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의 거짓말
제수알도 부팔리노 지음, 이승수 옮김 / 이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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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절판되었던 책이 재간되는 것은 기쁜 일이다. 더군다나 재미있다고 입소문이 자자한 책이라면 더욱. 옛날옛적에 나왔고, 절판된 것조차 한참 됐는데 그 입소문이 여전하다면 억울한 생각마저 든다. 대체 왜  존재조차 몰랐던 것인가 하는 생각에. 이 책도 그런 부류에 속했다. 읽기 전까지는.

 어렵다 어렵다 해도 이렇게까지 안좋은 적은 없었다는 출판계의 사정을 생각하면, 과대 광고를 해서라도 독자를 현혹시켜 지갑을 열게 하는 게 적절한 생존전략일지도 모른다. 과감하게 광고나 책의 거죽에 신경쓰지 않고 양질의 책 자체로써 승부한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애석하게도 이 시대에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정말 희귀종족이 되어버린 듯 하니까. 광고에 낚여서 책을 샀을 경우 뒷통수를 맞는 경우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그나마 책을 읽는다는 사람들 중에도 내용이야 어떻든 간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기만 하면 생각없이 구매하거나 예쁜 거죽만을 이유로 구매하는 경우도 넘쳐난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운좋게 빌려볼 수 있게 되어서 그런 낭패를 겪지도 않았고, 애당초 광고따위에 낚여줄만큼 순진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냥 사들일 생각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대 광고와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절판본에 따르기 마련인 과장된 찬사가 이 책을 읽는데 독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 절판되지 않았었다면 지금과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었으리라. 

 추리기법이 사용되었고, 종반부에 2번의 충격적인 반전이 있다고 하지만... 유쥬얼 서스펙트나 식스센스의 반전에 우리가 놀라워한지도 한참이 지나버린 시점에 다시 만나게 된 소설의 그것은 반전이라 하기도 민망하기 그지없다. 책이 현지에서 출간된 1988년이나 국내에서 발간된 1994년이었다면 어땠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애석하게도 2008년. 21세기에 접어든지도 자그만치 10여년이 지났고, 우리는 무수한 매체에서 접하는 반전들로 중무장된지 오래다. 비단 소설이나 영화가 아니라도,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조차 반전의 연속인데 이정도야 뭐,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날밤의 거짓말'이라는 제목부터 독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스포일러. 제목으로 미루어 예상한 바가 그대로 충격적이라는 2번의 반전과 일치하는데, 이 정도를 충격적이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충격받을 일이다. 정석대로인 역사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쪽으로 접근했다면 훨씬 재미있게 볼 수 있었을 것 같아 아쉽다. 구체적인 배경이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만한 단서는 주어져 있으니까. 그쪽에 포커스를 맞췄더라면 판매고가 암울했을까? 적어도 소설로의 재미는 한층 충만하고 만족스러웠을텐데. 분명 읽는 재미가 없는 책이 아님에도, 그놈의 추리기법과 반전이라는 말 때문에 박한 평가를 받게 되는구나.

