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 36 : 회화 - 우리 문화와 역사를 담은 옛 그림의 아름다움
백인산 지음 / 컬처그라퍼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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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했던 때에 관람하러 간 적이 한 번 있다. 간송미술관 가을 전시에 가보았다. 진경시대 그림을 보기 위해서 그날 하루 즐기기로 했다. 점심 시간에 줄 서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 밥 먹으러 간 사이라 일찍 들어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여기부터 전시장까지 2시간 걸립니다'라는 표지를 보고 '설마 그렇게까지 걸릴까?' 생각했는데, 그 이상을 기다리게 되었다.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쬐는데 몇 시간을 기다리며 기나긴 길이 줄어들기만을 기다리는 상황, 지루한 시간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은 왜 간송미술관의 전시회에 오는 것일까? 어쩌면 봄과 가을에 보름동안 잠깐 문을 열기에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것이고, 전시장 내의 인원을 제한하면서 기다리게 하기 때문에 악으로 깡으로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되었다.

 

정작 전시장에 들어가니 에너지가 고갈되고 말았다. 막상 간절히 기다리던 그림 앞에 서니 내가 왜 이렇게까지 기다렸나 허무해지기까지 했다. 전시장 안에도 역시 인원을 제한하긴 하지만 사람들에 치이고, 작품 하나 하나 여유를 가지고 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이리저리 치이고 밀려가다보니 그저 '그림이구나!' 생각할 밖에.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 한참을 감상하고 싶었던 나의 마음은 산산히 부서졌다. 하긴 나도 밖에서 2시간 이상 기다렸으니, 지금껏 기다리고 있는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얼른 보고 나가야겠지? 결국 전시장에서 나와서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나는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구나!

 


 

이 책 『간송미술 36』은 그때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읽어보게 되었다. 가장 앞에 나오는 '편집자와의 대담'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2008년도 가을 간송미술관에 관람객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온 적이 있었는데, 전례가 없던 엄청난 인파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바람의 화원』이라는 소설과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혜원 신윤복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폭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전시에는 겸재, 추사, 단원 등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서화가들의 작품이 다 나와 있었는데, 오로지 혜원, 그것도 <미인도> 하나만 찾는 대중 모습에 화가 나셨다고.

 

사실 나도 그런 대중 중의 하나이기에 대중의 심리 또한 이해가 된다. 아는 것은 별로 없고, 어쩌다 이슈가 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어 휩쓸리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드라마가 나왔을 때 남장여자라는 설정에 처음에는 기가막혔지만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 놀라게 되었다. 이렇게 대중 문화는 그 영향력이 커서 왜곡되면 위험한 것이겠구나, 생각했기에 이 책이 반갑다. '대중과 더불어 즐기고 공감을 받는 것'을 생각하고, 기왕이면 왜곡되지 않은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쉽고 올바른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저자의 말에, 지금이라도 관련 지식인으로서 대중과의 소통을 꿈꾸고 이 책을 집필했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 책은 대중을 위한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진 책이다. 이 책을 읽어나가며 예술가들의 시대적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때로는 작가의 시선으로, 때로는 그 당시에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의 마음으로, 세세하게 작품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 책에 실린 그림의 화질이 뛰어나고, 관련 지식에 대한 설명이 술술 풀어져나가기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그건 아는 것밖에 안 보인다는 말도 될 수가 있어요. 게다가 자기가 알아낸 것도 아니고 남이 알려 준 거잖아요. 그때는 '그렇구나'하는 생각이 들지만 금방 쉽게 잊어버립니다. 한계가 명백합니다. 산수화는 그저 멋진 경치를 보듯, 인물화는 사람을 대하듯, 화조화는 주변의 꽃을 보듯 그렇게 시작하면 됩니다. 어떤 꽃을 감상하는 데 심오하고 정확한 생물학적인 지식과 정보가 필요하지는 않잖아요. 이렇게 어떤 식으로든 그림과 소통하다 보면, 그걸 누가 그렸는지, 왜 그렸는지, 어떤 시대였는지 등등 궁금해지지 않겠어요. 그래서 공부를 하게 되고, 공부가 깊어지면서 아는 게 더 많이 보이고. 이런 게 더 선순환적인 과정이 아닌가 싶어요. 이 책은 이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더 알고 싶다, 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8쪽)

그런 점에서 보면 내가 이 책을 읽은 시점이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전혀 관심없던 그림에 조금씩 눈길이 가고 관심이 생기고, 현대 미술관에도 가고 옛그림에도 눈이 뜨이면서 조금씩 호감을 갖고 있었다. 옛그림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찾아 읽었으나 기억에 희미해질 즈음, 이 책이 그림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붙여준다.

