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도 너무좋네~!!

가끔씩 할머니를 만나러 갈 때마다 나는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어째서 ‘마지막이 아니라면 좋겠다‘는 생각은 못 했는지,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 자책했다. - P10

고마워하는 마음이 먼저야. - P18

내 잘못을 내 입으로 말하는 건 힘들다. 혼자 끙 끙거리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나는 말없이 울었고 엄마도 말이 없었다. 핸드폰 너머에서 언니를 부르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 P19

우리는 더 즐겁 고 신나게 지낼 수 있었다. 담임이 순지를 때리지만 않았다면 땅따먹기를 1000번도 넘게 했을 거 다. 뽀뽀는 그보다 더 많이 했을 거다. 마지막 날에야 하는 화해는 우습다. 하지만 마지막 날이 아니었다면 순지가 내 말에 대꾸했을까? 나도 모르게 갑자기 사과할 수 있었을까? - P50

뻔한 대답을 듣지 않으려면 뻔한 질문을 피해야 한다. 뻔한 질문을 하지 않으려면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 - P53

눈앞의 어려움을 해결한다고 내 삶이 크게 달라지진 않을 거란 사실을. 어질러진 방을 내 손으로 치우고 나는 다시 방을 어지르겠죠. 먼지는 쌓이고 벽지는 낡아가고 어딘가에서 계속 나쁜 냄새가 올라오겠죠. 나는 구제불능이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겠죠. 이 권태와 환멸, 손쓸 수 없다는 우울과 허무, 계속 잘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은 대체 어디에서 흘러오는 겁니까. - P71

이별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 같고, 포기를 위해 꿈꾸는 것만 같다. 가방에 국어사전이 있었다면 ‘허무‘라는 단어를 찾아봤을 거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과 ‘허무‘가 딱 들어맞는 단어인지 확인해 봤을 거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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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10-22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흑흑흑....항상 간단해보이는 문장에 뭉클이 담겨있습니다...흑흑..

왜 그 생각은 못 했는지, ‘마지막이 아니라면 좋겠다‘는 생각은 못 했는지‘

새파랑 2023-10-23 10:39   좋아요 0 | URL
이 책에 좋은 문장이 많던데 책 읽다보니까 많이 못그었습니다 ㅜㅜ

저도 마지막 문장보고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ㅜㅜ
 

이제 읽기시작~!!
완전 좋네~!!



"여보시오, 나는 내 인생을 뽕나무 회색 나무판자에 맡겼소, 비올라 다 감바 7현의 소리와 내 두 딸아이에게 맡겼소. 추억이 내 친구들이오. 버드나무가 있고, 강물 이 흐르고, 잉어와 모샘치가 뛰어놀고, 딱총나무 꽃들이 피어 있는 곳이 내궁이오. 궁에 가서 폐하께 아뢰시오. 35년 전 아버지 선왕 때는 있었던 야생의 것이 지금 폐하의 궁에는 전혀 없다고 말이오." - P25

그는 악보를 참조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손은 악기 지판을 자유자재로 옮겨 다녔고, 그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음이 서서히 올라갈 때, 문 옆에 매우 창백한 여 인이 나타났다. 그의 연주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아무 말 없이 입가에 미소를 띠고 그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더니 그를 보며 활짝 웃었다. 그녀는 생트 콜롱브 씨의 악 보대를 조용히 돌았다. 그리고 탁자와 작은 포도주 병 바로 옆 구석에 있던 궤짝 위에 앉아 그의 연주를 들었다. - P35

그의 아내였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가 한 곡을 마치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는 더 이상 거기 없었다. 그는 비올라 다 감바를 놓았다. 포도주 항아리 옆에 있는 주석 접시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그는 포도주잔이 반쯤 비워져 있고, 그 옆에 있던 고프레가 반쯤 갉아 먹혀 있는 것을 보았다. - P36

