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월이다. 3월에는 그래도 책을 많이 읽을 수 있겠지? 했는데, 2월달에도 그랬듯이 여전히 못읽었다. 원래 독서란게 그런건가 보다. 책 열심히 읽어야히 하다가 실패하고, 다시 열심히 읽어야지 다짐하다가 또 실패하고, 또 다시 다짐하고...다짐하고 후회하고 다짐하고 후회하고의 무한반복~!!


그래도 3월에는 좋은 책을 많이 만나서 좋았다. 양보다 질이라고나 할까? 3월에는 총 8권을 읽었다. 제목은 아래와 같다.

<숨겨진 삶>, <오로라>, <산시로>, <백치1>, <백치2>, <애도 일기>, < 아리시마 다케오 단편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


다독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달에 10권은 읽을 줄 알았는데 못읽었다. 회식도 많고 모임도 많고 운동도 많고, 게다가 재독이었지만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 때문이었다고 핑계를 대고 싶다. 몇가지 인상깊었던 책을 소개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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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좋았던 책 : 최진영의 <오로라>

두께는 얇고 가격은 좀 비싼 느낌이 있지만 그만큼 좋았다. 내가 바라는 가장 최진영 작가 다운 작품이었다. 리뷰를 쓰고 싶었는데 책 내용이 너무 짧아서 못썼다... 하지만 정말 좋았다. 아무리 우울에 빠지더라도 탈출구는 분명히 있다. 그때가 오기까지 힘들고 너무 길 수도 있지만.

[누구나 감추고 삽니다. 한 명쯤은 아무도 모르게. 어둠 속에서. 홀로 사랑합니다. 그러니 당신도 묻어버려요. 마음에 심장처럼. 그럼 들키지 않고 그는 당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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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장 뿌듯했던 책 :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 1, 2>

예전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전작을 끝냈을 때 정말 뿌듯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재독해야지 라는 다짐을 했었다. 이 다짐을 24년에 실행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걱정되는것이 과연 내가 다시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들, 특히 열린책들 출판사 버젼으로 읽었던 <백치>나 <악령> 을 다시 읽을수 있을까 였다. <죄와 벌>이나 <카라마죠프가의 형제들>은 워낙 유명하고 재독도 했어서 어렵지 않을 거 같은데,

특히 <백치>는 처음 읽었을때 도대체 이게 뭔 내용인지, 왜이리 장황한지 당황했던 기억이 있어서 좀 두려웠다. 그런데 이번에 문학동네 출판사 버젼으로 <백치>를 재독했데, 확실히 처음 읽었을때보다 술술 읽혔고 이해도 잘되었다. 역시 명작은 무조건 재독해야 하나보다. 다음번에는 민음사 버젼의 <악령>을 읽어야 겠다.

[당신은 두렵지 않다지만, 나는 당신을 파멸시키고 나중에 당신한테 원망을 듣게 될까 두려워요!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 영광을 베푸는 거라고 말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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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너무 감동적이어서 리뷰를 남기고 싶은 책 :  롤랑바르트의 <애도 일기>

<오로라>도 우울했지만, <애도 일기>는 그냥 우울 그 자체였다. 갑자기 누군가를 잃어버렸다는 것과 누군가를 상실했다는 것의 차이가 이런걸까 라는 생각이 든다. <애도 일기>는 롤랑바르트가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 2년동안 자신이 느낀 비애를 쓴 메모를 모은 작품인데, 그냥 읽으면서 우울속에 빠진 느낌이었다. 소중한 누군가를 상실해본 사람이 읽으면 그 슬픔에 격하게 공감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100자평으로 퉁(?)치려고도 했었지만, 그건 좀 아닌거 같아서 나중에 조용한 곳에서 맨정신(?)으로 리뷰를 써봐야 겠다.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차츰 나아지지요...아니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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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장 충격적인 작품 : 실비 제르맹의 <숨겨진 삶>

최근에 읽은 작품중에 가장 충격적이었고, 반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면서도 문장은 아름답고 이야기는 너무 매끄러웠다. 처음 접한 작가였는데, 그녀의 다른 작품(호박색 밤)도 이미 준비해 두었다. 이번달에 읽어야 겠다.




