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한 9월이 되었네요.
잊기 전에 8월달에 읽은 책들을 정리해봅니다.
2015년 8월에 읽은 책 중 저에게 의미를 던져 준 책 5권을 소개합니다.
제 멋대로 기준이지만,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책, 제 생각을 바꾸고, 저에게 변화를 일깨워준 책을 위주로 하였습니다.
5위 영상미가 돋보이는 소설 [타이베이의 연인들]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잔잔한 이 느낌을 조금 더 누리고 싶다. 이 책을 읽는 시간동안 내 머릿속에는 구체적인 영상들이 아른거린다. 얼마 전 여행하면서 보았던 단수이의 거리, 타이베이의 밤 풍경, 스쿠터가 빼곡히 주차된 공간 등 희미해진 기억을 떠올려본다. 여행 사진에 담겨있는 컷에 생기를 불어넣고, 이어질 듯 말 듯한 인연에 대한 이야기까지 살짝 양념을 더한다. 깔끔하고 담백하다. 이 책의 저자 요시다 슈이치는 사람들의 평범한 삶에 숨결을 불어넣어준다. 이 책을 되도록 오랫동안 읽게 된 이유였다. 어느 누구의 에피소드도 소홀하지 않았다. 은은한 향이 나는 듯한 소설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영상미였다. 이 소설 속의 글을 읽다보면 타이베이의 거리가 떠오른다. 그곳의 분위기와 냄새까지도 살아나게 한다. 흑백화면을 컬러로 색칠해주고 생생하게 3D화면으로 눈앞에 펼쳐낸다. 타이완의 거리를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는 주인공이 된다. 여행 중 만난 누군가를 몇 년 만에 떠올리기도 하고, 새로운 인연을 찾아 짧은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햇빛 좋은 날 아침에 바라본 바다의 잔잔한 물결을 닮은 책이다. 은은한 채색에 아득하게 보이는 수채화같은 소설이다. 8월의 마지막을 이 책과 함께 기억하게 될 것이다.
4위 기분 좋은 이 느낌, 동화같은 책 [하루100엔 보관가게]
앞을 볼 수 없는 가게 주인과 고양이 사장님 그리고
소중한 보관품이 들려주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
이 책 『하루 100엔 보관가게』를 이 설명만 보고 선택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 이상이었고 느낌이 좋았다. 한여름밤에 동화속 세계를 엿보는 시간이었고, 선악 구분 없이 훈훈해지는 기분이다. 세상사가 복잡하니 따뜻한 동화같은 이야기를 꿈꾸게 된다. 그런 책을 찾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여름날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펼쳐들었다가 기분이 좋아진다. 큭큭 웃음이 난다. 몽글몽글한 고양이 느낌, 비누 아가씨의 향기, 앞이 보이지 않는 사장님이 보관가게에서 보내는 일상 등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상상 속 세계에서 그림을 그려 나갈 것이다.
3위 10인의 예술가, 10가지 테마, 그리고 제주 여행 [제주작가 제주여행]
무심결에 들춰보다가 가슴이 설레고 결국 다른 일을 다 제껴두고 읽게 되는 책이 있다. 이 책이 나에게는 그런 의미로 다가왔다. 기대 이상이었고, 마음을 설레게 하는 책이다. 10명의 예술가들의 개성 넘치는 작품을 보며, 제주도에서 자신의 색깔을 물씬 뿜어내며 작품에 몰두하는 열정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의 작품을 보며 제주 자연을 다시 떠올리게 되고, 내가 바라본 제주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보고 싶은 욕망이 일어난다. 생동감 있게 내면의 예술성을 살려내는 책이다. 제주를 바라보는 또다른 시선을 제공해준다.
이 책의 장점은 제주에 관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 사진이 담겨 있다는 점이었다. 작품을 보기 위해 미술관에 가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기에, 방안에서 책 한 권으로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훑어보는 시간이 의미 있다. 잠자고 있는 예술혼을 깨워 흔들어 놓아서 읽는 내내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쓰게 되는 책이었다. 마음에 드는 구성과 알차게 채워진 예술이 마음에 드는 책이다. 제주에 관심이 있는 사람, 특히 제주의 예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의 저자는 클로드 앙스가리. 음악과 동물을 사랑하는 문학선생이다. 현재 브르타뉴 지방의 최서단 피니스테르 주 두아르므네에서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녀가 쓴 여러 권의 책들 중 고양이와의 인연과 만남에 대한 이야기인《고양이들의 샛길》이라는 책이 궁금해진다. 이 책 《깃털》은 시적인 감흥과 철학적인 고찰을 통해 고양이와의 교감을 섬세한 필치로 써내려간 책이다. 그런 점이 이 책을 읽는 데에 깊이를 더하고 인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한다.
이 책은 상실에 대한 책이다. 사랑하던 고양이 '깃털'을 잃고 난 후 고통스러워하다가 독백 형식으로 편지를 써나간 것이다. 지독한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글쓰기를 통해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상실감을 극복하고 있다. 글쓰기는 치유의 방편이다. 지독한 고통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놀라운 치유력이 있음에도 우리는 고통스러운 당시에는 글을 쓸 생각을 하지 못한다.