이런 식의 방문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생트 콜 롱브 씨는 자신이 미친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일다가도 만일 이것이 광기라면 그녀가 그에게 행복을 선사해 준 것이라고 생각했고,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기적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아내의 사랑이 자신의 사랑보다 훨씬 더 큰 것 같았다. 왜냐하면 아내는 자기한테까지 왔지만, 자신은 아내에게 똑같은 일을 해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 P37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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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성경이 이런 이야기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육신은 결국 흙으로 돌아간단다. 하지만 인간을 흙으로 빚은 하느님이 흩어진 우리의 육신을 모두 모아서 다시 원래대로 만드실 거다. 죽으면 다른 물질들과 섞여서 땅과 강,풀의 일부가 되 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단다. 아르세니야, 바닥에 쏟아진 수은이 여러 개의 작은 방울로 흩어지지만 땅에 스 며들지 않듯이 우리 육신도 이와 같단다. 수은은 솜씨 좋은 장인이 나타나서 다시 용기 안에 넣어줄 때까지 그대로 있단다. 이렇듯 전지전능하신 그분 역시 우리의 흩어진 육신을 모아서 부활시켜주시는 거란다." - P47

"영혼이 뭔가요?" 아르세니가 물었다.
"그것은 하느님이 인간의 몸에 불어넣는 것이고 이로 인해 우리가 바위나 식물과는 구별되지. 아르세니야, 영혼은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준단다. 영혼은 양초의 불꽃과 같은데 다만 이승에 속하지 않아서 하늘로 올라가려고 하는 성질이 있단다." - P46

"우리 모두는 아담이 간 길을 가고 순결을 잃으면 비로소 우리가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단다. 아르세니야, 울면서 기도하렴. 그리고 죽음은 아픈 이별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거라. 죽음으로써 해방되는 기쁨도 누리게 될 테니 말이다." - P49

"솔로몬이 말하길 ‘이상한 일이 세 가지, 정말 모를 일이 네 가지 있으니, 곧 독수리가 하늘을 지나간 자리, 뱀이 바위 위를 기어간 자리, 배가 바다 가운데를 지나간 자리, 사내가 젊은 여인을 거쳐간 자리다."솔로몬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흐리스토포르 역시 이것을 알 수 없었다.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아르세니 역시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 P82

이제 사랑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아르세니의 새로운 삶이 시작 되었다. 한편으로는 우스티나를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가 갑자기 그의 삶에 등장한 것처럼 예고도 없이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 P93

"날 믿어요, 내 사랑, 내가 죽고 싶어서 이러는 것은 아니라오. 오히려 그 반대요. 내 생명은 나와 당신의 희망이라오. 이제 와서 내가 죽음을 찾아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하오?" - P151

"천사들은 힘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지치지 않는다네. 만약 자네가 자네 힘의 한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자네 또한 지치지 않을 걸세. 아르세니,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자는 물에 빠질 것을 두려 워하지 않는 자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나." - P156

"하지만 사랑이란 것은 (이 말을 하면서 스트로예프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이해하기론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강렬하면서 다른 모든 감정을 밀어내는 그런 감정인 걸로 아네만, 몸도 아프고 그러지 않나. 그런데 그런 감정은 느끼지 않는단 말이지. 그녀가 보고 싶긴해. 옆에 있고 싶기도 하고 말이지. 목소리를 듣고 싶기도 해. 하지만 미칠 것 같은 정도는 아니란 말이야." - P295

아르세니가 우스티나에게 말했다. "마치 내가 먼 과거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구려. 사람들도 그때 치료하던 사람들과 비슷하고 증상도 비슷해서 한때 내가 치료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난 것 같은 기분도 든다오. 시간이 과거로 돌아갔거나 내가 어떤 원점으 로 다시 돌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오. 그렇다면 돌아가는 길에 당신을 만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오." - P442

"저는 이제 제 삶이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저는 아르세니였고, 우스틴이었고, 암브로시우스였으며, 이제는 라우루스가 되었습니다. 서로 닮지도 않았고 서로 다른 이 름과 서로 다른 몸을 가진 네 사람의 삶을 살았습니다. 루키나 마을의 금발 소년이 저와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을까요? 기억을 함께 공유하는 것일까요? 하지만 제가 오래 살면 살수록 제가 가진 기억이라는 것은 지어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 기억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저는 서로 다른 시대에 저였던 사람들과 저를 더 이상 연관지어 생각할 수 없 습니다. 삶은 모자이크와 유사해서 여러 조각으로 흩어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 P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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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책은 왜이리 좋은것인가..
읽고나니 너무 고독하다.






