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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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년 전에 사두고서 계속 묵혀두던 ‘숙제’같던 책을 드디어… 완독했다. 일단 이 책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을 적기에 앞서서 나의 MBTI 유형 중 S 성향이 90%가 넘는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싶다. 상상력이 풍부한 N 성향과 달리 나는 아주 현실적이고, 피부로 와닿는듯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좋아한다. 다시 말해 말도 안되게 비현실적인 판타지, 환상문학 등을 즐겨 읽지 못한다는 얘기다.


다만 SF 장르의 경우는 판타지와 결이 조금 다르다. 내가 느끼기에 판타지는 말도 안되는 ‘마법 뾰로롱~’으로 읽히는 반면, SF는 과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가상현실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하며 납득하게 된다. 물론 ‘상상력’의 영향을 많이 받는 장르라는 점은 판타지와 같으므로, SF 소설을 읽고 난 뒤에는 얼마 간의 쉬는 시간, 이른바 ‘쿨타임’이 내게 꼭 필요하다.


그래서 ‘앤디 위어 우주 삼부작’을 다 읽기 까지 연 단위의 긴 시간이 필요했다. 『아르테미스』 읽고 몇 개월 있다가 『마션』 읽고 몇 년 있다가, 올해 2월이 되어서야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과정도 마냥 순탄하진 않았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나의 취향과 대척되는 지점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으며 힘들었던 점을 먼저 말해볼까 한다.


가장 먼저 나를 힘들게 했던 점은, 다름 아닌 ‘두께’이다. 총 분량이 무려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벽돌책’. 단편보다는 장편을 선호하는 나지만, 그래도 벽돌책이라 부를 정도의 두툼한 책은 부담이 되긴 한다. 두번째는, ‘하드 SF’라는 점이었다. 과학적인 지식이나 이론의 내용이 이 소설에는 상당 부분 등장했다. 그러나 뼛속부터 문과인 나로서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100% 이해하기가 매우 힘겨운 것이었다. 때문에 불가피하게 흐린 눈으로 넘긴 페이지들이 적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건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국한된 불평인데, 나는 과거와 현재 시점이 ‘교차’되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뭐랄까, 몰입을 막 하려던 차에 시점이 바뀌면 다시금 툭 끊기는 기분이 든달까? 근데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딱 그랬다. 


이쯤에서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줄거리를 소개해본다. ‘아스트로파지’라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태양에너지를 빨아들여 지구가 얼어붙을 위기에 처한다. 엄청난 식량난은 물론이고 극심한 빙하기가 도래하여 인류가 아예 멸종해버릴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인공 ‘그레이스 박사’가 파견되어 우주로 탐사를 나간다. 이때 소설은, 기억을 잃은 채 우주선에서 깨어난 그레이스의 시점과, 우주선에 탑승하기 전 그레이스가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참여하게 되는 과거 시점을 교차하여 전개한다. 


이렇듯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나의 취향과 대척되는 부분을 많이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 내게 이 책을 추천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할 것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만큼 잘 쓰인 우주 SF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서사와 과학적 상상력이 모두 탄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바로 이 작품은 ‘구원의 서사’를 담고 있다. 구원의 이야기야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류의 서사이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재밌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마션』과 이 작품을 비교하고 싶은데, 『마션』이 ‘전 세계가 한 인간을 구하는 이야기’라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전 인류를 구원하려는 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그만큼 안쓰러우면서도 벅차고 애틋하고 감동적인 감상을 많이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프로젝트 헤일메리』 역시 이 법칙을 따르는 명작 SF소설인 것은 분명했다. 라이언 고슬링 주연으로 영화가 만들어질 거라는데, 이해 못했던 부분들과 과학적 상상력이 부족하여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던 장면들을 어서 빨리 영화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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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소굴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강두식 옮김 / 빛소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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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소굴세계문학전집서포터즈

400쪽이 넘는 두꺼운 분량의 작품이지만, 줄거리는 아주 단순하다. 어떻게든 성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토지측량사 K와, 이를 막으려는 마을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400페이지 내내 계속해서 반복된다. 정말 ‘처절’하다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갖가지의 노력을 끈질기게 발휘하여 K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에 들어가려고 하지만, 그 매번의 시도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좌절되곤 한다. 이들 역시 K의 노력을 악착같이 방해하고 무마시킨다.

