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세고 촛불 불기 바통 8
김화진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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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잎1기 #은행잎서재

『셋 세고 촛불 불기』는 ‘기념일’을 주제로 한 여덟 편의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사실 처음에는 큰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다. 평소에 앤솔러지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워낙 많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한 곳에 담겨 있기 때문에 작품들이 따로 논다고 느껴지거나,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한들 모든 수록작이 재밌던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셋 세고 촛불 불기』 생각보다 좋은 이야기들이 많아서 놀랐다. ‘기념일’이라는 소재 덕분일까? SF, 가족 이야기, 일상의 단면들, 심지어 안드로이드 등의 소재까지 활용하여 ‘기념일’을 여러 결의 변주로 만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책에 실린 여덟 편은 모두 다 달랐고, 그래서 더더욱 좋았다. 어떤 이야기는 따뜻했고, 또 어떤 이야기는 그리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김화진 작가의 글이 유달리 잘 안 읽힌다…), 이러한 ‘불균형’이야말로 앤솔러지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이 책은 ‘오늘이라는 날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기념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는 꽤 괜찮은 위로라고도 생각된다. ‘셋을 세고 촛불을 불기’ 전의 그 짧은 순간처럼, 삶의 작은 순간들을 잠깐 멈춰서 바라보게 만든달까. 은행잎 1기로 활동하면서 좋은 책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너무도 행복했다. 출판사 담당자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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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
정용준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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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석방되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아동 학대 가해자들이 연이어 실종된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작가 ‘유희진’은 지난번 아동학대를 다룬 특집 ‘토기장이와 그릇’에 이어 ‘끊기지 않는 고리’의 방영을 위해 취재를 하던 중 해당 사건을 알아차리고 이를 추적해가는 구조로 서사가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을 후원하는 삶을 살아왔지만 뭔가 의뭉스러운 ‘장석기’와 그의 후원을 받고 자란 아이 ‘박기정’, 대놓고 아동학대 가해자들에게 분노를 드러내는 ‘김민수’ 등 수상한 인물들을 여럿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설의 주제의식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한다.

“교화니, 갱생이니, 수형자의 인권이니, 사회적 합의니, 다 피해자는 고려하지 않은 방안일 뿐이죠. 제일 좋고 확실한 건 범죄자를 교도소가 아닌 피해자에게 던져주는 거예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게 가장 확실하죠. 허나 그럴 수는 없죠. 지금은 현대고 우리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니까. 자경단을 옹호할 수는 없죠. 저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알아볼 것 같네요. 누가,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심판하는 자와 심판받는 자 양쪽의 이유를 다 살펴보면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겠죠. 사건의 이면을 고려하지 않고 행위의 동기를 살피지 않으면 미디어에서 보도되는 일들은 다 괴상하거나 뻔한 사건처럼 보일 테니까.” (152p)

위 문장에서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자경단’과 ‘행위의 동기’. 만약 자경단이 실제로 조직되고 활동하게 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우리나라의 법이 보호해주지 못하는 혹은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대신 복수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는 다른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왜 법이 모든 것을 보호해주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바로 두번째 키워드, 법은 ‘행위의 동기’를 아주 중요하고 엄격하게 판단하기 때문이다.

아동학대 범죄는 ‘학대’에서 그친 경우 보통 형량이 5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살해’로 이어진 경우에는 20년 이상으로 훌쩍 뛴다. 그러나 아동학대로 인해 실제로 아이가 죽는다 하더라도, 법정에서 그 가해 부모가 ‘죽을 줄은 몰랐어요’라며 엉엉 울어댄다면 법원은 아동 살해 행위의 대해 ‘고의’가 아닌 ‘과실’로 판단하여 형량을 낮게 내린다. 다시 말해 ‘고의성’이라는 행위의 동기가 인정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참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법의 가장 큰 원칙 중 하나가 ‘무죄 추정의 원칙’이므로 고의가 [있었다/없었다]로 주장이 갈린다면 고의가 없었음이 아닌 ‘있었음’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동학대 사건에서 낮은 형량 혹은 가석방 처분을 받는 가해자들이 정말 많은 것이고, 이로 인해 사회적 분노 또한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법이 처벌하지 못하는 이들을 대신해서 복수하겠다는 ‘자경단’은 어떤가. 이를 옹호할 수 있는가? 이들의 행위의 동기는, 마냥 ‘선한 의도’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는가?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의 행위가 속시원하다는 점을 부정할 순 없겠으나, 그들의 마음 또한 일개 범죄자들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고, 그런 점에서 나는 이를 절대 옹호할 순 없을 것 같다.