 

그림 하나 하나를 읽어나가는 시간이 유익하다. 간송미술관에 직접 갔을 때에는 그저 그림을 봤다는 기억만을 안고 왔는데, 지금은 방 안에서 찬찬히 시대를 아우르며 그 당시의 분위기와 이들의 마음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무엇을 어떻게 그렸는지, 그들이 담고자 하는 세계는 무엇이었는지, 그 그림에 담긴 속뜻은 무엇인지 하나 하나 알아가게 된다. 이 책으로 신사임당을 시작으로 이정, 이징, 조속, 김명국, 윤두서, 정선, 변상벽, 유덕장, 조영석, 심사정, 강세황, 김홍도, 김득신, 신윤복, 김정희 등의 그림을 만나볼 수 있다.

 

 

 

 

 

 

 

간송 전형필 선생에 대해서도 앞을 내다보는 혜안이 있는 인물로 다시 바라보게 된다. 

사실《혜원전신첩》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일본의 저명한 미술사학자인 세키노 다다시가 『조선미술사』에서 <주유청강>과 <상춘야흥>을 소개하면서부터이다. 당시 《혜원전신첩》은 우리 땅을 빠져나가 도미타 기사쿠라는 일본인 수장가가 소장하고 있었다. 후일 간송 선생이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되찾아오긴 했지만, 혜원의 진가를 먼저 알아본 것은 우리가 아니라 일본인이었던 셈이다. (258쪽)

일본인이 혜원의 그림을 가져갔지만, 후일 간송선생이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되찾아왔기에 현대의 안목으로 우리가 직접 그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당시에는 인정을 못받았던 그림이지만, 간송선생의 노고에 지금은 후손인 우리가 그 예술성을 다시 재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누군가가 짚어줘야 그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일반 대중이기에, 지금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림을 폭넓게 바라보는 안목을 제공받는 것이다. 예술의 세계에 초대받는 느낌이 들었다.『간송미술 36』을 통해 36폭의 회화 작품을 하나 하나 뜯어보며 과거 시대상을 가늠해본다. 깊이 있는 감상의 시간을 보내기에는 이 책이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 안에서 편안하게 옛그림을 바라보며 옛 그림 36폭에 얽힌 속깊은 이야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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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 찬장 구경 - 달그락 달그락 젊은 마님들의 그릇 이야기
장민.주윤경 지음 / 앨리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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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다보면 앞치마를 하고 호박이랑 두부를 썰어넣어 보글보글 된장찌개 끓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음식을 하는 사람이나 기다리는 사람 모두 행복해보인다. 보고있는 사람에게도 그 마음이 오롯이 전해진다. 요리를 하고 달그락 달그락 그릇을 꺼내며 식사 준비하는 시간은 일상의 평범한 행복이다. 먹음직스럽게 담긴 음식이 가족들의 입에 들어가는 것만 보아도 행복하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드라마와 현실은 조금 다른가보다. 찬장에 정리되지 않은 그릇이 달그락 달그락, 늘 사용하는 그릇만 사용하게 되고 나머지는 보관용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하루 세 번 식사 시간은 왜이리 금세 돌아오는지, 음식을 그릇에 담으면 설거지 할 일이 많아져서 일거리가 늘어나는 것에 푸념이다. 애착을 가지게 되는 그릇이 별로 없어서일까? 그릇이 예쁘면 부엌에 발길이 더 잦게 되고, 그러면 요리에도 취미가 붙어 자연스레 깔끔한 부엌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닌가 역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단지 남의 집 찬장이 궁금해서 이 책 『남의 집 찬장 구경』을 읽어보게 되었다. 다른 집에서는 찬장을 어떻게 정리해놓았을까, 우리 집 찬장에 적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택한 책이다. 그런 나의 의도에는 조금 빗겨나간 책이었다. 찬장 정리가 아닌, 찬장 구경을 위한 책이니 말이다. 이 책을 보니 젊은 마나님들의 개성 넘치는 찬장이 눈을 즐겁게 한다. 세상에나, 이렇게 탐스러운 그릇이 가득하다니! 그릇의 브랜드조차 생소한 나에게는 그야말로 신세계에 들어온 듯 신기한 물건이 많았다.