사실 출판사로부터 이 책을 받아들 때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하셔서 걱정이 조금 크긴 했지만, 막상 받아보니 작품 자체의 난이도가 높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일단 번역이 아주 유려하고 잘 읽혔다. 문체의 가독성에 예민한 나로서는, 좋은 번역 덕에 작품 내용이 머릿속에 잘 그려져서 어렵다는 감상을 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내용의 흥미도 측면에 있어서는 조금 힘들긴 했다. 하나의 큰 사건이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조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성으로 들어가려는 K의 노력 - 이를 막으려는 사람들의 방해’의 작은 서사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구조인, 심지어 ‘미완성’으로 끝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딘가…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카프카가 왜 이 작품을 쓰고자 했는지를 곱씹듯 생각하게 되었다. 카프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선명하진 않더라도 그 존재 만큼은 분명하게 감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 해설을 비롯해 다른 여러 사람들의 감상들을 찾아보았고, 그렇게 막연했던 주제의식이 조금은 밝아지는 듯하여 이에 대해 조금 적어볼까 한다.

실존주의 문학을 다룰 때 항상 언급되는 개념이 있다. 바로 ‘부조리’, ‘이치에 맞지 않다’는 사전적 정의에서 조금 더 나아가 철학적으로 접근한다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이 삶에서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는 노력과 세상이 본질적으로 무의미하고 혼돈스러운 상태 사이의 갈등’. 즉,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의미가 없다는… 불행한 일이 아무런 인과없이 일어날 수 있는 ‘불합리’한 것이라는 말이다. (철학 무지랭이가 겨우 받아들인 개념이니,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이를 바탕으로 <성>을 본다면, <성>에 등장하는 여러 요소들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K의 노력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마을 사람들’이 바로 우리 삶의 ‘부조리’를 뜻한다고 해석하였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마주하는 많은 불행들, 이를테면 부모님의 죽음이랄지 뜻하지 않은 질병이나 사고 등은 특정한 ‘인과’를 거쳐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불행들은 아무런 징후나 조짐 없이 정말 ‘갑자기’, ‘느닷없이’ 우리에게 닥친다. 소설 속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대체 왜 K를 방해하는지, K가 성에 못들어가게 막는지에 대해 일언반구 아무런 설명도 내놓지 않는다. 그저 훼방만 놓는다. 어쩐지 우리 삶에 닥쳐오는 부조리와 비슷하게 보이지는 않는가?

그럼에도, 불현듯 부조리가 우리 삶에 닥쳐와도, 우리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버티고 살아간다. 그런 우리의 모습 역시 소설 속 K의 모습과 닮아있다. 아무리 막혀도, 좌절되어도 K는 성에 들어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주저앉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을 사람들이라는 부조리를 마주하는 K는 바로 ‘우리 자신’을 의미할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거야말로 ‘카프카’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는 아닐까. 느닷없이 찾아오는 부조리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라는 것. 부조리적 상황만을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서 고차원적인 주제의식을 던지는 이 소설이 어째서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했는지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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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악의 교전 1~2 세트 - 전2권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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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와… 진짜 재밌게 읽은 스릴러 소설이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했던 것이라고는 미친 전개 속도에 내 몸을 맡긴 채 그저 주인공 ‘하스미’의 광기를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얼마나 이 책이 재밌으면 영화로도 만들어졌을까, 싶어서 협찬 연락을 받은 뒤 책 도착을 기다리는 동안 영화를 먼저 보았다. 그러고 나서 책을 읽었는데, 영화-책 순서로 작품을 접한 나 자신을 매우 칭찬하는 바이다.