 무엇이든 마찬가지지만 직접 접해보고 판단하는 것이 최선이다. 지극히 당연하고 단순한 진리지만 여전히 사방에서 유용하다. 재간되기 전 미지의 환상 속 작품이었을 때가 참 좋았는데... 안타까울 뿐이다. 읽지 말았어야, 아니 한참동안 묵혀두었다가 읽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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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보급판 문고본)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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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이 아닌 한창 나이의 남자 둘, 여자 둘이 (나중에 남자 하나가 추가되지만) 한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상당히 불편한 일일텐데, 이들의 생활은 그렇지 않다.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아가지만 애정이나 깊은 친분으로 연결된 것도 아니고, 각자의 편의를 위해 살게된 것인만큼 적당히 좋은 사이를 유지하며 각자 편한대로, 무던하게 살아간다. 그들 사이에는 갈등도, 다툼도 없고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아무런 문제없이 평온하다. 그 공간에 맞는 각자의 모습을 훌륭히 연기하면서 그들 각각은 현재의 생활이 바뀌지 않기를 바라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심하게 살아간다. 알고 싶어하지도 않지만, 알아도 모르는 것이다. 모두에게 자신들의 평온한 일상을 바꿔놓을 수 있는 변화를 감당할 생각따위는 없다. 아무려면 어떤가? 나를 외한 최선의 방법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데. 왜 그런 무리수를 두어야 할까.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심지어 가족이라고 해도 단지 그런 이유로 깊은 유대를 맺을 이유는 없다. 쉬운 일도 아니거니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게 맞는 말일지도. 더군다나 서로 원하지도 않는데. 정신적, 정서적 유대가 깊을수록 좋은 점도 많겠지만 그만큼 피곤하고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니까. 가족이라면, 어쩔 수 없이 혈연지간이라는 이유로 원하든, 원치 않든 어느 정도의 유대를 맺을 수 밖에 없겠지만 더불어 살아가면서 나를 제외한 이들에게 불편을 초래하거나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적당한 가면을 쓰고 연기하며 살아간다 한들 그게 무슨 문제가 될까? 진정한 나의 모습이라는 건, 어차피 자신조차 알기 힘든 것. 이곳저곳에서의 내 가면이 모두 합쳐져야 내가 되는 것일 수도 있고, 그것을 다 합친다해도 내가 아닐 수도 있는... 당연한 얘기. 가면이라고 해도 그로 인한 불이익이 없다면, 참모습 (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꼬집어 말할 수도 없지만)이 아니라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지 않은가.

 경쾌하고 가벼운 소설일 것 같았는데, 전혀 아니다. 아니, 가벼운 게 맞는 걸까? 얼마든지 음침하고 칙칙하게 그릴 수도 있는 내용이니. 그런 면에서는 무거운 내용도 부담스럽지 않게 그릴 수 있는. 일본 소설의 장기가 이 책에서도 훌륭히 발휘되고 있는지 모른다. 그 특유의 가벼움이 소설과 잘 어울리고, 여운을 진하게 남긴다는 점에서 다른 책들과 차별화되겠지만. 등장인물 각각의 시각에서 전개되는 각 장을 통해 하나로 구성되는 이야기는, 자신과 타인의 시각을 통해 그려져 독자들이 그들을 파악하기 좀 더 쉽게 만들어준다. 그로 인해 앞장과 뒷장에서의 이미지는 다른 양상을 띠기도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내가 함께 다뤄짐으로써 소설 속의 인물을 보다 입체적으로 느끼게 되는 재미도 쏠쏠하고, 효과적으로 캐릭터를 인지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으로 볼 때 적절한 구성이다. 첫 장편소설에서 이런 기술을 구가하다니, 요시다 슈이치는 괜히 상복 많은 작가가 아니다. 

 파크라이프와 함께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 중에서 가장 호평을 받는 소설이기에, 미뤄두었다가 읽게 되었는데 확실히 최근작보다 좋다. 초기작이 더 좋은 작가라니, 현역작가로서는 굉장한 불명예 아닌가. 불행하게도 어찌된 셈인지 이런 작가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은데, 독자로서는 안타깝고  또 안타까울 뿐이다. 초기작에서 돋보이는 그의 재기발랄함을 다시 만나볼 수 있길 바란다. 대중적인 흐름을 따라가는 것도 (그것도 요즘 같은 세상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자신의 장기를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글을 쓰는 편이 작가 자신에게도 득이 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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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노네 고만물상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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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적인 소모가 크거나 감정적인 괴로움이 뒤따르는 독서 이후에는 반드시 가볍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읽어줘야 한다. 지독하게 매운 음식을 먹고 난 다음이면, 당연한 순서인양 차가운 우유를 들이켜거나 여느 때라면 조금도 달갑지 않은 달디 단 음식을 먹는 것으로 속을 보하는 것처럼. 그래야만 신속하게 충격을 흡수하고 다시금 여느 때의 모드로 돌아와서 영양가 없이 축 처지지 않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나카노네 고만물상은 그런 용도로 집어든 책이다. 표지에서부터 풍기는 이미지가 그에 제격임을 보여주지 않는가. 적절한 선택이었다. 적당히 가볍고, 술술 읽히며, 정신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부담스럽지 않다. 우리네 일상처럼 별 다를 건 없지만 예상외의 면이 있어 지루하지도 않고.