아..이젠 책을 읽어야 겠다. 그래서 4월에 꼭 읽어야 할 책을 미리 선정해보았다.(가장 아래사진) 8권이니까 설마 못읽지는 않겠지?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끝내고 나서 바로 착수해야겠다. 간단히 선정배경을 말하자면,

1. 여행드롭 : 표지가 좋았다.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소설인줄 알았는데 에세이였다. 어제 도착.

2. 삶을 견디는 기쁨 :  제목이 좋았다. 헤세는 소설도 좋지만 에세이도 좋더라. 어제 도착.

3.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모든 페이지에 줄을 그었다는 서평이 좋아서 구매했다. 어제 도착.

4. 고리오 영감 :  최근 발자크가 인기여서 나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구매해놓고선 방치.

5. 호박색 밤 : 실비 제르맹의 또다른 작품. 표지가 아름답다. 구매한지 얼마 안됨.

6.7. 모비딕 : 스타벅스를 자주 가다보니 모비딕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매한지 얼마 안됨.

8. 사랑의 미래 : 이작가님이 강추하셨던(?) 책인데 이번에 읽어봐야 겠다.




이젠 진짜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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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4-04-04 05:53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술파랑님...운동도 많이 하시는 줄은 몰랐읍니다...약간 배신감이 느껴지는군요ㅋㅋㅋㅋㅋㅋ 술만 많이 드시는 줄ㅠㅠ 일 운동 술 모임 다 하시면서 어떻게 매달 이렇게 알차게 읽으시는지...😱
백치 문동 번역이 좋다고 해서 문동으로 갖고있는데 기대됩니다!! 전 첫독이라 그래도 좀 당황스러울 거 같긴 한데... 아무튼 도전~!!
술파랑님 100자평 읽고 <숨겨진 삶> 담아놨는데 조만간 사야겠읍니다~!! 😆

새파랑 2024-04-04 07:39   좋아요 4 | URL
술을 마실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운동이 필수입니다....

백치 : 좋습니다. 은오님 취향일듯
숨겨진삶 : 은오님의 사랑 잠자냥님의 픽입니다~!!

햇살과함께 2024-04-04 08:36   좋아요 3 | URL
술을 마실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운동이 필수입니다 --> 공감 백배입니다!!
3월 30일에 산에 다녀 오셨나요??
저도 모비딕 읽고 싶은데 백치도 읽고 싶은데 두께가... 엄두가 안나네요..
4월도 화이팅입니다.

잠자냥 2024-04-04 08:47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 술파랑 댓글에 현웃 터짐… 휴 ㅋㅋㅋㅋㅋㅋㅋ 곰탱아 <숨겨진 삶 > 좋아.. 일단 문장성애자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새파랑 2024-04-04 09:37   좋아요 2 | URL
3월달에는 책보다는 운동을 많이 했네요 ~!! 저날은 테니스만 계속쳤습니다 ㅋㅋㅋ 모비딕 같이 읽어 보시죠~!!

어제도 술..... 독서 전무...

건수하 2024-04-04 09:43   좋아요 3 | URL
앗 새파랑님도 테니스...?

새파랑 2024-04-05 16:07   좋아요 0 | URL
전 테니스를 좋아하긴 하는데 잘 치지는 못합니다 ㅋㅋ

독서괭 2024-04-04 06:1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스타벅스를 자주 가다 보니 모비딕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에 빵 터졌네요 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4-04-04 07:40   좋아요 3 | URL
전 다른카페 혼자가면 눈치보여서 주로 스벅을 갑니다 ㅋㅋㅋ

모비딕 유명해서 그동안 안읽었는데 이번에 읽어보려구요~!!

그레이스 2024-04-04 08: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울했지만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 좋았습니다.
실비 제르맹! 끌리네요.

새파랑 2024-04-04 09:42   좋아요 2 | URL
가끔 강제 우울이 필요합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실비제르맹도 좋아요 ^^

잠자냥 2024-04-04 08: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테니스 치고 술 마시면서 많이 읽었네요?! 이사 후 거대 책탑도 곧 개봉해주세요!! ㅋㅋㅋㅋ

독서괭 2024-04-04 08:50   좋아요 5 | URL
테니스 치고 술 마시면서 많이 읽는 사람 = 잠자냥님???

잠자냥 2024-04-04 08:54   좋아요 5 | URL
난 요즘 테니스는 못 쳐요~!!