일전에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명제를 중점적으로 다룬 작품들이 정말 많다고 적었던 기억이 난다. <악의 교전>의 주제 역시 그와 결이 비슷하다. 다만 이를 조금 더 구체화하자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꼬리가 길면 언젠가 밟히게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 ‘하스미’는 본인에게 방해가 되거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 아니 모든 존재들을 싸그리 죽이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이다. 그런 만큼 하스미가 저지르는 범죄들은 꾸준히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아무리 완벽하게 증거를 숨기고 완전범죄를 꿈꾼다고는 해도 그 꼬리가 너무나 길어지면 밟히게 되는 법, <악의 교전>은 이 주제를 너무도 선명하고 명쾌하게 드러내며 쾌속으로 질주한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이 소설을 혹은 영화를 보며 후련하면서도 동시에 섬뜩해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앞서 첫 문단에서 영화를 책보다 먼저 보는 게 좋았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한번 설명해볼까 한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의 도움을 받았다고 느껴졌던 지점 중 하나가 바로 ‘인물 이름’인데, 소설 속 배경이 학교인 만큼 이 작품에는 동료 교사나 학생 등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편이다. 여러 명의 인물들과 그들의 관계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기에 처음부터 글로써만 접한다면 조금 헷갈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물들의 관계랑도 연관있는 두번째 이유는, 영화에서는 그런 ‘관계’들이 조금씩 생략 및 각색되었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는 ‘읭?’ ‘갑자기?’ 처럼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기는 장면들이 종종 있었다. 예를 들면, 미술 교사와 남학생 간의 부적절한 관계를 하스미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영화는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는 반면 소설에서는 충분히 납득되게끔 사건들을 배치해놓았다. 그리고 하스미가 진상 학부모를 죽이게 되는 동기 또한 영화는 다소 비약적이라고 느껴졌으나 소설을 읽으면서는 충분히 납득하였다. 다시 말해, 소설은 핍진성을 놓치고 있지 않는다. 이런 점에 있어서도 이 작품은 영화를 먼저 본 뒤에 책을 봐야 보충적 재미를 놓치지 않고 완전히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되고, 둘 중 하나만 봐야 한다면… 그래도 ‘책’을 추천하고 싶다. 정말 오랜만에 본, ‘미친 속도로 질주하는 광기의 사이코패스’가 너무도 재밌었던 스릴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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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속삭임 위픽
예소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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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이는 모임’을 만들어 시끄러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내’와 그런 그녀에게 모임 입회를 제안받는 ‘모아’,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고 다니는 ‘수자’, 시내의 윗집에 살며 층간소음 항의를 받고 이에 억울해하는 ‘두리’. 소설에는 이렇게 독특하다못해 튀는(?) 네 명의 여성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이 ‘속삭이는 모임’에서 활동하며 벌어지는 내용이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이 인물들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하고 명쾌하다. 바로 ‘세상은 쉽게 살아가기 힘들어졌다’는 문제의식을 던지는 것이다. 시내는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 살기 힘드니 ‘속삭이는 모임’을 만들었고, 수자는 살아가면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은 ‘예수’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치, 쉽게 살아지면 그건 세상이 아니지… 하며 <소란한 속삭임>의 주제에 나 또한 충분히 공감하였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은 문제의식을 던지는 것에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세상은 살아가기 힘들어.’라는 질문에서 ‘ㅇㅋ 인정,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데?’라고 답질문을 던졌을 때, <소란한 속삭임>에서 그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물론 답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문학이라면 응당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를 가감없이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왜 보여주는지, 독자 입장에서 ‘왜’ 마주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담론을 이끌어나갈 필요 또한 충분히 있다. 이번에 읽은 예소연 작가의 <소란한 속삭임>에서는 그런 부분이 다소 아쉬운 감상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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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정용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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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 있잖아』, 『선릉산책』, 『소설 만세』 등 정용준의 저작들을 읽을 때면 언제나 '조심스러워하는 태도를 지닌 섬세함'이 느껴지곤 한다. 의 소설에는 ‘아픔’을 소재로 하는 것이 많고, 누군가의 아픔을 대하는 자세는 필히 조심스러워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초기 소설집 『가나』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소설 속 주인공이 고통을 느끼고 역경을 겪는 모습을 훨씬 더 직접적이고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총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있고,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두 편의 소설을 소개해본다.


