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대로의 자연 - 우리에게는 왜 야생이 필요한가
엔리크 살라 지음, 양병찬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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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솔직히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졌다. 자연은 당연히 자연 그대로가 아닌가? 대체 자연의 어떤 부분을 말하려는 걸까 싶었는데, 책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됐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자연은 대부분 이미 인간의 손을 탄, 말하자면 '조정된 자연'이라는 걸.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엔리크 살라가 말하려는 건 그게 아니라 인간이 전혀 손대지 않은 상태, 즉 우리가 거의 본 적 없는 ‘있는 그대로의 진짜 자연’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건, 자연은 생각보다 빨리 회복된다는 점이었다. 인간이 조금만 비켜나 있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살라는 실제로 몇몇 해양 지역에서 인간의 개입을 차단한 뒤, 몇 년 만에 어류 개체 수가 수십 배로 늘어난 사례를 보여준다. 즉 자연은 스스로 균형을 맞추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책에서 나를 가장 불편하게 했던 지점은, 자연을 지키는 데 필요한 가장 큰 조건이 ‘인간이 없어야한다는 것’이었다. 체르노빌 사례도 그렇다. 방사능 유출로 인해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어 버리니 오히려 동물과 식물이 돌아오고, 그럼으로써 생태계가 회복되었다고 한다. 꽤나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인간에게는 죽음의 땅이, 다른 생명에게는 피난처가 된 셈이니까.

『자연 그대로의 자연』은 자연을 미화하지 않는다. 생존 경쟁도 있고, 약육강식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억지로 조작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 거기엔 오묘한 조화와 질서가 있다. 인간이 설계한 시스템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거창한 해결책을 제시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우리가 뭘 더 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뭘 그만둬야 하는지를 묻는다. 자연을 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쩌면 우리가 물러나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건드려 놓고선 이제 와서 되돌리려 드는 건, 어쩌면 더 큰 오만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울창한 삼림의 임관 아래에는 빛이 많이 들지 않아, 대부분의 식물은 번성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의 씨앗은 지하에서 수십 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 예컨대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일부 지역에서는 비가 전혀 ─ 적어도 인간의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 내리지 않는다. 따라서 사막은 눈에 띄는 생명체가 없는 건조한 지역이다. 그러나 2018년에는 100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던 지역에 비가 내렸다. 그러자 며칠 후 황량한 노란색 표면이었던 사막은 형형색색의 야생화 카펫으로 변했다. 이 꽃들은 번식하고 씨앗을 만들어 사막 바닥에 떨어뜨렸고, 기적적인 비의 효과가 사라진 후 말라 비틀어져 버렸다. 먼지와 모래에 뒤덮인 새로운 씨앗들은 15일간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릴 텐데, 어쩌면 한 세기가 더 걸릴지도 모른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지만 언제나 일을 해낸다. (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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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 2025.여름 - 65호
자음과모음 편집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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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지난해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발행되는 문예지 Axt를 1년여간 읽는 ‘악독단’ 활동을 마친 후로, 문예지에 대한 관심이 크게 줄었다. Axt가 재미없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다만 문예지를 충분히 읽을 만큼 읽었기에 이제는 굳이 더 보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어차피 관심있는 작가의 작품(혹은 글)은 단행본으로 추후에 출간될 것이므로 그것을 구입해서 읽으면 그만이니, 문예지를 구태여 구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자음과모음 2025 여름호』의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나는,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모집에 신청하여 감사하게도 책을 받아들었다.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바로 ‘김병운’. 김병운 작가님의 작품이 실려있는 게 아니라, 아예 작가 특집 꼭지 하나를 김병운 작가님으로 꽈악 채운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김병운 작가님은 내게 의미가 조금 남다른 분이시다. 퀴어 문학을 피해오던 내게 그 세계로 입문시킨 작가님이시고, 북스타그램을 접을까 고민하던 무렵 다시 글을 써보자고 다짐하게 만든 힘을 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런 작가님을 분석(?)하고 파헤쳐놓은(??) 글이 담긴 문예지가 있다???? 절대 못참지…;;;




