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와 산과의사 - 개정판
미셀 오당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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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상황은 예상 가능한 것이었고, 지식 부족으로 생긴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50년 전에 곤충들이 꽃가루받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았고, 화학물질들이 (해충뿐만 아니라) 꿀벌 등의 익충들도 남겨두지 않으리라는 것도 이미 명백했다. 물론 소수의 ‘괴짜’ 과학자들이나 아마추어들이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질문들을 신중하게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에서 설교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약탈자 인간Homo super-predator'이라고 부르는 인간 변종은 지구의 미래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고, 후세의 인간들에 대해 아무런 연민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허약한, 혹은 약화된 생태적 본능은 사랑하는 능력 손상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기본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사랑의 능력은 어떻게 계발되는가?(89쪽)


약탈은 타락의 증거이며 타락은 약탈의 범주입니다. 『자아 폭발』에서 스티브 테일러가 말한바, 인도-유럽어족·셈족 중심의 약탈하는 인간Homo rapiens이 출현한 이래 인류역사는 약탈체계를 구축하려는 타락집단과 이를 저지하려는 타락극복집단의 투쟁으로 엮어져 왔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러합니다. 아니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약탈이 극에 달해 인류는 물론 지구 전체가 파국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약탈하는 인간을 “Homo super-predator”라 부릅니다. 번역자는 “약탈자 인간”으로 표현했지만 이는 오역입니다. super를 누락시켰습니다. ‘초超약탈자 인간’ 또는 ‘초超포식자 인간’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이들은 “지구의 미래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고, 후세의 인간들에 대해 아무런 연민이 없”는 “인간 변종”입니다. 이들의 이런 ‘배 째라’ 식 막지莫知와 후안무치의 탕욕蕩慾이 부른 전천후 약탈은 모든 생명을 멸절의 공포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저 ‘초超약탈자 인간’만의 천국은 당분간 질탕하게 유지될 것입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가 행한 약탈이 결국 자신한테 돌아오는 광경을. 화학물질로 꿀벌을 죽이면 식물의 죽음이 뒤따릅니다. 식물의 죽음은 동물의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동물은 식물에 의존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입니다. 동물이긴 매한가지인 인간도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약탈에 취한 인간은 이 이치를 외면합니다. 통속 드라마 속 악인의 외침이 들려옵니다.


“아, 난 이 시대가 너무 좋다! 안 되는 게 없잖아?!”


저 포만감과 전능의식의 본질은 대체 무엇일까요? “허약한, 혹은 약화된 생태적 본능”입니다. 타자의 생명을 약탈함으로써 충일해지는 에고는 생명 감각을 둔화시킵니다. 함께 사는 것만이 참된 삶의 길이라는 진실에 마음을 열지 못하게 합니다. 다시없이 파리해진 생태적 본능을 깨워 “사랑하는 능력”을 복원하려면 가장 먼저 약탈자적 자기 현실의 어둠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이 알아차림이 기본적인 것이라고 해서 쉬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 중독 상태가 깊기 때문입니다. 어찌 할까요?


흔히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눈 딱 감고 행동부터 바꾸면 생각이 따라 바뀌기도 합니다. 특히 생각이 길고 깊게 고착된 경우라면 이런 전술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아무 망설임 없이 그냥 결핍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흘만 그리하면 홀가분해집니다. 아무 조건 없이 그냥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남에게 주는 것입니다. 세 번만 그리하면 홀가분해집니다. 이 행동을 통해 우리는 그 동안 우리가 얼마나 약탈을 가치 삼아 살아왔는지 알게 됩니다. 그렇게 깨달아 그 깨달음대로 행합니다.


저는 잉태되자마자 절대적 결핍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결핍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것이 우울증의 진원중 하나가 되었음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결핍을 견디는 능력의 근원이 된 것 또한 사실입니다. 실제로 저는 결핍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 않습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힘이 제법 셉니다. 기꺼이 흔쾌히 욕됨으로 나아가는 동력입니다. 기꺼이 흔쾌히 고통당하는 사람을 섬기는 근거입니다.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 하나가 열리는 인생이 적으나마 가르쳐준 사랑의 능력입니다.


