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산마루 집 거실에서 남쪽을 보면 바로 앞이 정능산이고 그 본진은 관악산이다. 서쪽은 국사봉이고, 왼쪽은 서달산이다. 북쪽은 이름을 알지 못하는, 또는 이름이 없는 낮은 산인데, 거기 사육신묘가 있다. 한강 가로지르면 용산이고 그 본진은 안산 (너머 북한산)이다. 이 지정학적 배치를 인류학적 서사로 재구성하면 정능산은 주작, 국사봉은 백호, 서달산은 청룡, 사육신묘가 있는 산은 현무가 된다. 북한산은 진산(鎭山), 관악산은 객산(客山)이다. 도림천을 그려 넣으면 배산임수 풍수도 완성이다.

 

오늘 숲 걷기 동력은 바로 물색없어 보이는 이 인류학적 이야기에서 나왔다. 백호를 돌아 주산 능선을 타고 청룡으로 들어간다. 청룡이 품은 동작동 국립묘지를 정화하려 의식을 행한다. 동작동 국립묘지는 국방부 소속 국립서울현충원이 관장한다. 국립서울현충원 누리집 소개란에 <현충원의 지세>라는 글이 있다. 전문을 인용한다.

 

국립서울현충원은 북한산, 남산, 공작봉,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푸른 동맥을 잇는 공작봉(孔雀峰)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을 가지고 있다.

 

공작봉은 서울 강남에서 드물게 푸르른 녹지를 가진 현충원을 감싸 안은 봉우리로 양쪽으로 뻗어내려 불끈 솟아올랐다가는 엎드리는 듯 줄기와 봉우리가 만나고 헤어지면서 늠름한 군사들이 여러 겹으로 호위하는 모양으로 기운이 뭉쳐 있다.

 

사방의 산은 군인들이 모여 아침 조회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지하에는 여러 갈래 물줄기가 교류하여 생기가 넘치는 명당자리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전체의 형국은 공작이 아름다운 날개를 쭉 펴고 있는 모습으로 공작장익형(孔雀張翼型)이면서, 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듯한 장군대좌형(將軍對座形)이다. , 좌청룡(左靑龍)의 형세는 웅장한 산맥의 흐름이 마치 용이 머리를 들어 꿈틀거리는 듯 한강을 감싸 호위하는 형상이고, 우백호(右白虎)의 형세는 힘이 센 호랑이가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는 듯하며 전후좌우로 솟은 사방의 봉우리와 산허리는 천군만마(千軍萬馬)가 줄지어 서 있는 형상과 같다.

 

정면 앞산을 바라보면 주객이 다정하게 마주 앉은 모양이고, 멀리 보이는 산은 마치 물소뿔 모양이며 한강 물은 동쪽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들어 마치 명주 폭이 바람에 나부끼듯 하늘거리며 공작봉을 감싸 흘러 내려가고 있다.

 

이와 같이 국립묘지가 위치한 공작봉(孔雀峰)은 산수의 기본이 유정(有情)하고 산세가 전후좌우에 펼쳐져 흐르는 듯하여 하나의 산봉우리, 한 방울의 물도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은 곳이 없으며 마치 목마른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듯한 형상인 갈형취상(渴形取象)으로 그야말로 명당 중의 명당이라 할 수 있다.”

 

제임스웹 망원경이 우주 진실을 전하는 세상인데 대한민국 국립서울현충원은 누리집에서 풍수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한다. 천하 난센스인가? 일단 대답을 유보한다.

 

청룡을 남북으로 따라 걷다가 달마사 직전에 서북으로 방향을 틀어 매봉재(까치산) 능선길을 걷는다. 상도터널 위를 가로질러서 마침내 사육신묘에 다다른다. 청룡을 따라왔지만, 실은 사육신묘 품은 산은 다른 흐름에서 와 청룡과 만난다고 해야 한다. 사당이고개에서 청룡과 갈라져 흐르는 능선은 둘이다. 하나는 그대로 동서 방향으로 흘러가 국사봉에 이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도동과 노량진1동을 가로지르는 남북 방향 능선이다. 그 끄트머리가 사육신묘 품은 산이다. 그 흐름의 분기점이 바로 내가 사는 바리뫼 마루다.

