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처/물레방아 글누림 한국소설전집 16
현진건.나도향 지음 / 글누림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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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육체적인 욕망과 물질적 탐욕에 의한 인간성의 타락에 대해 아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의 이야기가 궁금한데 우선 이야기를 들어 보도록 하자 

한 농촌에서 방원과 그의 처, 신치규라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신치규는 방원의 처를 늘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리고 얼마 후 시니규는 방원의 처에게 호강시켜 줄테니 자신과 함께 살자고 말했다. 방원의 처는 그때 당시 너무나도 힘들게 살고 있어서 물레방아간에서 남몰레 밀회를 같게 된다. 이 내용을 보면서 바람을 피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이고, 물질에 욕심을 내는 것 또한 죄라는 것을 느꼈다. 신치규는 자신의 집에서 얻어살고 있는 방원을 집에서 내쫗으려고 했다. 그 후 방원과 그의 처는 그 일에 대해서 싸우다가 방원은 그의 처를 때려 눕히고는 술을 마시러 갔다. 이 내용을 보면서 사람의 욕심과 간음이 무고한 사람의 삶과 마음을 어지럽히고 나쁘게 한다는 것을 느꼈다. 방원은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도중 방원의 처와 신치규가 물레방앗간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게 되어 화가나 신치규를 때려 눕히고는 옥으로 끌려갔다. 이 내용을 보면서 아무리 화가나고 짜증나고 배신을 당하여도 폭력을 행하는 일은 옳지 안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는 서로 말로 타협하는것이 가장 올바르다는 생각이 든다. 옥에서 나온 방원은 곧장 신치규의 집으로 가서 신치규를 죽이고 그의 처를 물레방앗간에 데려가서는 자신과 함께 살자고 권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부탁을 거절하자 화가 난 나머지 그곳에서 그녀를 죽이고 자신 또한 자살하게 된다. 이 내용을 보면서 만약 방원의 처가 재물의 탐욕이 없었다면 이런 비참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신치규 또한 육체적 욕망이 없었더라면 방원과 그의 처와 신치규는 서로 친하게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탐욕이 많으면 망한다는 이야기를 풍자물로 나타내어 말을 하고 있는데 정말로 마음에 와 다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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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서당 15 - 고려시대 강종~공양왕 편 맹꽁이 서당 15
윤승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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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려시대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의 고려시대 때 상황을 긴밀히 알아보도록 하자 

993년 서희는 송나라와 멀리하고 거나라와 가깝게 지내자 했지만 서희는 10년 후 다시 송나라와 국교를 맺었다. 그 후 거한의 성종은 이에 화가나 고려로 진격하였다.  고려의 현종은 다급히 전라도 나주로 몸을 피하고 겨란 진영에 하공진을 보내어 협상하도록 했다. 그 후 협상을 한다 하여 거란은 물러났지만 고려가 협상제한을 하지 않아서 다시 처들어 왔다. 그때 강감찬 장군은 홍화진으로 가서 강물을 막았고 약 20만8천명의 군사를 그 주의에 잠복하였다. 잠시후 거란이 강을 건느려고 하자 강감찬은 막혔던 곳을 빼네었다. 그러자 거란족은 물살에 휘쓸려 내려갔다. 고려는 이 일로 인해 큰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이를 귀주대첩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옛 조상님들의 지혜와 용기는 지금의 사람들보다 어찌하면 더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12세기에 거란이 쇠퇴하자 여진족이 날로 강성해졌다. 만주에서 일어난 완옌부의 추장은 여진족을 통일하고, 점점 남쪽으로 세력을 넓혀 결국 고려와 충돌하엿다. 첫번째 전투에서는 고려군이 여진군에게 패하였다. 1104년 숙종은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보병 부대에 기병 부대를 보강한 특수부대 '별무반'을 편성했다. 그러나 숙종은 끝내 눈을 감고  그 뒤를 이어 예종이 왕위에 올랐다. 별무반을 만든 지 3년이 흘러 1107년 예동은 윤관을 원수로 삼아 육군과 수군을 동원한 17만 대군을 이끌고 여진을 공격하였다.윤관은 별무반을 이끌고, 길고 긴 천리장성을 넘어 두만강을 향해 북쪽으로 떠났다. 기병을 보강하여 한층 강해진 고려군은 전투마다 승리라여 여진족 마을을 무너뜨리고 수많은 포로를 잡았다. 고려군이 점령한 지역에 9개의 성을 쌓고 남쪽의 주민 수만 명을 욺겨 살게 하니 이것이 바로 '동북 9성'이다. 이 내용을 보면서 우리 조상들의 끝없는 결투와 끈기가 이번 승리를 거두고 크게 이겼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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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서당 14 - 고려 시대 인종~희종 편 맹꽁이 서당 14
윤승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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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나라의 옛이야기인 고구려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책이다. 우리가 이 시대때의 사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도록 하자

왕건과 친인척 관계를 맺은 호족들의 힘이 강해져 호시탐탐 왕위를 노리며 다툼을 벌였다. 943년에 태조가 죽고 뒤이어 맏아들 무가 왕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혜종이다. 그러자 왕규는 혜종을 살해하고 자신의 딸이 낳은 손자 광주원군을 왕으로 세울 음모를 꾸몄다. 그는 두 차계에 걸쳐 혜종을 살해하려고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만다. 그러다가 혜종이 죽자 왕규는 그 틈을 타서 난을 일으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왕건의 사촌 아우인 왕식렴에게 진압되었다. 그 무렵 형인 정종으로부터 왕위를 이어받은 4대 왕 광종은 호족에 대한 부담이 컸다. 그 후 관가에서는 불법으로 노비가 된 자들을 노비 신분제도 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이 내용에서 왕건이 대단한 업적들 중 노비해방제도에서 많은 백성들의 호응을 얻었다.