「떠떠떠, 떠」

얼마 전에 너무 감명 깊게 읽은 산문집 『밑줄과 생각』에도 언급되는 단편이자, 『내가 말하고 있잖아』의 전신(前身)이라 할 수 있는 소설이다. 작가님께서 실어증을 앓으신 경험이 소설 속 주인공에게 그대로 녹아들었다. 하여 말을 하고 싶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 그 느낌, 그리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의식 무의식적으로 가하는 폭력을 당할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이 너무나 구체적이고도 적확하게 드러나 있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소설의 백미이자 가장 아픈 지점일 것이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아직도 그녀가 어딘가에서 멀쩡히 숨 쉬며 건강하게 늙어가고 있을 생각만 하면 몸에 열이 오르고 어금니가 꽉 조여진다. 열한 살을 27일, 단 하루만 남기고 까맣게 만들어버린 그 선생을 용서할 수 없다. (13p)


내가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성격이 급한 것도, 말이 꼬여서도 아니야. 자신감이 없기 때문도 아니고 어휘력이 떨어져 단어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 내게 말은 붕괴된 조직이고 소멸된 유적이며 퇴화된 신경과도 같아. 혀끝에 달라붙어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말은 이끼와도 같고 증발하고 흔적만 남은 얼룩과도 같지. (20p)


이런 주인공에게도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동지(?)가 한 명 있다. 학창시절 동급생인 그녀는 간질(로 추정되는 질병의) 환자이다. 이 소설은 결말에 대해, 주인공들의 관계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게 나뉜다. 두 인물 모두 자신들의 장애 및 질병에 억눌려 침잠해버리는 결말인지, 그럼에도 두 인물이 서로를 이해하고 구원해주는 결말인지 말이다. 『밑줄과 생각』에 이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담겨있으니,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벽」

「벽」은 굴도의 한 염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곳에서 채취하는 ‘소금’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너무도 중요한 물질이지만, 이를 채취하기까지의 과정은 그 중요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소설 속 노동자들은 이름은커녕 오로지 ‘숫자’로 불리며 강제로 낙인을 찍히고 끝없는 노동에 시달린다. 이곳은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고 오로지 폭력과 죽음만으로 노동자들을 다룬다. 즉, 이곳에서 얻는 소금은 ‘사람’을 살리지만 ‘일꾼’을 죽인다.

소설은 ‘21’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어쩌다 이 지옥같은 염전에 사람들이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곳에서 어떤 참혹한 일들을 견뎌야 하는지를, 과거와 현재의 장면들을 교차하여 제시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그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가며 숨통을 조여오는 듯한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소설은 노동자들만 등장시키지 않고, 이들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반장’ 계급을 만들어 노동자와 대비되도록 설정했다. 여기서 주목해야하는 것은, 바로 반장 계급의 인물들 또한 실은 ‘노동자’ 출신이었다는 점인데…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꼭 소설 전체를 읽어보길 바란다.

게다가, 놀랍게도 이 소설집이 출간된 몇 년 후 ‘신안군 염전 섬노예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벽」은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마치 ‘성지 순례’ 느낌으로 말이다. 여러모로 소설 속의 폭력적인 설정과 세계관이 정말 ‘찐’현실이었다는 점에 기함을 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꼭 이 소설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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