 

 

이 책에서는 열 명의 부엌을 보여준다. 제각각 자신만의 그릇 취향이 있고, 그 사람의 분위기에 잘 맞는다.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그릇을 보며 그 사람의 그릇에 대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여자들이 그릇을 들이는 이유에 대한 글이 마음에 들어온다.

여자들이 그릇을 들이는 이유도 어찌 보면 비슷하다. 명품백처럼 부담스러운 가격도 아니고, 비싼 커피처럼 마시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 자신을 위한 위로, 다독임 혹은 약간의 호사로 예쁜 그릇을 찾는 것이다. 또 가족들을 위해서는 안전한 식기, 효율적인 도구, 향미를 풍부하게 해주는 겹겹의 냄비를 산다. (25쪽)

 

또한 이 책에 소개된 '시인 안도현의 「무밥」'은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에 시각과 청각을 되살리는 글귀라는 생각이 든다.

 

들척지근하고 삼삼한

이 한 저녁을

나는 달그락달그락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_안도현, 『간절하게 참 철없이』(창비,2008)

 

 

요리하는 남자의 화사한 그릇도 눈에 띈다. 의류업체 운영 중인데 본업보다 취미인 요리에 푹 빠져있다고 한다. 컬러풀한 스톤웨어가 가득한 찬장이 인상적이다. 깎은 감 같은 자연스러움이 있는 백자, 직접 빚은 백자 주전자, 눈에 쏙쏙 들어온다. 개성 넘치는 그들의 찬장에 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깔끔한 백자가 마음에 들다가도, 가끔은 컬러풀하게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고, 그렇다고 이 많은 그릇을 다 가질 수는 없으니 참으로 난감하다. 그저 이들의 찬장을 구경하는 것으로만 위안을 받아야겠다. 눈이 즐거운 시간이다.

 

 

맨 마지막에 그릇이 아닌 것까지 사용의 폭을 넓히는 셰프의 예술 감각이 마음에 들었다. 그릇만이 그릇이라고 생각했는데,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그릇은 아니지만 그릇으로 사용되는 것이 흥미롭다. "다만 본래 그릇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에는 샐러드나 케이크 등 열이 없는 음식을 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좋다. 식기가 아니라면 뜨거운 음식을 담았을 때 유해한 성분이 나올 수 있으니 말이다."라는 조언은 잊지 말아야겠다.

 

이 책의 중간 중간에는 Tip이 나온다. 마트에서 그릇 잘 고르는 법, 그릇 쇼핑, 어디로 갈까?, 도자기 공방 나들이, 레스토랑용 그릇 사는 법 등 유용한 정보도 곳곳에 있으니 그릇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것이다. 다음 번에 마트에 가면 그릇에 관심을 갖고 바라봐야겠다. 이 책을 통해 남의 집 찬장 구경을 톡톡히 했다. 그릇의 세계는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부엌 살림을 엿보는 시간이 되었다. 음식이 담긴 그릇 사진을 보며 행복한 부엌을 떠올리고, 예쁜 그릇을 보며 하나 장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달그락 달그락 행복한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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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 살다 -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야기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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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의 서재가 궁금하다. 서재를 어떤 책들로 어떻게 꾸밀지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어찌보면 그 사람에 대해 잘 볼 수 있는 것이 서재다. 그러기에 잘 모르는 사람이 나의 서재를 본다는 것은 내 속을 들여다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주저하게 된다. 내 서재를 남에게 보이는 것은 꺼리게 되지만, 다른 사람의 서재를 보는 것은 호기심 가득한 일이 된다. 어찌 되었든 그 사람에 대해 한 걸음 다가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조선의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시절 지식인들의 서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엿보고 싶었다. 특히 담헌 홍대용, 연암 박지원, 그 분들의 서재가 궁금했다. 2015년을 맞이하여 정말 아끼는 책을 모아 내 서재를 채우고 당당하게 나 자신을 드러내보이고 싶은 생각을 하던 차였기에, 이렇게 조선 지식인의 서재에 관한 책이 나왔다니 흥미로운 생각이 들어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이야기는 머릿말부터 내 시선을 끌어당겼다. 이 책의 저자 박철상의 서재 이름은 '수경실'이라고 한다. 언뜻 보면 의미를 알기 힘들다. '수경'이라는 한자가 낯선데, '긴 두레박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출처와 함께 그 의미를 들으니 그 이름이 탐난다.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올리려면 두레박줄이 길어야 하듯이 옛사람의 학문을 탐구하여 훌륭한 학자가 되려면 항심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해야함을 경계한 말이다.' 역시나 서재 이름을 탐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고, 다른 선생님들께 서재 이름을 지어준 일화를 보니, 서재는 단순히 책을 저장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가짐과 전체적인 분위기를 드러내는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서재의 이름은 조선 문화를 탐색하는 하나의 실마리이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2008년 5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2년 반 동안 『국회도서관보』'서재이야기' 코너에 매월 연재했던 것이다. '서재이야기'는 본래 조선시대 지식인의 서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실으려고 기획되었지만, 서재 자체에 관한 기록이 많지 않은 탓에 서재의 이름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을 조명하는 형식으로 바꿨다. (10쪽_머리말 中)