 

사육신묘는 김시습이 사육신 주검을 거둬 묻음으로써 역사에 등장했다. 방치되다가 숙종과 정조를 거치며 정비·법제화되었다. 사당을 비롯한 건물들은 박정희 때에 지어졌다. 박정희가 벌인 이런 토건이 지닌 모순도 모멸감을 자아내지만, 한 가지 전해야 할 진실이 또 있다. 바로 김문기다. 김문기는 사육신이 아니다. 정조가 만든 <어정배식록(御定配食錄)>에 따르면 삼중신(三重臣)에 해당한다. 여기 묻힐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된 까닭은 김문기 후손인 김재규 때문이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사육신이 지닌 상징적 위상에 편승하려 권력을 이용했다는 이야기다. 문중에서는 이를 부인하지만, 국사편찬위원회가 이병도·이선근·백낙준·한우근·이기백·김원룡·최영희-이들은 대부분 일제 특권층 부역자다- 15인으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를 꾸려 이 문제를 논의하고 손을 들어주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국사편찬위원회가 나중에 결정을 뒤집기는 했지만, 여전히 김문기 빈 무덤이 봉안된 채로 있다. ‘6’신묘에 ‘7’신묘를 봉안한 이 웃지 못할 꼴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할까.



나중에 덧붙인 김문기에 관해 아무런 설명도 없다




오른쪽 아래 묘역에 하나가 억지로 더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네이버 지도


 

그런데 이 문제에 김두규라는 외부 필자 글이긴 하지만, 조선일보가 입을 댔다. 글 마지막 부분을 인용한다: 노량진 사육신 묘역의 풍수는 어떨까? 묘역의 지세는 관악산 지맥이 북상하여 한강으로 나아가려 한다. 사육신묘는 그 흐름을 따르지 않고 거꾸로 한양도성과 등을 돌리고 관악산을 바라본다. 이른바 지세를 거슬러[] 안장되었다. 하극상으로 투옥될 자리라고 풍수서는 말한다. 풍수에 능한 숙종이 이곳에 사육신묘를 허락한 것도 겉으로는 '충신'으로 현창하지만, 속으로는 '배신자들'의 무덤임을 알리려 한 것이 아닐까? 김재규 부장의 풍수 패착은 이것이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익히 경험했고, 현재도 목격하는 바처럼 이 식민지 부역 권력과 재력 정상부 담론에서 점술과 풍수는 필수다. 대놓고 일삼는 일제는 훨씬 더 음산하다. 과학과 합리를 가면으로 쓴 서구 제국은 기독교 주술과 묵시록에 절어 가장 악마적이다. 저들이 인류학으로 인류에게 뒤집어씌운 온갖 어두운 서사는 실제 극단화된 자기 서사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이 찬란할수록, 합리가 결곡할수록 앵글로아메리카 제국 점술과 풍수는 맹랑하고 허황하다. 전향한 저들 인류학도 여전히 그 품에 깃든 채 파닥거릴 따름이다.

 

모순과 모멸을 그득 안고 나는 국립서울현충원 묘역으로 들어간다. 크게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닦아 놓은 길을 따라 걷는다. 순국선열을 기리며 숙연한 마음을 지니는지 알 길 없지만 수많은 사람이 산책한다. 박정희 묘 앞에 선다. 음모가 작용했는지도 알 길 없지만, 마치 그 묘 하나를 쓰기 위해 국립묘지 전체가 들러리 선 듯한 규모와 위치다. 국립서울현충원 누리집 소개 글과 조선일보 글을 함께 음미하면 음울한 음모론 속으로 빠져든다. 황군 장교 출신 독재자, 그 죽음을 둘러싼 인연과 후손, 친일파들이 대거 발 뻗고 누운 천하 명당 국립묘지, 그리고 저 사신묘, 이 모두를 이어주는 풍수 이야기가 마치 지적으로 설계한대하극 같으니 말이다. 응시로 응징하고 박정희 묘에서 돌아선다.