후삼국을 통일한 지어느 60년 고려가 건국 초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정치제도를 마련하며 국력을 다질 무렵, 만주에서 일어나 요나라는 중국 북부 지역까지 세력을 넓혔다. 그들은 고려를 침략할 계획을 세우고 마침네 993년 소손녕을 앞세운 80만 대군이 고려를 침공하니 이로꺼 고려와 거란의 한판 승부가 시작되었다. 이후 1029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침입해 왔다. 그후 서희 장군이 요나라 장군인 소손영을 만나러 갔다. 그후 서희 장군과 소손영 장군이 대화를 하였다. 그후 서희 장군의 화려한 말솜시로 요나라의 소손영은 고려에게 차지했던 땅을 주고 물러났다. 그후 서희는 압록강 주변에 흥화진, 용주, 철주, 통주, 곽주, 귀주에 성을 쌓았다. 이것이 바로 '강동 6주' 이다. 이렇게 우리나라를 위해 여러 인재들과 관리청들이 힘을 써 주어서 지금의 우리가 이렇게 편안한 삶을 살고 있어서 정말다행이고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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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시끌시끌 앗, 이렇게 재미있는 과학이 7
닉 아놀드 외 지음, 토니 드 솔스 그림 / 주니어김영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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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책이다. 이 책 안에는 우리가 살고있는 자연 속 에서 과학을 찾아가는 내용인데 그렇다면 이 책 안에는 어떤 이야기들을 펼쳐놓았는지 보러가보자 

우리가 흔이 살고있는 곳에는 뒷산이 있는곳도 있다. 그런데 이런 뒷산에 있는 흙은 화단에 있는 흙보다 더 깨끗하다. 화단에는 비료도 주고 매일 가꾸어 주고 물도 때에 마추어서 잘 주는데 왜 산속보다 안좋으냐고 하면 바로 화학적인 인공물질을 썼는지 안썼는지 에서 아주 큰 차이가 일어난다. 화단에는 화학적 비료를 넣어서 흙이 썪어들어가고, 또 식물에게되 과다 복용을 하면 시들어 죽게 된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있는 식물들은 아무런 공해도 받지 아니하고, 지렁이들이 그 곳의 흙을 맑게 정화하게 하여 더 깨끗해진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 속에서 또다른 사실을 알수 있다. 인공적인 흙에 비해 자연적에 있는 흙은 서로 뭉성뭉성 하게 뭉쳐져 있고, 그 흙들을 누르면 물이   쫙~! 하고 많이 나오게 된다. 도대체 왜 그런것일까? 이 내용에서도 나는 의문점이 많이 있었다. 흙이라면 다 같아야지 애 하나의 흙에는 물이 적게 흡수되어져 있고, 산 속 흙은 뭉성뭉성하게 뭉쳐져서 물을 많이 흡수하고 있는지를 하지만 다음장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산 속 흙은 지렁이들이 흙 속을 많이 다니는데 그 길목들이 워낙 작아서 물때문에 스며들었을 때 서로서로 뭉치게 되면서 나중에는 비가 내릴 때 나무 뿌리로 잘 내려갈 수 있도록 길목을 만들어 준다. 산 안에 땅 속에서도 이렇게 신기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물 중에는 증수류라는 물이 있다. 증수류는 아무런 해도 끼쳐지지 않은 7P의 아주 완전한 중성인 상태이다. 증수류를 만드는 방법으로는 간이 정수기를 사용하여 더러운 물을 걸러 낸 뒤 약간의 가열을 하여 모든 이물질들을 죽이거나 걸러내고 또 하나는 더러운 물 가운데에 장은 물통을 놓고 그 위에 뾰족한 것을 약간 뛰어놓고 난 후에 가열을 하면 찌거기나 미생물들은 열로 인해 죽고, 순수한 물은 수증기로 변하였다가 다시 물방울이 되어 비커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이 증수류는 화장품, 공장 등 아주 많이 쓰이지만 생물에게는 아주 불필요한 물이다. 이 물에는 우리몸에 꼭 필요한 미생물들도 다 즉이게 되어 병에 쉽게 걸려 일찍 죽게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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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서당 6 - 조선시대 영조편 맹꽁이 서당 6
윤승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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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의 이야기 이다. 우리나라의 조선시대 이야기 어떤 재담을 가지고 있을지 알아보도록 하자. 

수렴청전은 왕이 어린나이로 즉위했을 때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어린 왕 대신 정사를 돌보는 일을 말한다. 남녀의 구별이 엄격하여 군신을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청에 발을 치고 그 뒤에서 접견하였으므로 수령청정이라고 불렸다. 수렴청정을 하게 되면 외척이 등용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왕권이 약화되기도 했다. 세자나 세손이 왕 대신 정사를 보는 경우에는 대리청정이라고 부른다. 

 정순왕후는 영조의 첫 번째 부인이엇던 정성왕후 서씨가 죽자, 1795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정순왕후의 친정은 노론 쪽이었으나, 사도 세자가 소론 쪽에 가까웠기에, 그와 사이가 쫗지 않았다. 때문에 훗날 사도 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데 정순왕후가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훗날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정조마저 승하하고, 11세의 나이로 순조가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스스로 '여자국왕' 이라 칭했을 정도로 임금의 모든 권한과 권리를 대신 행사했으며, 대대적으로 천주교를 탄압하여 정약용 등을 축출하기도 했다. 

이 내용을 보면서 영조의 국제 정찰이 어떻게 우루어 졌고, 또한 그 시대때의 권리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개에 천주교 등의 유교, 불교 외의 다른 신앙을 믿는 사람들을 죽이는 일은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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