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에 대하여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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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품는 호의, 애정, 동경, 질투, 그리고 미워함(미워함은 '싫어함'과는 달리 순수한 증오만을 품을 수 없다)과 같은 마음은 순수한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된다. 호기심은 아슬아슬한 선 위를 걷는, 그럼에도 마음대로 걸음을 멈출 수 없는 마음이다. 이는 상대로 하여금 경계 혹은 약간의 두려움을 품게 하거나, 상대가 마찬가지로 애정을 되돌려 줄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김화진 작가의 <나주에 대하여>는(비록 2022년에 우리가 골몰하고 있는 이슈가 소재로 종종 등장하지만) 표지의 새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단정한 뒷모습을 마주하는 것처럼 같은 반 친구의 뒷모습을 몇 초간 바라볼 때의 마음으로 우리를 되돌려놓는다. 조금은 모났기에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새 이야기>는 빈티지 옷가게에서 열린 상영회를 통해 만난 '천희'에게 '나'가 호감을 갖게 되고, 그 마음을 정리하고, 이윽고 천희를 떠나보내는 이야기이다. 힙한 가게와 의식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직장인들 간의 대화가 교차되어 이어지는 반면, '파'는 나에게 말을 걸고 천희는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는 친구들을 위해 도움을 준다. '나는 완성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좋았다'라는 말과 같이, '나'는 천희와 웹툰을 향한 짝사랑이 끝없이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등장인물과의 '작별'을 마주하기가 두려워 중간에 멈춰버린 시리즈처럼.

조용하고 독특한 천희의 천성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는다. 그럼에도 '나'는 천희에게 성큼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천희와의 관계를, 즉 천희에게 대책없이 빠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나의 소망은 결국 반 년만에 끝을 맺는다. 천희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느닷없이 '어디론가' 떠나간다. 자신을 닮은, 묵묵한 청자인 '파 화분'을 두고서.

'나'는 청자에게 털어놓는다. 사실 천희의 '떠나감'은 자신을 안도하게끔 만들었다고. 이미 끝난 마음은 언제든 꺼내보고 다시 접어 마음 한 켠에 넣어둘 수 있다. 하지만 천희에 대한 그리움과 '파'를 넣은 매운 음식을 매일 밤 먹은 '나'는 크게 탈이 나고, 웹툰 연재도, 매운 야식도, 그리고 마음을 펼쳐둔 채 하염없이 그리워하는 것도 자신에게 해롭다는 것을 깨닫는다. 대신 '나'는 천희를 떠나보낸다. 기쁨을 채 숨기지 못한 얼굴을 그리면서.

표제작인 <나주에 대하여>는 출판사 마케팅부 후배인 '나주'를 관찰한 이야기이다. 거래처 상대의 구시대적인 말을 웃어넘기는 대신 '외모 지적'이라고 대꾸하면서도 '성희롱'이라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하고, 페미니스트가 되고자 하나 여전히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듯한 나주의 입체적인 면모는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이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여실히 드러낸다. 점심 시간에 수영을 시작한 나주의 면모도 마찬가지이다. 소위 말하는 '갓생'을 살고자 하는(김화진 작가가 편집자로 근무하는 민음사 유튜브 채널에는 '갓생살기 프로젝트'라는 컨텐츠가 있다)현대인의 성실함과 고단함이 뒤섞여 있다.

이때 나주에 대한 호의적인 시선은 변함이 없으나, 나주가 '나'의 애인의 전 여자친구였음이 밝혀지면서, 그리고 애인인 '규희'가 사망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나주의 sns를 몰래 들여다보면서, 규희의 흔적을 찾으면서 '나'는 나주에게 끝내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나주와는 달리 한 걸음 떨어져 '관찰자'의 입장을 유지하고자 한 '나'는 결국 나주에 대한 복잡한 마음, 그리고 규희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직면하기로 결심하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나'의 '다가감'이 두 사람 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고는 아무도 확답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두 사람에게 성큼 다가갈 용기를 얻었고, 이를 행하였다. 조금은 이기적이게도.

