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겨져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도영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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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혹 기대에 못 미치는 때도 있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읽으면서 읽은 시간이나 구매한 돈이 아까웠던 적은 없었다. 다만 기다리던 신간이 단편집이라 조금 주저하긴 했는데, (장편과 달리 단편들은 좀 아쉽다) 초판 한정 OST, 게다가 참여 가수 '박기영'이라는 이름을 보고 고민을 접었다. (이벤트나 물량 공세에 전혀 약하지 않은데, 허를 찌른 출판사의 괘씸한 마케팅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지금은 OST에 낚여 구매한 것에 더없이 만족하고 있다. 우려했던 아쉬움도 없고, 기대 이상의 OST도 흡족하고, 끈적끈적 불쾌한 날씨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으니.

 미미 여사를 읽다 보면 모를 수가 없는 것이, 어떤 경우에도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정한 세상과 추악한 인간 군상을 그려내는 데에 발군인 기리노 나쓰오와 달리, 미야베 미유키는 작품마다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를 그려내고 희망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이 단편집 역시 그런 이야기들도 있지만, 작가의 의도인지 편집자의 의도인지 알 수 없는 책의 초반부는 익숙함에 길든 독자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이제껏 알아온 작가의 색깔과 달리 오스스 소름 돋는 섬뜩함, 일곱 편의 이야기 가운데 의외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건 "홀로 남겨져"와 "구원의 저수지". 비슷한 소재를 여러 차례 다른 작가들이 다룬 바 있지만, 미야베 미유키가 이렇게 풀어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해서 한 방 제대로 맞은 기분이다. 너무 방심했다.
신간이라 자세하게 거론하기는 어렵지만, 기분 좋은 당황스러움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을 뿐, 미미 여사도 작정하고 스산하게, 소름끼치게 쓴다면 제대로 한 작품 나오겠다는 기대로 신간을 기다리는 재미가 하나 더 늘어났다. 부디 이런 독자의 바람이 작가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책의 발간이 두어 달 늦어진 거라 들었는데, 읽으면서 여름에 잘 맞는다 싶었던지라 이 시점에 나온 게 더 좋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꼬인 일정으로 마음 졸였을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물론 어느 계절에 읽어도 재미있는 책은 재미있지만, 미스터리는 역시 불쾌지수 높은 끈끈한 여름에 읽는 게 제 맛이니! 작가의 색다른 면이 궁금한 분들께 추천! 미미 여사의 팬이라면 역시 추천! (아, 물론 양질의 OST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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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1 밀리언셀러 클럽 6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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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얼마나 잔인한지, 인간이 얼마나 추악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기에 기리노 나쓰오만큼 탁월한 작가가 또 있을까. <그로테스크>로 작가를 처음 접한 터라 소위 작가의 '센' 글에 면역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웃>은 그보다 더 강렬하고 충격적이다. 시체를 토막내어 유기한다는 끔찍한 설정이 등장해서 그렇겠지만. 

 읽기 전 접한 소개글에서부터 마사코에 관심이 갔는데, 읽으면서 점점 더 그녀에 몰입하게 되었다. 애초에 일을 저지른 야요이나 합세해 일을 도운 요시에, 쿠니코의 경우 그녀들의 동기는 결국 "돈"이었지만 마사코는 달랐기 때문이리라. 굳이 도울 필요없는 경악할만한 범죄를 주도하고 처리해나가는 인물에 감정이입이 될 줄이야... 작가의 흡입력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소설에서 그 정점을 친 게 아닌가 하고 건방진 생각을 했다.
경계로 내몰렸다는 점에서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지만, 자발적으로는 그 현실에서 벗어나는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마사코의 선택은 더없이 씁쓸하다. 그녀는 다른 이들과 달리 얼마든지 외부에 비치는 모습처럼 안정적으로 평범한 인생을 살 수 있었는데. 능력 있는 직원이었지만 불합리한 시스템에 대항한 결과 밀려나버렸고, 그 상처로 무너져 가정에서도 스스로를 단절시키는 상황까지 이른 그녀의 인생이 안타까워서 막연한 희망을 품게 한 예상외의 결말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작가가 작가인지라 쓰이지 않은 그녀의 앞날이 환한 빛이 비치는 무난하고 긍정적인 길은 아니겠지만,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반드시 행복해지길 바라게 되는 인물이니까. 모쪼록 그녀가 걸어갈 앞으로의 인생이 따뜻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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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오브 더 북
제럴딘 브룩스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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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미있게 읽고 있었는데... 결말까지 읽고나서 떠오른 말은 오직 기승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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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 2011-03-09 03:35   좋아요 0 | URL
결말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어온 시간이 너무 허무해졌다.
뭐지, 이 맥빠진 혹은 짜증이 치밀어오르게 만드는 마지막은...