음…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적지 않은 퀴어 문학을 나름 읽어왔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렇게 내가 느낀 퀴어문학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퀴어라는 소재를 전면으로 배치하여 작품의 중심 주제로까지 끌어올린 소설이 있는가 하면, 평범한 일상 혹은 별다를 것 없는 사건이 중심인데 주인공이 그저 성소수자인 작품도 있다. 개인적으로 후자의 경우를 읽을 때에는 퀴어성이 조금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억지스럽고, 불필요한 장치 중 하나로만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 퀴어성이 작품의 중심 주제가 되는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성소수자로서의 삶만이 가지고 있는 그 분명한 요소가 그 작품을 읽게 만든다. 김병운 작가님은 전적으로 퀴어 정체성을 내세우는 작품을 집필하신다.

물론 이러한 소설들도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성소수자로서의 삶을 낱낱이 드러내는, 이를테면 박선우 작가의 『어둠 뚫기』처럼 어떤 사랑을 하고 어떤 삶을 사는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퀴어문학이 있는가 하면 조금 다른 느낌을 지닌 소설도 있다. 한국 사회 안에서 성소수자로서 거대한 다수의 편견에 맞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외로우며 힘든 일인지를 고발하듯 보여주는 소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김병운 작가님이 후자와 같은 작품을 쓰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소설이 내게 너무 좋았다. 내가 갖고 있던 편협한 시선을 반성하고 뉘우치게 만드는 묵직한 주제의식과 더불어 한편의 독립영화를 보는 듯한 아름다운 문체까지. 박상영, 박선우, 김지연 등 퀴어 소재의 작품들을 주로 쓰시는 작가님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요즘의 한국문학계이지만, 그럼에도 김병운 작가님의 작품은 정말 독보적이라고 느낀다. 그 누구도 김병운 작가님의 느낌을 낼 수 없어 대체하지 못한다고 생각되는, 그래서 너무나 소중한 김병운 작가님의 작품을 곧 만날 수 있다고 하니 너무나도 기쁠 따름이다.


『자음과모음 2025 여름호』에는 김병운의 작품들을 분석한 노태훈 평론가의 작가론과, 곧 출간될 단편집을 두고 겪은 김병운 작가님의 에세이가 담겨 있었다. 에세이를 읽으며 김병운 작가님이 그동안 고된 시간을 보내셨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를테면 한번도 거절해본 적 없는 소설 청탁을 거절하게 된 일화라던지, 소설이 쓰이지 않는 것을 주제로 심리 상담을 받아오셨다는 점이라던지… 그의 글을 사랑하는 한 명의 독자로서 조금 안타깝기도 하고 그만큼 절실한 마음으로 소설들을 써오셨을 것 같아 감사하기도 하다. 신작이 출간되면 누구보다도 먼저 사서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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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부정
어니스트 베커 지음, 노승영 옮김 / 복복서가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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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처음엔 제목부터 약간 거리감을 느꼈다. 『죽음의 부정』이라니. 무슨 철학서 같기도 하고, 왠지 어렵고 무거울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실제로 철학서가 맞다.) 그런데 막상 책장을 열고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생각보다 낯설지 않았다. 죽음이라는 말은 무겁지만, 그걸 피하려고 하는 인간의 마음은 꽤 익숙하고, 어쩌면 내 안에도 늘 있었던 감정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저자 어니스트 베커는 이 책에서 인간이 왜 그렇게 끊임없이 인정받으려 하고, 뭔가 대단한 일을 하려고 애쓰는지를 파고든다. 그의 대답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 공포를 잊기 위해 ‘영웅’이 되려 한다는 것. 여기서 말하는 영웅은 꼭 전쟁에서 활약하는 위인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의미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모든 욕망을 뜻한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 흔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 베커는 그 모든 게 죽음에 대한 방어기제라고 말한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이 죽음의 공포가 단지 개인의 내면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구조나 문화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설명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잊기 위해 종교에 의지하고, 또 어떤 사람은 예술을 창조하거나 권력을 쥐려 한다. 모두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라는 착각을 통해 죽음의 공포를 눌러보려는 시도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난다. 서로 다른 의미 체계, 다른 ‘영웅 시스템’이 맞부딪치면서 전쟁이나 갈등이 생긴다는 것이다. 종교 간 갈등, 민족주의, 심지어 테러리즘 같은 극단적인 현상까지도 결국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만들어낸 상징 체계들 간의 충돌이라는 해석은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이 책이 단순히 죽음이라는 주제를 비극적으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베커는 오히려 죽음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것이 진짜 자유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영원하지도 않지만, 그걸 인정하고 나면 오히려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죽음을 부정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전제로 삶을 다시 바라보라는 제안처럼 느껴졌다.

