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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ㅣ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평점 :
사랑하는 남자와 이별하는 장면으로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은 시작된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아직 마음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왜 헤어지는 걸까. 둘의 대화를 보면 대강 짐작할 수 있는데, 남자는 “내 마음은 그대로예요.”라고 하는 반면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여자는 “내 상황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라 한다. 즉, 두 사람이 이별하게 된 원인은 여자가 처한 ‘상황’ 때문인 것이다… 도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사랑하는 연인을 갈라놓게 하는 것인가.
뒤로 이어지는 내용은 여자 주인공이 아닌 그녀의 여동생 이야기가 등장한다. 동생은 그녀의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고 두 아이와 함께 도망치듯 본가로 내려왔고, 그렇게 갑자기 스무 평 조금 넘는 집 안에 어른 넷과 아이 둘이 함께 살게 되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동생은 바깥일을 하며 육아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했지만 부모님은 이미 노쇠하신 몸이었고, 결국 아직 등단하지 못한 습작생 신분인 주인공이 두 아이의 육아를 맡게 된다. 바쁜 동생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선한 마음도 분명 있었겠으나, 서른이 넘어서도 제대로 된 돈벌이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채감을 지우기 위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렇게 여자는 자신의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그녀에게 남자는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었다. 그녀가 쓰는 시가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었고, 그녀가 읽어주는 구절을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살면서 단 한 번도 주체적으로 살아본 적 없던 주인공은 이러한 사랑이 늘 불안하게 느껴졌다.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 내가 이렇게 좋은 걸 누리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언제나 품고 있었다. 결국 자신이 처한 상황이 그 사람에게 짐이 될 것을 걱정하여 이별을 통보하고 만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남자는 당신의 감정보다 동생분 살길이 더 중요하냐고, 자기가 짐을 나눠 짊어지는 것도 싫냐고 물어보며 그녀를 붙잡아보지만, 덜덜 떨면서도 단호한 그녀의 태도에 결국 둘은 이별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스포일러를 위해 입틀막🫢)
이 소설이 유달리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글을 쓰면서도 곰곰이 생각해본다. 이 소설의 문체가 부드럽고 서정적이어서 작품의 분위기와 너무도 잘 어울린다는 점도 분명 한 몫을 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여성과 남성을 적대적 관계로 몰아붙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요즘 쉽게 접할 수 있는 페미니즘 소설들을 읽노라면,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남성들을 싸그리 없애버려야 하는 것마냥 절멸시켜야 될 존재로 여기는 작품들이 있어 심히 불편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은 그렇지 않다.
분명히 작품 속 ‘동생의 남편’은 아내에게 (성)폭력을 행사하면서도 전처를 만나는 (죽어 마땅한) 악인이지만, 주인공의 연인은 그렇지 않다. 작품 끝까지 그녀를 믿어주고 보듬어주고 그녀에게 안식처가 되어주는 인물로 묘사된다. 또한 여성을 ‘피해자’로만 그려내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난 너무나 좋다. 주인공의 동생은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쳐온 ‘피해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후에는 주인공에게 육아를 떠맡기고 자유로운 연애를 하기도 하는 모습에서 주인공을 힘들게 하는 악인의 모습도 선연히 보인다. 다시 말해 ‘성별’이라는 기준으로 인물들의 성격과 위치를 평면적으로 그리지 않고, 소설 속 인물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위에서 간추린 줄거리만 보면 주인공이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주인공의 삶의 궤적을 요약한 장면을 읽으면 그녀의 모습이 분명 납득될 것이고, 또 결말에 가서는 주인공이 주체적으로 독립적인 선택을 하는 것으로 소설이 끝난다. 하여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가장 완벽한 결말이 아니었나 싶다. 어쩌면 그녀를 힘들게 하는 것은 키워야했던 두 아이도 아니고 그들을 떠맡긴 동생도 아닌, 바로 그녀 자신이었을 것이다. 스스로를 이겨낼 주인공을 응원하면서 뭉클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