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 2003년 제3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김연수와의 첫 만남이 남들과는 달리 산문집이었고, 그 만남이 썩 좋았던 터라 다음에는 소설을 읽어야지 했으면서도 어떤 것을 읽을지 망설이고만 있었다. 그러다 책 소개의 ‘연필로 쓴 소설’이라는 말이 눈에 띄어 주저없이 집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바와 작가의 그것이 동일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 연필로 쓴 글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꾸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꼭꼭 눌러쓰게 되고, 아무리 애를 써도 조금쯤은 번져버리고 마는 아련함과 따뜻함의 다른 이름인데... 김연수의 '연필로 쓴 소설'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다.

 읽기 전에 막연히 생각했던 것과 부합하는 면도 있고, 예상과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기도 했지만 이런 기억과 시간들이 지금의 작가 ‘김연수’를 만들어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온기가 책장 하나하나를 통해 전해지는 것 같다. 김연수는 신문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소설도 사람 냄새가 나게 쓰는구나 싶어 괜시리 고마운 마음이다. 앞으로 접할 그의 글이 어떤 것일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김연수’ 라는 석자의 이름은 내게 일단 믿어도 되는, 신뢰의 이름으로 남았다. 그동안 보류해두었던 그의 글들을 하나씩 하나씩 읽어나가야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09-10-14 12:54   좋아요 0 | URL
전 김연수의 책을 몇권 읽었지만 [청춘의 문장들]을 제외하고는 딱히 좋지 않았어요. 그러나 이 책,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 실린 [뉴욕제과점]이 엄청 괜찮다는 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죠. 그래서 언젠가 이책을 읽으리라 읽으리라 했는데 아직도 망설이고만 있었거든요. Kircheis님이 언급하신김에 저 역시 이 책을 다음번 결제시 장바구니에 넣도록 해봐야겠어요. 물론 결제 직전 잘릴지도 모르지만. Kircheis님께도 [뉴욕제과점]은 좋은 느낌의 글이던가요?

Kir 2009-10-14 23:2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뉴욕제과점]은 제게도 좋은 느낌이었어요. 언젠가 김천역 앞을 지날 일이 생기면 어디쯤이었을까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저는 [뉴욕제과점] 외에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도 좋더군요. 이야기는 예상대로였지만 문장이 아름답구나 생각했던 [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도 기억에 남네요.

+) 엉뚱한 소리지만... 김연수 작가가 빵집 아들이었다는 이유로 더 호감을 갖게 됐어요. 자타공인 빵순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어릴 적부터 빵과 관련된 사람들이 좋더라구요;

다락방 2009-10-15 08:20   좋아요 0 | URL
앗 저도 빵을 무척 좋아해요. 어제도 저녁 먹기전에 샌드위치와 허니버터브레드를 잔뜩 먹었지요. 빵과 우유, 빵과 커피, 다 좋아해요. 아침부터 빵 얘기하니 미칠 것 같네요. 빵 먹고 싶어져요. 흑.

다이조부 2010-12-13 14:00   좋아요 0 | URL


김연수가 왜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질까 궁금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예전에 살던 룸메이트랑 너무 외모가 흡사하더군요~