새파랑 2024-04-04 10:02   좋아요 2 | URL
제가 그래도 할건 다 합니다 ㅋㅋ

잠자냥님 테니스 황제이실듯... 한국의 나달 잠달?

잠자냥 2024-04-04 10:22   좋아요 2 | URL
페더러의 우아한 폼을 좋아하기는 합니다....

은오 2024-04-04 10:36   좋아요 2 | URL
페더러보다 잠자냥님이 더 우아합니다....

새파랑 2024-04-05 16:17   좋아요 1 | URL
푸바오보다 은오님이 더 우아합니다....

책친놈 2024-04-04 09: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번달에 운동을 많이 못했어서 조금 찔리네요 ㅠ 저도 독서만큼 운동도 다시 열심히 해봐야겠어요! 그리고 저도 여행드롭 읽어보려고 했어서 반갑네요 ㅎㅎ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 해놨거든요. 에쿠니가오리 소설 좋아 했어서 ㅋㅋㅋ 에세이는 어떤지 궁금하네요

새파랑 2024-04-04 10:04   좋아요 1 | URL
전 소설파라 에쿠니 가오리 소설이 더 좋더라구요~!

독서 운동 둘다 동시에 잘할수는 없는거 같습니다 ㅋ 50대 50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blanca 2024-04-04 09: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비딕! 저도 언젠가 도전만 하겠다고 결심하고 있어요. 실비 제르맹 궁금해요.

새파랑 2024-04-04 10:06   좋아요 1 | URL
친구가 선물 골라봐라고 하길래 두꺼워보이(비싸보이는?) 모비딕을 선택했습니다~!!

실비 제르맹은 잠자냥님 픽이니 100% 보장합니다~!!

잠자냥 2024-04-04 10:22   좋아요 1 | URL
블랑카 님 <숨겨진 삶> 블랑카 님은 5별 예상입니다. ㅋㅋㅋㅋ

새파랑 2024-04-04 14:17   좋아요 0 | URL
잠자냥님 5별은 무조건이죠 ㅋㅋ

자목련 2024-04-04 1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비 제르맹은 이상하게 쉽게 잡히지 않아요.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부터 좋다는 평은 익히 들었는데.. <숨겨진 삶>도 기억하겠습니다.

새파랑 2024-04-04 14:18   좋아요 0 | URL
저도 이름에서 포스가 느껴져서 좀 접근이 쉽지 않았는데 좋습니다. 잘읽히고요~!!!

러블리땡 2024-04-04 1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박색 밤 표지 완전 이뿌네요 표지보고 혹했어요ㅎㅎ

새파랑 2024-04-04 21:32   좋아요 0 | URL
표지만큼 문장도 예쁩니다. 내용이 좀 쇼킹하지만 ~!!

페넬로페 2024-04-04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항상 책에 진심인 새파랑 님^^
숨겨진 삶, 백치, 애도 일기~~
읽어보고 싶어요.
오로라는 오디오북으로 듣고 있는데 최진영 작가의 느낌이 그대로 있는 것 같아요^^

새파랑 2024-04-04 21:34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만큼 진심은 아직 아닌거 같습니다 ㅋ <오로라> 소장각입니다~!! 다른것도 다 좋았습니다~!! <애도 일기> 좋아하실거 같아요~!!

Calcutta 2024-04-04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비 제르맹, ‘숨겨진 삶’도 좋았지만 ‘마그누스’가 더 좋았습니다. 이 작가는 좋은 번역가분들을 만난 덕도 큰 것 같습니다. 문학동네 이어지는 모비딕 표지 멋지군요!

새파랑 2024-04-05 09:34   좋아요 1 | URL
아하 <마그누스>는 아주 좋다...

바로 구매하겠습니다~!!!

<모비딕> 좀 두껍던데 잘 읽어 보겠습니다~!!

Calcutta 2024-04-05 21:07   좋아요 1 | URL
읽다가 말다가 모비딕은 완독을 못했는데 새파랑님은 4월에 읽어내실듯! 헤세의 ‘삶을 견디는 기쁨’ 같이 읽어보려고 합니다.

새파랑 2024-04-14 20:58   좋아요 0 | URL
지금 가방에 모비딕 2권과 헤세의 에세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ㅋ 모비딕 완전 재미나네요~!!