 

이 책에 실린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는 다음과 같다.

정조의 홍재, 홍대용의 담헌, 박지원의 연암산방, 유금의 기하실, 이덕무의 팔분당, 유득공의 사서로, 박제가의 정유각, 조수삼의 이이엄, 남공철의 이아당, 정약용의 여유당, 김한태의 자이열재, 서형수의 필유당과 서유구의 자연경실, 심상규의 가성각, 신위의 소재, 이정리의 실사구시재, 김정희의 보담재와 완당, 초의의 일로향실, 황상의 일속산방, 조희룡의 백이연전전려, 이조묵의 보소재, 윤정현의 삼연재, 이상적의 해린서옥, 조면호의 자지자부지서옥, 전기소와 유재소의 이초당.

 

 

 

먼저 궁금했던 담헌 홍대용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 박물관 소장 그림인 <연행도 유리창>그림을 보며 그 시절의 분위기를 가늠해본다. '유리창은 조선 사신들이 서책과 서화를 사기 위해 꼭 들르던 명소였고, 이곳에서 청나라 문사들과 많은 교유가 이루어지기도 했다.'는 설명과 함께 그곳에서의 일화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담헌이라는 호를 가진 홍대용의 서재 이름도 역시 담헌. 지금 우리 시대 지식인의 진정성이 바로 다음 세대의 흥망을 좌우한다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연암 박지원의 이야기에서는 연암산방이라는 장소가 그의 문학의 산실이며, 일생을 지배한 마음의 고향이라는 점을 느끼게 된다. 그곳엔 연암의 해학과 유머가 가득했고, 이는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는 설명에 동의하게 된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힘들고 어려울수록 웃음이 필요할 것이다. 나의 서가가 다소 딱딱하고 경건하게 흘러가지만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이 책에서는 잘 모르던 조선 지식인들에 대해서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 중 황상의 일속산방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일속산방'은 '좁쌀만한 집'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어나갈수록 좁쌀 하나가 단순히 좁쌀 하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부처가 말한 "수미산을 겨자씨 속에 넣는다"는 의미와 걸맞는 세계를 보게 된다. 황상은 일찍부터 은거할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다산에게 그 방법을 묻기도 했는데, 다산이 알려준 방법이 아주 자세하다. 이 책에서는 이야기한다. '다산이 생각한 은거는 단순히 세상을 피해 숨어 사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을 떠나 자신만의 세상을 만드는 일이었다. (247쪽)

 

소치 허련이 황상에게 그려준 일속산방의 모습

 

이 책을 읽고나니 역시 지식인의 삶에서 서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이다. 그의 인품과 그 모든 것이 드러나는 공간이고, 그들의 삶과 연관지어 이렇게 흥미로운 책 한 권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서재라는 소재로 조선 지식인의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의미 있다. 그들의 서재를 보고 나서 내 주변을 바라보게 된 다. '나중에 정리해야지.'라며 미루기만 하던 나의 서재에 눈이 간다. 서재의 이름은 뭐라고 할까, 어떤 책으로 채워나갈까, 고민이 많아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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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만한 공부는 없다
권오진 지음, 권규리 그림 / 예담Friend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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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사람들은 놀이에 인색하다. 논다고 하면 할 일을 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고, 무언가 열심히 성실하게 공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잘 노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한술 더 떠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놀이에서 배운다."