중요한 많은 사실을 숨기고 찬양만 가득 채웠다




왼쪽 아래 있는 박정의 묘가 모든 묘를 거느리고 있는 형국이다  //네이버 지도


 

해가 서달산 서쪽 능선으로 내려앉으려 한다. 국립서울현충원을 떠나며 헤아려 보니 서달산으로써 200m 이하 낮은 산도 스물두 개를 걸었다. 200m 이상 높은 산 스물두 개까지 합해 서울 산에 갖출 예의를 다했다. 이제부터는 마음 가는 대로 홀가분하게 떠돌아다니련다. 이 놓여남을 기리면서 한 가지 다짐을 매어둔다.

 

생애 마지막 공부라 여기며 식물에 진심을 쏟아부음으로써 60대 후반부가 시작되었다. 생명 이치에 따라 공부는 곰팡이를 앞장세운 미소 생명으로 이어졌다. 공부는 숲 걷기와 한 묶음이었다. 그 숲이 제국주의 공부를 일깨워 주었다. 또한 숲은 제국주의와 함께 싸우는 전사가 되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끊임없이 내게 도전해 온 화두는 바로 인류학이었다. 내가 힘입은 인류학을 넘어 나는 범주적 인류학을 꿈꾼다. 지난 역사 속에서 인간이 이룩한 모든 (서구적) 학문을 인간학이라 이름하고, 그 맞은편에 비대칭 대칭으로 인류학을 세운다는 뜻이다. “인간학은 인간 이외 모든 존재, 심지어 어느 정도는 인간까지도 사물로 대하는 학문이다. “인류학은 인간 이외 모든 존재를 사물로 대하지 않는 학문 (너머 학문)이다. 내가 글 들머리에서 말한 풍수는 바로 그런 인류학어법 중 하나다. 온 존재가 낱낱이 팡이실이 하는 초인과·초합리 서사다. 특히 제국 지배층 인간과 특권층 부역 인간이 사적 탐욕 논리로 접근하는 풍수는 인류학이 아니다. 개벽 인류학이 찐 학문으로서 세계 앞에 서려면 필연적으로 제국주의 체제를 해석·변혁 범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인간학이 제국주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인간학을 응시하는 인류학도야말로 남은 날 내 정체성이다.

 

죽은 자들이 머무는 곳에서 남은 날을 다짐하는 일은 삶을 단지 육중함에 잡아두지 않는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나지막이 경계 이루는 여기는 오히려 나를 경쾌함으로 놓아준다. 두 묘역을 돌아 20km가 훌쩍 넘었으니 이제 온온한 곳에 퍼지고 앉아 막걸리 한 대포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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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4-04-02 15: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날이 좋으니 막걸리 한 대포 시원하게 맛있게 드실 수 있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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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길거리에 떨어진 휴지를 보고 그냥 지나가면 아이고, 주워 휴지통에 버리고 가면 어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온통 아이 천지인 셈이다. 내 세금으로 월급 주는 환경미화원이 있는데 왜 내가? 라고 묻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반론이 분명히 있을 테지만 이는 논점을 벗어난 헛똑똑이임이 틀림없다.

 

지지난 일요일인가 외출에서 돌아와 옷을 갈아입던 짝지가 하하 웃는다. 밥집에서 둘렀던 앞치마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무심코 그 위에 외투를 입는 바람에 알아차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번 주말에는 앞치마 돌려주려 그 집 가야겠다며 다시 웃는다. 그러자 하고 앞치마를 챙겨 개키는데 크게 뜯어진 솔기가 눈에 들어온다.

