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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도서협찬
제목이 곧 정체를 말해주는 작품들이 있다. 『바움가트너』 역시 그런 책이다.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인 바움가트너는 소설 내내 아내 안나를 상실한 채, 그 상실의 그림자 안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처음엔 그저 중년 남성의 슬픔을 조용히 따라가는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내면은 단단하고도 연약하게 균열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이토록 단순하게 시작해서, 이토록 깊숙이 파고들 수 있다니. 나는 그 사실에 조금 놀랐다.
『바움가트너』는 큰 사건 없이 흘러간다. 오히려 그 고요함 속에서 바움가트너라는 인물의 고통이 더 생생하게 와닿는다. 그는 사랑을 잃었고, 그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소설은 그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리움과 회상, 그리고 마침내 인정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간다. 나는 이 흐름을 읽으며 무언가를 애써 붙잡으려다 놓치는 사람의 손끝을 자꾸 떠올렸다. 그는 잊으려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잊지 않겠다는 태도로 그녀를 품는다. 그래서 그리움이 아름답고 또, 서글펐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삶과 죽음, 사랑과 상실 사이의 미세한 떨림을 건드린다. 바움가트너는 철학 교수로서 이론과 사유 속에서 살아온 사람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본능적인 감정 앞에서는 서툴고 무력하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바움가트너가 ‘감정’을 배워나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글을 읽고, 떠올리고, 기억하고, 그러다 눈물을 흘린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갈 수 있는 장면들에서 나는 자주 멈춰 섰다. 그 정지된 순간들이 마치 나의 고요한 상실들까지 되짚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이 소설이 폴 오스터의 유작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가 남긴 마지막 소설이 사랑을 잃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니. 어쩌면 그는 삶의 끝자락에서 인간에게 남는 것이 결국 사랑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죽음이 모든 걸 데려가 버린 듯 보여도, 사랑은 끝내 남는 것이라고.
책을 덮고 나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바움가트너』는 단순한 애도의 서사가 아니라, 사랑의 지속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그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독자인 내게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