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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ㅣ 카이로스총서 26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옮김 / 갈무리 / 2013년 7월
평점 :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식민주의가 지리적 영토를 탈취한 것과 마찬가지로, 모더니스트 의학은·······환자들을 자신의 영토로 선언하였다.·······(52쪽)
나는 구강암 때문에 턱과 얼굴에 광범위한 재건 수술을 해야 했던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치료는 대단히 특별한 것이어서 그의 외과의는 그에 관한 의학 학술지 논문을·······출판했다.·······그 논문을 봤을 때, 나는 그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그 의사와 학술지는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설령 그의 사진이 실렸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하여 “그의” 논문에서 그는 단지 몸 이상이 아닌 어떤 사람으로, 아니, 사실은 어떤 것으로, 체계적으로 무시되었다. 의학적인 목적에서 보자면 그 논문은 전혀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외과의의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의학 학술논문이라는 주인텍스트master text가 고통 받는 개인을 필요로 하면서 그 고통의 개별성은 인정하지 않는 식민화이다.(55-56쪽)
식민화는 모더니스트 의학의 성취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이다.·······
·······오랜 기간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포스트-식민적 아픈 사람은 자신의 고통이 그 개별적 특수성으로 인식되기를 원한다. “되찾기”reclaiming는 유효한 포스트모던 어구이다.(53-54쪽)
·······자신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아의 구성에 있어서 포스트모던적일 뿐만 아니라보다 구체적으로는 포스트-식민적post-colonial이다.(52쪽)
의학은 의외로(!) 심히 정치적인 학문입니다. 진단과 치료를 구성하는 학문적 내용은 물론 현실 의료행위에서 근본적 정치성을 드러냅니다. 나아가 한 국민국가의 보건의료체계의 근간이 되어야 하니 더 그렇습니다. 다국적 제약회사의 로비에 조종당하는 세계보건의료체제에 편입되어 있으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과학과 그 중립성의 이름으로 자신의 권위를 주장하지만 실은 그 정치적 위세에 편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사 자신이 모르거나 알고도 속을 따름입니다.
의학이 정치적인 것은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저자가 지적하듯,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식민주의가 지리적 영토를 탈취한 것과 마찬가지로, 모더니스트 의학은·······환자들을 자신의 영토로 선언하였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입니다. 정치경제학적 역사 진행과 의학적 역사 진행이 패럴렐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정치경제적 식민주의와 의학적 식민주의 패럴렐에는 저자가 파악하지 못한 진실이 있습니다. 정치경제적 식민주의는 본디 남의 나라를 침략·수탈하는 근대 제국주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본국민의 수탈을 일러 식민주의라 하지 않습니다. 의학적 식민주의라는 말을 쓸 때 저자는 이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화한 것이 사실입니다. 저자 자신이 제국의 본국민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 학문적 불철저성의 결과입니다.
의학적 식민주의가 말 그대로 일어나는 현장은 우리처럼 실제 식민지를 경험한, 식민지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시공간입니다. 영화나 TV드라마에서 나오듯 의사들이 주고받는 본국어를 한글자막으로 깔아주어야 겨우 알아먹는 식민지 신민이야말로 의학의 “영토”입니다. 만일 식민주의라는 말을 본국에도 적용할 것이라면 실제 식민지에는 식민의 식민주의, 그러니까 중첩식민주의라는 말을 써야 할 것입니다. 이래야 실제 식민지가 이중적 수탈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한국인 환자가 영어로 된 의학 서사에서 당하는 수탈은 미국인 환자가 영어로 된 의학 서사에서 당하는 수탈과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모던 시대 의학, 식민지주의 의학이 앗아간 영토 “되찾기reclaiming”, 그러니까 포스트모던 의학, “포스트-식민적post-colonial”인 서사의 구성 또한 중첩적인 과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국 본국의 의학이 식민지 의사를 통해 수탈하기 때문입니다. 식민지 신민의 “고통의 개별성”이 이중적으로 수탈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더 깊은 수렁입니다. 그만큼 더 힘든 싸움입니다.
우리사회의 의학적 식민주의 문제에는 또 다른 국면이 있습니다. 전통의학인 한의학의 위상 문제입니다. 장구한 세월 동안 동아시아문명, 그 안의 조선 문명을 떠받쳐온 독자적 패러다임의 의학인 한의학이 분명히 현존하나 식민주의 양의학은 이를 사실상 부정하고 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한의학을 말살하기 위해 한의사를 의생이라 폄하하고 양의사를 의사라는 보편 명칭을 부여한 연장선상에서 해방 70년이 흘러갔습니다. 해방 직후 조헌영 등 극소수 지사들의 노력으로 한의학은 제도 밖으로 쫓겨나는 것을 면해 오늘에 이르렀지만 갈수록 신식민지 전략의 식민지적 수탈은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진실을 아는 의료민중은 많지 않습니다. 식민지 신민 교육과 프로파간다에 현혹되어 그들도 한의학을 부차적·부가적 의술 또는 보약 팔아먹는 잡술 정도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서사가 이중적으로 수탈당하고 있는 진실에서 아스라이 멀어지고 있습니다.
제국 텍스트, 그러니까 환자를 “체계적으로 무시”하는 “주인텍스트master text”를 몰아내고 “자신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이끄는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의학 서사를 쓰기 위해 우리는, 나지막이 두런거리기 시작해야 합니다. 멀찌막이 내다보고 꿈을 꾸어야 합니다. 큼지막이 그림 그려 대동의 치유세상을 터야 합니다. 느지막이 떠나는 만큼 결코 물러서지 않을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 싸움을 위해 오늘 여기서, 한의학의 한 주체인 한의사들은 서로주체인 이 땅의 의료민중에게 무릎 꿇고 고백과 사죄의 말씀을 올려야 합니다. 한의학도 어려운 의학 용어로 의료민중을 수탈해온 것이 일반적 사실입니다. 필요를 넘는 비싼 한약으로 의료민중을 수탈해온 것도 수긍할만한 사실입니다. 의학 아닌 미용술로 의료민중을 수탈해온 것도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일부 한의사들 짓이라고 변명하지 않고 대승적으로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렇게 엎드려야 비로소 의학적 식민주의에 대항한 전선에 참여할 자격을 얻습니다.
먼저 저부터 무릎 꿇고 엎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