 

생각을 되작인다. 일부러 뜯어서 되돌려준다고 생각이야 하겠나만 이대로 돌려주기에는 민망한 꼴이다. 그렇다고 꿰매서까지 돌려주는 일은 지나친 오지랖 아닐까. 이대로 돌려줄 때 음식점에서 바느질해 쓸 가능성은 없다. 이렇게 뜯어진 줄 뻔히 알면서 다시 손님에게 내밀도록 눈감는 일도 그렇다. 결국은 쓰레기통으로···

 

생각을 되잡는다. 구멍 난 양말, 해진 한복 바지저고리를 꿰맬 때 사물과 생명을 향하는 내 공경심에 경계가 있는가? 있다면 어디까진가? 이른바 내 것에서 멈추는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내 버려두지 않고 내 시간을 조금 덜어내 바느질하는 일이 마냥 오지랖만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이내 5분가웃 꿰매어 간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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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유학을 끝내고 귀국한 지 만 19년이 지난 2005년에 다시 가서 본 미국은 젊은 시절에 본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우선 인종차별이 심각했다. 기가 막힌 것은 중학생쯤 되는 아이들이 그런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것. 코넬대가 있는 뉴욕주 이타카에서 10개월 정도를 지냈는데 나도 아이들한테 서너 번 그런 대접을 받은 적이 있다. 기분이 정말 더럽더라. 게다가 9/11 사태가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인지 사람들 사이에 애국주의가 팽배한 것도, 예컨대 성조기를 달아놓은 집들이 부쩍 많은 것도 보기 싫었다. 유학 생활을 하던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보낸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에는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8년 동안 지내며 인종차별도 단 한 번 당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최근에 미국에서 인종주의가 두드러진 것은 신자유주의의 지배로 사람들의 삶이 열악해진 결과 아닐까 싶다. 미국에서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 중반 이후에 도입되지마는 그것이 미국을 포함하여 세계적으로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은 소련의 해체와 현실사회주의의 붕괴가 이루어진 1990년대 이후다. 밀워키에서 머물던 동안 미국 인민대중의 강퍅한 모습을 덜 본 것은 사람들이 아직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제대로 당하기 전이었던 점 때문으로 여겨진다. 1980년대 초까지는 사회복지의 유산이 그래도 제법 남아 있어서 인민들 간의 유대가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보다 더 강했던 것 같다.

지난 26일에 메릴랜드주의 볼티모어에서 대형 사고가 터졌다. 이른 새벽에 프랜시스 스콧 키 대교가 붕괴한 것이다. 볼티모어 항구 외곽을 가로지르는 2.6km 길이의 대형 교량이 무너진 이유는 컨테이너선 한 척이 교각을 들이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다리는 1977년에 건설한 낡은 것이라지만, 그렇다고 교각이 선박에 들이박혔다고 다리 전체가 무너져 내려앉았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데, 다리의 안전성이 그만큼 취약했다는 말이겠다.

세계에서 최대로 부유하다고 하지만 미국은 사회 기반 시설이 정말 형편없는 나라다. 2005년에 미국에 머무는 동안 절감한 점 하나가 제대로 된 도로가 드물다는 것. 미국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 때는 차가 수시로 덜컹거리는 것을 예삿일로 여길 필요가 있다. 도로 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함몰된 곳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덕분에 졸음운전 예방 효과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자들은 어떻게 살까? 그들이 보통 사람들과 같은 고속도로를 이용할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헬리콥터나 자가용 비행기 타고 다닌다. 하지만 인민대중이 이용하는 공공시설은 뉴욕의 악명 높은 지하철처럼 완전 방치다. 2005년 8월 말 태풍 카트리나의 도래로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시가 온통 바닷물에 잠겨 엄청난 수의 이재민과 재산상의 피해가 생긴 것도 제방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라며 말이 많았다.