정말 괴물같은 작가라는 생각을 해요
 
센티멘털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히라노 게이치로는 <일식> 이래 <달>과 <장송>에 이르기까지 항상 기대를 뛰어넘는 만족을 주었기 때문에 책이 나왔다면 자연스레 관심이 가는 작가이다. 무조건 주목!에 해당한다고 할까. 그런 그의 책임에도 출간된 지 3년이 지나 읽게 된 건, 장편의 놀라운 질에 반해 단편은 실망스럽다 혹은 기대하면 실망한다..는 달가울 것 없는 얘기들을 꽤나 많이 들어온 탓이다. 누군가 읽느라 들인 시간이 아깝다 생각하는 책이라고 나 역시 그럴지는 모르는 것이지만, 소위 그의 작품을 꼬박꼬박 챙겨 읽어온 팬들이 하는 소리에는 과히 얇지 않은 귀라도 솔깃해지는 것이 인지상정. 읽는데 티끌만한 부담도 안될 만큼 얄팍한 책을 집으며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안타깝게도 ‘청수’는 아쉽고, ‘추억’은 당황스러웠다. ‘다카세가와’는 나쁘지 않지만 그저 평범한 수준. 그리고 남은 건 ‘얼음 덩어리’ 한 편. 수록작 대부분에 만족할 수가 없었는데도 (별 4개의) 후한 평가를 내리게 된 것은, 오직 이 글 때문이다. 등장인물은 단 둘, 사망한지 오래된 생모의 존재를 뒤늦게 안 내성적인 소년과 끝내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도 불륜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여자. 그들은 우연한 기회에 눈이 마주친 서로를 각자의 생각 속 인물로 여기고(소년은 여자를 자신의 어머니로, 여자는 소년을 자신과 불륜관계에 있는 남자의 아이로 생각한다) 그 뒤로 계속, 의식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여한 정체는 이 글 전반에서 느껴지는 아련하고 정적인 정서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한 페이지를 양분해 왼쪽은 소년의 이야기, 오른쪽은 여자의 이야기로 진행되는 글의 형식은 딱히 획기적이라고 할 수는 없더라도 흔치 않은 읽기 방식을 시도해 글의 미묘하고 차분한 내용과 분위기를 더욱 강화시키는데 적절한 장치로 작용한다. 각각의 독립된 글로 진행되면서도 묘하게 연결된 서로의 관계처럼 접점에서 만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는 둘의 이야기. 작가가 선보인 그간의 장편에서 만나지 못했던, 그리고 그의 단편을 읽으면서 바라던 그런 이야기를 비로소 이 ‘얼음 덩어리’로 만나게 됐다. 안타깝고 아련하기도 (소년의 이야기), 담담하고 차분하기도(여자의 이야기) 한 둘의 이야기. 이미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앞의 세편에서 혹시나 그만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라도 조금 더 힘을 내서 끝까지 읽기를, 그래서 이 글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읽으면서, 창작으로 괴로웠을 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째서 팬들에게서도 후한 평이 드문지 이해가 됐다. 워낙 뛰어난 작품들을 써낸 작가라 따르는 반작용이겠지만, 이전까지 보여준 적이 없었던 새로운 면모나 색다른 시도 자체는 높이 사줄만 하더라도 만족스럽지 않은 글을 감쌀 이유는 없으니까. 고만고만한 글을 양산해내는 작가들 중 하나라는 이미지와는 분명 거리가 먼, 탁월한 필력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이래 화제작만을 발표한 젊은 작가라는 이미지는 분명 기쁘지만 부담으로 작용할만한 것이리라. 일개 독자로서 너무 앞서나가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데뷔 때부터 항상 주목받은 작가의 부담감 혹은 나에게 이런 면도 있다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는 일종의 발버둥이랄까. 그런 것이 느껴져서 안타깝기도 했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얼음 덩어리’에 이르러 생각이 바뀌었다. (이제까지 발표한 장편들처럼) 쓰는 족족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히라노 게이치로가 좋은 단편을 얼마든지 써낼 수 있는 작가라고 믿게 된 것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이 책의 수확. 그에게 단편보다 장편이 더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단편 자체에 대해서는 겨우 한 권으로 섣불리 판단할 수 없으니 좀 더 두고 봐야겠다. 계속 챙겨 읽을 것인가의 여부는 아무래도 단편집 두어 권쯤 더 읽고 결정하는 수 밖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09-08-06 20:30   좋아요 0 | URL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을 읽는게 저로서는 꽤 힘들었어요. 어찌나 책장이 안 넘어가던지 아주 오랜시간에 걸쳐 그 한권을 겨우 읽었답니다. 그런데 제 주변인들은 그의 책을 퍽 좋아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오늘 이 리뷰를 보니 네번째 단편이 퍽 흥미로워 보여요. 단 두명의 등장인물, 그 둘이 서로를 자신의 생각속 인물이라 여긴다는 점들이 말이죠.