마치 독서모임으로 이 책을 다루면 열띤 토론이 벌어질 것 같은 정용준 작가의 신작 『너에게 묻는다』는, 흥미진진한 전개 속에서도 생각해볼 만한 주제가 분명하게 제시되어 충분히 추천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작품의 소재나 주제가 다른 컨텐츠들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 같아서 그 점이 조금 아쉬웠다. 흔하디 흔한 자경단 이야기의 또 한 가지 버전을 접하는 느낌이었달까?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적극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재밌게 읽었다. 올해 처음으로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 다 읽은 장편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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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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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이 책이 작가의 첫 단편집이라는 게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시 말해 단편 소설의 거장이 쓴 작품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재밌게 읽은 단편집이었다. 개인적으로 단편보다는 장편의 호흡을 좋아하는 취향인지라 단편집을 감명 깊게 읽은 적이 그리 많지 않은데... 와, 이 작품 정말 진국이다. 도서 협찬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마음에 다소 강하고 호들갑스러운 어투로 글을 적고자 하니 양해 바란다. 정말 재밌게 읽었다는 점을 강하게 어필하고 싶으니 말이다.

단편이라는 분량의 특성상 서사가 진행되는 데에 분명 제한적인 요소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때문에 지금까지 많은 단편 소설들을 읽어오면서 느꼈던 아쉬움들 중 하나가 바로 ‘이제 막 몰입하려던 차에 소설이 끝나버리는 경우’였다. 그러나 『테이블 포 투』에 실린 단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짧은 시간에 소설 속으로 빠져들어 다음 내용이 궁금해져 책장을 넘기게 하는 힘이 느껴졌다. 즉, 단편임에도 장편에서 보았던 서사의 힘을 느꼈달까? 첫 번째로 수록된 「줄 서기」라는 작품에서는 주인공의 상승선과 하강선이 너무도 뚜렷하여 어떤 결말을 향해갈지 궁금해지게 되고, 「나는 살아남으리라」에서는 딸인 주인공이 엄마의 부탁을 받고 새아버지의 불륜을 조사하러 미행하게 되는 내용을 그리면서 서사의 재미를 한층 끌어올린다.

그리고 소설에서 중요한 ‘인물’의 매력을 『테이블 포 투』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컨텐츠의 종류를 불문하고 ‘주인공’이 매력없으면 그 작품을 절대 즐기지 못하는 편이다. (애니매이션 『귀멸의 칼날』은 재밌게 보았으나 『진격의 거인』은 하차한 것이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다.) 하지만 『테이블 포 투』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매력 덩어리(?)들이었다. 「줄 서기」의 주인공은 이렇게까지 착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선하기만’ 해서 안타까우면서도 정이 갈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티모시 투쳇의 발라드」의 티모시는 소설을 쓰고 싶으나 써지지 않아 고생하는 인물이어서 특히나 마음이 동했고, 「밀조업자」의 토미는 오만한 원칙주의자여서 처음엔 좀 밉상이었지만 자신의 행동이 끼친 영향을 알게 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반성하는 모습이 조금 귀엽게 보이기도 했다.