물론 이 책이 절대 쉬운 건 아니다. 정신분석학, 철학, 인류학 이론들이 두껍게 깔려 있어서 계속 집중하지 않으면 내용을 금방 놓치게 된다. 하지만 그런 문장들 사이사이에 놓인 번뜩이는 통찰들이 이 책을 계속 읽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예를 들어, “문명은 죽음을 부정하기 위해 고안된 방어 기제”라는 말은 단순하지만 한참 동안 머릿속에 남았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문화나 제도들조차 죽음이라는 공포에서 비롯되었다니, 생각해보면 꽤 날카로운 시선이다.

이 책을 다 읽는다고 해서 인생이 바뀐다거나 하지는 않다. 다만, 내가 왜 이렇게 바쁘게 살고 있는지, 뭘 그렇게 증명하려고 애쓰는지를 잠깐이라도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게 베커가 말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이라면,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죽음을 부정하려는 마음은 나약함이 아니라, 어쩌면 살아가려는 의지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인간다움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서 묵직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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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되는 순간들 - 이제야 산문집
이제야 지음 / 샘터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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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좋아하는 북튜버의 영상 중에서 이제야 시인의 『진심의 바깥』을 다룬 영상을 인상 깊게 보았다. 언젠가 이제야 시인의 책을 꼭 읽어야지 싶었지만 어쩐지 계속 미뤄두고 있던 차에 샘터사 출판사로부터 너무도 감사한 제안을 받았다. 심지어 교생 실습으로 인해 서평을 올리는 기간이 늦어질 것 같다고 말씀드렸는데, 이 또한 양해를 해주셔서 감사히 읽게 되었다. (샘터사… 대박 나세요🤩)


『시가 되는 순간들』은 시집이 아닌 산문집이다. 시집을 그리 즐겨 읽지 않는 나로서는 오히려 더 좋았던 선택이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나 이 책은 시를 다루는 시인으로서의 진솔함, 그 여리고 순수한 마음이 너무도 뭉클하고 애틋하게 느껴졌다.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그럼에도 소설가나 시인의 에세이는 곧잘 읽는 편인데, 이번 책 역시 내 마음에 와닿는 구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문학 에세이, 특히 시에 대한 시인의 사유가 가득 담겨있는 산문집이었다. 워낙 좋은 문장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나의 감상보다 책 속 문장을 더 옮겨 적으련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지 않는 사람 모두 뭉클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과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사이를 오고 갑니다. 서로를 완벽히 안아줄 수 없는 이유가 되겠지요. 아마 우리는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오래 짐작만 할 겁니다. 시를 쓰는 일은 누군가를 오래 짐작하는 힘을 얻는 일 같습니다. (5p)


📖 낭만 없는 낭만에서도 너의 낭만이 되어준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없는 이상하고 신비로운 장면을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것, 시를 쓰는 이유입니다. (98p)


📖 시를 쓰는 이유, 시로 얻을 것이 무엇인지 찾다 보면 그 끝에는 늘 우리가 있습니다. 그 쓸모는 결국 시를 읽고 나눠주는 우리들에게서 채워진다는 것을 깨닫지요. (110p)


📖 우리는 익숙해지는 그리움이 무서워서, 익숙해지는 슬픔이 겁나서 잊는다고 말합니다. 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리운 것은 대개 애초부터 잊을 수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시를 쓰는 순간은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기억하고 싶지 않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시작되지요. (114~115p)


📖 시집에는 독자가 필요합니다. 시집이 점점 소수의 향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생각하고요. 여러 강의에 가서 수강생에게 꼭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요즘 시집들 왜 이렇게 어려워요?” (…) 어려운 시의 반대말은 쉬운 시가 아니라 ‘읽게 되는 시’가 아닐까요. (155~156p)