얄라알라 2024-04-07 1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이쁘기로는 호박색 밤도 한표! 여전히 꾸준히, 애정을 담아 읽으시는 새파랑님 서재 왔다가 게으른 독서가 반성하고 갑니다

새파랑 2024-04-14 21:00   좋아요 0 | URL
알라님이 게으른 독서가라니 전혀 말이 안됩니다 ㅋ 겉보기 보다는 내용이 중요하지만


왠지 전 표지 예쁜 책이 좋더라구요 ㅋㅋ
 

미래를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마음이 착해졌다.


사람들은 인생이 괴로움의 바다라고 말하지만, 우리 존재의 기본값은 행복이다. 우리 인생은 행복의 바다다. 이 바다에 파도가 일면 그 모습이 가려진다. 파도는 바다에서 비롯되지만 바다가 아니며, 결국에는 바다를 가린다. 마찬가지로 언어는 현실에서 비롯 되지만 현실이 아니며, 결국에는 현실을 가린다. ‘정말 행복하구나‘라고 말하는 그 순간부터 불안이 시작되는 경험을 한 번쯤 해 봤으리라. 행복해서 행복하다고 말했는데 왜 불안해지는가? ‘행복‘이라는 말이 실제 행복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대신한 언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그 뜻이 달라질 수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이야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이야기의 형식은 언어다. 따라서 인간의 정체성 역시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이렇듯 인간의 정체성은 허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규정하는 것도 언어이므로 허상은 더욱 강화된다. 말로는 골백번을 더 깨달았어도 우리 인생이 이다지도 괴로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 P18

둘은 가장 좋은 게 가장 나중에 온다고 상상하는 일이 현재를 어떻게 바꿔놓는지 알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에게는 희망이 생긴다. 한번 더 살 수 있기를. 다시 둘이 만났을 때부터 시작해서 원래대로 시간이 흐르기를 그리하여 시간의 끝에, 모든 게 끝 났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이르렀을 때 이번에는 가장 좋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기를. - P23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 P29

어떤 말들은 씨앗처럼 우리 마음에 자리잡는다. "만약 지민씨와 준이 앞으로 결혼하게 된다고 칩시다"라던 외삼촌의 말이 그랬다. 그뒤로 어찌된 일인지 우리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 P31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현이 기억하는 은정은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하는 친구였다. 은정의 말을 듣고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때는 그저 은정이 이야기를 재밌게 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게 무슨 뜻인지 잘 안다. - P54

"언제나 마음이 유죄지."
영원한 여름이란 환상이었고, 모든 것에는 끝이 있었다. 사랑이 저물기 시작하자, 한창 사랑할 때는 잘 보이지도 않았던 마음이 점점 길어졌다. 길어진 마음은 사랑한다고도 말하고, 미워한다고도 말하고 알겠다고도 말하고, 모르겠다고도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고, 말만 하고

마음은 언제나 늦되기 때문에 유죄다. - P196

자신은 이제 새들이 모두 날아가고 난 뒤의 빈 나무 같은 사람이 됐다고 생각했지만, 그 기사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한번 시작한 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고, 그러니 어떤 사람도 빈 나무일 수는 없다고, 다만 사람은 잊어버린다고, 다만 잊 어버릴 뿐이니 기억해야만 한다고,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고.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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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시마 다케오 단편집
아리시마 다케오 지음, 류리수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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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4023

어떤 리뷰에서 ‘아리시마 다케오‘가 20세기 최고의 일본 작가라는 이야기를 본적이 있었다. 귀가 얇은 나는 ‘최고‘라는 말을 들으면 일단 궁금증이 생긴다. 그래서 구매를 했다, 그리고 읽었다.....<아리시마 다케오 단편집>에는 3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간단히 소개해 보자면...



1. <사랑을 선언하다>

개인적으로는 <사랑을 선언하다>가 가장 좋았다. 이런 꼬이고 꼬인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서간체 소설이어서 재미있엇다.


이야기는 어찌보면 간단하다. 남자인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서로 친구 사이임), 그리고 여자인 Y코 이렇게 세 사람이 주요 등장인물이고, 구성은 A와 B가 서로 주고받는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Y코의 편지는 맨 마지막에 한번 등장한다.)