 책을 읽기 전에 제목만 보고 생각했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건 예상대로지만, 고만물상이라는 장소와는 꽤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니까. 특히 고만물상의 주인장인 나카노 씨가 뜻밖의 캐릭터였다. 중년이라고 하기에는 좀 더 들었고, 노년이라고 하기는 아직 약간의 미안함이 드는 연배라는 설정은 예상대로였다. 고만물상에는 어쩐지 이런 연배의 분들에게 안성맞춤인 듯한 이미지가 있지 않은가? ‘아니, 그러니까 말이야’ 라는 뜬금없는 말버릇을 가진, 평범한 인물... 인 듯 했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의외의 설정. 이 주인장이 3번의 결혼을 통해 얻은 3명의 배다른 자식들을 두고 있으며, 여전히 부인 외에 2명으로 추측되는 애인을 가진 양반일 줄이야... 이쯤 되면 천하의 난봉꾼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이야기의 배경이 가정이 아닌지라 나카노 씨는 밉살맞지 않다.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는 설정이긴 하지만, 독특한 개성의 일부로 보인다고 할까. 푸근하진 않아도 기본적으로는 선하고, 심술궂거나 궁상맞지 않기 때문에 그를 미워하는 것은 무리다. 그리고 어디인지 나사가 한두개 빠진 듯한 고만물상의 청춘남녀 직원 둘과 나카노 씨와 다른 듯 닮은 누님 만년소녀 마사요 씨까지 모두 평범한 듯, 특이한 캐릭터들. 이런 인물들이 고정멤버인데다 수없이 오가는 손님들 중에 엉뚱한 인물이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이니, 그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그저 진부하기만 할 리는 없지 않을까.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재미있고 인상적인 읽을거리를 원한다면 적절한 선택이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충격완화나 심신안정, 혹은 시간 죽이기 용의 책이 필요하다면 집어들기 적당하다. 기본적으로 고만물상 자체가 긴요한 생활필수품을 구매하는 곳은 아니지 않은가? 작가의 선견지명인지 몰라도 제목에 딱 들어맞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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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애무
에릭 포토리노 지음, 이상해 옮김 / 아르테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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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남자가 있다. 편모 슬하에서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고 자란.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마저 아이를 짐스럽게 여길 뿐이었고, 아이가 홀로서기를 시작한 즈음이 되자 혼자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성인이 된 남자는, 아이를 낳고 싶을 뿐 기르고 싶지 않은 여자를 만나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 여자는 갓 한살을 넘긴 아이를 맡기고 떠나버리고, 남자는 알지 못하는 아버지 역할과 겪어보지 못한 어머니 역할을 모두 감당해가며 아들과 살아간다. 일반적이지 않은, 아이의 성장과 더불어 끝이 예고된 형태였지만 그들은 적어도, 3년 뒤 아이의 생모가 불쑥 돌아와 일상에 혼란을 초래할 때까지 행복했다. 어머니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책임하게 어머니가 된 두 여자. 이 여자들로 인해 비극은 시작되고 말았다.