이 지면을 통해 여러 차례 지적하기도 했지마는 미국은 국방비로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 올해 공식 예산만도 8,860억 달러이고, 퇴역군인수당 및 기타 국방 관련 예산을 합치면 1조 달러가 훨씬 더 넘는다. 모두 미국이 세계 유일 초강대국, 아니 유일한 제국주의적 제국 노릇 하느라고 쓰는 돈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전쟁을 많이 일으키고 살상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다. 지금 진행되는 우크라이나전쟁, 팔레스타인 가자 전쟁도 미국이 미국으로 행세해서 벌어졌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러시아를 “전략적으로 패퇴시키기” 위해 나토의 동진을 부추기지 않고, 우크의 친나치 세력을 도와 쿠데타를 사주하지 않고 그들이 돈바스 지역 러시아계 주민을 학살하지 않았더라면 우크 전쟁은 발발하지 않았을 것이고, 팔레스타인에 서방 제국주의의 중동 침략 교두보로 수립되어 그곳 원주민인 팔레스타인인을 축출하고, 가자 지역을 야외감옥으로 만든 이스랄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지원해 그들이 팔레스타인인을 학살하도록 하지 않았다면 가자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크 전쟁, 가자 전쟁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세계 전역에 800개소가 넘는 군사기지를 두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쟁 대부분에 원인을 제공한다.

미국이 해외에서 그렇게 많은 군사적 개입을 한다는 사실과 볼티모어 키 대교가 붕괴한 것 사이에는 적잖은 인과관계가 있다. 키 대교의 붕괴는 컨테이너선이 교각을 들이받아 생긴 사고이기는 하나 다리가 튼튼했다면 대형 사고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고는 미국 사회 고질병인 사회 기반 시설의 부실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도로교통건설협회(American Road and Transportation Builders Association)는 지난해 8월 18일에, 미국의 다리 중 대대적 보수 또는 교체가 필요한 것이 36%라고 발표한 바 있다. 36%에 해당하는 교량의 숫자는 222,000개인데, 그중 76,600개가 교체되어야 하고, 42,400개는 특히 상태가 나쁘다고 한다. 미국은 지금 외국에서 전쟁 치르느라고 자기 집안 다리 무너지고 있는 줄 모르는 꼴인 셈이다.

8,860억 또는 1조 달러가 넘는 국방 비용을 나라가 쓰면 꼭 이득 보는 세력이 있다. 이름하여 군산복합체다. 그들이 국내 고속도로나 다리가 낡고 무너진다고 걱정할 리는 없다. 왜? 보통 사람은 차를 타면 덜컹거리는 도로와 교량을 지나다녀야 하지만 그들은 헬리콥터나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닐 테니까. 해외에서 전쟁 벌이는데 들어가는 돈을 돌려 사회 간접 시설을 복구하고 건설하는 데 쓰면 미국 인민의 교통 복지가 많이 개선되겠지마는 미국의 지배 블록은 더 많은 전쟁을 벌이고 싶어 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날수록 그들에게는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뉴스를 보니 미 대통령 바이든이 키 대교 재건을 위해 60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아무리 큰 다리라지만 엄청난 비용이다. 하지만 큰돈을 쾌척한다고 문제가 쉽게 풀릴 것 같지는 않다. 키 대교 재건에 무려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존스홉킨스대학의 토목 및 시스템 공학 교수 벤자민 샤퍼의 예측이다. 다리 하나 재건하는 데 600억 달러가 들고 10년이 걸리면 미국 전역에 붕괴의 위험에 놓여있는 수많은 다리, 도로교통건설협회가 말한 “상태가 나쁜” 다리 42,400개를 손 보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예산과 시간이 들까? 참고로 중국은 35,000km의 고속철도를 놓는 데 10년이 걸린 적이 있다. 고속철도와 교량은 건설하는 방식이나 소요 시간이 서로 다르겠지마는 얼추 같다고 보고 2.6km의 키 대교 재건에 10년이 걸리는 것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미국은 35,000km의 교통시설을 건설하려면 13,462년이 필요한 셈이다. 웃자고 하는 말이기는 하다.