A는 Y코라는 여자에게 반하고, Y코라는 여자를 알고 있었던 B는 친구인 A와 그녀가 잘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이후 A와 Y코는약혼을 하게 되지만, A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이 급격하게 기울어져서 A는 급히 고향으로 가서 집안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향에서 일을 해야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리고 빈궁했던 B는 A의 부탁이 있기도 해서 Y코의 집에 들어가서 하숙을 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꼬인다. B는 A에게 편지로 Y코의 소식을 전해주기도 하고, 두 사람 사이의 조언자 겸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A와 B가 주고받는 편지 속 분위기가 바뀐다. A는 의심하게 되고, B는 설명하려고 한다. 두 사람은 흔들리는 사랑과 우정의 그림자를 주고 받는다. 과연 Y코는 A를 포기하고 B를 마음에 두는 걸까? B는 우정 대신 사랑을 택할 것인가? 멀리 떨어져 있는 A는 그렇게 사랑과 우정을 모두 잃어버리는 걸까?

[자네의 패배 위에 축복 있으라.
Y코의 갱생 위에 동정 있으라.
나의 승리 위에 비탄의 눈물 있으라.] P.174



나는 <사랑을 선언하다>를 그냥 흥미진진한 연애소설로 읽었는데, 해설을 읽어보니 그냥 연애소설은 아니었다. 약혼이라는 사회적 규약을 버리고 도덕까지 넘어서서 내면의 진실에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모습과 그 시대의 젊은 여성이 가부장적 사회에 대항하여 주체적으로 자기 선택을 하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동질감이라고나 할까? 나는 A가 좀 많이 불쌍했다...






2. <태어나려는 고뇌>

<태어나려는 고뇌>는 이 책의 해설자가 가장 좋다고 평가한 작품인데...개인적으로는 별로였다. 처음에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시작한다. 문학가인 ‘나‘는 우연히 화가를 꿈꾸던 ‘기모토‘라는 학생을 만나고, 그가 그린 그림에 큰 감명을 받는다. 하지만 ‘기모토‘는 먹고살기 위해 고향인 훗카이도로 돌아가서 어부 생활을 해야만 했고, 그렇게 10년이 지난 후 두 사람은 재회한다. ‘기모토‘는 어업에 종사하는 와중에도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나‘는 이런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업이라는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기모토‘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그가 돌아간 후 ‘기모토‘의 삶을 상상하면서 그에 대한 소설을 쓰게 된다.(액자식 구성의 시작)

[이렇게 2년, 3년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어쩌다 자네 생각을 하게 되면 나는 인생 여로의 쓸쓸함을 맛보았다. 어찌 되었든 한번 얼굴을 마주하고 어느 정도까지 마음을 함께 했던 동지가 일단 헤어진 것이 마지막이 되어, 같은 이 지구 상에 호흡하고 있으면서도 미래에 영겁이 되도록 다시는 해후하지 않는… 그것은 얼마나 이상하고 쓸쓸하고 무서운 일인가.] P.187



여기서부터 내가 이 작품을 별로라고 느낀 부분이 진행되는데, 아무리 액자식 구성 이라고는 하지만 ‘자네는..‘이라고 진행되는 2인칭 시점(이라고 표현하는게 맞는 걸까?)의 이야기는 뭔가 이야기가 매끄럽지도 않고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카인의 후예>

<카인의 후예>는 야만적이고 본능적인 날것(?)의 소작농민 ‘닌에몬‘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는 소작료도 제대로 내지 않고, 멋대로 경작하며, 기분 나쁘다고 동네 아이들을 때리고, 아내를 함부러 대하는 불한당이고, 사람들은 그를 무서워 한다. 다른 농민들은 지주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만 ‘닌에몬은 그런것에 신경쓰지 않고 오직 자신의 본능에 따라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도 인간인지라 점점 생활이 어려워지고 동네에서는 따돌림을 당하는 데다가 아이를 잃고 나자, 이를 극복하기 지주를 찾아가서 소작농민들의 염원인 소작료 경감을 요구하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지주의 위엄에 주눅이 들어 한마디 말도 제대로 못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숙소에 불을 지르고 나서 부부는 농장을 떠난다. 자신을 둘러싼 계급의 굴레를 벗어던진다. 그런데 눈밭을 해치고 나아가는 그들에게 희망이라는게 있긴 한걸까?

