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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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인구의 두 배도 너끈히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 그런데 왜 하루에 10만 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것일까.

 언젠가의 한때는 저 멀리 아프리카의 기아와 내전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지구 온난화 등의 환경파괴나 세계 각지를 휩쓰는 전쟁, 신종 바이러스, 우리네 식탁에 오르는 먹을거리의 안전에는 관심을 기울여도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과 각종 병에 시달리다 죽고 마는 가련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브레히트의 말처럼, 분노하는 것이 고통이기 때문에 그저 외면하는 것으로 편해지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알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기존에 인지한 내용은 알아도 아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제대로 알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무력감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서, 차라리 모르기를 바랐는지도. 두껍지도, 빽빽한 활자가 눈을 어지럽히지도 않는데 슬픔과 답답함에 페이지 넘기는 것이 곤욕스러워 자꾸만 책을 내려놓고 만다.

 오늘날 소수가 누리는 부와 자유, 행복을 위해서 절대 다수의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은 생존조차 어려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 놓여있다. 결코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은 극심한 기아 해결을 위한 방책은 결국 타인의 아픔을 내 것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인간의 연대의식에 달려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유부단하고 유약한 유엔이 아니라 사회운동, 비정부조직, 다국적 자본과 그 과두제에 저항하는 노조들의 전 지구적인 연대만이 희망이라고, 이런 잔인한 비극은 더는 반복되지 않아야 하고, 빠른 시일 내에 개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과연, 이 희망이 그저 희망으로 끝나지 않고 결실을 거둘 수 있을까. 아직은 인간의 인간다움에 기대를 걸어도 좋은 것일까. 현재로서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에 재를 뿌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기가 어려워 마음이 무겁다. 
 

 

+) 드디어 리뷰를 남길 수 있었다. 처음 읽은 후 오늘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했는지... 몇번을 읽어도 책 속의 이야기들은 슬프고 답답하게 마음을 죄어온다. 아마 달라진 것 없는 현실을 알기에 읽을 때마다 죄책감이 더해져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체 언제쯤이면 전 세계에서 굶주림으로 고통받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사라질 것인가. 먼 미래의 어느 날이라도, 정말 기아로 인한 고통이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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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2-13 13:58   좋아요 0 | URL


김주원 이 읽는 책이네요~ ㅎㅎ

알라딘에고 현빈의 서재 라고 생겼던데 말이죠

읽고 싶은 책인데 아직도 게을러서 못 보고 있어요
 
가라, 아이야, 가라 1 밀리언셀러 클럽 46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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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니름이 있습니다!) 

 법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마땅한 귀결이지만 못내 마음이 불편하다. 법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상식이라는 잣대도 무엇을 기준으로 잡아야하는지 알 수가 없다. 법, 혹은 상식이라는 것들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애매한 잣대로 기능할 때가 많은지...
부모 슬하에서 자라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좋다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부모가 아이에게는 무관심한 마약중독자요, 제대로 된 사람 구실조차 못하는 쓰레기나 다를 바 없다면? 그래도 혈연이라는 이유로 제 부모 아래서 자라는 것이 아이를 위한 최선일까? 아이를 위해 법을 준수하지 않을 것이냐, 법의 준수를 위해 아이의 행복을 뒤로 할 것이냐. 누구라도 쉽게 결정할 수 없을 어려운 문제다. 머리로만 생각하면 명확하지만, 사람의 일을 어찌 뜨거운 가슴은 뒤로 하고, 차가운 머리로만 생각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결국 법이 모든 것의 우위에 놓일 수밖에 없으니, 글자 그대로 비극이다. 자격이 없는 부모가 아이를 기르게 하는 건, 어찌 보면 일종의 범죄에 일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합리적인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 산다는 건, 대수롭지 않아보여도 굉장한 축복이다. 잔인한 세상은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마땅한 아이들에게도 예외가 없다. 아니, 아이들에게 더욱 더 잔인하다. 비단 책에서만이 아니라 주위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우리네 현실도 다르지 않다.  

 

+) 이 책의 유일한 옥의 티는 분권으로 나온 것. 굳이 상하로 나누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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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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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호평이 자자해도 ‘취향이 아닌 책, 끌리지 않는 책은 읽지 않는다.’ 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데, 때로는 그런 신념 때문에 명작을 놓칠 수도 있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실감했다. 딱히 거슬리는 것도 아닌데, 뭐라고 꼬집어 설명할 수도 없으면서 왠지 마음에 들지 않은 표지부터 시작해서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던 책이었다. 그런데 무슨 변덕이었을까? 하필이면 몸이 좋지 않을 때 펼치고 말았다. 설마 앉은 자리에서 끝을 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방심한 탓으로 호되게 몸살을 앓았다. 몸이 무겁고, 기운도 없지만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었기에 여느 때의 몸살과 달리 입맛은 쓰지 않다.
  

