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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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 그랬어』를 감명 깊게 읽은 뒤 김애란의 단편집을 다시 한번 펼쳐볼 용기가 났다. 아무래도 『달려라 아비』, 『비행운』을 읽었을 당시의 나는 너무나도 어렸기에 그 안에 담긴 정서의 무게를 감히 헤아리지 못한 것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때마침 부모님의 책장에 『바깥은 여름』이 있어서, 김애란의 단편집을 추천받을 때 항상 거론되었던 『바깥은 여름』을 이번 기회에 읽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바깥은 여름』을 읽기 전에 후기들을 몇 찾아보았다.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읽는 내내 눈물이 펑펑 났다는 감상도 있었고, 신파 마냥 억지스러운 울음 코드가 와닿지 않았다는 감상도 보았다. 그런 양극단의 후기들을 보고 나니, 이 작품의 무엇이 그토록 호불호를 나뉘게 한 건지 더더욱 궁금해졌다. 그리고 다 읽고 난 뒤의 내 감상은… 그저 ‘무난’했다는 거다.

총 일곱 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된 이 소설집에는, 공통적으로 무언가를 상실하고서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린 작품들이 많았다. 「입동」에는 다섯 살짜리 아이를 잃은 부모가, 「노찬성과 에반」은 늙은 개를 곧 잃게 생긴 초등학생, 「건너편」에는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하고픈 여자친구,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남편을 잃은 아내의 시선으로 전개되니… 『바깥은 여름』은 무언가를 ‘잃게 될’ 예정이거나 ‘잃고 난 뒤’의 착잡한 심정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 많았고, 바로 이 지점이 사람들의 감상을 나뉘게 한 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두 가지의 감상 모두 동의하지 못하겠다. ‘신파’라고 한다면, 정말 대놓고 “너 울어!!!”라고 하는 듯 억지스럽게 눈물샘을 자극하는 부분이 필히 느껴져야 할 텐데,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읽히지 않았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전개되는 소설들이었다. 당연하다, 김애란인데. 초기작도 아니고 필력이 충분히 쌓일 만큼 쌓이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과한 감정 이입으로 눈물이 폭포수처럼 터지지도 않았다. 결국 「입동」에서 보험금을 통해 빚을 갚게 될 때 탄식어린 한숨을 내뱉었을 뿐, 「풍경의 쓸모」에서 주인공이 교수에 임용되지 않았을 때 부조리한 현실감이 물씬 느껴져 납득하는 차원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을 뿐, 결코 감정의 동요가 격해져 눈물이 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점이 오히려 『바깥은 여름』 만의 장점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감정선이 휘몰아치는 것보다 잔잔한 여운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오히려 더욱 강력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김애란의 문장은 그런 점을 특히 잘 살리는 것 같았다. 좋은 문장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던 독서 시간이었다.

어딘가 어렵게 도착한 기분. 중심은 아니나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밀려난 건 아니라는 안도가 한숨처럼 피로인 양 밀려왔다. 그 피로 속에는 앞으로 닥칠 피로를 예상하는 피로, 피곤이 뭔지 아닌 피곤도 겹쳐 있었다. (14p)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20p)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재이야, 어른들은 잘 헤어지지 않아.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게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지도 않고, 그건 타협이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예의랄까, 겸손의 한 방식이니까.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지지.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 서로 고유한 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거야. (213p)

상대가 없어, 상대를 향해 뻗어나가지 못한 시시하고 일상적인 말들이 입가에 어색하게 맴돌았다. (…) 유리벽에 대가리를 박고 죽는 새처럼 번번이 당신의 부재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야 나는 바보같이 ‘아, 그 사람, 이제 여기 없지……’라는 사실을 처음 안 듯 깨달았다. (2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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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망한 사랑
김지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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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없는 소리』를 쓴 작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조금 망한 사랑』은 전작과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를 보인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조금 망한 사랑』이 훨씬 더 좋았다. 두 작품 모두 청년들의 불행이랄지,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고된 역경들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인물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혹은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는 사뭇 다르다.