 세상에는 자격없는 부모들이 너무도 많다. 결코 부모가 되어서는 안되는 이들이, 신중치 못하게 부모가 되어 자신의 아이들에게 아픔을 주고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비극적이게도 그런 아픔과 상처는 끊이지 않고 대물림되어 후대로 갈수록 더 깊고 지독해지기 쉽다. 이 남자 역시 그저 평범한, 보통의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할 수 있었다면 이런 운명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평범과 보통이라는 개념이 적용되는 삶이란 어쩌면 빛나고 화려한 것보다 더 어렵고 드물게 주어지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 보통 사람으로 사는 것이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미덕이자 행복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양친 슬하에서 자라든, 편부모 아래서 자라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부모자격이 있는 부모 밑에서 자라느냐 아니냐가 문제가 될 뿐.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려도, 남보기에 빠지는 게 없는 삶이여도... 기본적인 토대가 결핍된 이들은 살아가는데 더 어려움을 겪는다.  
선택할 권리조차 없었다. 날 때부터 주어진 삶이 그랬다. 결코 스스로 원하지 않았다. 피하는 방법도 몰랐다. 피하자니 나같은 인간이 하나 더 나오는 것이 아닌가 두려웠다. 그래서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했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함 없이, 지나칠 정도로...... 그런데 그 대가로 돌아오는 것은 잔인한 파국뿐이라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200페이지가 채 안되는 소설은 얄쌍한 두께만큼이나 간결하다. 작가도, 화자도 남성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결이 섬세한 문체를 가지고 있다. 그로 인해 이 비극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깊은 심연으로 침잠하게 만든다. 마지막 두 페이지는, 독자가 제발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 결말일지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분명하다. 이 결말은 우리를 아프게 하고, ’에릭 포토리노’라는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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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1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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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라는, 들을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 들 것 같은 이름의 상을 수상한 현직 의사가 쓴 엔터테인먼트 소설. 국내 출판 당시에도 사방에서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을 정도로 꽤나 화제를 모은 걸로(?) 알고 있지만... 남들 다할 때는 어떻게든 같이 하고 싶지 않은 요상한 성격 탓에 이 책을 집어든 건 얼마 전이다. 이 시리즈의 3번째 작품까지 나온 마당에야 집어들었으니, 나름대로 시류를 벗어나려는 엉뚱한 노력은 성공했다.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는 상까지 받았지만, 이 소설에서 미르터리적인 요소는 대단치 않다. 아니, 독자의 구미를 당길 정도가 아니다. 그걸 기대하고 집어든 독자라면, 이게 뭐야? 하는 소리가 충분히 나올만 하다. 범인은 짐작할 수 있지만 범행의 동기나 범행방법은 충실히 읽어나간 독자라면 누구나 집어낼 수 있는 류가 아니다. 어찌 보면 반칙을 범하는 미스터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미스터리와는 무관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 뿐 아니라 각국에서 쏟아지는 의료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와 소설들 중에는 유독 히트작이 많다. 그만큼 사람들이 알고 싶고 궁금해하는 세계이고,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분야이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환상의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환상은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연장되기 마련. "의사"라는 직업은 그 일의 고됨과 힘겨움에 걸맞지 않게 많은 이들의 동경의 대상.  특히 외과의사가 그렇다. 현실에서는 빡세고 고생스럽지만 남는 건 적은 외과의사가 이런 매체에서는 가장 각광받는 실정이니, 그것만큼 아이러니가 없다. 왜 아니겠는가? 수술이라는,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행위를 수행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화려한 부각에 적합한 캐릭터일 수 밖에. 실제로 가장 쏠쏠하고 남는 게 많은 성형외과나 피부과, 치과, 안과 전공의가 주인공인 드라마나 소설은 로맨스 물이라면 모를까, 보기 드문 게 사실. 아무리 현실과 이상은 다르게 마련이라지만 입맛이 쓰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나마 외과니까 매체에서라도 주인공이고 대접을 받지, 그 밖의 전공을 가진 의사들은 현실에서나, 각종 매체에서나 늘상 외면한다는 것. 그들 역시 인명과 관계된 고귀한 임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주어진 배역은 언제나 엑스트라일 뿐이다. 똑같이 격무에 시달리며 과로하지만 환자들은 커녕, 동료의사들조차 그들에게는 무신경하다. 화려하고 두드러지지 않으면 주목받을 수 없는 것은 세상 어디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의료계 역시 다를 바 없다. 작가는 아마도 이런 현실을, 소설을 빌어서나마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지.

 소설을 읽기 전에 동명의 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다. 혹시나 그 탓에 소설에 몰입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영화는 각색은 물론, 연출도 엉망이라 좋은 배우들을 데려다놓고 원작에 미안할 정도의 퀄리티에 그치고 말았다.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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