 흡입력이 대단하다고, 취향을 뛰어넘는 재미가 있다고 입소문이 자자해도 ‘나는 예외일수도’ 하면서 외면했건만, 깨끗하게 스스로의 오판을 인정하련다. 살면서 만나는 많은 작가들 중에, 종종 재능을 타고났다 싶은 마력적인 필력의 소유자들이 있다. 취향에 부합하지 않다는 걸 느끼면서도, 정신없이 빠져드는 글을 쓰는 대단한 재능의 소유자들. 세간에서 말하는 타고난 글쟁이는 그런 이들을 이르는 말이리라. 달랑 한권의 책을 읽고 하기에는 성급한 말인지도 모르지만, 천명관이 그런 작가가 아닐지 생각해본다. 이게 첫 장편이라니, 해도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이래서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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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2-13 13:59   좋아요 0 | URL

정말 대단한 책인가 보군요~ 이 사람의 신작소설 고령화가족을 읽고 떡실신했거든요 ㅋ

이 책도 주인장 글 보니까 조만간 봐야겠네요 고마워요 좋은 정보 ㅎㅎ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 2003년 제3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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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수와의 첫 만남이 남들과는 달리 산문집이었고, 그 만남이 썩 좋았던 터라 다음에는 소설을 읽어야지 했으면서도 어떤 것을 읽을지 망설이고만 있었다. 그러다 책 소개의 ‘연필로 쓴 소설’이라는 말이 눈에 띄어 주저없이 집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바와 작가의 그것이 동일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 연필로 쓴 글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꾸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꼭꼭 눌러쓰게 되고, 아무리 애를 써도 조금쯤은 번져버리고 마는 아련함과 따뜻함의 다른 이름인데... 김연수의 '연필로 쓴 소설'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다.

 읽기 전에 막연히 생각했던 것과 부합하는 면도 있고, 예상과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기도 했지만 이런 기억과 시간들이 지금의 작가 ‘김연수’를 만들어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온기가 책장 하나하나를 통해 전해지는 것 같다. 김연수는 신문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소설도 사람 냄새가 나게 쓰는구나 싶어 괜시리 고마운 마음이다. 앞으로 접할 그의 글이 어떤 것일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김연수’ 라는 석자의 이름은 내게 일단 믿어도 되는, 신뢰의 이름으로 남았다. 그동안 보류해두었던 그의 글들을 하나씩 하나씩 읽어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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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10-14 12:54   좋아요 0 | URL
전 김연수의 책을 몇권 읽었지만 [청춘의 문장들]을 제외하고는 딱히 좋지 않았어요. 그러나 이 책,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 실린 [뉴욕제과점]이 엄청 괜찮다는 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죠. 그래서 언젠가 이책을 읽으리라 읽으리라 했는데 아직도 망설이고만 있었거든요. Kircheis님이 언급하신김에 저 역시 이 책을 다음번 결제시 장바구니에 넣도록 해봐야겠어요. 물론 결제 직전 잘릴지도 모르지만. Kircheis님께도 [뉴욕제과점]은 좋은 느낌의 글이던가요?

Kir 2009-10-14 23:2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뉴욕제과점]은 제게도 좋은 느낌이었어요. 언젠가 김천역 앞을 지날 일이 생기면 어디쯤이었을까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저는 [뉴욕제과점] 외에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도 좋더군요. 이야기는 예상대로였지만 문장이 아름답구나 생각했던 [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도 기억에 남네요.

+) 엉뚱한 소리지만... 김연수 작가가 빵집 아들이었다는 이유로 더 호감을 갖게 됐어요. 자타공인 빵순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어릴 적부터 빵과 관련된 사람들이 좋더라구요;

다락방 2009-10-15 08:20   좋아요 0 | URL
앗 저도 빵을 무척 좋아해요. 어제도 저녁 먹기전에 샌드위치와 허니버터브레드를 잔뜩 먹었지요. 빵과 우유, 빵과 커피, 다 좋아해요. 아침부터 빵 얘기하니 미칠 것 같네요. 빵 먹고 싶어져요. 흑.

다이조부 2010-12-13 14:00   좋아요 0 | URL


김연수가 왜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질까 궁금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예전에 살던 룸메이트랑 너무 외모가 흡사하더군요~

정말 괴물같은 작가라는 생각을 해요
 
슬럼, 지구를 뒤덮다 -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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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내 차별분리란 이미 만들어진 현실을 일컫는 이름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해서 진행되는 계층 간 전쟁을 일컫는 이름이다. 이 전쟁에서 국가는 '진보', '미화', 나아가 '사회정의'라는 미명하에 개입을 시도하며, 이를 통해 땅 주인, 외국인 투자자, 엘리트 주택소유자, 중간계급 통근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경계를 재편한다. 오스만 남작의 광신에 맡겨졌던 1860년대 파리가 그랬듯, 도시재개발은 사적인 이윤과 사회적 통계를 동시에 극대화하려 한다. 다만 오늘날은 공권력이 사람들을 쫓아내는 규모가 엄청나다는 차이가 있다.-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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