[분비나무 숲이 건너편에 보였다. 모든 나무가 벌거숭이가 되어 있는데 이 나무만은 음울한 암록색 잎사귀 색을 꾸지 않았다. 곧게 뻗은 나무 기둥이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서 하늘을 찌르고 성난 파도와 같은 바람 소리를 담아 내고 있었다. 두 남녀는 개미처럼 작게 그 숲에 다가갔다가 마침내 그 안에 삼켜져 버렸다.] P.351





추가 1) 일단 세 단편 중 두 단편이 좋았다. <사랑을 선언하다>는 재미있고, <카인의 후예>는 강렬했다. 그냥 읽었을때는 몰랐었는데, 해설을 읽고나서 각각의 단편에서 작가가 생각하던 문제의식과 사상적 고뇌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이 작품은 해설을 읽고 난 후에 읽으면 더 좋을것 같다.


추가 2) 생전에 ‘남녀의 사랑이 절정인 순간에 죽는다‘고 말하고 다녔던 작가는 1923년에 자신의 사상을 실현하기라도 하듯 유부녀(?)와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좀 섬뜩힌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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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3-31 1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몰입을 방해한 ˝자네˝는 번역의 문제였을까요?

귀가 얇으시다는 새파랑님, 여전히 열독에 상세 리뷰까지 올려주시는 정성을 나눠주셔서 덕분에 호강하고 갑니다.

**소소한 질문 A, B는 A, B 인데 왜 Y는 Y˝코˝라고 하나요, 혹시나 (제가 일본어 전혀 모르는데) 일본어랑 관련되는 접사인가요?^^;; 죄송해요 별걸 다 궁금해합니다. 제가

새파랑 2024-03-31 22:15   좋아요 1 | URL
번역의 문제 보다는 시점의 문제인거 같습니다. 2인칭으로 진행되다보니 현실성이 결여된거 같은 느낌? ㅎㅎ

저도 책을 읽으면서 왜 A, B 인데, Y코만 이렇게 명시한건지 궁금했습니다.. 뭐 따로 설명은 안나와있더라구요~!!

페넬로페 2024-03-31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가 얇은 새파랑님 ㅎ ㅎ
아리시마 다케오,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
최고의 일본 작가라는 말에 저도 솔깃하네요^^

새파랑 2024-04-01 22:35   좋아요 1 | URL
개인적으로는 최고는 아닌걸로......

저라면 하루키 소세키 슈사쿠 이렇게 세분 선택하겠습니다~!!
 

몸이 안좋을때 읽어서 뭔가 잘 이해늘 못한것 같다. 다시 읽어봐야 겠다.


한치 나아가면 한 치만큼의 죄가 펼쳐지고 한자 물러서면 한자만큼의 후회가 남는 공포에 휩싸여 있다네. - P5

그 후로도 오쓰야를 봤다고 생각한 찻집 앞을 몇 번이나 지나갔는지 모른다네. 그러던 중 그 찻집이 문을 닫아 버렸지. 그러고서 나의 온 영혼과 온 마음을 흔들어 댔던 오쓰야는 내 마음속에 불완전한 모습을 남긴 채 그 젊은 새댁과 함께 나와는 티끌 만한 교류도 없이 이상한 존재 속으로 모습을 감춰 버렸다네. 그것은 그 무렵 나에게는 죽는다는 것보다도 훨씬 슬픈 이상한 사건이었지. 그걸 생각해 보면 지금도 신비해 무서운 신비야. 한 번 본 사람의 얼굴을 이젠 절대로 볼 수 없다는 건.. 거기에는 밑바닥을 알 수 없는 운명의 신비가 있는 게 아닐까? - P18

그저 우연한 만남이 이런 기적을 나타낸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나는 이상한 광명 속에 내던져진 맹인과도 같다네. 눈 바깥쪽에는 끊임없이 빛이 고루 비치는 광명이 있네. 하지만 눈 안에는 영겁불괴의 암흑이 있을 뿐일세. - P39

Y코에 대해서는 왠지 편지를 쓸 마음이 들지 않네. 자네의 편지는, 호의로 가득한 편지는 불행하게도 Y코에 대한 것보다 보편적인 이해를 줌과 동시에 보다 심각한 의문을 던져 주더군. 사람을 의심하면 자기 마음이 시궁창이 되어 버리지. - P142

