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 안개 상·하 세트 - 전2권
영온 지음 / 히스토리퀸 / 2025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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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책 표지를 보면, 한 남녀가 손을 꼭 맞잡고 어딘가 지는 듯, 혹은 떠오르는 듯한 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처음 이 장면을 보고 “혹시 또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뻔한 연애 이야기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고, 역사 소설을 어려워하는 나의 입장에선, 차라리 뻔한 로맨스가 오히려 읽기 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쳐보니 분위기는 달랐습니다. 이야기는 한 여인이 도망치다 결국 제 머리에 총을 겨누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이 강렬한 도입부에서 이미 제 마음은 확 사로잡혔습니다.

허나 이후 내용에서는 사실상 도입부와는 다른, 잔잔한 내용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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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주제를 보고 혹자는 “결국 사랑 이야기 아니냐”, “일제강점기의 참담함을 또다시 다루는 것 아니냐”라고 물을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물빛안개』는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처절하고 비극적인 분위기만 강조하기보다, 마치 안개처럼 차분하게 스며드는 감정선을 따라가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초반 '일러두기'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물빛 안개』는 인물의 감정 및 심리 묘사에 치중하고 있으므로,

이야기의 전개 속도가 빠르지 않고 다소 우울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느린 전개나 감정 소모를 힘들어하시는 분들은

독서를 지양하기를 권합니다.

[물빛안개] 中


아무래도 안개처럼 스며드는 차분한 감정선 때문에 어려워하는 분들이 있어서 이리 일러두기로 적어두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허나 저는 그 덕분에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죠. 그들의 고통과 사랑이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처럼 다가왔던 거죠. 그래서 이 책은 역사적 사실을 담아내면서도, 동시에 보통 사람들의 삶을 차분하게 그려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더없이 살고 싶습니다.

허나 죽음을 바쳐도 모자랄 것이 없는 가족입니다.

"

P.173, [물빛안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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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중심에는 정화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치열한 학구열 덕분에 일본어와 한자를 능숙히 다루게 된 인물이죠. 그 시대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한자를 읽고 쓰는 능력을 갖춘 정화는, 능력을 살려 경성 총독부 관저에서 여급으로 일하게 됩니다. 나라를 잃은 현실은 안타깝지만, 농사로 고생하는 오라버니를 돕기 위해 돈을 벌러 경성에 올라온 것이죠.


그런 정화 앞에 나타난 인물이 바로 총독부 중위 후지와라 히로유키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연해주 한인 집성촌에서 자랐고, 국비 장학생으로 일본 육사에 입학해 명문가에 입양되며 일본군 장교가 된 인물입니다. 불량선인을 가장 많이 체포한 장교로 악명을 떨치며, ‘독사 장교’라 불릴 정도로 냉혹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정화는 친일파를 극도로 혐오했고, 히로유키는 생존을 위해 독립군을 탄압하며 일본인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지만, 그들의 삶은 안개처럼 뒤엉켜 잔잔하면서도 안타까운 여운을 남깁니다.



"

"... 저는 당신이 싫습니다. 뼛속 깊이 증오합니다.

조선인의 몸으로 태어나,

조선인에게 해서는 아니 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내가, 당신을 싫어해야 맞는 것이겠지요..."

"

P.261, [물빛안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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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빛안개』는 독자에게 큰 소리로 호소하지 않습니다. 대신 조용히 스며들어 오래 마음에 남죠. 표지 속 두 사람이 맞잡은 손과 아련한 해처럼, 이 소설도 역사와 사랑을 함께 품고 우리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전해주는 느낌입니다.


평소 소설을 잘 안 읽는 분들도 흡입력 있는 전개 때문에 쉽게 빠져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마저도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님에도 그 흡입력에 훅 빨려들어갔거든요. 잔잔한 안개와 같은 느낌이라는 말과 흡입력이라는 말이 상충된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지만, 이건 읽어본 분들만 느낄 수 있는 잔잔한 흡입력이라 생각됩니다.


역사소설이 어렵고 딱딱하다고 생각하고 계신다면, 『물빛안개』를 꼭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처절한 기록물이 아닌, 안개처럼 스며드는 이야기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책이니까요-.



<<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1. 역사소설은 어렵다고만 느껴서 손이 안 갔던 분

2. 일제강점기라는 시대를 소설로 쉽게 접하고 싶은 분

3. 잔잔하지만 여운이 오래 남는 이야기를 찾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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