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구주대첩』을 읽기 전, 나에게 강감찬이 딱 그런 존재였다.
‘귀주대첩의 대장군’이라면, 당연히 위풍당당하고 압도적인 인물로 그려지겠지.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기대를 의도적으로 배반한다.
강감찬은 역사적으로 고려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생각보다 적다.
그래서인지 소설에서 그가 처음 등장했을 때, 웅장한 영웅보다는 왜소하고 나이 든 관료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장면은 약간의 충격처럼 다가왔다.
“정말 이 사람이 나라를 지켜낸단 말이야?” 하고 의문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이 인물을 진짜 사람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강감찬은 처음부터 전쟁을 외치지 않는다.
용맹하게 앞장서 싸우는 장수라기보다는, 조용히 사람들 사이를 조율하며 움직인다.
그의 말 한마디, 침묵 한 번이 모두 의도적인 선택이라는 걸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다.”
장군이 싸움을 피하자고 말하는 이 장면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그가 지키려 했던 건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이었다.
기회를 기다리는 침묵, 버티는 용기, 결정을 미루는 책임감.
그 모든 시간이 쌓인 끝에, 마침내 맞이한 구주대첩은 단순한 전투가 아니라 ‘삶의 선택’이었다.
아, 이 사람은 싸운 게 아니라 ‘선택’해온 사람이구나—이게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다가온 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