"화내고 싶을 땐 화내는 게 좋아. 그게 정신 건강이라는 거야. (그는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울고 싶을 땐 울고, 웃고 싶을 땐 웃고, 그게 자연스러운 거야. 그런데 우린 이상하게도 감정을 억누르는 게 미덕이라고 잘못된 교육을 받아왔어. 물론 이성을 무시해 도 상관없다는 말은 아니야. 하지만 다시생각해보면, 울고 싶을 때 울지 않았고, 화내고 싶을 때 화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손해를 봤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산다는 건 자기를 표현하는 거야. 자기를 불태우는 거야. 있는 힘을 다해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아낌없이 태워야 해.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 료는 온 힘을 다해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부러워. 물론 (하고 목소리를 죽이며) 남한테는 분명히 폐가 되긴 하겠지만. - P30

"나처럼 예술가도 아닌 인간에게 인생이란 그가 살았던 하루하루와 함께 끝나는 거야. 미래라는 게 없어. 죽음이 있을 뿐이야.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야. 현재라는 건 없어. 그래, 대부분은 현재조차도 없지. 거기엔 과거가 있을 뿐이야. 물론 그건 진짜로 사는 건 아냐. 오늘이라는 하루를 살지 않고 뭘 산다고 하겠어. 하지만 많은 사람은 과거에 의해 살고있어. 과거가 그 인간을 결정해버리는 거지. 산다가 아니라 살았다야. 죽음은 단지 표시일 뿐이야." - P41

"어젯밤까지도 결심이 서지 않았어. 너라면 이해해줄지도 모 르지. 시시하면 태워버려난 평생 친구다운 친구가 없었어. 그리고 딱히 남에게 보여주려고 글을 쓰지도 않았고. 하지만 너한텐, 아냐 됐어. 어쨌든 너한테는 보여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단, 내가 죽으면, 이야." - P46

그건 자살이 아니었을까. 그 의문이 집요하게 내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시오미는 스스로 원해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 중에도 끝까지 수술을 하도록 의사에게 부탁했다. 수술이 위험 하다는 것, 그의 체력으로는 생명에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그가 몰랐을 리는 절대 없다. 만약 내가 억지로라도 반대했더라면. 하지만 그런 후회보다, 어쩌면 그의 강인한 의지가 타인의 어떤 반대보다도 강했을 거라는 상상이 희미하게나마 나의 무력감을 달 래주었다. 그리고 그 회한과 뒤섞여, 맨 처음 들었던 의문, ― 그 수술은 기독교의 세례를 받은 시오미가 고의로 자신을 죽이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을까 하는 그 의문이 쏟아지는 햇빛과 반짝이는 순백의 눈 속에서 내 마음을 갈가리 찢고 있었다. - P55

이건 꿈이야, 깨고 나면 뭐야 시시한 꿈이잖아. 라고 단언할 수있는 그런 일시적인 거야, 내게 결정적으로 주어진 단 한번뿐인 인생이잖아, 인생이란 건 좀 다른 거야, 더 밝고, 더 보람 있고, 더 ‘찬란한‘ 거야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 꿈에서 절대 깨어날 수 없었다. 내가 죽을 때까지 깨어날 수 없는 것, 이 악몽과도 같은 꺼림칙한 공포가 그대로 나의 현실임을 나는 끝내 인정할 수밖 에 없었다. - P60

나처럼 병세가 심한 인간은 짧은 기간 뒤에 확실히 죽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현실 외에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현 실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인생이라는 것을 나는 기나긴 미망 끝에 싫어도 알게 되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꿈에서 깨어날 리 없을 테고, 그 죽음의 순간은 이제 곧, 틀림없이 찾아올 것이다. 나는 ‘산 다‘라는 이름에 걸맞을 만큼 이 인생을 살지는 않았다. - P60

나는 옛날부터 고독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떠나갔다. 하지만 사랑하고 있을 때 나는 살아 있었다. 그때는 생명의 충족감이 있었고,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황홀감이 종종 나를 찾아왔다. 그런 행복은 어디로 갔을까. 아아, 바로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고 강렬하게 외치고 싶은 그 불타오르는 영혼의 환희는 어디로 갔을까. 강한 의지로 일관된 고독, 영웅의 고독, 그리고 하루하루의 삶 속에 빠져 떠밀려가는 듯한, 이런 나약하고 가련한 고독은 대체 뭐란 말인가. - P63