처음 출판사 측으로부터 협찬 제의를 받았을 때, 읽어야 할 책이 쌓여있어 거절의 답장을 보냈다. 그러나 이를 양해해주셔서 감사히 받아들어 읽게 되었는데, 그때 거절했으면 아마 나는 이를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았을까 싶다. 정말 너무 좋았던 책 보내주신 현대문학 출판사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이 책 정말 좋으니 꼭 한 번 읽어보시라고 많은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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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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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추리소설을 단편집으로 읽는 게 정말 오랜만이다. 왜냐하면 그 마지막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집이었는데, 꽤 실망했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책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번 작품을 읽은 이유는 작가 이름이 바로 ‘다카노 가즈아키’였기 때문인데… 그가 쓴 『13계단』이 지금까지 읽어온 추리소설 중 베스트5 안에 들 정도로 정말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약간의 기대를 품고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도 다행히 성공적인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책을 단순히추리장르라고만 수는 없다. 귀신 초자연적 소재도 등장하고 그것이 풍기는 분위기 또한 으스스하기 때문에 공포, 미스터리 장르도 적절히 섞여있다. 근데 그런 점이 책을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무서운데라는 생각을 적이 정말 없는데, 어려운 책이 해냈다! 앞으로 다카노 가즈아키를 장르 소설의 대가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란 생각이 정도랄까? 스포일러에 취약한 장르에다가단편이기까지 하니 줄거리 요약은 삼가도록 하겠다. 다만 여섯 편의 소설 모두 재밌는데, 그중 「발소리」와 「아마기 산장」이 특히나 무척 재밌었음을 어필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다. 무더운 여름 소슬한 공포감을 주는 소설을 찾는다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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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는 로봇 - AI 시대의 문학
노대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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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ChatGPT의 등장과 그 파급력은 너무나도 대단했다. 때문에 전세계 모든 분야에서 자신의 영역이 AI에게 침범당하거나 대체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심해졌다. 실제로 미국 실리콘밸리의 많은 IT 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문학계 또한 피해갈 수 없었다. 거대 언어 모델(LLM)을 활용하면 시나 소설 같은 문학 또한 만들어낼 수 있었고, 심지어 그 수준이 결코 낮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과연 AI는 인간 작가를 대체하게 될까?


『소설 쓰는 로봇』의 저자 노대원 교수는 이 가능성을 인정하며 우리 모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AI는 분명히 인간의 경험을 겪을 수 없고 인간의 욕망을 품을 수도 없다. 그렇기에 AI 그 자체만을 놓고 보자면 AI가 예술가의 자리를 빼앗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여기에 ‘자본’이 들어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AI가 기술-자본의 대리자가 된다면, 다시 말해 돈벌이 수단으로 AI가 활용된다면, 기술-자본과 가장 긴밀하게 얽힌 대중 예술이야말로 AI가 가장 탐내는 먹잇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AI가 인간 작가를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설령 자본이 들어가 무수히 많은 양질의 이야기를 쏟아낸다고 해도, 인간 작가가 쓴 글을 사람들이 안 읽지는 않을 것 같다. AI가 쓴 작품은 AI가 쓴 것으로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이 또한 궁금해져서 찾아보고 싶을 것 같으니 말이다. 하여 코딩 등의 기술 영역과는 다르게, 예술의 영역에서는 AI와 인간이 ‘공존’하지 않을까 하는 다소 낙관적인 생각이 든다. 에스파와 아이브의 노래 중 어느 하나만이 아닌 둘 다 듣는 것처럼, AI의 예술과 인간의 예술은 서로 병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AI 기술의 발전이 인간 이상의 탁월한 문학을 생성할 수 있어도, AI가 인간의 몸과 체험이 없다면, 그 생성 과정은 인간과 근본적으로 다른 과정이며, 인간처럼 문학을 향유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 AI에게만 수용 가능한 문학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기술적 시도가 될 수 있어도 더는 문학으로 불리기 어려울 것이다. 나아가 AI 문학은 인간과 AI의 소통과 관계를 위한 의미있는 영역이 될 것이다. (55p)


『소설 쓰는 로봇』은 총 4부로 구성되어 1,2부에서는 생성형 AI와 문학의 관계 및 AI를 둘러싼 문학의 비판적 사유를 다루고 있고, 3,4부에서는 과학과 문학의 소통을 다룬 글들과 그런 작품들에 대한 짧은 서평들이 실려있다. 개인적으로는 1,2부의 내용이 요즘 나의 관심 분야와 부합하여 더 재밌게 읽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대체로 이 글이 쓰인 시점이 출간된 지금과는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책에서 저자가 활용한 AI 모델이 GPT-3 버전이었다는 것이다. GPT-4o가 나온 지금, 심지어 ‘유료 결제’ 버전이 나온 이 시점에서 GPT-3 버전을 바탕으로 쓰인 부분은 조금 ‘노화’되지 않았나 싶게 느껴져 다소 아쉬웠다. 그럼에도 AI에 대한 저자의 통찰과 사유는 깊이 있게 읽혀져 충분히 의미 있는 독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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