아이를 놀이로 키우고자 결심하고 이 책을 선택했다는 것은 좋은 엄마, 좋은 아빠의 출발선에 서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바로 하루에 1가지 놀이를 실천하자.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아이들에게 놀이만 한 공부는 없다. (프롤로그 中 2014년 12월 아빠학교 교장 권오진)

 



아이가 노는 꼴을 보기 싫어 이리저리 스케줄을 만들어 밖으로 돌린다는 엄마도 있다. 경쟁사회에서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 같고, 불안한 심리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야기한다. 놀이만한 공부는 없다고! 이 책을 통해 놀이의 중요성과 놀이 방법의 무궁무진함을 직접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권오진. 아빠학교 교장이자 놀이 교육 전문가로 인성발달연구소와 행복가정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운 아빠로서 직접 개발한 5천여 가지 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자기 재능을 발견하도록 이끌었다. 이 책은 그동안의 노하우를 집약한 열 번째 저서이다.

 

아이와 놀아주기로 일단 결심하더라도,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할 것이다. 특히 아빠들이 그럴 것이다. 나름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서 열심히 놀아준다고 놀아줬는데, 아이의 반응은 시큰둥 했던 경험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이 책에서는 아이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3가지 놀이 철칙을 명심하라고 일러준다.

아이의 마음을 기다리는 부모가 되라.

한 발 뒤에서 함께하라(앞서가지 말라)

함께 놀이를 즐겨라!

 

 

 

이 책에서는 진짜 놀이와 가짜 놀이에 대해 언급한다. 놀이를 가장한 학습, 목적을 위한 놀이, 즐거움이 없는 놀이는 모두 가짜 놀이다.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부모가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놀이 프로그램 역시 진짜 놀이와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문제는 많은 부모가 가짜 놀이를 놀이로 생각한다는 점. 놀이는 무조건 즐거워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놀이를 통해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거나 아이의 평소 행동을 훈계하겠다는 마음은 부디 접기를 당부한다. 아이에게는 느낌이 있다. 아이 스스로 진짜 놀이와 가짜 놀이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진심으로 즐겁게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야 놀이의 효과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정말 놀라게 되는 것은 이렇게 아이와 놀 방법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이었다.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그런 것은 핑계일 뿐이다. 여기에 소개된 놀이들은 돈들지 않는 것들이며, 시간이 없다면 아주 짧은 시간을 하거나 그 마저도 여력이 없다면 아이가 잠들었을 때에도 가능하다. 아이와 놀아주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부모에게 이 책이 다양한 방법론을 제시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챕터 4에서는 '아이에게 상처 주지 않는 상황별 놀이 훈육 Q&A'를 들려준다.

 

 

아이의 속마음을 읽으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이해의 폭을 넓혀본다. 아이와의 놀이는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아이를 위해 희생 봉사했다는 생각으로 부모는 놀고싶지 않았지만 억지로 놀아서는 안된다. 아이도 즐겁고, 함께 시간을 보낸 부모도 즐거워서 온가족이 행복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아빠가 놀이의 달인이 되는 3가지 비법을 일러준다. 놀이 재미의 8할은 아빠의 연기력이라는 점! 놀이에서 중요한 것은 '무슨'놀이를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노느냐에 달려있다. 이 세 가지만 알면 놀이의 재미가 쑥쑥 올라갈 것이다.

우렁찬 목소리

할리우드 액션

적시 적소 추임새

대단한 놀이만이 놀이가 아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야만 제대로 놀았다고 생각면 안된다. 이 책을 보며 사소한 일상에서 건져낼 수 있는 다양한 놀이에 놀이초보 엄마 아빠들이 자신감을 얻으리라 생각된다. 자라나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들과 행복하게 보낸 시간이고, 거기에는 놀이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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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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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으며 천천히 곱씹어보며 읽는 맛을 느꼈다. 포장되지 않은 솔직함이 매력적이었고,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담백한 느낌에 푹 빠졌다. 미사여구 필요없이 핵심을 찌르는 단순함에 꾸미지 않은 숭고함을 느꼈다. 별로 중요치 않다는 느낌에 기억에서 편집되어버린 사소한 것들에 대해 잘 끄집어내어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런 시선을 가진 사람이 쓴 책이라면 그의 글을 좀더 읽어보고 싶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알랭 드 보통의 다른 책도 꼭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읽게 된 그의 책이『공항에서 일주일을』이다.