(몇 년 전에 읽어 나의 기억이 온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기억하는 『마음에 없는 소리』의 감상은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불평불만’이었다. 소설 속 인물들이 세상의 부조리를 대할 때 거의 다 분노, 투쟁 및 불평불만 등의 태도로 일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때문에 그걸 읽는 나까지도 매우 불편하고 답답했던 기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을 그리 선호하지는 않기에, 앞으로 김지연 작가의 소설을 읽을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조금 망한 사랑』은 달랐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 일종의 고난이 닥쳐오는 것은 『마음에 없는 소리』와 비슷하지만, 『조금 망한 사랑』 속 인물들은 그것을 아주 chill하게, 다시 말해 쿨하고 시니컬하게 대처한다. 「포기」나 「반려빚」에서는 친구(지인)이 돈을 빌리고 나서 갚지 않은 채 튀고, 「좋아하는 마음 없이」에서는 남편이 바람나서 이혼을 해달라고 무릎꿇고 애원한다. 만약 내가 소설 속 상황을 마주한다면 이들을 죽을 때까지 쫓아서 머리끄댕이를 잡거나 하겠지만, 주인공들은 그러지 않았다. 아주 chill 하게 이런 상황에 대응해낸다.

이런 쿨하고 시니컬한 소설 속 인물들의 태도는, 어째서인지 현실에서 그러지 못하는 나에게 얼마간의 힐링과 위로를 주기도 했다. 왜일까, 내가 chill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에게 동경을 품고 있어서일까? 분명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사건들 하나하나에 내 감정을 일희일비 한다면, 이는 매우 큰 감정소모로 돌아와서 나 자신을 꽤나 힘들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뭐가 되었든 좀 ‘쿨’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거창하게 말하자면) 나의 신념인데, 그런 나와 아주 잘 맞았던 소설이 바로 이번에 읽은 『조금 망한 사랑』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이 책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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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의 기분 - 책 만들고 글 쓰는 일의 피 땀 눈물에 관하여
김먼지 지음, 이사림 그림 / 제철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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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편집자를 꿈꾸는 사람에게 한 줄기의 빛과 소금 같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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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사랑의 천사 문학동네 시인선 238
최백규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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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과 감성과 주제의식을 모두 갖춘 젊은 시인의 시집을, 저는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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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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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곧내. 제목이 곧 내용이었다. 『고도를 기다리며』 만큼 작품을 온전히 설명하는 제목을 가진 작품이 또 있을까? 『고도를 기다리며』는 정말 ‘고도’를 기다리는 내용만 담겨있는, 다소 난해하고 불가사의한 희곡이다. 이와 비슷한 후기들을 이곳 저곳에서 정말 많이 들어왔었기에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작품이 지닌 난이도가 상당할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하여 그동안 나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의도적으로 피해왔었다.

그러던 중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약간의 해설과도 같은 글을 접하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고도’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 해석의 종류는 정말 무궁무진하게 다양한데 그 글에서 제시하는 고도는 바로 ‘죽음’이라는 것이었다. 고도가 죽음을 뜻한다는 시각으로 『고도를 기다리며』를 풀어나간 그 글을 읽고 있자니, 어쩐지 나 또한 이 작품을 직접 읽고서 정말 고도를 죽음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다소 두려운 마음을 품에 안고 책을 펼쳤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죽음은 어떠한 성질을 갖고 있을까. 일단 우리 모두는 언젠간 죽는다. 한 명도 빠짐없이 누구나 죽는다. 지극히 ‘확실’한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 죽는지는 모른다. 그 누구도 자신이 언제 죽을지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 너무나도 ‘불확실’하다. 즉, 확실하지만 동시에 불확실한 것이 바로 죽음이다. 죽음은 올 때까지 오지 않지만, 아무리 늦어져도 언젠가는 올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고도를 기다리며』 속 ‘고도’와 유사한 속성을 띠고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오지 않는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들에게 고도가 오는 일은 없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고도가 온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두 주인공은 고도를 왜 기다리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 그 당위에 대한 이유가 전혀 언급되지 않는데, 이 또한 죽음과 비슷하다. 우리는 언젠가는 올 것이란 확실성 때문에 죽음을 그저 기다리는 것이지, 그에 대한 의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사뮈엘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통해 죽음을 기다리는 우리내 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끝끝내 고도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세상을 떠난 작가를 원망하며 책장을 덮는다.

고도가 내일은 꼭 온다고 그랬지. (사이) 그래도 모르겠어? (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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