“아, 난 이 시대가 너무 궁금하다! 안 되는 게 되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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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양들이 새끼를 낳을 때 에피듀럴 마취제를 주면 그 양들은 자기 새끼들을 돌보지 않는다·······.(83쪽)


  최근까지 여성은 사랑의 호르몬이라는 복잡한 혼합물질을 분비하지 않고선 어머니가 될 수 없었다. 오늘날 산업적 출산의 현재 단계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 호르몬 복합물질에 의지하지 않고 아기를 낳는다. 어떤 이들은 진통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정을 하여 제왕절개수술을 받는다. 다른 이들은 호르몬 대체 물질(보통 합성 옥시토신에 에피듀럴 마취제를 더해서)의 도움을 받아 자신들의 자연적 호르몬 분비를 막는다. 약물을 주입받지 않고 아기를 낳는 사람들조차 흔히 모자관계의 결정적 순간에 후산을 위한 약물을 받는다. 합성 옥시토신 주사는 뇌혈관장벽(BBB)을 넘지 못하기 때문에 행동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 이처럼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는 산과 관행이 불러일으키는 문제들은 문명의 관점에서 제기되어야 마땅하다.(85쪽)


의학은 도학과 공학, 두 극의 경계에 서 있는 중도의 학문이어야 한다는 것이 제 개인적 소신입니다. 그런데 현대의학은 이미 공학에 투항하여 산업화 극단의 첨병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공학은 인간과 자연 모두를 착취하는 거대한 권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공학 독재의 세상에서 기존의 도학은 더 이상 인간과 자연을 정화하는 향기로 번져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도학의 도래를 준비하며 병든 인간과 자연을 치유하는 각성된 의사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의사의 각성은 참으로 무망한 일입니다. 산업적 의료의 부속품으로 안주하는 노예적 삶에 영혼을 팔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망 양상’과 ‘사망 원인’의 차이를 모를 리 없는 베테랑 의사가 백남기 선생의 사망진단서를 사실에 반하여 작성해 물의를 빚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분명히 압니다. 그럼에도 권력과 돈 앞에서 양심을 저버립니다. 그가 특별히 악한 사람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서울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다른 의사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사람입니다.


산과 의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산과 의사들이 특별히 나쁜 사람들이어서 인류의 미래를 살해하는 산업적 출산에 의도적으로 뛰어든 것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배운 대로 심상히 제왕절개수술을 시행하고, 관행대로 심상히 인공 합성 호르몬 대체물질을 투입합니다. 구조의 일상적 작동 전반에 악이 편만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는 가차 없이 그 범죄적 진면모를 드러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 스스로의 힘으로 각성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더욱 무섭고 절망적입니다. 한 사람의 막지莫知와 탕욕蕩慾 앞에서 나라가 이렇게 삽시간에 통째로 주저앉는 꼴을 보면 대한민국은 건강한 사회 시스템 자체가 제대로 형성조차 되지 않은 상태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현실을 정색하고 직시한 시민 공동체가 일어나 그야말로 “독립운동”을 이끌고 그야말로 “민주공화국” 세워야 할 때입니다.


허위사망진단서 사건은 부도덕한 권력이 일으킨 정치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부도덕한 권력이 죽인 백남기 선생이 산업적 영농을 반대한 올곧은 농부라는 점에서 이 사건은 또한 문명의 문제입니다.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는 산과적 관행”은 타락한 “문명”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타락한 문명이 생명을 거대한 죽임증후군으로 내몬다는 면에서 이 사태는 또한 정치 문제입니다. 의사醫師가 의사義士이며 의사儀司이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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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布施는 오만한 것이다

布恭!

