망을 듣게 될까 두려워요!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 영광을 베푸는 거라고 말하지만. - P307

"아니, 자네를 믿어, 하지만 뭐가 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 가장 확실한 건, 자네의 연민이 나의 사랑보다 훨씬 강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지!"

"그런데 자네의 사랑은 증오와 다를 바 없어." 공작은 빙긋이 웃었다. "그 사랑이 사라져버린다면, 그때는 사태가 더 불행해질지도 모르지. 파르푠 형제, 자네한테 말해두고 싶은 건......"

"내가 칼부림이라도 할 거라고?" - P384

"왜 웃었느냐고? 그냥 떠오른 생각인데, 만약 자네가 이런 불행과 마주치지 않았고 이 사랑이 자네를 사로잡지 않았더라면, 자넨 아마 꼭 자네 아버지처럼 될 걸세. 그것도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온순하고 말없는 아내와 단둘이 이 집에 들어앉아 어쩌다 한두 마디 무뚝뚝하게 던질 뿐 입을 꾹 다물고, 누구도 믿지 않을뿐더러 그럴 필요조차 전혀 못 느끼며 그저 음울한 얼굴을 한 채 잠자코 돈이나 벌어들이고 있겠지. 기껏해야 무슨 오래된 옛날 책이나 칭찬하고 구교도처럼 두 손가락으로 성호를 긋는 데 흥미를 느끼면서 말일세, 물론 이건 꽤 나이가 든 다음의 일이겠지만......" - P386

그러자 갑자기 무언가가 그의 앞에 넓게 열린 것 같았다. 불가사의 한 내면의 빛이 그의 영혼을 환히 비추었다. 이 순간은 아마도 반 초 가량 지속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슴에서 저절로 터져나와 어떤 힘으로도 저지할 수 없었을 그 무서운 비명의 시작을, 그것의 맨 첫 음향을, 또렷한 의식으로 분명히 기억했다. 다음 순간 그의 의식은 순식간에 꺼지고 완전한 암흑이 들이닥쳤다. - P423

"당신이 오지 않으니까 자기도 물론 화가 나 있었죠, 다만 백치한텐 이런 식으로 쓰면 안된다 는 걸 미처 생각지 못했지, 백치는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니까, 그리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됐거든. 아니, 당신은 뭘 엿들어요?" - P580

"그애한텐 당신같은 어릿광대가 필요해요, 이런 어릿광대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당신을 부르는 거예요! 나도 기뻐요, 기뻐, 그애가 이제 당신을 웃음거리로 만들 테니! 당신은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하죠. 게다가 그애는 그렇게 할 줄 알아요, 오, 얼마나 잘하는데!" - P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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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4020

˝내 세계와 현실 세계는 하나의 평면에 나란히 있으면서도 조금도 접촉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현실 세계는 이렇게 움직이며 나를 남겨둔 채 가버린다. 심히 불안하다.˝


오랜만에 다시 읽은 소세키의 <산시로>는 뭔가 풋풋했다. ‘미네코‘라는 신식(?) 여성을 둘러싼 ‘산시로‘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도대체 다른 것들에는 솔직하던 지식인들이 왜 사랑앞에서는 그렇게 망설이게 되는지, 그냥 포기하게 되는지 공감할 수 있었다. 학문 보다도 어려운게 사람의 마음인가 싶다.


시대는 바뀌었다. 망설이고 망설이면 그냥 망한다. 이 작품에서 ˝스트레이 십(미아)˝은 ‘미네코‘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산시로 포함)


역시 소세키라는 감탄을 다시한번 해본다. 재독이었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이런 무미건조하고 얌전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왜 이렇게 흥미로운건지 ㅋㅋ 그래서 다시 한번 소세키의 책탑을 쌓아봤다.


저번에 <그후>를 읽고 나서는 <그후>가 가장 좋았는데, <산시로>를 읽고 나니 <산시로>가 가장 좋다. 아마 다른 책을 읽으면 또 바뀔듯 싶다. 모든 작품이 다 좋지만, 개인적으로 소세키 히면 딱 네작품을 추천하겠다. <산시로>, <그후>, <행인>,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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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03-11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선생 전집의 자태가 영롱하네요.

저도 한 두권씩 사서 모으고 있답니다.
물론 읽기는 언제나처럼 더디구요.

새파랑 2024-03-11 16:58   좋아요 1 | URL
저도 야금야금 하면서 겨우 모았습니다 ㅋㅋ 평생 소장각 입니다~!!!

수이 2024-03-11 16: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멋지다! 양손 엄지 척척!! 저도 읽어볼게요, 추천작 위주로 먼저.

새파랑 2024-03-11 17:00   좋아요 0 | URL
추천작들은 다 좋습니다~!! 뭐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수도 있지만요~!! ㅋ

페넬로페 2024-03-11 2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산시로는 정말 풋풋했어요.
전에 읽은 느낌이 그대로 있네요.
미네코와 산시로의 밀당도 재미있었고요.
저도 남은 소세키 작품 읽어야하는데 ㅎㅎ

새파랑 2024-03-11 21:43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은 잃시찾 읽는것 처럼 하시믄 금방 전작 하실겁니다~!!!

coolcat329 2024-03-12 0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책탑이 너무 아름다워요.
저는 저 시리즈 세 권 가지고 있는데, 나머지도 새파랑님처럼 야금야금 구비해놔야겠어요.
저도 영화든 책이든 두 번째 보고 읽을 때가 더 좋던데 책을 두 번씩 읽기엔 인생이 참 짧은 거 같아요.

새파랑 2024-03-12 12:55   좋아요 0 | URL
현암사 시리즈로 꼭 모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좋은 작품은 재독해야 하는거 같아요. 전 올해 재독을 좀 많이 해볼까 합니다 ㅋ

moon 2024-03-12 15: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쓰메 소세키 글 너무 좋죠^^

새파랑 2024-03-12 15:57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소세키는 다 좋습니다!!!

그레이스 2024-03-13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아!
역시 현암사 이 전집은 볼수록 아름답습니다.
완독! 축하드려요~^^
근데,,, 전에 완독하시지 않았나요?
그럼 재독?!
새파랑님은 소세키, 하루키,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암튼 전작읽기 달인이시군요!

새파랑 2024-03-14 07:46   좋아요 1 | URL
아 ㅋ 전에 읽고 다시 한번 더 읽고 있습니다~! 좋은 책은 자주 읽어줘야죠~!!

달인은 아니고 한번 읽고 이해 못했던걸 두번읽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

희선 2024-03-15 0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번에도 《산시로》 읽고 이게 가장 좋다고 쓰신 게 생각나네요 이번에도 같은 말을... 시간이 지나도 같은 생각을 하셨군요


희선

새파랑 2024-03-15 13:29   좋아요 1 | URL
가장 좋은 책은

방금 읽은 책인거 같습니다 ㅋㅋ

Calcutta 2024-03-15 0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책탑 은은하고 예쁘네요. 저는 아직까지는 행인이 가장 좋았는데 산시로를 읽으면 바뀔 수도 있겠군요. 기대합니다!

새파랑 2024-03-15 13:30   좋아요 0 | URL
저도 행인 좋습니다 ㅋ 풀배게부터 순서대로 다시 읽으려고 합니다~!!!

구름모모 2024-03-15 2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음 흔들리네요. 요즘 눈독들이는 세트^^

새파랑 2024-03-16 09:26   좋아요 0 | URL
소세키에 관심(?)이 있다면 현암사 세트는 소장각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