Kir 2009-08-08 20:33   좋아요 0 | URL
[일식]은 확실히 어려웠어요. 뒤로 갈수록 '이 작가 대단하잖아!'가 되었지만, 저도 초반 몰입하기가 힘들었거든요. 제 주변에는 도저히 끝까지 읽을 수가 없어서 던져버렸다는 사람도 몇 명 있어요^^; 두번째 발표한 장편 [달]이 쉬이 읽히고 평도 좋은 편이니, 나중에 다시 히라노 게이치로를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 드신다면 참고하셔요. 부담없기는 이 단편집이 제 격이지만... (분량이 길지 않으니, 서점 나들이 할 일이 있을 때 후르륵 읽고 오는 방법을 추천할게요;)
 
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소재는 좋았는데, 내가 이상한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09-07-23 23:14   좋아요 0 | URL
아, 저는 [리심]읽고 김탁환은 별로 -_-

Kir 2009-07-24 18:56   좋아요 0 | URL
이 작가의 작품중에 하나라도 읽은 게 있었다면, 주문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머니가 읽으실 책이 필요해서 주문한 건데... 저부터 별로였으니 그저 난감합니다. 오로지 소재만 좋아요.

책향기 2009-07-25 12:29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인가요??

Kir 2009-08-01 02:20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댓글의 의중을 짐작할 수 없어서 좀 당황했네요. 써놓은 그대로의 얘기일 뿐, 다른 의미는 없는데요;
 
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
가이도 다케루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썩 괜찮았던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과 달리 실망스럽던 나이팅게일의 침묵. 그 때문에 볼까말까 망설이다 읽은 제너럴 루주의 개선이 다시 괜찮은 수준을 회복해서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었던 가이도 다케루. 작품마다  일정 수준으로 준수하면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지만, 들쭉날쭉한 완성도라면 바로 외면하게 되니 딱 하나만 더 읽어보자 그렇게 생각했다. 은근히 이쪽세계를(의료계) 다룬 글들이 많지만, 어쩐지 동떨어진 얘기가 많은 서양보다는 일본쪽이 배경이나 설정부분에서 우리와 비슷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이 작가의 작품들을 읽을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 아무런 기대없이 집어들었건만, 결과는 예상밖의 재미로 흡족.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글이 필요할 때 읽은지라 재미를 느끼는 촉이 다소 둔했을지도 싶긴 하지만... 소재도, 주인공 캐릭터도 전작들보다 좋았다. 다구치-시라토리 콤비도 나쁘지 않지만 조연 캐릭터들에 비해 현저히 매력이 떨어지는지라 아쉬웠던 부분이 이 작품에서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소네자키 리에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는데, 그녀가 비중있게 등장하는 시리즈도 있으면 좋겠다 싶을만큼 갈수록 점점 더 매력적이었다. 주가 되는 이야기나 배경으로 등장하는 설정 역시, 비단 소설이나 일본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혹은 이미 일어나고 있을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즐거운 독서를 넘어서는 감상을 불러와 글에 대한 만족도를 높였다. 

 이 업계를 다룬 글의 작가들을 보면, 전현직 의사인 경우가 간혹 있다. (굳이 글을 쓰는데 필요하진 않겠지만) 아무래도 익숙한 업계에 대해 다루는 것이니만큼 '좀 더 리얼하지 않을까' 괜한 기대를 품었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가이도 다케루의 경우에는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리얼리티를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면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않았나 싶다. 전작들이나 이 소설에서처럼 자신이 가진 장점을 잘 살린 후속작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런 고로, 언제 어떤 작품이 출간될지는 모르지만 이 작가의 다음 작품도 읽어야겠다.   

 

  p 131, 12~16 : 국민을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실시한 개혁이 시민생활의 토대를 야금야금 갉아먹게 하는 것은, 정계의 특기일 것이다. 분명히 정계가 말하는 국민이란, 우리들 시민과는 동떨어진 별천지의 존재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이 시스터즈 키퍼 - 쌍둥이별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미리니름 다량 포함!)