📖 삼십 대가 되고 치열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는 목표를 이루는지 이루지 못하는지에 대해, 누가 더 앞서 나가는지에 대해 이따금씩 너무 많이 저울질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꿈도 모르면서 무례하게 함부로. (207p)


📖 쓰는 순간은 앞으로도 대부분 안온하거나 기쁠 수 없겠으나 여럿에게 빚을 지며, 색을 입혀 시를 쓰고, 그 시를 우리가 함께 나눈다면 외롭거나 쓸쓸해도 포근할 것임을 믿어봅니다. (2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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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카베 악바르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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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잎1기 

은행나무 출판사의 서포터즈로 활동하면서 받게 된 책이다. 최근 은행나무에서 출간된 책들이 꽤 많아서 그런지, 빙의물 테마 소설집 『내 인생이 알고 보니 내 인생이 아님』과 카베 악바르의 소설 『순교자!』 중 한 권이 랜덤으로 발송된다는 문자를 받았다. 교생 실습 기간 동안 정신없이 지냈던 터라 어려운 책이 들어올 여유가 내 머릿속에 없을 듯하여 테마 소설집이 내게 오길 바랐건만… 그럼 그렇지… 500페이지가 넘는 『순교자!』가 떡하니 배송되고 말았다.


‘순교자’란 무엇일까. 네이버에 ‘순교’의 뜻을 검색해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행위’.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사전적 정의를 알아보며 확실히 느꼈다. 이 책이 진짜 어려울 것이라는 예감을… 더구나 같이 동봉된 편집자님의 레터에 적힌 ‘조금 마이너하더라도 이렇게 대담하고 새로운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이라는 문구가 나를 더 깊은 걱정의 늪에 빠뜨리고 말았다. (근데 뭐 어쩌겠는가. 받았으면 읽어야지.)


“난 죽고 싶어요. 늘 그랬던 것 같아요. (…) 우리 엄마는 아무 이유 없이 죽었어요. 반올림 오차처럼요. 엄마는 다른 사람 300명과 죽음을 나눠야 했어요. 우리 아빠는 웬 기업형 농장에서 수십 년 동안 닭똥을 치운 끝에 이름 모를 사람으로 죽었고요. 난 내 인생이, 내 죽음이 그보다는 의미가 있었으면 해요.” (47p)


『순교자!』는 부모 모두를 잃은 주인공 ‘사이러스’가 의미 있는 죽음에 집착하듯 ‘순교자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이러스는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를 ‘허무맹랑’하게 잃었다. 미군이 이란의 여객기를 적기로 착각하여 미사일을 발사하는 바람에 그대로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사이러스는 어머니와의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인지 일부러 어머니를 애도하는 날을 만들어 오열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이는 사이러스에게 어머니의 죽음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아버지 또한 어머니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사이러스는 자신의 죽음을 부모의 죽음과는 달리 ‘유의미한’ 것으로 만들겠다는 일념에 휩싸이게 된다. 그렇게 그는 ‘순교자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한다. 병원에서 신참 의사들을 위해 죽어가는 환자 연기를 하기도 하고, 순교자들의 사진을 방에 붙인다든가 순교자들에 관한 시를 쓰기도 한다. 즉, 사이러스는 언제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쯤되면 눈치챘겠지만, 『순교자!』는 그리 재미있는 소설은 아니다. 다만 좋은 소설이라는 점도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독자로 하여금 깊은 사유에 잠기게 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 사이러스가 바라는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순교’여야 했다. 자살과 순교를 구분짓는 것은 무엇일까. 무의미에서 의미로 향하는 과정을 사이러스는 자살이 아닌 순교라고 보고 유의미한 죽음을 그렇게나 절실히 바랐던 걸까. 삶과 죽음의 대해, 그리고 죽음의 허무와 유의미성에 대해 탐구하는 소설이라는 한줄평으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만약 이 작품에 대한 느낌이 아직 오지 않는다면, 아래에 적을 옮긴이의 말 속 한 구절을 읽길 바란다. 분명 이 책이 궁금해질 것이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늘 자살을 이야기하고, 죽음의 무의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순교를 이야기하면서도 사실 사이러스는 알고 있다. “죽음 자체는,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아무 의미도 없다.” (5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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