별 4개를 기꺼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다
처절하게 무너진 기대감과 괘씸함이 더해져 과감하게 별 2개.
아, 그냥 읽고 싶다고 생각만 할 것을......
 
퍼펙트 블루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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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에는 "살인사건이라는 어두운 소재에도 불구하고 밝은 전망과 분위기로 서술되었다"고 되어있지만, 성범죄와 함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최악이자 결코 용서할 수없는 행위로 생각하는 터라 읽는 내내 괴롭고 버거웠다. (그렇다, 내게 저 두가지는 살인보다 끔찍하고 파렴치한 범죄이다!) 밝은 전망이라니...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결과와 생명이 존재하는데, 어떻게 밝은 전망이 가능할까. 그 문구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는 알겠지만, 읽는 내내 불편하고 무거웠던 마음때문인지 부적절하게 느껴졌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인간이 그런 것처럼 조직 역시 좋은 일도 하는가 하면 나쁜 짓도 한다'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숨김없이 시인하고, 실수로 인한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힘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공감할 수가 없다. 그건 너무 긍정적으로 바라본 희망적인 시선이다. 죄에도 경중이 있고, 범죄도 용서할 수 있는 것과 절대로 용서하지 말아야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거부감이 들어 읽기를 멈추고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아무리 포장하려고 한들, 결국 돈을 위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생명이 수단으로 전락했고 끝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결코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런데도 좋은 일도 하니까, 실수니까... 숨김없이 잘못을 시인하고,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힘껏 노력하면 용서받아도 되는 것인가? 그들을 용서할 권리가 대체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발표된지 20년이 넘은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라 아쉬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건방진 예상이었다. 물론 뒤에 나온 걸작들에 비하면 설익었지만, 첫 장편부터 이렇게 쓸 수 있었다니...  비록 작가의 생각에는 공감할 수 없지만, 그저 시간 죽이기에 불과하더라도 미야베 미유키의 첫 장편을 읽는 것에 의의를 두자며 집어든 손이 부끄러울 뿐. 역시 작가는 태어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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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훔친 남자
후안 호세 미야스 지음, 고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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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으면서, 최근의 상태에 적합하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중단하지 않았다. 아무리 지루하고 재미없는 책이라도, 일단 읽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끝을 봐야한다는 이상한 강박관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으면, 굳이 리뷰를 남길 이유는 없다. 미련한 오기 따위 필요없이 충분히 매력적이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주제를 부각시키는 요소들이 좋았고, 주인공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불안한 한편 흥미롭기도 했다. 이제껏 읽어온 (표본이 현저하게 작아 편견에 불과하겠지만) 스페인 문화권 소설들에서 만나지 못했던 작가의 독특한 문체도 구미가 당겼다. 그래서 한껏 몰입해 끝으로 내달았다.

 마누엘이 자각하지 못했던 내면의 욕망에 따라 그림자를 훔칠 때부터... 마침내는 그 그림자에 자발적으로 먹히고 말 것을 예상했는데, 그럼에도 입안이 바싹 마른다. 머리로 한 예상과는 달리 그 그림자가 마누엘에게 긍정적인 자극으로 작용하길 바랐기 때문이겠지. 어쩌면 이렇게도 마누엘은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을까? 무너지고 망가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놀랍도록 빠르고 담담하게 수용하는 그의 모습은 안타까운 것을 넘어서 오싹하다. 어느 한 구석의 결핍쯤이야 누구인들 가지고 있는 것인데, 어째서 이런 상황과 마주해야 했을까... 막다른 상황에서 내린 그의 결정이 더없이 자발적이라, 큰 굴곡없이 서술해나가는 작가의 담담함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담백함이 이 소설의 맛을 한층 더 끌어냈음은 자명하다. 

 길지 않은 분량이라 자칫 소설 속의 장치들이 군더더기로 느껴질 수도 있었는데, 주제 부각에 더해 이 영화와 동화가 실제로 있길 바랄만큼 작가는 탁월한 수완을 발휘했다. 제아무리 좋은 재료라도 요리사의 솜씨가 따라주지 않으면 맛깔스런 음식이 되기 어려운 법, 내공이 만만치 않은 작가와의 우연한 만남처럼 기쁘고 들뜨는 일도 없다, 고로 이건 횡재다. 다만 검색해보니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이 책 하나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 이런 재능과 문체를 가진 작가의 책을 더 만나고 싶은데, 방법이 없으니 갈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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