 엄마니까, 엄마라서,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를 가장 사랑하고 가장 잘 아는 것도 엄마요,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엄마의 선택은 아이를 위한 최선일까? 설마, 그럴 리가. 결혼도, 출산도 안 겪은 사람이 뭘 알겠냐!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상당할 것 같다. 하지만 아는가? 그런 사람은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는 걸) 책의 내용 같은 최악의 상황은 배제하더라도, 지나친 맹목성과 과한 애정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크게는 범죄의 원인이 되고, 작게는 마음의 병이 되니까. 뭐든지 지나쳐서 좋을 게 없다는 중용의 미덕은 자식에 대한 애정에도 유효하다. (책에서 엄마 캐릭터가 더 부각되기 때문에 그렇게 썼을 뿐, 기본적으로 한쪽만 지칭한 얘기는 아니다)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민감한 소재를 다룬 것보다, 억지감동으로 포장하려다 결과적으로 짜증만 제대로 돋운 허술하고 상투적인 결말보다 더, 더 불쾌함이 들끓게 한 것은 엄마 사라의 캐릭터였다. 아무리 내 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엄청난 모성애의 화신이어도, 어떻게 치료용 맞춤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라는 거룩한 목적이 있다면, 또 하나의 생명을 오로지 "사용" 목적으로 만들어도 되는 걸까? 그것까지도 자식을 위한 부모의 마음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절로 소름이 끼친다. 소설에 그친 문제가 아니라 이미 현실이기에 더더욱.
게다가 애초의 목적대로 모든 생활과 상황이 케이트를 위해 돌아가고 존재하는 안나를 보면서, 아무리 그녀가 안나 역시 아픈 케이트와 똑같이 사랑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지 않느냐 부르짖어도 쓴웃음만 나올 뿐,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과연 안나에 대한 사랑이 (낳은 정은 없어도 키운 정은 있..다고 쳐서;) 케이트에 대한 사랑과 같은 것일까? 차라리 아니라고, 그게 어렵다면 같지는 않다고 (같을 수 없다고) 인정하고 이해를 구했다면 그나마 인간적으로는 보였을 것을. 이미 그녀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결코 해서는 안 될 최악의 선택을 했고, 그 대가를 가련한 자식들까지 치르게 만들었다. 자식인데 안나 역시 사랑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느냐는 설득력 없는 항변도,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을 가족이기에 마땅히 감내해야할 희생으로 포장하는 것도, 사라의 캐릭터에 치를 떨게 하는 것에 크게 일조했다. 가족이라도 자발적이지 않은 강요된 희생은, 소름끼치게 끔찍한 폭력일 뿐이다. 엄마의 권위를 내세워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짓을 어쩌면 그렇게도 모를 수가……. 편향적인 모성애도 모성애의 일부는 분명하지만, 반감을 가질 정도로 그려지는 것은 정말 참아주기 괴롭다. 


 '이런 게, 이래서 가족이구나' 싶은 모습을 보여준 것은 엄마도, 아빠도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괴로움으로 차라리 망가지려한 제시, 힘겹고 죄스러워 죽길 원한 케이트, '사용'되기 위해서 존재함에도 모두를 사랑한 안나, 이 눈물겨운 삼남매... 스스로도 버거운 긴 시간동안 서로를 지탱해준 그들이, 끝까지 인내하며 책을 읽게 했다. '피'가 섞여있기 때문에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질기고 무서운 인연이 가족이라지만, 꼭 "피"가 섞여야 가족이 아닌 것처럼 아무리 '피'가 섞인 가족이어도 아껴주고, 이해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경우가 오죽 많은가. 하물며 어쩔 수 없는 이유라도 긴 시간 강요된 일방적 희생과 인내는 가족의 붕괴를 가져와도 무리가 아니었을 텐데... 세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고 가엾어서, 설마 했던 최악의 결말이 맞아떨어진 것에 더 화가 난다. 작가의 역량 부족으로 초반의 흐름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 것인지, 민감한 사안을 다루다보니 필히 훈훈한(어디가!) 결말이 필요해서 성급하게 뭉뚱그려 마무리 지은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벼랑 끝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을 괴롭게만 만들 수도 있으니, 더는 유사한 글이 나오지 않았으면 싶다. 개봉예정인 동명 영화가 (원제 My sister's keeper 그대로) 일으킬 파장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9-05-18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19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