<꿈과 요리>는 '스물 아홉'이라는 나이에('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드라마에서는 스물 아홉은 꿈만 꾸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라고 정의했다) 현실과 꿈 사이에서 갈등하는 수언과 솔지가 등장한다. 수언과 솔지는 영화를 사랑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친밀하고 애정 어리다고 말하기 힘들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수언은 솔지와 거리를 두고자 한다. 수언은 솔지의 영화에 대한 애정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를 '드러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솔지 앞에서 수언은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이 한없이 작아진다고 느낀다. 반면 솔지는 자신처럼 영화를 좋아하는 수언에게 호감과 '벅차오름'을 느끼지만, 항상 영화와 수언에 대한 자신의 애정이 인정받지 못하고, 항상 거절당한다고 느낀다.

솔지의 '요리'를 먹으면서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지고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러나 둘은 여전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수언은 솔지의 꿈을 '허세'라 칭하며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불쾌하게 여긴다. 이는 어쩌면 현실을 지키는 데 급급한 게 한없이 부끄러운 수언의 방어 기제일지도 모른다.

스물 아홉의 끝자락, 막상 영화 비평 공모전에 당선된 건 수언이었다. 이 순간, 솔지는 자신의 오만함을 수언에게 들키고 말고, 이는 수언의 자격지심을 터뜨리는 계기가 된다. 스물 넷이 되어서야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스물 아홉까지 서로의 속마음조차 알지 못했던 둘은 그제서야 각자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두 사람이 싸우는 날에는 크림파스타와 감바스를 먹고, 화해하는 날에는 연어덮밥을 먹는다. 화려하지만 속내를 감춘 요리와 보다 소박하지만 가장 자신이 있는 요리. 솔지는 꿈을 내려놓고, 수언은 꿈과 이에 대한 애정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둘은 서로의 손을 맞잡는다.

<침묵의 사자>는 이별에 서툰 '나'가 갑작스럽게, 그리고 비밀스럽게 찾아온 사자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타인에 대한 시선의 '부정적인 측면'을 그려낸 단편이기도 하다. 친구 '지은'의 이혼으로 인한 상처보다 친구의 이민으로 느낄 자신의 외로움이 우선이었던, 남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입장이었던 '나'는 오히려 남에게 이해받지 못하는(이해해주는 상대가 부재하는) 입장에 처한다. '나'는 문학상을 수상해 소설가가 되지만, 책에는 이상한 내용의 악플이 드문드문 달리기 시작한다. 손에 식은땀이 날 만큼 초조한 마음으로 마주한 악플을 단 사람은 생각보다 가까운 위치에 머무르는 사람이고, (당연하게도)김이 빠질 만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이때 '나'는 마주하기 전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타인을 마주한 이후 지은과 사자를 찾는다. 지은은 함께 웃어 주고, 사자는 영국에 머무르는 지은 대신 '나'의 등을 쓸어 준다. 신경안정제나 항불안제, 항우울제와 같은 약이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하는 것도 2022년에 다다른 우리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편견으로부터 해방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압박감은 방울토마토에서 복숭아만한 크기로, 다시 복숭아에서 방울토마토 정도로 커졌다 작아지며 '나'는 성장한다.

나 역시 인터넷에서 무척 멋진 글을 쓰시던 분의 sns를 꾸준히 찾아간 적이 있었고(부끄러워서 팔로우를 하지는 못했지만, 무척 팬이라고 익명으로 팬레터를 몇 번 남길 수는 있었다), 그분께서 좋아하시던 소설과 시를 따라 읽었다. 덕분에 나는 한나 아렌트와 허수경 시인님을 사랑하게 되었다. 김화진 작가님의 <나주에 대하여>는 타인에 대해 품는 개인의 미시적이고 독특한 감정을 다양한 모습으로 구체화시켜 표현하고 있다. 파와 새, 비, 회원권, 음식과 눈물, 입맞춤, 그리고 사자까지. 호기심과 애착은 우리를 넘어뜨리는 '경계선'이 되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견고히 형성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감히 다시 한 번 누군가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살아간다. 아직 용기가 부족해 못본 척 슬쩍 눈을 돌려야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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