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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우면 벗으면 되지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양지연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21년 2월
평점 :
어느 주말 서점 나들이
서점 갈 생각은 없었지만 어느 날과 달리 눈이 번쩍 떠진 어느 주말 아침에 내가 놀럴 갈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이었다. 동네 마실도 한계가 있었고 딱히 특별한 목적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인게 집 근처에 커다란 서점이 있었고, 그리고 서점에서 풍기는 특유의 향기가 지적 배고품을 간접적으로나마 채워주기 때문이리라.
내가 매번 이용하는 서점 출구는 맨 처음 어린이 그림책 코너를 처음 지나쳐야 한다. 그림책을 맨 처음 맞이하는 느낌은 마치 테마 파크에 막 처음 입장했을 때의 두근거림이 상기되는 느낌이다. 어느 서적 코너보다 컬러풀하고 다양한 판형으로 꽂혀 있는 매대를 보면 해당 코너 서점 직원의 훌륭한 테트리스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점도 한 몫한다.
자본주의 시대 인기 그림 작가의 책은 좋은 위치에 차지한다. 그리고 어느 때와 같이 신작이 출간되면 눈에 잘 띄는 매대의 정상에 위치한 그림책, 요시다케 신스케 작가의 작품과 눈을 마주치게 된다.
고민을 무겁게 만드는 건 우리 자신일지도....
작가의 그림책은 어린이용이라기 보다는 작가의 특이하고 기발한 시각에서 바라본 세상 일기와 같은 작품들이 많다. 이번에 만난 작품은 특이할 것 없는 우리가 일상에서 뱉는 말이 제목이었다. [더우면 벗으면 되지]
응?! 그렇지 더우면 벗으면 되는데.... 정작 우리는 많은 것들을 눈치를 보며 살아가기에 그 간단한 명제 조차도 마음대로 못하고 망성이곤 한다. 우리는 고민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건 인간의 당연한 숙명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고민을 무겁게 만드는 것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림책이라서 서점에서 서서 읽어 내려갔다. 한 장 한 장을 읽으며, 웃기도 하고 다시 시무룩해지면서 읽어내려갔다. 마스크 안이라서 그림책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변화무쌍하게 변화는 내 표정에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었다. 다만 피식! 하는 소리만은 마스크의 방음효과가 없는지 새여 나오는 걸 막을 길이 없었다.
어릴 적 갖고 있는 고민들부터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하고 있던 고민들이 이 책 한 권을 통해 속 시원하게 풀어주더라. 어릴 적 읽히지 않은 한글을 보며 엄청 고민했었는데.... 아는 부분만 읽으면 되는 거였다. 완벽한 습득보다는 아는 부분을 확인하는 것으로도 충분했던 사실을 이제서야 알다니... ㅠㅜ 거기다 일에 지쳐 아무것도 하지 않던 하루의 끝에 선 자신에게 시간을 허비했다고 했지만.... 이 책에서는 137억 년 우주의 역사를 떠올려 보라 한다. 얼마나 유쾌한 답이 아닌가. 내가 아무것도 안했지만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체로서의 존재를 생각하는 시간. 무엇보다 철학적이지 않은가.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 안절부절 했을 때, 다 같이 후후 불어 식히면 된다는 명답. 코로나 시대가 이런 그림도 이제는 과거 속 한 컷에 지나지 않을 터이지만.... 그래도 할아버지도 귀여운 고양이도 유리 공예 장인과 코끼리가 합세하면 어떤 뜨거운 음식도 순간 식혀줄 것 같은데, 그 행위 자체를 상상하는 것이 너무나 즐겁게 해주었다.
베스트 고민 해결 컷은 이것!!!
모든 스토리가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지만 그 중에서 [방이 어질러져 있다면]의 고민에 대한 답을 보는 순간.... 내 방을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놀랐다. 그렇다. 방이 어질러 있다면 나는 쌓이 책들의 모서리를 맞춰서 좀 더 높이 쌓는게 에너지를 기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책으로 쌓여 있는 방 자체를 싫어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저렇게 책이 쌓여 있으면 청소기로 방을 돌릴 때 한 번 이라도 더 정리하면서 보지 못한 책들을 발견해서 읽어내려가기 때문이다.
고민은 소중하다. 하지만 고민이 내 자신을 갉아먹는 기생충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면 고민은 결국 마음의 병으로 이어지리라.
고민 자체를 풀어갈 수 있는 유머와 여유.
이 책은 바로 그런 힘을 주는 영양제 같은 존재이다.
하임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