 

공항은 여행지에 도달하기 위해 거치게 되는 통과의례이다. 그동안 그저 어쩔 수 없이 거쳐야하는 곳이기에 어떻게 하면 공항에서 머무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아쉽다. 모든 여행의 시작과 끝은 공항이고, 공항에서의 느낌을 좀더 구체적으로 기록해놓아도 좋았을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글을 보니 공항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을 콕콕 잘도 짚어준다.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만약 화성인을 데리고 우리 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깔끔하게 포착한 단 하나의 장소에 데려가야 한다면, 우리가 당연히 가야할 곳은 공항의 출발과 도착 라운지밖에 없을 것이다. (16쪽)'

알랭 드 보통은 2009년 여름, 공항을 소유한 회사에서 일을 하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런던에서 가장 큰 공항의 두 활주로 사이에 자리잡은 최신 탑승객 허브인 터미널 5에 작가 한 명을 일주일동안 초대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출발 대합실의 D 구역과 E 구역 사이에 특별히 배치한 책상에서 탑승객과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책을 쓰기 위한 자료를 모으게 될 것이라는 점. '혼돈과 불규칙성이 가득한 세계에서 터미널은 우아함과 논리가 지배하는 훌륭하고 흥미로운 피난처로 보인다.' 그가 묘사한 공항 터미널을 보니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명분은 없다고 보인다. 내가 작가라도 덥썩 물고싶은 작업일테니.

 

공항에 직접 가서 내 눈으로 보는 듯 생생하게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무래도 알랭 드 보통의 문체에 호감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공감하게 되는 일이 많아진다. 어떤 방을 배치받았는지, 룸서비스에 대한 감상은 어떤지, 공항체험의 극히 사소한 부분까지 세세하게 이야기를 펼치는데, 그 이야기에 흥미로운 마음으로 몰입하게 된다. 작가가 어디 어디를 여행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공항에서 보이는 풍경만을 묘사했을 뿐인데도 그것이 의외로 재미있는 것이다. 특히 룸서비스 메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끄집어내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일본 에도 시대에 하이쿠 형식을 완숙 단계로 끌어올린 마쓰오 바쇼의 이런 시구조차 소피텔의 케이터링 사업부 어딘가에서 일하는 익명의 장인이 지은 시구에 비하면 단조롭고 환기하는 힘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햇볕에 말린 크렌베리를 곁들인 연한 채소,

삶은 배, 고르곤촐라 치즈

진판델 비네그레트 소스로 무친 설탕 절임 호두 (27쪽)

단순히 메뉴판을 집어들고 메뉴를 선택해 수화기를 들어 9번을 넣고 주문을 넣으면 끝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붙들어잡고 글로 옮기는 능력이 작가에게는 있다. 비행기의 여행 일정을 알리는 스크린을 보며 무한하고 직접적인 가능성의 느낌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일러주고, 보안구역에서 느낄 법한 것을 길게 풀어낸다. 모든 인간을 항공기 폭파범 후보자로 보는 보안요원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보안구역을 무사히 통과할 때 마치 고해를 한 뒤 교회를 떠나거나 속죄의 날에 유대교 회당을 떠날 때와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해방감이었을까? 공항검색대를 통과하고 이제 쇼핑센터만 보이는 곳으로 위치 이동을 하게 될 때 무언가 무게감이 훅 달아나는 것은?

 

이 책은 처음부터 마음을 확 사로잡는 것은 아니었다. 쓰윽 읽겠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다시 앞으로 돌아가게 된다. 건성으로 읽었던 부분을 다시 눌러읽으며 곱씹어보게 된다. 묘한 감정이 일어난다. 세상 일은 아무 것도 아닌 듯한 사소한 일에서 역사에 점찍을 만한 어마어마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고, 평범한 듯한 일상에서 커다란 의미를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공항을 지난다는 것은 그저 사소한 일일 수도 있으나, 그곳만을 의미 있게 부각시키면 그것 또한 엄청난 의미가 된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느끼게 된다. 접근, 출발, 게이트 너머, 도착 등 네 파트로 나뉜 글 속에서 공항의 현재를 떠올리게 된다. 지금도 떠나는 사람들과 도착하는 사람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뒤엉켜 삶의 소리를 내는 부산한 곳이다. 나또한 공항에 가면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한 절차를 밟아야 하고, 그곳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이 들려주는 공항체험담에 웃고 공감하기도 하고, 씁쓸했다가 미소짓기도 하는 그런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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