과연 내가 그렇게 눈부시게 과거를 살았을까? 사랑받을 수 없었던 나, 그저 사랑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면서도 가슴속의 고뇌로 마음이 찢어지던 나, 그런 나는 정말로 옛날에 한 점 후회 없이 살았을까? 그리고 또 하나의 의문. 내가 사랑한 사람들은 왜 나를 떠나갔을까? - P63

소녀가 깔깔대고 웃고 어머니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후지키도 할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나는 조금 당황해하며 웃었다. 이럴 때 의 후지키와 나만 알고 있는 그 차가운 후지키는 어찌 이리도 다른 걸까. 왜 내게는 늘 냉담한 가면을 쓰고 대하는 걸까. - P92

왜지? 하고 나는 속으로 물었다. 다같이 행동하겠다. 단순히 그 뿐인 걸까, 그게 아니면 내가 싫은 걸까. 하얗게 빛바랜 실의의 기 억이 내 의식 속을 재빨리 스쳐갔다. 후지키를 알게 된 지 아직 1 년밖에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시오미 선배, 시오미 선배, 하며 무슨 일만 있어도 친하게 다가와 매달리곤 했다. 그것이 가을이 되고, 내가 후지키네 집에 가끔 놀러오면서 어머니와 지에코와도 어 울리게 된 후로 후지키는 조금씩 내게서 멀어졌다. 나와 만나는 걸 피하고, 나와 이야기하는 걸 피한다. 대체 왜일까. 왜 그렇게 내 게 차갑게 대하는 걸까. - P93

"사랑하기 때문이라. 난 말이야, 진짜 고독이란 그 무엇에도 상처받지 않는 것, 어떤 괴로운 사랑에도 견딜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그건 영혼의 강하고 적극적인 상태라고 생각해. 예를 들면, 기도하고 있는 인간의 상태 같은 거지. 기도는 신 앞에서는 갈대처럼 나약한 모습이지만, 인간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뺏길 게 없는 한계까지 다다른 강함을 보여주지. 고독이란 그런 게 아닐까?" - P116

"하지만 그런 경우, 사랑의 강함과 고독의 강함은 정비례하지 않아. 상대를 더 강하게 사랑하는 쪽은 오히려 자신의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상대에게서 상처받을 때가 많거든. 하지만 설령 상처 를 받는다 해도, 언제나 상대보다 더 강하게 사랑하는 입장에서 야 하는 거야. 남에게 사랑받는다는 건, 햇볕에 미지근해진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과 같아서, 거기엔 어떤 고독도 없어. 남을 강하게 사랑한다는 건 자신의 고독을 거는 거야. 설령 상처받는 두려움이 있다 해도 그게 진짜 삶이 아닐까? 고독이란 그런 식으로 단련되어 성장해가는 게 아닐까?" - P117

"사랑한다는 건, 다시 말해 사랑받기를 바란다는 것 아닙니까? 시오미 선배가 절 사랑해주는 것도 제가 선배를 좋아해주기를 기다리기 때문 아닌가요?"
"난 그저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해."
"아니에요. 그렇다면 선배가 이렇게 괴로워할 일은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내가 괴로워하는 건…………"
나는 머뭇거렸다. 후지키가 이렇게 날카롭게 몰아세우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과연 상대방의 사랑을 기대하지 않는 사랑이란 게 있을까. 나 역시 결국은 후지키가 나를 사랑하게되고, 둘의 사랑이 맺어진 데서 이데아의 세계를 꿈꾸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후지키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후지키에게 경멸당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이 떴는지, 후지키의 얼굴이 창백하게 소나무 그늘에 떠올랐다. - P130

아무 의미도 없는데, - 후지키를 향한 나의 사랑이 아무리 컸다 해도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고, 사랑을 거부한 후지키도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사랑도, 고독도, 집착도, 거절도, 끝내는 아무 의미도 없게 되었다. 사랑하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모든게 다 허무할 뿐이었다.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던 후지키, 정해진 길 밖에 걸을 수 없었던 후지키, 그리고 그런 후지키를 그토록 사랑 했던 나. - P146