곧바로, 나는 네게 편지를 쓸 수가 없었다. 가장 생생한 고통의 정점에서는 단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눈물. 예고 없이. 아무 때나. (114쪽)
생생한 고통의 정점에서 조금씩 빠져나오면 펜을 쥘 힘이 생긴다. 그때부터 마음 속에 응어리맺힌 슬픔이 서서히 풀리며 치유의 시간은 시작된다. 저자는 그 순간 그들의 추억을 한 권의 책으로 쏟아부었던 것이다. 행복도, 고통도,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도, 마음에 되새긴다. 그렇게 그녀는 구원을 받는다.
네 죽음은 내 어린 시절의 상처, 생명의 유한함과 사랑하는 이들의 상실에 대한 분노를 일깨웠고 아버지에 대한 애도에 다시 불을 지폈다. 우리 삶의 조건인 모든 참혹함에 대항하여 나는 글쓰기밖에 다른 구원을 모른다. 삶을 연장해 가기 위해. (108쪽)
하지만 이 책이 상실에 대한 책인 것만은 아니다. 사랑의 시간이 컸던 만큼 상실감의 무게에 짓눌리고 고통스러워한 것을 표현했다. 이 책을 통해 고양이 깃털과 인간 클로드 앙스가리의 교감을 짐작해본다. 8년의 시간을 함께 존재하며 행복했던 일상을 눈앞에 펼쳐내듯 그려낸다. 떠난 고양이에게 쓰는 편지라는 부제를 보고 어떤 내용인지 짐작하고 읽어나갔기에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그들의 행복한 시간에 마음이 아리고, 헤어짐의 고통에 마음이 쓰리다. 편지를 받는 이는 떠난 고양이라지만, 읽는 이에게 자신만의 기억을 떠올리도록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나직하게 울부짖는다.
이 책을 눈여겨 보는 사람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거나 떠나보낸 적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아끼던 강아지가, 고양이가, 어느 날 사라져버린다면 그 상실감이 얼마나 클까.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보니 범위는 동물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모두 포함해야할 것 같다. 클로드 앙스가리의 처절한 고통을 공감하며 어느 순간 촉촉히 눈가가 젖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행복한 기억을 함께 한다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 무엇이든 내 마음 속에 늘 함께 하는 것이니까.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은 죽은 이의 진정한 무덤이다. 유일한 무덤. 내가 사는 한 너는 내 안에서 산다. (100쪽)
이 책의 맨 마지막 장에는 편지지가 한 장 붙어있다. 읽고 나면 주변의 존재들이 달리보일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쓰고 싶어질 것이다.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보자. 언어가 달라도 서로 교감하고 있는 반려동물이나 언어가 같아도 교감하지 못하고 있는 주변사람에게 손편지를 한 장 쓰는 여름밤이 오래 기억될 것이다.
1위 메신저로 재현한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톡 1]
재미있다. 무척이나 흥미진진해서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되는 책이다. 이 책은 메신저로 재현한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이 아니라 조선왕조실'톡'이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역사의 장면을 '톡'을 통해 보여준다. 이 책은 웹툰을 바탕으로 조선사를 연대순으로 재구성한 역사교양만화인데, 학생들이나 일반인 모두 저자의 독특한 상상력에 웃으면서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역사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이다. 역사는 아주 오래 전에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처럼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산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무적핑크. 서울대학교 디자인과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조선왕조실톡> 한 회를 그리기 위해 실록뿐만 아니라 관련 역사서와 자료들을 섭렵했다고 한다. 쉽게 그려지고 쓰인 책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렇게 한 권으로 엮이기까지 상상 이상의 노력과 공을 들였으리라 예상된다. 그렇기에 이렇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역사에도 충실한 흥겨운 책을 써낼 수 있었으리라. 이 책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인생 살다보면 별일이 다 일어난다. 그러니까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나를 친추했다. 그리고 갑자기 쏟아지는 친구신청 알람. 놀라서 친구목록을 확인한 나는, 더욱 놀랐다." (12~13쪽)
놀랄만도 하다. 태조, 세종, 양녕대군, 황희, 연산군, 이순신, 영조, 고종......조선시대의 그분들이 친구신청을 하고 카톡으로 그들의 일상을 볼 수 있다는 상상은 흥미롭다. 작가의 상상력이 대단하다. 톡톡튀는 아이디어와 매력 넘치는 캐릭터의 만남으로 이 책에 매료되었다. 이렇게 바라보니 역사가 친근하게 느껴지고 부담없이 읽어나가면서 기억에 쏙쏙 남는다.
이 책 1권에는 1부 건국패밀리(태조-정종-태종), 2부 성군패밀리(세종-문종-단종), 3부 폭군패밀리(세조-예종-성종-연산군)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36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제법 두툼한데, 재미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일단 손에 잡으니 저녁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끝까지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는 아쉬움에 허전했지만, 이 책이 1권이면 앞으로도 계속 출간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아쉬움을 달랬다.
각 웹툰의 끝에는 '실록에 기록된 것'과 '기록과 다른 것'을 싣고 있어서 어떤 부분이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것인지 한 번 걸러낼 수 있다. 그저 허구인가 생각되어 웃고 넘어갔던 이야기가 사실은 실록에 기록된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을 때 이야기는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조선왕들의 삶이다. 웹툰의 내용만 있다면 무언가 살짝 빠진 듯한 느낌이 들지만, 각각의 이야기 끝에는 '실록 돋보기'라는 부분이 있다. '역사에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야기를 찾고 있는 이한 해설로 조선사의 숨겨진 에피소드를 '실록 돋보기'에 담아낸 것이다. 재미와 학습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효과를 톡톡히 누리게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