키 대교 붕괴 사건 하나만 보더라도 미국의 국내 사정이 얼마나 엉망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미 제국주의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 전쟁을 일으킨다. 미국의 전쟁은 그들이 침략하는 나라와 인민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미국인 다수도 그들의 지배 블록, 군산복합체가 해외에서 일으키는 전쟁으로 피해당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봐야 한다. 결국 싸움은 다수의 인민 대 극소수의 지배 블록 간의 싸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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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을 이야기하면서 청암동 부군당 문제에 주목한 바 있다. 부군당은 마을 신당이라고 간단히 언급만 했었다. 부군이 부군(府君/府群/符君), 부근(府根/付根), 심지어 부강(富降)으로까지 한자화된 사실에서 부군이 본디 우리말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부군당을 신봉하는 마을 사람들은 붉은으로 발음한다고 한다. “붉은밝은은 같은 어원에서 왔으므로 해, (으로 표상되는 존재와 상징)을 숭배하는 무속 신앙과 연결된다는 주장이 있다(양종승). 부군을 중국 무슨 인물 이름에 귀속시키거나 한자 의미를 추적하는 방식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다고 본다. 이런 이치는 국사봉에도 통한다.

 

숲에 빙의되어, 그러니까 미쳐서드나들었던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릴수록 소름 끼치는 기억이 쟁여져 간다. 다시 하라면 대뜸 낙장거리할 듯하다. 최근 일요일에 늘 계획이 없는 까닭이다. 오늘도 아무 생각 없다가 버스 타기가 싫어서 그냥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국사봉으로 발길을 옮긴다. 숲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왜 국사봉일까, 생각해 본다. 국사봉 북쪽 발치에 양녕대군 묘가 있어 전해오는 이야기는 그가 여기서 아우가 다스리는 나라를 걱정했다고 국사(國思)라 했다는 내용이다. 억지스럽다. 무학이 비보 사찰 사자암을 창건하자 이태조가 그를 기려 국사(國師)라 했다는 말도 있다. 이 또한 억지스럽다. 벼슬아치나 먹물들 유희에 가깝다.



부군이 붉은에서 왔듯, 국사는 굿에서 왔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는 인왕산 국사당이 굿당임과 같은 이치다. 전국에 있는 여러 국사봉 모두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말과 한자 말이 이런 식으로 왜곡, 전도된 예는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다. 말이 나왔으니 다 하고 간다. 국사봉을 우리말로 하면 굿 봉우리가 될 테고, 부역 국어학자들은 봉우리의 봉이 봉()에서 왔다고 주장할 테다. 아니다. 봉우리는 순우리말이다. 봉우리와 봉오리는 다른 말이지만 같은 곳에서 나왔다고 봐야 한다. “봉긋하다를 생각하면 대뜸 알 수 있다.



나는 요즘 굳세고 바른 마음으로 우리말을 공부하는 중이다. 제도 교육을 통해 배워 70년 가까이 써온 내 부역 국어 체계에 크게 금을 내려 함이다. 관련 책과 자료를 살피는 동안, 지난해 <말글 부역 서사>를 쓰면서 마주쳤던 분노와 죄책감이 수시로 들이닥치는 바람에 견뎌야 할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이 나이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사람 자람과 반제국주의 싸움에 끝은 없다 깨우치며 다시 길을 나선다. 글씨체를 바꿨는데 글은 왜 못 바꾸겠는가 말이다. 아직은, 여기 내 글에도 엄연히 들어 있는 부역 풍경조차 엄밀히 걸러내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죽는 날까지 멈추지 않으려 한다.

 

늘 그랬듯 산마루로 가는 길 마다하고 허리를 크게 한 바퀴 돌아 숲을 나온다. 다음 숲은 강감찬 숲이다. 스트로브 잣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숲을 갈피 살펴 걷는다. 거의 다 돌았을 무렵 지니고 온 도토리 생각이 불현듯 난다. 적당하다고 여기는 곳에 심는다. 이들이 다 싹 나서 큰 나무로 자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썩어서 흙이 되더라도 돌아갈 곳으로 가는 것이니 나는 그저 오늘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도토리 심기와 우리말 공부는 본성이 같다. 돈이나 명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압제와 살해로 세상을 삼킨 제국에 맞서 작디작은 팡이실이 한두 올 일으킬 뿐이다. 그 한두 올이 내 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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