사랑한다는 것은 믿는 것이다. 이 순간을 후회없이 사는 것이다. 불안이 뭐란 말인가, 죽음이 뭐란 말인가, 이 영혼의 고요함, 이 맑은 행복, 이 음악, 이 달빛……. 나는 지금 죽어도 좋다. 이렇게 널 사랑하면서, 지금, 그렇게 생각하며, 이제 오로지 그것을 입 밖에 꺼내어 말하는 것만이 남았다. - P164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음으로는 지에코를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어쩌면 나는 한편으로 나 자신의 고독을 너무 나 소중히 했던 것이리라. 후지키 시노부를 잃은 후 나는 인간이 날 때부터 지닌 얼음 같은 고독은, 아무리 활활 타오르는 사랑의 불꽃으로 태워진다 해도 결코 녹아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 히 알게 되었다. 상처받은 내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지에코는 너무 나 어리고 천진했다. 그리고 나는 지에코를 사랑하면 할수록 고독하고, 고독을 느끼면 느낄수록 사랑하는 이 마음의 모순을, 나 자신에게도 지에코에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 P207

그녀는 나를 잊었고, 나는 그녀를 잊었다. 인간은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오래된 기쁨과 슬픔은 전부 의식 밑바닥에 가라앉혀버리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 사람은 새로 운 고민, 새로운 괴로움을 위해서는, 모든 걸 잊을 수 있는 걸까. - P246

지에코는 잠깐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발길을 옮겼다. 내 마음은 점점 어둡게 가라앉았다. 어제는 지에코를 다시 만난 게 하나의 기적처럼 기뻤는데, 오늘은 모든 게 허무한 반복일 뿐인 것처럼 여겨졌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헤어진다. 사람은 헤어지기 위해서만 만난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 마음은 고독에게 너무 깊이 갉아먹힌 것일까. 이런 허무한 두 사람의 밀회 뒤에, 도대체 무엇이 남는 걸까. 내가 군대에 가버리면, 그걸로 모든 게 끝이다. 가까운 미래에 나는 전장 어딘가에서 비참하게 죽겠지. 그리고 지에코는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슬퍼하고, 웃으며 살아가겠지. 산다는 것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다. 쇼팽을 듣고, 하나님을 믿고, 기차를 타고 고우미 선을 달리는 것이 다.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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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에서 출판된 세계문학 단편선 중 사랑에 관한 단편을 모은 작품. 이미 읽었던 단편이 제법 있었지만, 새롭게 읽게 된 단편도 아주 좋았다. 다음은 죽음에 관한 단편집이다~!!










우리 여자들이 연약하다는 걸, 너무나 쉽게 굴복한다는 걸, 아주 쉽게 사랑에 빠진다는 걸 너도 알아야 해! 아주 하찮은 일로도 마음이 약해지고, 갑작스럽 게 감상적인 기분이 찾아들 수 있어. 손을 뻗어 만지고 싶고 껴 안고 싶은, 어느 순간이 오면 우리 모두가 느끼는 그런 욕망 말 이야! <달빛> - P11

"언니, 우리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랑을 사랑하는 경우가 자주 있어. 그리고 그날 밤 언니의 진정한 애인은 달빛이었던 것 같아."<달빛> - P15

땡그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건널목을 지나면서 속도를 높이기 시작한 기차는 드넓은 교외의 풍경을 뚫고 석양을 향해 달려 나갔다. 어쩌면 그녀도 석양을 바라보며 잠깐 걸음을 멈추고 있을 지도 몰랐다. 그러곤 고개를 돌려 옛일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 리고 밤이 찾아올 것이고, 그는 그녀와 함께 잠속으로 빠져들며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날의 해질녘 어둠은 영원히 태양을 가릴 것이고, 나무를 가릴 것이고, 꽃과 그의 젊은 날의 웃음을 가릴 것이다.<현명한 선택> - P208

그래, 가거라 하고 그는 생각했다. 4월은 끝났다. 4월은 흘러 갔다.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랑도 똑같이 되풀이되지는 않는다. <현명한 선택> - P220

청년은 둘의 우정이 지금이 시작이기를 바라며 이미 당신이라는 존재가 자신에게 아주 소중해졌다고, 실은 그 이상이라고 말했다.

청년은 긴장하기 시작했고, 마치 자기 감정 때문에 안경이 자꾸 떨어지려 한다는 듯 떨리는 손가락으로 안경을 밀어 올렸다. 청년이 말했다.