보공布恭으로 모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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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선생 장례식장 앞에 희망포차를 연 오영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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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시토신은 전형적인 이타적 호르몬·······이다. 그것은 ‘사랑의 호르몬’이다. 사랑의 어떤 면을 생각하든 옥시토신이 관련되어 있다. 어머니는 분만 동안에 엔도르핀을 분비한다·······모르핀 계열의 물질들은 모두 의존상태를 유도할 수 있다······

  출산 직후에 어머니와 아기는 일종의 모르핀 영향 하에 있다. 어머니와 아기가 모르핀 비슷한 호르몬이 두뇌에 가득 남아 있는 채로 서로 살갗을 맞대고 마주 바라보고 있을 때 그것이 상호의존의 시작이며 애착의 시작이다.·······

  호르몬에 관련한 이런 접근 방법은 성性이 온전한 하나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동일한 호르몬이 성생활의 다른 것들, 즉 성교, 출산, 수유에 관련되어 있다. 두 범주의 호르몬들-이타적인 호르몬인 옥시토신과 우리의 ‘보상체계’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엔도르핀-이 항상 관련되어 있다. 더욱이 그와 유사한 시나리오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각각의 성적 사건의 마지막 단계는 항상 ‘방출반사’-정자 방출반사, 태아 방출반사, 젖 방출반사-다.·······문화적 환경이 일상적으로 출산을 방해할 때 그것은 사실상 성 전체에·······영향을 주는 것임을 암시한다.(80-82쪽)


호르몬 또는 신경전달물질 하나가 여러 다른 작용을 할 때 모호성ambiguity이라 합니다. 반대로 호르몬 또는 신경전달물질 여럿이 한 작용을 할 때 용장성redundancy이라 합니다. 이런 현상을 발견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본질상 아마도 양자 중첩quantum superposition과 양자 연루quantum entanglement에 닿아 있을 것입니다.


옥시토신과 엔도르핀이 각각 “다른 것들, 즉 성교, 출산, 수유에 관련되어 있다” 할 때는 모호성ambiguity의 구현일 것입니다. 그러나 “온전한 하나”인 “성性”에 관련되어 있다고 할 때는 용장성redundancy의 구현일 것입니다. 둘 다 맞는 것일까요, 둘 중 하나만 맞는 것일까요?


저자가 성교, 출산, 수유를 한 데 묶어 “온전한 하나”인 “성性”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옥시토신과 엔도르핀의 일관된 공통 작용 덕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호르몬이 하나의 작용에 협력하므로 용장성이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용장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드러나는 “성性이 온전한 하나”라는 사실에 궁극적으로 주의해야 합니다.


성교가 그러하듯, 수유가 그러하듯, 출산도 내밀한 것입니다. 이를 의료시스템이 침탈하여 공개하는 것은 내밀함으로 보전되어야 성의 존엄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투명사회의 출산포르노birth-porn 산업이 일으킨 관음증후군입니다. 어른들이 관음증후군에 빠져 껄떡거리는 동안 아이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스스로 죽입니다. 미래의 살해사건입니다. 인류 전체의 살해사건입니다. 성을 온전한 하나로, 그러니까 출산을 분명한 성의 사건으로 되돌려 내밀하게 보전하지 않는 한 인류는 자멸하고 말 것입니다.


출산을 전후한 시생대 삶의 과정에서 결정적 타격을 입은 한 남자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사랑의 능력을 지니지 못한 채, 더군다나 그 사실을 알치 못한 채, 지아비가 되고 아비가 되었습니다. 그는 마음의 상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우는 아내에게 늘 이렇게 질문 아닌 질문을 반복합니다. “너 왜 우니? 그게 울어서 될 일이니?” 그는 자신에게 복종하는 아이를 편애하고 반대 의견을 내는 아이를 학대합니다. 그는 인문학 모임에 나가 진지하게 공부합니다. 더욱 투명해지는 이성으로 아내와 자녀의 감정이 지닌 색깔을 지워내고 있습니다. 그는 이른바 도시농부입니다. 대체 그의 손에서 자라는 채소와 곡식은 어떤 상태일까요? 그의 아내가 어제 제게 와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울음 멈추기를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말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당신 자신이 당신의 지성소로 들어가십시오. 남편 아니라 하느님도 거기는 함부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짙은 커튼을 치십시오. 따뜻하게 자신을 감싸십시오. 이내 나지막하고 조그만 다른 세계로 들어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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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욕忍辱으로는 모자라다

진욕進辱!

기꺼이 욕됨으로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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