자네의 패배 위에 축복 있으라.
Y코의 갱생 위에 동정 있으라.
나의 승리 위에 비탄의 눈물 있으라. - P174

이렇게 2년, 3년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어쩌다 자네 생각을 하게 되면 나는 인생 여로의 쓸쓸함을 맛보았다. 어찌 되었든 한번 얼굴을 마주하고 어느 정도까지 마음을 함께 했던 동지가 일단 헤어진 것이 마지막이 되어, 같은 이 지구 상에 호흡하고 있으면서도 미래에 영겁이 되도록 다시는 해후하지 않는… 그것은 얼마나 이상하고 쓸쓸하고 무서운 일인가.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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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페이지에 다 밑줄 긋고 싶은 작품이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아마도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다(어쩐지 그런 것 같다), 나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하지만 한 사람이 직접 당한 슬픔의 타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측정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이 우습고도 말도 안 되는 시도). - P20

이 순수한 슬픔, 외롭다거나 삶을 새로 꾸미겠다거나 하는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슬픔. 사랑의 관계가 끊어져 벌어지고 파인 고랑. - P50

외로움=대화를 나눌 사람이 집에 없다는 것. 몇 시쯤에 돌아 오겠노라고, 또는 전화로) 지금 집에 와 있어요. 라고 말할 사람이 더는 없다는 것. - P54

견딜 수 없었던 하루. 점점 비참해지는 날들, 울다 - P55

내가 놀라면서 발견하는 것, 그러니까 나의 걱정 근심(나의 불쾌함)은 결핍이 아니라 상처 때문이라는 사실. 나의 슬픔은 그 무엇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나는 모자라는 게 없다. 내 생활은 전 처럼 아무 문제가 없다). 그 무엇이 상처받았기 때문이라는 것. - P75

그 누구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까(그것도 대답을 얻으리 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 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 P78

춥다. 밤이다. 겨울이다. 나는 집 안에서 따뜻하지만, 그러나 혼자다. 그리고 이런 밤에 나는 다시 깨닫는다: 이제 나는 이런 외로운 밤을 아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한다는 걸, 이런 고독 속에서 행동하고 일하기, 그러니까 저 ‘부재의 현전과 달라붙어서 늘 함께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 P79

오늘 적막한 일요일 아침, 울적하고 암담한 마음속에서:
지금 천천히 내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매우 엄중한 절망적인 테마가 있다: 도대체 앞으로의 내 삶은 그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 - P92

나는 외롭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외로움이 필요하다. - P101

이런 말이 있다(마담 팡제라가 내게 하는 말):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차츰 나아지지요- 아니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이다. - P111

1921년 가을
프루스트는 베로날 과용으로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다. -셀레스트: "언젠가 우리는 모두 여호와의 계곡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당신은 정말 죽은 뒤에 우리가 다시 만날 거라고 믿나요
셀레스트? 정말 내가 마망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난 지금이라도 당장 죽고 싶어요." - P167

마망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는, 지금까지는 추상적 이기만 했던 사실을 확신으로 바꾸어주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으므로, 이 논리를 따라서 나 또한 죽어야만 한다는 확신은 어쩐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 P216

그녀의 죽음 이후, 그 무언가를 새롭게 ‘꾸미고 만들어가는 일‘이 싫다. 그런데 글쓰기는 예외다. 그건 왜일까? 문학, 그것은 내게 단 하나뿐인 고결함의 영역이다(마망이 그랬던 것처럼). - P235

망각이란 없다. 이제는 그 어떤 소리 없는 것이 우리 안에서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뿐이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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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cutta 2024-03-31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판으로 가지고 있어서 몰랐는데
표지 그림의 떨어지기를 멈춘 눈물이 애도의 꽃잎 같네요

새파랑 2024-03-31 13:45   좋아요 1 | URL
아 그런거군요~!! 주말에 읽었는데 괜히 읽고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ㅡㅡ

Calcutta 2024-03-31 14:29   좋아요 1 | URL
부알라(“나 여기 있다.”라는 그 말. 그녀와 내가 평생 동안 서로에게 했던 말).

새파랑 2024-03-31 15:55   좋아요 1 | URL
이 책은 조용한 밤에 다시 읽어봐야 할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