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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셜리 클럽 ㅣ 오늘의 젊은 작가 29
박서련 지음 / 민음사 / 2020년 8월
평점 :
작품을 읽고 느낀 감상을 한마디로 평하자면
내가 읽어본 한국문학 중 가장 한국문학 느낌이 나지 않는 작품이었다.
별 다섯개를 줬으니 이것은 분명한 칭찬의 의미다.
우울하지 않아서 좋았고 뻔하지 않은 소재라 좋았다.
호주 워홀러의 삶을 보여주는 디테일한 부분들도 좋았고.
그런데 반전은 이 작품의 첫인상이 그리 좋지않았다는 것이다.(대략 40페이지까지)
내성적이지만 실행력은 강한, 거기 더해 매사에 까칠하기까지 한
주인공의 캐릭터에 공감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심 인물에게 영문 이니셜 이름을 붙이다니...
이름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선호하지 않지만
영문 이니셜 이름은 좀 성의 없어 보일 때가 많다.
잠깐 스쳐지나가는 인물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이런 아쉬움들은 책장이 넘어갈수록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셜리와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모르는 새, 혹은 내 주변의 사람이 셜리와 비슷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나를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보고 있을테니까.
그리고 이름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 작품에서
S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던 건,
작가님이 독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재미난 장치를 선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마지막까지 그 정체(?)를 밝히지 않은 것은 좀 의외지만.
여러모로 매력적인 작품이다.
소재도, 형식도, 구성도, 재미도,
모두 <더 셜리 클럽>만의 개성이 담겨있어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표정의 책임은 절반 정도 그 표정을 짓는 사람에게 있고, 나머지 절반은 표정을 해석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생각을 해요.
p.18
근데 세탁기 돌릴 때마다 코끝이 찡해지는 거 잇죠. 얘는 나보다 훨씬 무거울 테고 스스로 입국 수속도 할 줄 모를 테니까 엄청 힘들게 여기까지 왔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데 왔구나. 여기에 있구나. 열심히 하고 있구나.
p.40
나에게 카세트테이프는 그런 의미가 있어요.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간을 선물하려 할 때에는 먼저 똑같은, 때로는 더 많은 시간을 써야만 한다는 걸 알려 주는 도구.
p.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