"물론 전 당신에게 저에 대해 얘기해야 합니 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다소 이상하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우연인지 인연인지 모를 이 만남을 저는 계속 유지하고 싶습 니다. 로마를 혼자 여행하게 될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정말 행복하고 또 행복했습니다. 아주 최근에야 전……… 감히 생각하길..."

<윈첼시 양의 사랑> - P291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된 상태에서 자기 이름을 그렇게 적는다고 생각해 보라. ‘스눅 스‘ 윈첼시 양은 자기가 정말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스눅스 부인이라 부르는 걸 상상했고, 은근히 모욕의 기운이 섞인 그 성을 생각했다. 윈첼시 양은 회색과 은색 카드에 쓰여 있는 ‘윈첼시‘라는 이름이 큐피트의 화살표로 지워지고 대신 ‘스눅스‘라는 이름이 적히는 것을 상상했다. 그것은 심약한 여성의 자존심 상하는 고백처럼 보였다! 윈첼시 양은 몇몇 여자 친구들 에게, 그리고 자신이 점점 더 세련되어지면서 오래전에 소원해져 버린 몇몇 식품점 사촌들에게 받을 끔찍한 축하를 상상했다. 사촌들은 봉투에 그 이름을 갈겨쓰고 비꼬며 축하할 것이다. 그 남자와 사는 게 아무리 즐거워도 어찌 그런 부분을 보상받겠는 가? 윈첼시 양은 중얼거렸다. "불가능해. 불가능해! 스눅스라니! <윈첼시 양의 사랑> - P293

"난 그녀를 너무나 사랑해…난 떠날래…"

아!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얼마나 가련한지요! 하지만 경멸로도 사랑을 끊을 수 없다는 건 참 지독한 일이죠!

<아를의 연인> - P315

당시 우리는 그녀가 미쳐 버렸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녀로선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는 그녀의 부친이 쫓아 냈던 그 많은 청년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기에,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녀도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바로 그 대상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을 거라고, 누구라도 그녀와 같은 처지가 되면 그렇게 될 거라고 이해한 것이다.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송이 장미> - P348

한참 동안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움푹 파인 그 해골의 환한 미소를 내려다보았다. 그 주검은 한때는 포옹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음에 분명했지만, 지금은 사랑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자신을 저버린 일그러진 사랑마저 정복해 버린, 긴 잠에 빠져 있었 다. 잠옷 아래에서 썩어 간 그의 잔해는 그가 누운 침대에 그대로 달라붙어 있었다. 그의 위에, 그리고 그의 베개 위에도, 끈질 기게 견뎌 온 세월의 먼지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두 번째 베개 위에서 머리가 놓였던 움푹한 자 국을 발견했다. 누군가가 거기서 뭔가를 집어 들었고, 그것을 보려고 몸을 기울이자 그 희미하고 잘 보이지 않는 메마른 먼지 같은 것이 매캐한 냄새를 풍겼다. 우리가 본 것은 한 올의 기다란 철회색 머리카락이었다.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송이 장미> - P358

"왜요? 나는 당신을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든 다 좋아한단 말이에요."
"그건 꽤나 괴로운 사랑이었어."
"아마 마지막에 가서는 그랬겠지요. 그녀가 당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말이에요. 하지만 여보, 그녀랑 행복했던 시절도 있었잖아요."

<영구 소유> - P399

"별건 아니고… 그냥… 어느 날 당신은 아테네에 대해서도 나풀에서의 추억과 똑같은 말을 하지 않을까요? ‘잘 기억나진 않아. 지금처럼 좋은 건 아니었어‘라고."

<영구 소유> - P403

오늘, 죽음은 왜 나에게 슬픔을 안겨 주지 않는 걸까? 혹시 그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걸까? 아니다, 나는 저 아이쉐 부인과 휘세인 아브니 씨에게 화가났던 것이다. 부부가 서로를 사랑한 다는 것을 무덤에서까지 말하는 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정자가 있는 무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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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10-02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안녕하세요 이 단편집이 이런 커버로도 있군요 덕택에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절판이네요 ... 잘 보고 갑니다 새 달 잘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새파랑 2023-10-02 10:19   좋아요 1 | URL
서곡님 추석 잘 보내셨나요?
저는 중고로 샀는데, 동네서점 에디션인거 같습니다~! 추석 연휴동안 이 책 읽었는데 즐거웠습니다~! 서곡님도 10월 화이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